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22장 - S급은 사드세요 제발(2)
"아니, 무슨 마력이!"
이제까지 로메나 심플월드를 하면서 신기한 마력이나 전투 스타일은 모두 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를 막았다 싶으면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얽혀오는 다음 마력은 전혀 예측할 수가 없는 구조였다.
'여럿이랑 싸우는 것 같아.'
적이 혼자가 아니라 여러 명일 때 내가 혼자 상대하는 느낌.
그렇다고 해서 대응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반대로 대응하기에 바빠서 내 쪽에서 치고 들어갈 타이밍을 잡을 수 없었다.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말했잖아. 인류가 게이트에게 승리하기 위해서라구."
"그런 말도 안 되는...."
"언니는 감성적이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인류를 위해서는 이렇게 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할 텐데."
그녀는 농담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자신이 가진 신념은 정말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가, 그리고 그녀의 마음이 바르다고 해서 그녀가 지금 벌이고 있는 행동들이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 정말 이성적으로 인류의 생존만을 위한다면 그게 맞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건 상대방도 동의해야만 가능한 거야. 그렇게 힘으로 억지로 밀어붙여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녀에게 소리치는 순간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다행히 곧바로 승아가 공격해오지는 않아서 내용을 살필 여유는 있었다.
[시나리오 퀘스트: 방어
당신은 무려 A급의 침식을 혼자서 해결했습니다, 이제 소식을 들은 그 누구도 당신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을 인정해 주어야 할 소속이 승아라는 이에게 습격받았습니다. 습격에서 당신의 소속을 지켜내십시오.]
- 이거 갱신 왜 이렇게 느림ㅋㅋ
- 맞다 이거 갱신 안되었었구나
- 보상 머임?
- 보상ㄷㄱㄷㄱ
- 맞다 이게 있었지?
- 대체 갱신 메커니즘이 어떻게 되는거냐
그리고 주어진보상을 확인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거면 시도 정도는해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소연율'님이 300시간을 후원합니다.]
- 고인물 야한별! 화이팅!
'내가 고인물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 힘내라면서 후원을 해주면 힘이 나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이럴 때만큼은 나 자신을 믿고 해보면 되는 거겠지.
"언니 말도 정론이네. 아무리 내가 가려는 길이 맞아도 그 길을 함께 걸을 사람은 그 행보에 동의해야만 하니까."
"그래, 그러니까 이제 이런 짓은 그만...."
"하지만 말이야."
"어?"
역시 말로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하긴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준이었다면 다른 지역에서 이미 멈췄었겠지.
"내가 살인자가 되고, 내가 쓰레기가 된다면 최소한 남는 사람들이라도 살아날 수 있어. 눈치 게임 하다가 다 죽는 꼴은 더 못 보겠거든."
그녀는 꽤 슬퍼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확실히 뭔가 사연이 있는 모양이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죽어줄 수는 없잖아?
'지금처럼 방심할 때 어떻게든 해야 해.'
어차피 이곳의 수준이라면 자신이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여유를 부리는 중일 터였다.
그렇다면 이럴 때 확실하게 결판을내야지.
'낮은 등급으로 연습했던 거라서 이거로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어.
믿어보자.
나는 손에 들고 있던 A급 마력 심장을 꽉 쥐었다.
마력 심장은 한 등급 높은 마력석을 통해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마력 심장을 허용 범위 이상으로 쥐어짜면....
"흡!"
S급 마력석에 가까운 출력을 꺼낼 수 있으리라.
그리고 내 예상대로라면 이 정도의 마력이라면 충분히 '그것'을 재현할 수 있을 터였다.
'강력한 출력을강제로 엮어서 무기처럼 쓰는 건 이미 익숙해.'
마력 심장의 마력은 사람이 이런 식으로 사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겠지만, 그건 궁극기 게이지도 마찬가지였다.
로메를 하면서 궁극기 게이지를 마치 마력처럼 활용했던 기억이 선명했다.
'그리고 기회는 단 한 번.'
사람을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꺼림직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에는 상대의 상태를 봐줄 만큼의 여유가 없었으니까.
