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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화 〉22장 - S급은 사드세요 제발(5) (122/182)



〈 122화 〉22장 - S급은 사드세요 제발(5)
"일어났어?"

승아가 말없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제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서 그런 반응을 했겠지만, 정신이 맑아진 지금은 무언가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겠지.

"언니는 누구야?"
"음, 누구냐고 물어봐도설명하기가 어렵네."

분명히 나는 특성을 이용해서 강유라의 삶을 체험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가 그녀와 동일 인물인 것은 아니었다.

"알고있겠지만, 나는 유라가 아니야. 유라는 죽었으니까."

죽었다는 말에서 흠칫한 그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 때문인지 주먹 사이로 조금씩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D그룹의 생존자야?"

승아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같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마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이유를 D그룹과 관계가 있어서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건 아니야."

나는 유라의 시점을 빌려서 D그룹의 이야기를 체험했을 뿐이다.
실제로 D그룹에 속했던 적은 없으니까 D그룹의 생존자라고 하면 거짓말이 되겠지.

"하지만 부탁은 받았어. 유라에게."
"거짓말. 유라 언니가 죽을 때까지 내가 계속 옆에 있었어. 그런데 나랑 초면인 언니가 부탁을 받았다고?"

지금 당장이라도 공격해올  같은 모양새였다.
물론 혹시나 해서 A급 마력 심장을 가지고 왔으니 여차하는 상황에는 그걸 꺼내서 대응할 생각이었다.

"정확히는 살아있던 유라가 직접 부탁한  아니야. 사념 비슷한 거였지."
"사념...."

내 말이 그냥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왜냐면 이 세계에는 이런 부류의 각성 능력이 종종 존재하고, 뭐든 일으킬  있는 마법까지 있으니까.

"아, 그리고 각성 능력이 아니라 나만 가능한 다른 방법을 사용한 거야. 나는 아직 최종 각성을 하지 못해서 각성 능력은 없어."

이건 그나마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덧붙인 내용이었다.
만약 내가유라와 소통한 능력이 각성 능력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서 나를 죽이는 것으로 능력을 빼앗으려고 할지도 모르니까.

"설마 그래서 마지막에  죽이지 않은 거야?"
"유라에게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그녀에게 너를 부탁받았는데 어떻게 죽일 수가 있겠어."

조금은 그녀의 의심이 줄어든 것 같았지만, 워낙 험한 환경을 살아온 탓인지 아직도 날카롭게 지적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니가 유라 언니의 부탁을 들어줄 이유가 없잖아."
"맞아. 사실 내가  죽이지 않은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야."

그랬다. 내가 그녀를 살린 것은, 내가 유라역에 과몰입하면서  자신이 승아를 죽이고 싶지 않아졌기 때문이었다.

"...그 방법을 사용하면 대화한 대상의 감정에 동조하거든."

나는 내가 유라였을 때처럼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는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유라가 너를 좋아했던  감정이 나에게도 남아있으니까. 나는 너를 죽일 수가 없어."

거짓말을 늘어가며 설득하기에는  행동 원리가 너무 감성적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부분만큼은 솔직해지기로 했다.

"나는, 아니 유라는 네가 이렇게 나아가길 원하지 않았어."
"......."
"네 옆에 남지 못하는 것이 미안했지만, 한편으로는 네가 살아서 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
"왜, 왜...."
"누구보다 착한 아이였던 네가 행복하길 바랐어."
"왜, 언니 일도 아닌데...."
"그래, 그것뿐이었어."
"어째서 그런 표정으로 우는 거야...."

나는 승아가 말하고 나서야 내 상태를 눈치챘다.
 지금 울고 있었구나. 언제부터 이런 상태였는지 잘 모르겠다.

"......."

승아가 한숨을 쉬더니 조용히 손을 뻗어서 내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눈을 감더니 중얼거렸다.

"여기에 조금이지만 유라 언니가 남아있다는 거잖아? 그래서 언니도 그렇게 슬퍼하는 거고."
"......."
"알았어. 이제 사람을 죽이는 건 그만둘게. 하지만 복수는 그만둘 수 없어."
"그래. 난 그거까지 막을 생각은 없어."

하여튼 잘 마무리가 되긴 했는데, 울었던 것 때문에 괜히 쪽팔렸다.
아니 진짜 덤덤하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눈물이 나왔구나.

