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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화 〉23장 - 어리석은 광대의 기도(1) (123/182)



〈 123화 〉23장 - 어리석은 광대의 기도(1)

현실  정비를 마치고 돌아오자 아직도 잠을 자지 않고 있는 다슬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얘는 내가 로그아웃할 때도 이러고 있지 않았나?

"잘 주무셨어요?"
"아, 응. 내가 너무 늦었지?"
"괜찮아요. 거의 마무리 단계였잖아요."

지도에 표시된 마크가 싸그리 전멸된 모습을 보자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이러면 인천이랑 서울에 있는 침식은 전부 해결한 건가?

"그건 그렇지. 승아는?"
"방금 마지막 침식 해결하고 와서 잠들었어요."
"아, 그럼 피곤할 테니까 깨우지 말자."

승아는 저번에 합류한 이후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A급 침식의 다수를  아이가 해결하면서, 다른 사람들의평도 많이 올라갔다.

"이제는 승아가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조차 거짓말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복수에 열이 뻗쳐서 울분을 쏟을  있는 곳이 필요했을 테니까. 지금은 어느 정도 억누르고 있는 거고."

애초에 지금 승아가 정신을 차린 건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결국 완벽하게 그녀가 복수심을 벗어던지기 위해서는 인천에 있는 S급 게이트를 공략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나저나 마지막 침식도 꽝이었어요. 침식을 그렇게 많이 뒤졌는데 성유물이 하나도 없다는  아쉽네요."
"그러게. 성유물 하나만 생겼어도 전력이 확 올랐을 텐데."

슬슬 방송을 켜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아서 스위치를 켜고 송출을 시작했다.
미리 다시 켤 시간을 공지하지 않았음에도 시청자 수는 금방 차올랐다.

- ㅎㅇㅎㅇ
- 좀 더 쉬고 오시지 그랬어요
- 너무 금방 접속하신거 아닌가
- 더 주무시지
ㄹㅇ 어제 너무 달리셨잖음
- 오 지도 깔끔하네
- ㅊㅊㅊㅊㅊ
- 드디어 끝내셨네
- 아 이제 쌩쌩합니다. 다들 어서 오세요.

채팅으로 간단하게 인사를 남기고 몸을 풀었다.
리트라이 내부의 몸이현실이랑 괴리가 있어서인지 조금 위화감이 들었다.

'너무 현실적이니까 이런 문제까지 생기네.'

이런 감각도 통각의 일종으로 치는 건가?
통각 제한 해제는 느끼는 통증 최대치를 늘리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자잘한 통증도 되게 많이 늘어난  같았다.

"뭐야 얀별 누나 일어나셨네? 야, 다슬기 내가 일어나시면 바로 알려주랬잖아."
"시끄러, 방금 일어나신거야."

내가 몸을 풀고 있는 사이에 은찬이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나를 찾았다.
뭐야, 무슨 일이길래 나를 찾아?

"나는 왜 은찬아?"
"오, 누나 완성했어요!"

갑자기 뜬금없이 완성했다고 해도  말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침식 정리를 시작할 때 은찬이가장비를 만들어 준다고 했었지.
그 이야기인가?

"장비 이야기야?"
"오, 기억하시네. A급 마력 심장을  개 부숴 먹긴 했는데 결국 완성했어요."
"부숴 먹었구나...."

은찬이는 마력 심장의 가치가 꽤 크다는 걸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어서인지 머쓱해 보였다.
하지만 완성된 성능에는 자신이 있는지 급하게 나를 끌고 갔다.

"이거에요. 아직 이름은 정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말한 그가 꺼내 든 것은 검은색의 전신타이즈 느낌의 슈트였다.
당연히 무기를 만들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저거 방어구인가?

"아, 저건 좀...."

결과물을 만지작거리던 다슬이가 경멸하는 눈초리로 은찬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형태의 디자인 때문이었다.

- ㅗㅜㅑ
쫀득쫀득
- 다슬이 포상ㄷㄷ
- 엄청 달라붙네
쫄쫄이ㅋㅋㅋㅋ
- 디자인 에반데 진짜
아ㅋㅋㅋㅋ

"아, 진짜 이상한 의도는 없거든? 혹시 몰라서 노출될 만한 부분은 다 마법으로 처리해 놨어."

그가 그렇게 말하면서 이렇게 구성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몸에 최대한 붙여야만 제대로  성능이 나온다는 거였다.

"일단 입어 볼게. 이거 근데 무슨 재질이야? 왜 이렇게 잘 늘어나?"
"욧트라는 몬스터 아세요? 그 가죽이 워낙 탄성이 좋아서 써봤어요. 입을 때는  답답해도 입고 나면 마법 때문에 편해질 거예요."
"다 벗고 입는 거지?"
"네, 저쪽 들어가서 입고 나오세요."

