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23장 - 어리석은 광대의 기도(3)
지금 상황을 볼 때 어리석은 광대의 기도가 A급 이하의 게이트를 EX급 게이트로 바꿔주는 능력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했다.
그렇다면 본래 A급 이하의 일반적인 게이트였던 심플월드가, EX급으로 변화하면서 탑의 클리어 이전의 시간대로 변화했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면, 심플월드가 당하기 전이잖아?"
- 그런가?
- 어라?
- ???
- 믿고있었다고 젠장
- 이걸 각성이ㄷㄷㄷ
- 나 아직도 이해 못함ㅋㅋ
- 이럼 아르카도 살아있는거 아님?
- ㅁㅇ?ㅁㅇ?ㅁㅇ?ㅁㅇ?ㅁㅇ?
방금 나타난 게이트에 관련된 설명창을 치우자, 그 아래에 있던 다른 창이 눈에 들어왔다.
설명창에 가려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세계관 '심플월드'가 적용됩니다.
게이트 내에서 '아이템'으로 인식되는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건 심플월드의 아이템을 쓸 수 있다는 소리구나."
세계관이라는 것은 아마도 게이트 내에서만 적용되는 법칙을 의미하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면 공략할 때 심플월드의 아이템도 이용할 수 있으니까 다행이네.
'게이트 내에서만 적용되는 거니까, 밖에서는 못 쓰겠지만.'
심플월드의 아이템은 밖으로 가지고 나가도 쓸 수 없다는 소리였다.
즉, 심플월드의 장비로 게이트 밖에서의 스펙을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 신기하네
- 아니 이렇게 다 준비되어 있는데 대체 왜?
- ㄹㅇㅋㅋ
- 이게 게임이지
- 와 아르카 볼 수 있는 건가?
- 아니 자유도 뭔데
- 존나 어이가 없네
이번에도 느끼는 것이지만, 심플월드는 특정 스토리의 단계를 강제로 밟도록 정해져 있었다.
이건 메구미나 아리아가 죽어야만 탑이 클리어 판정으로 넘어갈 때도 느꼈지만, 이번에 리트라이에 심플월드가 이어지는 스토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열받네.'
불합리하다고 느낄 정도로 그 길을 강제하기 때문에 당할 때마다 굉장히 짜증이 난다.
하지만 그런 스토리의 단계를 제대로 밟기만 한다면, 그 결과물만큼은 어떤 것이더라도 인정해 준다는 느낌이 강했다.
'심플월드가 멸망하지 않고 병합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멸망한 이후에 능력을 통해 복구돼서 병합되는 것은 괜찮다는 거지.'
짜증이 솟구치는 스토리 진행 방식은 여전히 화가난다.
그래도 지금은 어떻게든 가장 나쁜 상황만큼은 피해 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엘리베이터부터 가보죠."
심플월드 시절에는 항상 유저들로 북적거리던 탑 입구가 한산했다.
지금은 NPC들만 남아있으니까 어쩔 수 없겠지.
"...엉?"
자연스럽게 위쪽 층을 선택하려던 손가락이 멈췄다.
활성화된 층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1층밖에 없는데?"
그리고 그때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이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과거로 돌아간 것일지도 모르겠는데?
"님들아, 탑이 언제 업데이트된 거였죠?"
- 2년쯤 된 것 같은데?
- 꽤 오래됨
-설마....
- 아ㅈㄹㄴㅋㅋ
- 설마 그시절임?
- 오우?xㅋㅋㅋㅋㅋㅋ
- ㄴㅇㄱ
- 엌ㅋㅋㅋㅋㅋ
심플월드에서 탑은 2018년에 대형 업데이트로 추가된 컨텐츠였다.
그리고 지금 그 탑의 공략 상태가 깨끗하다는 건....
"어, 어라?"
일단 최대한 진정하고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왔다.
탑만 공략 상태가 초기화된 것일지도 모르니까 NPC들이랑도 이야기를 나누어 봐야 할 것 같았다.
['아르카최고당'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아르카찾아줘아르카찾아줘아르카아르카아르카
"아, 아르카님이 가장 좋겠네요."
NPC 중에서 가장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은 상대이기도했고, 애초에 나는 탑 밖의 NPC 중에는 아르카님 말고는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아르카님도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거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나마 지금 시청자층에 아르카단이 많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 메일 확인해 주세요
- 아르카단 겁나 많네ㅋㅋ
- 아르카 집 위치 보냈어요
- 다들 심플월드 정상되니까 치료됬네
- 편안
- 솔직히 아깐 선넘긴 했지
- ㅇㅈㅋㅋ
"메일이요?"
메일을 확인하니 아르카님의 집 위치가 적혀 있었다.
이거 내가 지금 찾아가라는 뜻이겠지?
"저기요?"
아르카님의 집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눌렀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
혹시나 해서 초인종을 마구 눌러도 마찬가지였다.
- 아ㅋㅋ 그거로는 안일어나는데
- 방장님 아르카 알못이었네
- 그게 뭔데 씹덕들아ㅋㅋ
- 오랜만에 아르카 만날 생각에 신났네
- 후 오랜만이니까 봐준다
- ㄹㅇㅋㅋ
"뭐야, 주무시나? 어떻게 깨워야 하지? 마법으로 문짝 뜯고 들어가서 깨울까요?"
- ㄷㄷㄷㄷ개씹상남자
- 포카한테 나쁜거만 다배웠네
- 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럼 일어나긴 할듯
- 근데 컴터도 안될텐데 왜 안나온데?