순간적으로 내 손에서 터져 나온 빛이 검의 형상이 되었고, 방심하고 있던 승아의 몸에 그대로 직격 했다.
- ?
- 뭐야
- ???
- 어캐했노
- ㅗㅜㅑ
- 해치웠나?
- 방금 그거 궁극기 아님?
- 로메인줄ㄷㄷ
"크흐...."
부딪히는 순간부터 귀에서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고, 손에서는 지독한 통증이 느껴졌다.
완벽하게 베어내진 못한 모양인지, 중간에 막히는 느낌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살갗이 다 찢어져 나갔는지 내 손에서까지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이럴 때가 아니야. 상대가 회복하기 전에 끝내야지.'
바닥에 몸 일부가 박힌 채로 누워있는 승아에게로 다가가 검을 내밀었다.
그녀는 방금 공격이 확실한 치명타였는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언니는 강하네."
"꼼수를 쓴 거지, 강하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어."
"수단은 상관없어. 살아남은 쪽이 더 강한 거지."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너보다 강한 거겠지."
"응."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고 내가 그녀를 죽이길 기다렸다.
이런 상황이 되면 살려달라고 빌 법도 한데, 진짜 무덤덤하네.
- 와 살려달라는 말도 안하네
- 진짜 애 맞음?
- ㄹㅇ사이코패스네
- 무표정 개무서움
- 저게 어떻게 14살임
- ㄹㅇ말 안된다
- 승아 죽이지 마ㅜㅜ
- 진짜 얀별님이 다했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검을 치켜들었다.
그녀를 여기서 살려준다고 해도, 그녀가 이 정도로 신념이 강하다면 또다시 사람들을 죽이고 다닐 터였다.
[대상: 류승아가 특성: 기억 속을 거니는 자(S)의 조건을 만족합니다.]
"어?"
예상치 못한 메시지에 내 움직임이 멈췄다.
이게 갑자기 왜 나오는 거야? 그나저나 특성이 NPC에도 사용 가능한 거였어?
내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시야가 갑자기 바뀌었다.
☆ ☆ ☆ ☆ ☆ ☆ ☆
"진짜, 이게 뭔 일이래?"
생각도 하지 못했던 특성 조건이 달성되더니 이상한 곳으로 이동했다.
일단 특성 때문에 여기로 온 건 확실해 보이는데....
'게임 UI도 방송 UI도 없네. 확실히 큐브 안은 아닌 것 같아.'
[특성: 기억 속을 거니는 자(S)가 동작 중입니다. 현재 소모한 시간: 1]
그리고 구석에 있던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 나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아마 승아의 과거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기억 속을 거니는 자(S)
조건을 만족한 대상의 기억 일부를 체험합니다. 체험하는 동안 가지고 있는 시간을 소모합니다. 체험의 몰입도에 따라 소모량이 심해집니다.]
"대체 조건이 뭐였길래 이 타이밍에 만족한 거람...."
심플월드 미션을 끝내면서 얻은 특성이니까 그 뒤로도 한동안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까지는 발동한 적이 없었잖아?
"아니지, 그거 생각할 시간에 일단 지금 상황부터 파악해야지. 승아의 기억 속이면 여기가 리트라이 안이라는 건데, 너무 평화롭지 않나?"
리트라이는 기본적으로 아포칼립스 세계관이다.
건물이란 건물은 대부분 무너져있고, 방심하면 몬스터나 다른 사람들이 습격해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이곳은 되게 평범한 도시로 보였다.
다수의 사람이 휴대폰을 만지며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자동차가 도로를 지나다니고 있었다.
"...승아?"
그리고 눈앞에서 승아로 보이는 아이가 스쳐 지나갔다.
그 아이는 엄마로 보이는 이에게 안기더니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설마, 이거 게이트 터지기 전인가?"
리트라이도 처음부터 아포칼립스의 세상이었을 리가 없다.
본래는평범한 현대였던 세상에 재앙이 닥치면서 그렇게 된 것이었지.
'따라가 보자.'
일단, 이 특성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 것인지 알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어쩌다 그녀가 그런 살인마가 되었는지도 궁금했다.
"승아는 나중에 커서 엄마랑 결혼할래. 맨날 엄마는 혼자라서 외로우니까."
