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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4화 〉23장 - 어리석은 광대의 기도(2) (124/182)



〈 124화 〉23장 - 어리석은 광대의 기도(2)

- 진짜 심플월드네
와ㅅㅂ
- 떴냐???
- 아르카 떴냐? 아르카 떴냐?
- 제발제발제발
- 진짜 심플월드 맞네
- 아니씹ㅋㅋㅋ

빠른 속도로 밀리는 채팅창과 갱신될 때마다 미친 듯이 올라가는 시청자 수.
아마누가 현재 상황을 알린 모양이었다.
맵을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우리가 알고 있는 지리가 나왔고, 지금은 층을 이동하는 엘리베이터가 있던 장소에 도달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어떤 NPC도 만나지 못했다.
이상할 정도로 많은 건물이 무너져 있었고, 싸움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엘리베이터는 있네?"

그냥 심플월드 탑에 있는 컨셉만 차용해서 게이트를 만든  아닐까 생각했는데, 엘리베이터가 존재한다는 건 이동할 수도 있다는 건가?

"문은 안 열리네."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불은 들어오는데....
설마 망가진 건가?

"혹시 모르니까 열어볼게요."

당연하지만 마법을 써서 강제로 연다는 소리였다.
혹시 문이 열리는 것만 고장이  것이라면 동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저걸 힘으로 여네
- 수틀리면 힘으로 하는게 맞지
- 오 열린다
-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데
- ㄹㅇ엘리베이터까지 있네
- 이거 동작하려나?

"뭐야 안에 불도 안 들어오네. 역시 움직이는 건 무리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안으로 들어서자 질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물기가 고여있다는 걸 깨닫고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마법으로빛을 밝혔다.

"...어?"

그리고 그 순간 새빨간 피 웅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라서 뒷걸음치자마자 발에 뭔가가 걸리더니 풀썩하고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 시발
- ?????
- 아 깜짝이야
- 아니 시발
- 존나 놀랐네
뭐야 시발

"아리아?"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방금 내 발에 부딪힌 시체의 모습이 아리아와 너무 닮아서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시체에 묻어있는 피를 닦아냈고, 시체의 정체가 아리아가 맞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게 뭔...."

말문이 막힌 채로 엘리베이터를 살피다가, 아리아의 시체 뒤쪽에 떨어져 있던 스마트폰을 발견했다.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스마트폰은 화면이 깨지기는 했지만, 전원은 정상적으로 들어와 있었다.

[음성녹음]

그리고 마지막에녹음 기능을 이용했는지 화면을 켜자마자 녹음 기능이 나타났다.
목록을 확인하자 녹음된 파일이 하나 있었다.
머릿속이 어질어질했지만 일단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곧 스마트폰에서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오, 겁나 아프■. 여기서 ■인가?」

폭음 같은 것이 섞여서 목소리가 중간중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이 아리아라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파일을 ■니가 들을 수 있을지는  ■르겠지만, 그래도 사과는 해야 하니까 ■길게요.」

그리고 이 파일을 남긴 이유가 나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깨닫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사실 나는, 그리고 다른 몇몇 NPC들은 알고 있었어. 심■■드가 서비스가 종료되면 어떻게 되는지.」

- ?
- 뭔 소리야
- 아니
시발 뭔....
아니 대체 무슨 상황이야
-아르카는?아르카는?아르카는?
 제발 지랄하지마

「리트라이에는 너무 많은 게이트와 침식이 생겨났고, ■트라이의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걸 정리할 필요가 있었지. 하지만 아무래도 게이트와 침식 모두를 감당하는 건 무리가 있었던 거■.」

그렇기에 침식을 처리하는 동안 게이트를 잠시나마 감당해줄 이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역할을 맡은 것이 심플월드였다.
그런 이야기를 아리아는 담담하게 쏟아냈다.

「어차피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리트라이는 ■■ ■■는 것에 실패한 세계였고, 우리가 그걸 ■결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그렇기에 최대한 오랜 시간을 버티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심플월드의 NPC들은 모두 마지막을 맞이하겠지만, 대신 리트라이에겐 충분한 기회가 될  있도록.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개소리야!"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사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

"......."

