〈 116화 〉21장 - 예성 고등학교(5)
"다들 좋은 아침."
"네, 언니 좋은 아침이에요."
다슬이와 인사를 하며 식당 한편에 앉았다.
점심이나 저녁은 대충 감자로 때우는 느낌이지만, 아침 정도는 배식을 진행한다는 이야기에 식당에 와있었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줄은몰랐어."
"별거 아니지만 소소하게 즐거운 일이죠. 맨날 삶은 감자나 집어먹고 있으면 스트레스받아요."
간단한 수프였지만, 그냥 밍밍한 감자를 먹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의외로 괜찮은 재료도 많이 있었고.
"몬스터는 대부분 독성이 있어서 각성자가 아니면 식자재로 쓰질 못하니까 짜증 나요. 고기 먹고 싶다."
그녀는 아주 가끔 통조림에 들어 있는 고기를 먹을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 고기는 꿈도 못 꾸는 수준이라며 불평했다.
자급자족을 위해서 키우기 쉬운 작물들을 식량으로 삼다 보니 생겨난 문제였을 것이다.
확실히 원래 정상적으로 먹던 사람들이 감자만 먹으면 답답하긴 하겠지.
"여긴 도시권이니까 동물 종자 확보하기가 영 어려운 걸 어쩌겠어. 시골도 게이트 사태에 대부분 잃었다던데."
은찬이가 다슬이의 옆에 앉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평소에 평범하게 밥을 먹던 나에게는 이런 수프도 적당히 맛있지만, 자주 먹던 사람들 처지에서는 이 수프도 좀 물리겠네.
"그래, 이거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이 어디야. 그나저나 우리도 주변에 EX급 게이트 하나 열리면 좋겠다."
"EX급이라면, 거의 뜬소문 수준이잖아. 우리나라에선 나왔다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EX급 게이트? 그런 것도있어?"
뭔가 엄청 강해보이는 등급이네.
높은 확률로 엑스트라 등급이려나?
"EX급 게이트라고, 난이도 표기가 EX로 나오는 게이트가 있다는 소문이 있어요. 아무리 방치되어도 침식되지 않고, 클리어 조건도 게이트 석의 파괴가 아니래요."
"소문이구나."
"저희가 직접 본 게 아니면 다 소문이죠. 솔직히 서울 내부말고는 돌아다닌 적이 없고, 아예 지방 쪽은 연락도 잘 안 닿거든요."
그냥 뜬소문이라기엔 뭔가 내용이 자세하긴 했다.
뭐 실제로 본 것이 아니면 믿을만한 것이 아니긴 하겠지만.
"암튼 EX급 게이트는 클리어 조건을 따로 시스템이 알려주는데, 그걸 해결하고 나면 게이트 내부와 외부가 침식처럼 연결된다고 해요."
"연결?"
"원래 게이트는 나가는 길이 없거든요. 부수는 것이 유일한 나가는 방법이고요."
"아, 그래?"
그건 몰랐다.
방금 침식처럼 연결된다고 한 것을 보면 침식은 평범하게 나갈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근데 EX급은 클리어 이후에는 자유롭게 통행이 열린대요. 그리고 게이트 내부는 그냥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해요."
뭐야. 이러면 EX급 게이트라는 게 그냥 소문일 확률이 확 줄어드는데?
이거 개발진이 심플월드가 리트라이에 이식된다고 했던 것과 어느 정도 일치되는 설정이잖아?
- ?
- 이거 심플월드 떡밥 아닌가
- ㄹㅇ
- 뭐야 이런 설정이 있네
- ㄷㄷ
- 시공이었네
- 심플월드 탑이랑 비슷한듯
- 이세계ㄷㄷㄷ
"하여튼 거기 내부에 제대로 된 거래처가 있으면 식자재를 보급받는 것도 가능할 테니까요. 물론 그이전에 게이트를 클리어해야 하겠지만."
