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22장 - S급은 사드세요 제발(1)
"아하하...."
웃음으로 얼버무릴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다슬이는 이것이 어떻게 된 상황인지 계속 캐물어 왔다.
하긴 이상하긴 하다.
B급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혼자서 A급 침식을 해결하고 왔다는 소리니까.
심지어 몸 상태도 힘껏 무리한 티가 났고.
"진짜 A급이었어요? 그럼 대체 왜 도망치지 않고 싸운 거예요!"
"도망은 치려고 했지.... 적이 나보다 빨라서 의미가 없으니까 밑져야 본전으로 싸운 거야."
- ㅋㅋㅋㅋㅋㅋㅋ
- 의도한 건 아니긴 하지
- 아ㅋㅋ
- 그걸 어떻게 예상함ㅋㅋ
- 쟤는 만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걱정하지?
- ㄹㅇㅋㅋ
- 유망주인데 죽으면 안되지
- 죽으면 전력 떨어지는 건데 걱정해야지
나도 침식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몬스터가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내가 그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면 바로 도망친다는 선택지를 골랐겠지.
"하여튼 잡았으니까 해결이잖아. 고생은 좀 했는데, 결과가 좋으니까 해결인 걸로 해줘."
"언니, 그럼 각성한 거예요?"
"아니? 그건 아닌데?"
이번에는 지난번보다도 심각해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그녀가 묘한 말을 했다.
"언니는 설마.... 아니겠지, 아무것도 아니에요."
"뭐야 뭔데."
"아니에요. 각성 없이 A급이라는 게 제 상식상에서는 이해가 가질 않아서요."
"아하하...."
그러고 보니 다슬이는 능력을 어떻게든 활용해서 B급이었지.
나 때문에 너무 비교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게 아닌가?'
혹시 그런 이유로 고민하고 있나 했는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녀의 표정이 꽤 밝았다.
약간 억지로 진정하려는 듯한 모습도 주기적으로 느껴졌다.
"너무 그러지 말고 설명해봐."
"...S급 헌터가 이제 없다는 건 아시죠? 혹시 제가 두 번째 S급 헌터의 탄생을 지켜보나 해서 조금 들뜨네요. 역사의 한 장면에 있는 거잖아요."
"기대가 너무 큰 거 아니야? S급은 무슨, A급도 그렇게 있는 힘 없는 힘 다 사용해서 겨우 잡았는데."
"비각성 B급이야 간간이 들려오는 소문이 있지만, 비각성 A급은 들어본 적도 없어요."
"아니, 내가 지금 그렇게 강한 건가?"
- ㅔ
- 네
- ㅋㅋㅋㅋㅋ
- 자각이 없었네...
- 어제 포카가 자기도 싸워서 이길거라고 장담 못 한다고 했는데ㅋㅋ
- 확실히 대회랑 심플월드 하면서 피지컬 엄청 늘었지
- ㄹㅇㄹㅇ
- 이미 준프로급 아님?
- ㅋㅋ어지간한 프로보다 피지컬 좋은 것 같은데
나는 다슬이에게 물어본 거였는데 채팅창에서까지 우르르 답을 해왔다.
그런가? 내가 최근에 그렇게까지 실력이 늘었나?
"쌤한테는 설명해 둘게요. 이런 식으로 우리가 보유한 A급 전력이 둘이 되어 버릴 줄이야."
"너무 띄워주지 마. 온전히 전투력만으로 잡은 건 아니니까."
"오히려 언니가 너무 조심스럽고 겸손한거예요. 당장 이거 알려지면 난리 날걸요?"
"난리?"
이게 알려진다고 해서 난리 날 만한 이유가 되나? 강한 사람들이 싸워보자고 덤빈다거나?
내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다슬이는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언니한테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려고 하겠죠. 아무래도 A급은 먹이사슬 최상위니까요."
그런 의미였구나.
하긴 이런 상황에서 강자라는 것은 그런 의미가 될 수도 있겠네.
여기서는 각성자 등급이 곧 신분이나 마찬가지고, 그런 의미에서 A급은 최고의 대우를 받을 터였다.
"어라, 이 시간에 호출? 뭔가 있나?"
휴대폰은 아닌 것 같고, 뭔가 돌멩이 같은 것을 확인한 다슬이가 그렇게 말했다.
저건 뭐지?
"그건 뭐야?"
"개조한 마력석이요. 미리 마법을 걸어둬서 연동해둔 마력석을 치면 이쪽이 진동해요."
"아하, 1회용 삐삐 같은 거구나."
- ?