리트라이는 현실 대신 멸망해주는 세계.
따라서 리트라이를 구하지 못하면 현실까지 문제가 생겨난다.
그러니까 아리아는 현실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그런 희생의 역할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겠지.

「그래, 솔직히 억울해.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었으니까. 그냥 ■■지의, 신의 결정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거였으니까.」

그런데도 NPC들은 기왕이면 최대한 버텨서, 리트라이라도 살아남을 초석을 쌓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실제로 목숨을 바쳐 싸웠다.

「■래도 우리, 잘 버틴 거겠지? 모자랐던  아니겠지?」

충분히 잘 버텨 주었다.
게이트가 다시 등장하기 전에 이미 모든 침식을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

「아무것도 모른다고 거짓말해서 미안해. 그리고 ■랑해.」

녹음 파일의 재생이 끝나자 아무 소리도 없는 적막이 돌아왔다.
나는 화를 견디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바닥에 내던졌다.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는데...."

아니시발말이되냐?
- 지랄 염병을 하네
- ????????
- 녹스에 불지르고 온다
- 아ㅈㄹㄴ
- 이딴걸 스토리라고시발
그럼 아르카는 어떻게 되는 거임?
- 존나기대했는데이게뭐냐
- ㅅㅂㅅㅂㅅㅂㅅㅂ

채팅창의 반응도 나와 비슷했다.
심지어 나보다 정보가 부족할 테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더 화가  터였다.

"아아아악!"

힘껏 소리라도 내질렀다.
그러지 않으면 답답해서 죽을 것만 같았으니까.
충격적인 사실만 알아낸 채로 엘리베이터를 나왔다.
복잡한 심경 때문인지 두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시발 빌어먹을 정도로 예쁘네."

전부 무너진 도시는 새까맣게 어두웠고, 자연스럽게 하늘의 별은 존재감을 키우며 아름답게 반짝거렸다.
나는 그것이 오히려 짜증이 나서, 마법으로 빛을 만들어 시야에서 별들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근처에 보이는 몬스터들을 모조리 죽이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몬스터들이 몰려있는 쪽을 찾아서 미친 듯이 달렸다.
생각하면 할수록짙어지는 두통에 그저 전투에만 몰입하려고 노력했다.

[플레이어에게 맞는 고유 능력을 선별하는 중입니다....]

"진짜, 좆같은 게임 같으니라고!"

제대로 뭔가를 생각하면서 싸우지는 못했다.
그냥 몬스터를 죽이는 것으로 화풀이를 하고 싶을 뿐이었고, 그러다 보니 계속 자잘한 공격들에 피격당하기 일쑤였다.

"헉, 허억...."

[플레이어에게 맞는 고유 능력을 선별하는 중입니다....]

"닥쳐, 좀...."

항상 한쪽에 있었던 메시지까지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와중에도 마법을 만들어서 몬스터들에게 쏟아냈다.

- ㅠㅠㅠㅠ
- 괜찮음?
아르카돌려내아르카돌려내아르카돌려네
- 아 진짜....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화나네
- 장난치냐 진짜?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나오네ㄹㅇ

"하, 미치겠네."

보스 몬스터까지 처리하고, 눈앞에 게이트 핵을 둔 채로 멍하니 채팅창을 읽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대부분이 녹스에 대한 욕이었다.

"인정하고 싶지가 않네."

여기서 게이트 핵을 부수고 나가면, 왠지 그 아버지라는 작자의 생각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이딴 결말 인정하고 싶지 않아...."

내가 이런다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한 고집을 부리고 집착하게 된다.
이런 자신이 한심해져서 헛웃음을 짓던 와중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미래를 베어내는 검'님이 1000시간을 후원합니다.]
정말 이대로 포기할 거야?

'내가 너무 일찍 포기를 생각한 걸까?'

이번에도 분명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큐브 게임은 본래의 정해진 길을 벗어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니까.