흔한 한탄과 기대가 섞인 대화였지만, 나로서는 이후에 맞이할 맵에 대한 정보를 얻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EX급 게이트에서는 다른 곳보다 높은 확률로 좋은 장비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장비?
이제까지 제대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키워드가 나오자 궁금증이 생겨서 다슬이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장비라고 하니까, 다슬이 너도 칼을 들고 다니잖아. 그런 장비는 어디서 얻는 거야?"
"대부분은 게이트나 침식이죠. 마력 심장이랑 기술을 때려 박아서 만드는 무기도 있긴 해요. 생산 계열 고유 능력을 써서 만들기도 하고."
"음, 평범하네."
"다만 성유물은 이제까지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네요."
"성유물?"
"장비는 사실 활용만 가능하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데, 성유물은 사람마다 단 하나만 동시에 쓸 수 있어요. 그렇다고는 해도 그 하나조차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잘 없죠. 우리도 세랑 선배 말고는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네요."
"제일 강한 장비 같은 느낌이야?"
"아무래도 그래요. 심지어 다른 장비랑 다르게 성유물의 성능은 각성 등급에도 영향을 줘요."
다른 장비는 장착 제한이 전혀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녀는 다른 장비는 어디까지나 보조이며, 성유물이제대로 된 수준 차이를 만드는 장비라고 말했다.
"어, 세랑 선배. 선배도 여기서 드세요."
은찬이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식판을 들고 걸어가던 진세랑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이쪽을 돌아본 그녀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왜 저렇게 보지?
"그, 그렇게 하는 것이에요."
"왜 저렇게 버벅거리신대."
"세랑 선배 말투가 좀 특이하죠? 근데 둘이 뭔가 있었어요? 눈초리가 심상치 않던데."
"어제 방에 와서 날 쫓아내시던데?"
"아, 그랬구나. 그 방은 원래 세랑 선배가 자주 가서 쉬거든요. 남은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거기라도 드린 거고요."
진세랑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은찬이를 바라봤다.
하지만 은찬이는 고개를 으쓱하며 말을 돌렸다.
"그럼 어제 어디서 주무셨어요?"
"세랑씨 방이요."
"그러셨구나. 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더 고민해 볼게요."
원래라면 기숙사가 충분해야 하는데, 저번에 기숙사 건물 하나가 파괴되면서 모자란상황이라고 말했다.
"정 뭐하면 기숙사 말고 다른 교실을 배정해드려도 되니까요."
"천천히 하셔도 괜찮아요. 세랑씨 방도 충분히 자기 좋거든요."
"헤으응...."
그걸 입으로 말하는구나.
진짜 저 사람 대단하네.
"그나저나 세랑 선배가 웬일로 아침을 드세요? 매번 지금 시간엔 주무시잖아요?"
"여아쟝은 오늘 호출을 받은 것이에요."
"뭐야. 선배도 호출이 있었어요?"
다슬이도 호출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식사를 끝마치고 바로 함께 교무실로 향했다.
"뭐야. 부른 건 두 사람인데, 네 명이 왔네."
"아, 혹시 저희 둘은 들으면안 되는 이야기인가요?"
"그건 아니야. 어제 침식이 해결되면서 몬스터를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왠지 몬스터가 줄어들지 않는 구간 때문에 미발견 침식을 찾아냈어."
"미발견 침식이라니...."
그러고 보니 침식은 이미 침식이 된 상태라면 등급을 알 수 없다고 했었다.
그래서 침식 이전에 게이트일 때의 등급을 대체로 사용하는데, 게이트인 시절에 미리 발견하지 못했다면 침식은 등급을 알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럼 침식 등급을 모르네요?"
"S급은 아닐 테고, 최악의 경우 A급일 가능성도 있어. 나오는 몬스터들을 보면 B급 이하일 가능성이 제일 크긴 해."
"그럼 제가 다녀올게요."