'방송 안 켜서 다행이네.'

방송 켰으면 엄청나게 놀림 받았을 터였다.
바로 클립 따여서두고두고 후원으로 날아왔겠지.
실제로 최근까지도 라스트 발렌타인의 클립이 후원으로 날아온다.
그때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보면 되게 쪽팔리는 장면이 많았다.

"일단 승아 너도 게이트가 사라진 건 알고 있지?"
"대충은?"

S급 게이트는 여전히 남아있는 걸 보아서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그렇기에 지금 게이트들이 사라진 틈에 쌓여있는 침식을 모두 해결하자는 결론까지는 자연스럽게 도달했다.
내 설명을 조용히 듣고 있던 승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서울이랑 인천쪽 침식을 모두 해결할 생각이라는 거지?"
"지금 협력 요청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어. 그리고 너 때문에 생긴 그룹 난민들도 파악되는 대로 보호하고 있고."
"......."
"네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는 하지 않을게. 하지만 지나간 일이니까 이제부터는  일 때문에라도 침식 정화를 도와줬으면 해."
"응."

이렇게 되면 승아를 찾아온 목적을 완벽히 수행한 셈이었다.
승아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합류해줘서 다행이었다.

"여기. 안 쓰게 되면 달라고 했었지?"

승아랑 헤어진 이후에 은찬이를 찾아가서 A급 마력 심장을 건넸다.
아까 은찬이가 필요하다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승아 일은 잘 마무리 하신 모양이네요?"
"응.  이해해줘서 다행이지."
"연락 가능한 곳에는 다 넣은 것 같아요. 통신 끊어진 그룹들 근처에 수색 요청도 넣어 뒀어요."
"고마워. 고생이네."
"그건 저희가  소리죠. 우리 하얀별 누님이 없었으면  죽었거든요?"
"너무 띄워주는데?"
"사실이니까요. 너무 무력하게 당했다고 생각하는지 세랑 선배는 되게 미안해하고 있던데요?"
"너무 신경 쓰네. 정작 자기가 구했으면 그런 티 안 냈을  같던데."
"제 말이요. 사태 이후로 말투가 이상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바보처럼 착한 건 여전하다니까요."
"아, 말투가 원래 그런 게 아니었어?"
"그야 그렇죠. 원래 세랑 선배는 전교 1등 찍던 모범생이었는데요?"

그건 진짜 의외인데.
아니지, 오히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다가 공부한 게 쓸모없어지면 사람이 미칠 만도 하지.

"어?"

그렇게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수다를 나누던 도중의 일이었다.
갑자기 은찬이의 몸에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우리  다 하고 있던 대화를 중단했다.

"어, 어라?"

예비 각성이었다.
최근에 신규 각성자가 생겨나는 비율이 극도로 적어진 것을 고려한다면 굉장히 놀라운 상황이었다.
나야 시나리오 퀘스트의 영향으로 강제적인 각성을 했다지만, NPC인 은찬이가 각성하는 것은 그 극도로 적은 상황이 터졌다는 소리니까.

"이게, 뭔...."
"뭐긴 뭐야. 축하할 일이지. 일단 교무실 가서 보고부터 하자."
"어, 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는지 어벙하게 서 있는 은찬이를 끌고 교무실로 이동했다.
교무실에는 소민 선생님과 다슬이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 뭐야 안 그래도 부르려고 했는데."
"무슨 일이에요?"
"방금 1학년  명이 각성했다고 찾아왔거든. 그래서...."
"네?"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지금 1학년에도 한 명이 각성했다고? 타이밍이 이상할 정도로 절묘한데?

"사실, 방금은찬이가 각성했거든요."
"은찬이가?"

내 이야기에 소민 선생님이 오히려 화들짝 놀랐다.
일단 각성자가늘어난다는  좋은 소식인데,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절묘한 타이밍이라서 조금 꺼림직했다.

"그럼 다른 사람들도 각성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겠네요."
"한 번 설문 조사를 돌리는  맞을  같네요. 아, 그러고 보니 침식 정화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요?"
"아, 침식.... 갑자기 당황스러운 소식이 들어와서 잊고 있었네."

멋쩍은 듯이 웃은 소민 선생님이 종이 하나를 들고 오더니, 그걸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설명을 시작했다.