나는 바로 카메라를 이곳에 고정하고 체험모드를 잠시 정지했다.
솔직히 녹화가 없는 체험모드에서 노출이  된다고 해서 정지당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조심할 건 조심해야 한다.

"오, 신기해."

입을 때는 워낙 달라붙어서 입기 힘들었는데, 모두 몸을 욱여넣은 후에 끝을 마무리했더니 몸에 확 달라붙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편안해졌다.

"체감은 허전한데, 가리기는  가려졌네."

마법으로 처리해놨다는 게 이런 소리였구나.
드러나면 위험할 것 같은부위는 모두 평탄하게 처리되어 있었다.

- ㅗㅜㅑㅗㅜㅑ
- 신은찬!신은찬!신은찬!
- 반들거리네
은찬그는신인가?은찬그는신인가?은찬그는신인가?
- 개쩐다ㅁㅊㅋㅋㅋㅋ
교주님 최고다!
- 여신강림여신강림여신강림

내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채팅창이 불타기 시작했다.
그래도 주요 부위가 노출되는 건 아니니까 별문제는 없겠지.

"너무 라인이 드러나는 아니야?"
"어쩔 수 없다니까? 주요 부위 처리하기에도 빡빡했어.  뭐하면 저 위에 다른 옷을 입어도 돼."
"그래서 이거 뭐에 써먹는 장비야?"

이 장비는 저번에 발견했던 오러를 만들어내는 구슬을 써서 만든 녀석이었다.
그럼 이건 오러로 방어하는 느낌인가?

"디자인은 이래도 무기에요. 마법을 쓰시면 옅게 오러가 묻어납니다."
"오.... 그럼 몸에서 떨어져도 오러가 남아?"

일반적으로는 몸에서 떨어진 것에 오러를유지하는 것은 정신력에 많이 무리가 간다.
다만 이 오러는내가 만든 오러가 아니니까 좀 다르겠지.

"엄청나게 긴 시간을 버티는 건 아닌데, 그래도 충분히 효과가 있죠."
"좋은데?"
"몸에 붙은 오러는 어차피 직접 쓰시면 되니까, 평범한 무기로 만들면 마력 셔틀밖에 안 되잖아요. 그 오러 만들어지는  써먹으려다 보니까 이런 게 나온 거죠."

그건 확실히 그렇다.
은찬이가 머리를 잘 쓴 결과물이었다.

"최대한 사출 방향을 신경 쓰지 않으시게 하려고 전신이에요. 다만 찢어지거나 입지 않은 머리 부분으로 마법 출력하시면 오러 안 묻어요."
"아하. 여길 지나가야 하는구나?"
"네."

대신 목 쪽에 있는 코어부만 살아있으면 찢어진 것은 충분히 보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능을 좀 내리더라도 입은 상태에서 편하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이거 움직임의 제약이 거의 없어."

옷을 입은 것인데도 거의 알몸으로움직이는 것만큼 편했다.
실제로 알몸으로 싸워본 적은 없어서 직접적인 비교는 하지 못하겠지만, 다른 옷을 입고 싸울 때보다 편한 것은 확실했다.

"아, 근데 위에 다른 옷 입으시면 거기로 마법 출력하시면 안 됩니다."
"왜?"
"오러라서 찢어질 거에요."

그건 확실히 그렇겠네.
아무래도 오러는 마법의 특성과 상관없이 묻어있을 뿐이니까.

"고마워. 잘 쓸게."
"코어부는 망가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이 벨트 부분 말하는 거지?"
"네."

- ㅇㅎ
- 그래서 목에 벨트가 있구나
어차피 고장날 상황이면 죽겠네ㅋㅋ
- 오....
- 오러가 마법에ㄷㄷ
- 진짜 갓은찬이네
- 갓무기네

"그래서 벨트가 급소 위치구나."

어차피 맞지 말아야 할 위치에 주요 부품을 둔 것으로 부서질 가능성을 낮춘 것이었다.
머리  썼는데?

"오, 그걸 알아보시네요?"

미안, 그거 채팅창 컨닝한 거야.
하여튼 장비를 입은 상태로 마법을 좀 사용해 봤더니 마법 구성에도 꽤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이거 유지 시간 같은 것도 있어?"
"보충량이랑 소모량을 맞춰놔서 상시에요. 대신 직접 오러 뽑으시는 것보다는 약하겠죠."
"오케이."

장비 테스트가 끝나고 셋이서 밥을 먹으려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처음에는 입고 있는 장비 때문에 눈초리가 신경이 쓰였지만, 밥을 먹다 보니 금방 잊어버렸다.

"뭐, 뭐야."

그런데 한창 다 같이 밥을 먹고 있는 와중에 일이 벌어졌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던 사람들의 몸에서 우르르 빛이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각성, 맞지?"

다만 그 수가 매우 많았다.
이 정도면 이 식당에 있던 비각성자들 대부분이 각성하는 수준인데?

"대체 뭐야? 지금이 게이트 등장 초창기도 아니고...."