- 삐삐가 머지
- 그 나이에 삐삐를 아네
- 알수도 있지ㅋㅋ
- 솔직히 삐삐 세대가 여기 얼마나 있다고
- 아ㅋㅋ
- 삐삐보단 무전기가 익숙한 세대
- 세대차이 에반데
"삐삐? 그게 뭐더라. 아 그 옛날 휴대폰 그건가? 영화에서 본 것 같긴 해요."
나도 삐삐 세대는 아니지만, 적절한 표현이 그거 말고는 떠오르지 않아서 삐삐를 예시로 꺼낸 거였다.
"응 그거. 휴대폰 나오기 전에는 그거로 알림만 받았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잖아."
하여튼 휴대폰이 안되니까 저 돌을 쓰는 건가?
그런데 저번에는 인터넷이 된다고 들은 것 같은데.
"인터넷이 된다고 하지 않았어?"
"그거 고유 능력이 그런 쪽인 애들이 잠시 열어주는 거라서 되게 일시적이거든요. 그거로 급한 통신을 할 수는 없으니까 이거라도 사용하는 거죠."
"아하."
우리가 교무실에 도착하자, 거기에는 이미 소민 선생님과 은찬이가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었다.
"침식은 어떻게 되었어?"
"처리했어요."
우리가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려는 순간, 곧바로 진세랑이 도착하면서 시선이 그쪽으로 옮겨졌다.
"세랑아, 조사 결과부터 들을게. 어땠어?"
"사람은 없었고, 이걸 발견한 것이에요."
"구슬?"
안쪽에는 마력심장 비슷한 것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이건 또 뭐지?
"뭔지 모르겠네. 아무튼 이게 오러를 만들고 있었다고?"
"그랬던 것이에요."
오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구슬이라니.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은찬이에게 구슬을 넘겼다.
"조사 부탁해. 그리고 아까 말해주기로 한 것 설명해줘."
"네, 좀 전에 서버가 열려서 정기 연락을 취하고 있는데 조금 이상해요."
"이상?"
은찬이가 노트북을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꽤 많은 지역의 아이콘이 붉게 칠해져 있었다.
"전에 강남쪽에 연락이 끊긴 곳이 있다고 했죠? 그 주변이 이번에는 싹 다 전멸이에요. 진짜 뭔 일 난 것 같거든요?"
"확실히 이 정도면 문제가 있는 것 같네."
아마 그 붉게 칠해진 곳이 통신이 끊어진 구역인 모양이다.
거의 전멸인 수준인데?
- 미친
- 강남은 싹 전멸이네
- 거의 이 근처까지 왔구만
- 오우쉣
- 일 하나 해결하고 왔더니 바로 다음 일ㅋㅋ
- 아ㅋㅋㅋㅋ
- 이게 하얀별의 운...?
- 하얀별식 게임 전개ㄷㄷㄷ
아니 하얀별식 게임 전개가 대체 뭔데.
내가 뭐 원해서 매번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건 아니잖아.
"상풍 백화점 말고는 이 근처까지도 전부 전멸이에요. 혹시나 해서 상풍 백화점에 말을 걸어보는데 통신만 그린이고 답이 없어요."
"우리가 그쪽에 가서 확인해 볼까?"
"그건 너무.... 잠시만!"
우리가 해결책을 논의하려는 순간 노트북의 화면에 변화가 생겼다.
초록색으로 빛나고 있던 점 하나가 붉게 변한 것이었다.
"...상풍 백화점 통신 끊어졌습니다."
이제는 상풍 백화점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무언가에 당했다는 소리가 된다.
그리고 지도상으로 다음에 노려질 만한곳은....
"여기네."
바로 여기 예성 고등학교였다.
은찬이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근처의 다른 생존자들에게 연락해 봤지만, 대부분 별로 대단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A급을 이길 만큼 강한 몬스터. 그것도 아니라면 상풍 백화점보다 강한 전력을 지닌 약탈자 무리. 크게 보면 이렇게 두 가지인데...."
어느 쪽이든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미리 움직였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학교 소속 사람들을 지켜야 하므로 그런 방향으로 대응하기에는 늦었다.
"쳐들어오는 것이 무엇이든, 일단 근처에서 대기하면서 경계를 해야겠네."
상풍 백화점이 있는 방향으로 자리를 잡고 그쪽을 살폈다. 최대한 빨리적을 확인하고 공격하기 위해 준비를 했다.
"세랑 선배는 상태 좀 괜찮아요?"
"나쁘지 않은 것이에요."
그리고 세랑씨와 내가 준비되자 다슬이를 비롯한 나머지는 뒤로 빠졌다.
나도 약간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세랑씨가 최전방에 섰다.
"오는 것이에요."
세랑씨의 입이 열린 순간 전방에서 사람의 실루엣이 느껴졌다.