'그래, 벌써 포기하면 너무 이르지.'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게이트 핵을 부수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리자, 갑자기 내 몸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플레이어에게 맞는 고유 능력을 찾았습니다!]

"...어?"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내용에 사고가 정지했다.
뭐야, 갑자기 뭐라고?

- ?
- ???
- 뭐야 각성임?
- 카드?
- 그 와중에 각성 간지나네
- 게임은 잘만들어서  좆같다
- 아ㅅㅂ 현타
- ㅋㅋ타이밍이 참....

내 눈앞에 수많은 흰색 카드들이 날아다녔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멍하니 지켜보다가, 계속 시야를 가리는 것이 짜증 나서 신경질적으로 하나를 붙잡았다.

[어리석은 광대의 기도
쿨타임: 30일
A급 이하의 게이트 내부에서만 사용 가능. 기존 게이트의 운명을 비틀어 변화시킨다.]

손에 잡힌 카드는 광대 카드였다.
다만 그냥 타로에 쓰이는 광대가 아니라 어리석은 광대의 기도라고 적힌 이상한 디자인의 카드였다.

"이게 무슨 소리야."

운명을 변화시킨다?
애매모호하게 적힌 능력에 짜증이  났다.
다만 그 애매한 텍스트에서 조그만 가능성이 느껴져서 화를 참고 천천히 생각해 봤다.

"게이트 내부, 일단 여기서 사용이 가능하다는 소리고.... 운명을 변화시킨다? 게이트에 뭔가영향을 줄 수 있나?"

혹시 이걸로 심플월드의 NPC를 구해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능력을 발동하자 손에 있던 카드가 바뀌었다.
그리고 그 카드는 익숙한 타로의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The Tower]

 카드. 뜻은 신의 재앙이나 멸망.
확실히 지금 이 게이트와 어울리는 의미의 카드였다.

"어?"

그리고 카드가 반짝이더니 계속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반짝거리면서 다른 타로카드로 변하는 것을 반복하더니, 마지막에는 광대에서 멈췄다.

'아니.'

그냥 광대가 아니라 조금 전에 능력을 얻었을  뽑은 어리석은 광대의 기도였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 카드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와  시야를 가렸다.

"대체 뭐 하는 능력...."

다시 시야가 돌아오고 나서 무언가 말하려고 했을 때,  눈에 들어온 광경에 말문이 막혀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방금까지 어둡던 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햇빛이 눈을 찔렀다.
심지어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귀를 메웠다.

"엄마, 나 슬라임 젤리!"
"그건 엄마가  된다고 했지. 위험하다니까."

시린 눈을 잠시 감았다가 뜨자 방금까지 보이던 무너진 도시가 아니라, 활기가 넘치는 시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시장은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 ????
- 아니 뭐야
- 여기 탑 밖이네?
- ㅁㅊ뭐냐고
어?
- 여긴 아직 괜찮아?

"대체 무슨 일이...."

여전히 여기는 심플월드였다.
하지만 전투로 인해 부서지고 망가져 있던 탑 내부와는 다르게  밖인 이곳은 굉장히 멀쩡해 보였다.
아니, 건물들이 멀쩡한 것을 떠나서 이곳에는 다수의 NPC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탑 밖은 멀쩡했던 건가? 각성 능력을 사용해서 여기로 나온 거고?'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이거 대체 뭐 하는 능력이야?

[권장 등급: EX
클리어 조건: 탑을 모두 공략하기.]

"EX급?"

일반적인 게이트와 다르게 클리어해도 사라지지 않고, 그 내부에는 이세계가 있다는 소문의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심플월드가 맵으로 추가되면 EX급으로 등장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A급이던 게이트가 EX급이 된다고?

"탑을 공략.... 설마 이거?"

탑을 공략한다는 것은 아직 공략되지 않았다는 소리가 된다.
즉, 이건 우리가 탑을 클리어하기 이전의 심플월드라는 소리였다.

"잠시만, 잠시만 잠시만."

당연하게도 심플월드가 리트라이의 게이트에 희생된 것은 우리가 공략을 마친 이후였다.

"어?"

그리고 그 내용들이 만들어내는 답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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