우리가 당황해서 어버버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호출기들이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본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일  같아서, 일단 급하게 교무실로 이동했다.
교무실에는 이미 승아와 세랑씨가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주요 인원이 모두 모였다고 생각했는지 소민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바로 방금 일을 끝마친 참인데, 이런 이야기를 하게   유감이지만...."

그리고 우리가 호출된 이유는 방금까지 했던 예상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게이트가 다시 나타났어."

어느 날을 기점으로 전부 사라졌던 게이트들이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소리였다.
갑자기 여러 사건이 마구 터지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일단 수가 많지 않고 기존에 사라진 것과 일치하지도 않아. 아마 게이트들이 새로 생성되고 있다고 보면 되겠는데?"

다시 게이트가 나타나기 시작한 건 확실했지만, 기존의 게이트가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생성 기능이 다시 동작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일단 가장 가까운 건 여기.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공략까지 진행해줬으면 해."
"난이도는 모르죠?"
"직접 가봐야지."

게이트 쪽으로 이동하면서 생각해 봤지만, 역시 갑자기 상황이 급진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상했다.
혹시 게이트가 다시 나타난 것이랑 각성이랑 관계가 있나?

"여기네."

심플월드에서  게이트와 거의 비슷한 느낌이었다.
뭐, 저번에 승아의 기억에서 봤던 적이 있어서 별생각이 들진 않았다.

[권장 등급: A
제한 인원: 0/1]

"제한 인원? 이런 게 있었나?"

일단 A등급 게이트라는 건 알겠는데, 제한 인원?
이제까지 게이트에 관한 설명을 들을 때 저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제한이 있네."
"말 그대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는 거지?"
"네. 제한 인원 걸리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데...."

이러면 A급인 3명  한 명만 여기를 맡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다른 게이트들도 확인해야 하니까 여기서 나뉘어야겠네.

[시나리오 퀘스트: 게이트
인천과 서울의 침식을 모두 해결했지만, 사라진 것 같았던 게이트들이 다시 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게이트를 하나 이상 처리하며 상황을 정리하십시오.]

"내가 들어갈게."
"언니가? 차라리 내가 가는 게...."
"너, 잠도 제대로 못 잤잖아. 나는 방금까지 쉬고 왔으니까 내가 가는 게 맞아."

내가 설명했지만, 이상한 분위기에 등장한 게이트라 그런지 승아가 계속 불안해하며 나를 말리는 모습이 보였다.
게이트보다 더 위험한 침식 해결할 때는 괜찮더니 왜 이러는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뭔가 불안해서 그래. 침식 때랑 다르게 왠지 뭔가 일어날 것 같은...."
"그러니까. 일반적으로는 게이트가 침식보다 쉬운 느낌인데  그렇게 과민 반응해."
"승아가 안되면, 세랑...."
"세랑이도 어제 나보다 늦게 자러 갔잖아.  괜찮으니까 다른 게이트가 A급이 있으면 그거 해결해줘."

승아를 겨우겨우 설득한 끝에야 나 혼자 게이트로 진입할  있었다.
제한 인원에 적힌 숫자가 바뀌는 것과 동시에 살짝 어지러운 느낌과 함께 게이트 내부로 이동했다.

"오, 이런 식이구나."

침식은 안개가 있을 뿐이지 어딘가로 이동한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게이트는 확실히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왜 여기도 갑자기 분위기 아포칼립스냐?"

달려드는 몬스터를 가볍게 썰어버리고, 무너져 있는 건물들의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현대 스타일이네. 아, 너무 이런 거에 신경 쓰지 말고 빨리클리어하고 돌아가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몬스터들이 있는 쪽으로 이동하려는데 발에 걸리적거리며 밟힌 전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뭐야. 치킨 전단지네."

치킨 먹고 싶다는 소리나 하면서 다시 버리려는 순간, 뭔가 기시감이 들었다.
전단지에 적힌 이름이 처음 보는  같지 않아서였다.

"잠시만, 나만 그런 이상한 생각 든 거 아니죠?"

- ??
- 저거 그거 아님?
- 먼데
- 저게 뭐?
- 심플월드?
- 아 심플월드에서 본 것 같긴 하네

심플월드에서 마지막 공략을 진행할 때, 이것과 같은 전단지를 본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같은 회사의 게임이니까 돌려막기로 사용한 회사 이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까지 심플월드나 리트라이에서 그런 부분들을 본 적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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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월드 공략 당시, 우리가 치킨 전단지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전단지의 내용은 여기에 떨어져 있는 것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었다.

"이상한 생각일지도모르겠는데요."

의심하기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의심하기 시작하자 이곳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이 극명해지기 시작했다.

"여기 너무 익숙하지 않아요? 이 조각들 마력EMP 잔해 아니에요?"

그리고 조금 전에 내가 쓰러트린몬스터가 정말 익숙한 녀석이었다는 것까지 깨달은 순간.
나는 이곳의 정체를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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