"또 다슬이를 보내는 건 역시 마음에 걸리는데."
"침식은 빠져나오는 것도 가능하잖아요. 최대한 정찰만 해서 확신이 들지 않으면 돌아올게요."
음, 확실히 위험부담이 있는 상황이었다.
저번 B급 침식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위험할 수 있었는데, 정말 A급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세랑 선배는요?"
"네가 어제 발견했다고 한 오러로 된 셸터 조사, 세랑이는 그것 때문에 부른 거야."
"여아쟝 힘내서 조사하는 것이에요,"
- 말투 진짜 정신나갈 것 같아
- 하와와
- 으악!
- 겁나 언벨런스하네ㅋㅋ
- ㄹㅇ입만 안열면 귀엽고 이쁜데
- 으윽
"그럼 제가 가는 건 어떨까요?"
내가 대신 가겠다는 의견을 표하자, 먼저 가겠다고 했던 다슬이부터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얀별 언니는 공략 경험이 적잖아요. 아니면 아예 우리 둘이 같이 가는 것도...."
확실히 그렇게는 한데, 나로서는 그게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지.
[시나리오 퀘스트: 정착
당신은 예성 고등학교에 소속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당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혼자서 B급 이상의 침식을 정화하십시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런 퀘스트를 던져 줬으니까.'
- ㅋㅋㅋㅋㅋ
- 시나리오는 어쩔 수 없지
- 퀘스트 클리어 못참지
- 이걸 깨야하네
- B급 침식 나오면 날먹 아닌가?
- 너무 도박인데
-A급이면 큰일나는데 좀 사리시지
- ㄹㅇㅋㅋ
"아니야. 정찰만 하는 거라면 혼자 가는 것이 몸을 빼기 좋거든. 그런 건 또 자신이 있어."
개인적으로 믿는 구석이 있었다.
지난번 시나리오 퀘스트로 주어진 보상 때문이었다.
[소모품: 귀환석
사용하면 사용한 사람이 게이트나 침식 내부에서 입구로 이동된다.]
정말 위험하면 이걸 사용해서 탈출하면 되겠지.
내가 위험하다는 것 자체가 B급으로 해결하기는 힘들다는 소리니까 세랑씨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되겠고.
"그럼 얀별씨, 부탁드릴게요. 들어오자마자 이런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저야말로 감사히 잘 지내는 중이에요. 각성 도중이라 경험을 많이 쌓아둘 필요성도 있어서 나서는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침식이 표시된 주변 지도를 받고, 가방에 공략하는 동안 필요할 만한 식량이나 식수도 서포트 받았다.
소속이 생기니까 이런 식으로 지원받는 것이 좋네.
[신규 미션이 등록되었습니다.]
- 침식 정화에 성공하기: 100,000원
처음 듣는 알림음에 시야를 둘러보자, 저번에 생겼던 미션 기능을 켜둔 것이 생각났다.
도배될 가능성 때문에 최소 금액을 10만원으로 바꿔 놓았는데 이게 등록되네.
"꼭 깬다. 근데 이거 A급이라서 정찰만 하고 돌아오면 실패죠?"
- ㅋㅋ 어림도 없지
- ㅔㅔ
- 운도 실력입니다
- ㄹㅇㅋㅋ
- 꼬우면 A급도 깨시던가
- 아ㅋㅋ
이 사람들이 진짜, 자기들 일 아니라고 막 나가네.
물론 요즘은 큐브온 수익이 짭짤한 덕에 후원 미션 하나하나에 목맬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저렇게 걸려있는데 못 따먹으면 아쉽긴 할 터였다.
"여긴가? 안개 낀 거 보면 맞는 듯?"
이번에는 혼자 돌아다니다 보니 오랜만에 시청자와 소통할 수 있어서 마음이 좀 편했다.
심플월드에서 탑 공략할 때도 그렇고, 너무 NPC가 현실적인 것도 문제네.