"아까 은찬이가 뽑아 준 거야. 서울이랑 인천의 침식 리스트지. 놓친 것도 있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고."
"꽤 많네요."
"이미 처리한 걸 제외했는데도 이 정도야. 솔직히 평소라면 근처 게이트 처리에 바빠서 여기까지 신경 쓰진 못했겠지."

이 지도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침식은 근처에 생존 그룹이 없는 곳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생존 그룹들이 처리할 순서에서 뒤로 밀려왔던 거겠지.

"그리고 이건 최근에 도는 소문인데, 침식 제거율이 많이 올라가니까 S급 게이트쪽 마력량이 줄었다는 소리가 있어."
"마력량이 줄었다는 건...."
"난이도가 조금이나마 내려갔을 수도 있다는 거지. 어디까지나 소문이야. 게이트의 마력을 측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들었고."

그렇다면 기존 S급 게이트 공략 실패 원인이 공략 인원의 약해서가 아니라 사전 조건인 침식 제거가 부족했던 것일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이러나저러나 최대한 침식을 처리하는 게 좋다는 말이네요."

 소문이 아니더라도 침식은 모두 처리할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처리할 이유가 늘어나면 진행할 동기가 강해지는 느낌이라서 나쁠 건 없었다.

"일단 다른 소속들이랑 일정 조율 중이야. 가능하면 오늘 안에는 끝낼게."

최대한 빨리 침식을 처리하기 위해서 다른 그룹들과 협력해서 진행하기로 했었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 해결할 침식의 배정이나 일정 조율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대형 조별 과제 떴냐...."
"그래도 다들 생존이랑 직결된 거라 그런지 반응이 긍정적이네요."
"대신 우리쪽에서 많은 양을 감당하기로 했으니까 장기적으로는 이득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야."

그 와중에도 손익을 따지면서 진행한다는 말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하긴  사람들은 자기 그룹의 생존을 책임지는 처지니까 어쩔 수 없겠지.

"암튼 그럼 오늘은 쉬라는 소리군요.“

잘하면 오늘 큐브 밖에 나갔다가 와도 되겠네.
다행히 시간이 났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슬이가 은찬이를 불러 세웠다.

"맞다, 은찬이 너는 나 따라와?"
"나?"
"엉, 각성했으니까 마력이라던가 테스트해 봐야지. 내가 도와줄게."

나는 일단 기숙사에 들어가서 좀 쉴까.
그러고 보니 승아한테도 오늘은 쉬는 거라고 이야기해 줘야겠네.

"어라?"

그런데 양호실에서 승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침대 위에 잠시 자리를 비운다는 쪽지가 적혀있는 걸 보고서야 자리를 비웠다는 걸 깨달았다.

"아, 거기 있으려나."

어딜 갔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생각이 난 장소가 있어서 그쪽에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서울이긴 해도 역시 거리가 있네.'

기억이 확실한 위치라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아까 지도를  덕인지 가는 길 정도는 문제없이 찾아낼 수 있었다.

"아...."

실제로 오는 것은 처음이지만, 박살이 나 있는 D마트의간판을 보는 것은 어딘가 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승아야."

살짝 높게 쌓인 언덕과 그 위에 놓여있는 몇 가지 물품들이 그곳의의미를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기도하고있는 승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역시 여기 있는  맞았구나.

"유라 언니...."

 장소는 내가 꿈에서깨어난 장소이면서, 누군가가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랐던 이의 마지막 장소였다.

"얀별 언니는  여기까지 왔어."
"네가 여기 있을  같아서."
"......."

말없이 유라의 무덤을 응시하던 그녀는  위에 있던 목걸이 하나를 집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어?"

그녀는 조용히 내 목에 그 목걸이를걸더니 미소 지었다.
나는 당황해서 목걸이를 풀어 돌려주려고 했지만, 승아는 고개를 저으며 만류했다.

"왜 그렇게 당황해. 승아가 주는 선물이야."

그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목걸이는, 그녀의 어머니가 남긴 유일한 유품이었으니까.

"나, 다른 목표가 생겼거든."
"응?"
"언니한테 조금이나마 유라 언니가 남아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언니는 내가 지킬 거야."
"그게 무슨...."
"더는 승아가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 그 일부라고 할지라도 죽는 걸 보고싶지는 않거든."

내가 당황해서 승아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말없이 목걸이를 매만지자, 그녀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방금  선물은 증거야."

어라, 이거 괜찮은 거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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