"...미안하다 승아야. 엄마가 미안해."
"아빠가 죽은 건 엄마 탓이 아니잖아. 엄마가 제일 힘들어했으면서, 계속 그렇게 말하면 승아 화내?"
"......."
내 몸은 마치 유령 같은 느낌이라서 어렵지 않게 승아의 집까지 따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자신의 엄마를 다독이는 승아의 모습에 내 가슴까지 옥죄어지는 느낌이었다.
"좋은 어머니네. 승아도 이때까지만 해도 되게 착했고."
애초에 승아가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도 의도 자체는 악한 마음이 아니었다.
다만 그걸 이루는 방법이 꼬여 버렸을 뿐이겠지.
"아, 씨.... 너무 예상이 가는 전개라 더 화나네."
당연하게도 이 직후에 터진 게이트 사태로 인해 몬스터들이 대량으로 유출되기 시작했다.
그 몬스터들은 결국 승아의 집에도 몰려들기 시작했고, 승아를 지키던 승아의 어머니가 사망했다.
"아, 아아아악!"
'각성이네.'
내가 알고 있는 빛이었다. 예비 각성을 할 때 나타나는 빛.
예비 각성을 해서 마력을 얻은 승아가 주위에 몰려든 몬스터들을 죄다 쓰러트렸지만, 그런다고 그녀의 어머니가 되돌아오지는 않았다.
"...아"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내 손이 울고 있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다.
당연하게도 내 손은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뭐하냐 진짜?"
내가 죽여야 할 대상에게 오히려 가엽다는 감정을 가질 뻔했다.
그녀가 어떤 과거를 가지고있다고 해서 그녀가 하는 행동이 용서받을 짓은 아니었다.
'그래도 제대로 살아남으려고 하네.'
그녀는 착실하게 집에 있던 생필품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그러면서 몬스터를 피해가며 아직 멀쩡한 식량을 찾는 등 생존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짜 심각하네."
그리고 게이트로 아포칼립스가 된 직후의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혼란스러웠다.
물자는 지금보다 훨씬 넉넉했지만, 아직 몬스터에 대한 대응에 익숙해지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길을 지나다닐 때마다 시체가 있었다.
전부 게이트 사태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지금은 그렇게 시체가 많아 보이지 않았는데.'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본래 인구에 비하면 극소수의 사람들이다.
지금 과거를 보기 전까지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확실히 아포칼립스는 어두운 설정이구나.
조금 전까지 시체를 볼 때마다 헛구역질했던 승아는 이제 시체를 밟아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이 풍경에 익숙해져 버린 탓이겠지.
'하긴 나도 심플월드를 처음 할 때는 이런 광경을 보기만 해도 어지러웠지.'
"어?"
그리고 승아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사람에 기뻐서 달려가던 승아에게 내밀어진 것은 싸늘한 칼날이었다.
"대체 왜?"
그렇게 승아가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조롱과 낄낄거리는 웃음이었다.
아마 이들이 초창기의 약탈자들이겠지.
"괴, 괴물!"
하지만 승아는 각성자였기에 아무것도 모르고 일반인들만 사냥하던 약탈자들은 오히려 그녀에게 죽음을 맞이했다.
"내, 내가 사람을...."
아무리 그들이 쓰레기였다고 해도,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그녀는 굉장히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긴 자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확실히 충격적이긴 하지.'
조금은 상황이 다르지만, 비슷한 혼란을 느꼈던 기억 때문에 그녀의 감정이 이해가 갔다.
"아, 또 손 여기로 가져가네."
저렇게 애가 울고있으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자꾸 머리에 손이 갔다.
어차피 이렇게 만져도 그대로 지나칠 텐데....
"어?"
하지만 내 손은 허공을 가른 것이 아니라 제대로 그녀의 머리 위에 안착했다.
그리고 손에서는 부드러운 머리카락의 촉감이 느껴졌다.
[몰입도가 상승합니다. 시간의 소모량이 대폭 증가합니다.]
"언니는, 누구야?"
"나는...."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서 어버버하기 시작했다.
아니 방금까지만 해도 그냥 구경하는 거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만져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