아마 높은 확률로 강남을 쓸어 버린 것이 저 사람이겠지.
'그럼 역시 범인은 약탈자였나? 아니지, 사람이랑 비슷하게 생긴 몬스터일지도 몰라.'
일단은 너무 속단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이쪽으로 날아오는 적에게 견제를 날렸다.
제대로 타격을 입힐 수는 없겠지만 방해 정도는 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와와, 여아쟝 슬레시!"
일단 조심스럽게 공격을 이어나가면서 적으로 보이는 물체를 향해 뛰어나가는 세랑씨를 바라봤다.
근접형 공격을 할 생각인지 피로 검을 만들어서 휘둘렀다.
나는 후속 상황에 따라 알맞은 서포트를하기 위해서 그 상황에 오롯이 집중했다.
아니, 집중할 생각이었다.
"...어?"
그리고 인영의 뒤에서 거무칙칙한 것이 솟아오르더니 세랑씨의 검을 집어삼켰다.
그것과 동시에 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검으로 그녀의 팔을 잘라냈다.
"아아악!"
- ㅁㅊ
- 아니 연출 적당히좀 하라고
- 와 피 그대로 튀기는거 실화냐
- 현실도 너무 높은데
- 아니 너무 적나라한거 아니야? 바로 모자이크 걸리네
- 겜 너무 잔인해...
- 뭐야 왜 한방임???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단 일격에 세랑씨의 오른쪽 팔이 베어졌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미친 듯이 뿜어지는 피와 함께 그녀의 팔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나는 다른 생각을 할 새도 없이 급하게 세랑씨를 마력으로 붙잡아서 구출해냈다.
마력 소모는 좀 많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세랑씨가 목숨을 잃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생각보다 여긴 약한 느낌이네. 아니면 방금 스펙업을 해서 그런가?"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굉장히 무덤덤한 목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공격을 멈추고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는 인영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였다.
"여자애?"
그리고 가까워진 거리 때문에 제대로 시야에 들어오는인영의 모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많아 봐야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검을 들고는 이쪽을 보며 웃고 있었다.
"그나저나, 여긴 A급이 다 언니들이네? 마음에 들어. 아무래도 남자 비명은 질리던 참이었거든."
하긴, 사람이 미친 것의 여부나 강함의 여부는 나이나 성별과 전혀 관계가 없다.
어린애라고 해서 방심해서는 절대 안 된다.
"여긴 우리가 관리하는 구역이야. 무슨 용건인지 알 수 있을까?"
나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 생각으로 그런 질문을 했다.
딱 봐도 우리를 다 죽일 생각으로 온 것이겠지만, 그래도 대답 정도는 해줄 것 같다는판단 때문이었다.
"음, 언니들은 꽤 친절하네. 대부분은 나처럼 살기를 띠고 달려들면 싸우기에 바쁜데 말이야."
그렇게 말한 그녀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류승아. 나이는 14살 정도였나? 몰라 요즘엔 시간 개념이 없어서 지금은 얼마인지 모르겠네."
"그래 승아야. 너는 무슨 이유로 우리를 공격한 거야?"
"헤에, 언니가 그렇게 친절하게 물어봐 주면 설명해주는 것이 맞겠지?"
그렇게 말한 승아가 검을 든 채로 빙그르르 돌더니 씨익하고 웃었다.
그 모습이 뭔가 섬뜩해서 방어태세를 갖추려는데, 그녀가 그 이후에 한 것은 공격이 아니라정말로 자신이 우리를 공격한 것에 대한 설명이었다.
"나는 사람을 죽이면 그 사람의 능력 일부를 흡수할 수 있는 고유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거로 계속 강해질 수 있는 능력이야."
"...그래서?"
"인류는 지금 S급 각성자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잖아? 그럼 내가 사람들을 죽여서 강해지고, 또 강해져서 S급이 되면 분명 S급 게이트를 닫을 수 있지않을까? 승아는 그걸 위해서 언니들이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 오 그렇구나 완벽하게 이해했어
- 저게 대체 무슨 미친 소리냐
- ?????
- 뭐라는 거야 대체
- 생긴건 애인데 왜 이렇게 하는 짓이 무섭냐
- ㄷㄷㄷㄷㄷㄷㄷ
- 전부 죽이고 흡수해서 저렇게 강한 건가?
- ㅁㅊ
다만 그 이유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더없이 황당한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어떤 사고를 통해서 그런 결론이 나오는 것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승아를 위해, 그리고 인류를 위해서 죽어줘. 친절한 언니들."
말이 끝남과 동시에 휘두른 그녀의 검을, 나는 온 힘을 다해서야 겨우겨우 튕겨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