"와, 이런 공사장 내부에 있으니까 이제야 발견했지."
주위를 천천히 살피면서 침식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게이트이던 시절에 발견하지 못했던 이유를 알만한 위치였다.
"여기부터 침식 내부네요."
안개가 사라지고 내부가 제대로 시야에 잡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느낀 것은 처음 갔던 침식과의 차이점이었다.
"여기 처음 갔던 곳이랑 되게 다르네. 뭔가 마을 비슷한 형태가 있는데? 다 박살 났지만."
내부로 들어오고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몬스터 하나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벌써 침식석을 돌려놓아야 하는 원래 자리를 찾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마력 흐름 보니까 여기 맞네. 이제 침식석만 찾으면 되는데...."
대충 이곳의 위치를 지도 뒤편에 메모해두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오히려 이상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무것도 없네?
"여기서 몬스터 나왔다고 하지 않았나? 근데 왜 내부에 몬스터가 없지?"
만약 내부에 몬스터가 있었다면, 그 몬스터들이 최근에 죽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크게 두 가지가 있네.'
첫 번째, 이 침식을 발견한 누군가가 침식을 정화하기 위해 몬스터를사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 내부가 깨끗했다.
일반적으로 사냥하면 몬스터의 시체가 가득해야 하는데?
"설마...."
나는 아주 옅게 코끝을 스치는 혈향을 느끼자마자 주변을 경계하면서 몸을 피했다.
"미친."
두 번째, 그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 있는 더 강한 몬스터가모두 죽였다.
만약 시체까지 깔끔하게 먹어 치울 수 있다면 시체가 없는 것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
- ㄷㄷㄷㄷ
- 이거 도망쳐야 할듯
- 못이길 것 같은데
- 시작부터 레이드 보스가뜨네
- 비쥬얼만 보면 레이드용임
- 아 개징그러워
- 저게 대체 뭐냐
- 으악
- 혐주의좀
"혐주의를 어떻게 해요! 제가 무슨 미래 예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억울함을 표출하면서도 일단 내 시야를 가득 채운 괴물에게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귀환석을 사용하기 전에 어떤 놈인지 정보라도 따내야겠네.
"일단 가볍게 마법으로!"
그냥 간단하게 원거리공격을 날려봤지만, 별로 타격이 없는 듯 무시하고 계속 내 쪽으로 달려왔다.
하긴 이건 B급도 그렇게 아파하지 않았지.
"흡!"
도망치던 중에 기회를 잡고 오러를 씌운 검을 내리쳤다.
B급 사냥할 때는 이 정도로 충분했으니까, 이게 먹히지 않으면 A급이라는 소리가 된다.
- 어림도 없죠?
- 그냥 귀환이나 하자
- 이게 A급이 맞네
- 응 꽝이었구요
- 아ㅋㅋ
- ㅈ됬네
- 빨리튀어!!
- 운도 더럽게 없지 진짜ㅋㅋ
"어, 그래 일단 튀자."
나는 망설임 없이 귀환석을 사용해서 침식 앞으로 이동했다.
이거 이동 위치가 안개에 들어가기 직전이구나?
"와, 씨.... 진짜 깜짝 놀랐네. 뭐 저딴 게 나오지?"
일단 여기가 A급 침식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다만 A급 게이트의 몬스터를 싹 쓸어버릴 정도의 몬스터면 일반적인 A급보다 강할 것 같은데?
아니면 B급 침식인데저 몬스터가 A급처럼 강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이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난이도가 아니었다.
"미션은 실패했으니까 실패 버튼누르면 되죠? 뭐야 이건 또 뭔 소리야?"
잠시 바닥에 앉아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채팅창과 소통을하고 있는데,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시발, 이거 뭔가 많이 좆된 것 같은데?"
조금 전에 봤던 그 이상하게 생긴 몬스터가 검은 안개 뒤편에서부터 조금씩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