- 이 정도 밝기면 잘시간이잖아
- 아ㅇㅈ
- 아또잠....
"아니 이 인간들이, 깨울 방법을 알려달라니까 자기들끼리 채팅치고 놀고 있네."
어떻게 해야 아르카님을 깨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후원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아르카최고당'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문짝 뜯고 들어가서 공주님 안기로 데리고 나오면 20만원
"바로 갑니다."
사실 평소라면 아무리 그래도 남의 집을 침입할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이라도 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싶었다.
정말 심플월드의 NPC들이 모두 무사한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냥 모양만 심플월드인 다른 세계는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 계시네."
다만 그녀가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자 행동하기 직전에 굉장한 죄악감이 느껴졌다.
이거 현실이면 고소감인데 NPC라 거기까진 안가겠네.
"꺄악! 뭐야 누구야!"
내가 아르카님을 안아서 들어 올리자, 곧바로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잘 자고 있는데 깨워서 정말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아르카님."
"누, 누구세요? 뭐야 어떻게 들어왔어요?"
문짝 뜯고요.
집까지 망가트렸다고는 말하기 힘들어서 멋쩍게 웃으면서 그녀를 안은 채로밖까지 걸어 나왔다.
"이거 놔봐요. 아니 누구시냐고요!"
"아르카최고당님이 시켰어요."
"그 새끼는 왜 오늘도 지랄이야!"
저기요 선생님?
평소에 뭘 하셨길래 저렇게 평소에도 자주 있는 일이라는 듯한 반응이 나오죠?
- ㅋㅋㅋㅋ매니저쉑
- 매니저가 매니저 했다
- ㄹㅇㅋㅋ
- 일벌이는거 일상이긴 하지
- 아ㅋㅋ
- 아르카방 스수들 다 여기있네
- 점령당해버렸다
- 수동 난민들ㄷㄷ
아르카최고당님이 아르카님 방송의 매니저였구나.
와 매니저가 겁나 악질이네.
하긴 우리 방은 인공지능 채팅 봇도 악질인데.
['아르카최고당'님이 2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포상ㅗㅜㅑ
"최고당님이 포상이래요. 하여튼 아르카님이랑 상의할 문제가 있어서 찾아왔거든요."
"아니, 누가 상의할 사람 집에 쳐들어와!"
"20만원짜리 미션이었단 말이에요. 반띵하죠?"
"콜."
이런 계산은 빠르셔서 다행이었다.
하여튼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남아있었다.
"아르카님, 혹시 지금 몇 년도인지 아세요? 심플월드 밖 기준으로."
"네? 2018년이잖아요."
"와 시발."
- 야발ㅋㅋㅋㅋ
- 진짜 과거네
- 와! 18아르카!
- 2년 전에도 매니저는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 한결같은거 레전드네
- 아니 18년도 심플월드ㅋㅋㅋㅋ
- 백업본이었냐고ㅋㅋㅋ
일단 확실한 것은 아르카님이 살아있는 걸 보아서 기존의 NPC들도 정상적으로 있을 거라는 부분이었다.
거기서는 한시름을 놨지만, 18년도면 너무 과거로 갔는데?
"뭐야, 아니에요?"
"지금 2020년이거든요. 돌겠네."
아르카님은 내 말에 혼란이 왔는지 온몸으로 물음표를 그리고 있었다.
"설명하자면 길어요. 일단 밖이 2020년이 되었다는 사실이랑, 저 말고는 심플월드에 유저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만 아시면 돼요."
"저 그럼 방송 어떻게 해요?"
"그건 저도 모르죠?"
- ㄹㅇㅋㅋ
- 하루아침에 직업상실
- 아ㅋㅋㅋ
- 스트리머(방송못킴)
- 원래 돌아가면서 큐브에 셋팅 해주는데
- 방장님이 해주시면 되는 거 아님?
- 오?
하긴 원래 아르카님은 NPC니까 시청자들 도움으로 방송을 켜왔겠구나.
"셋팅이요? 제가 뭔가 하면 아르카님 방송 켜실 수 있어요?"
- 심플월드랑 리트라이는 달라서 힘들듯
- ㅠㅠ
- 리트라이 용으로 코드 짜야 할걸
- 송출은 되는데 채팅을 못봄
- 컴퓨터도 못쓰고
- 아 그러네
- 채팅을 못보면 송출이 무슨소용이야
방송까지는 켤 수 있지만, 그 방송 상태를 아르카님이 확인하거나 조정할 수 없다는 거네.
즉, 지금은 사실상 켜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켤 수 있대요?"
그렇게 물어본 아르카님의 귀가 팔랑거렸다.
저 강아지 닮은 귀 되게 귀엽네.
"힘들다네요. 방법이 아예 없어요?"
['아르카최고당'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인게임에서 아이템이랑 프로그램 연동을해야 해요. 그래서 일단 저희가 게임에 들어가서 봐야 할 것 같으니까 지금은 무리.
"그럼 일단 여기 클리어해서 맵 열고, 오픈베타 시작하면 가능해지겠네요."
다행히 아르카님이 다시 방송을 시작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물론 그걸 위해서는이 게이트를 문제없이 클리어 해야겠지.
"그럼 저는 해결될 때까지 강제 휴방이에요?"
"그렇게 되겠네요. 지금 스수들은 이렇게라도 아르카님 봐서 좋다고 난리네요."
"근데 2020년이면 그사이에 저는...."
"계속 방송 하셨어요. 그냥 문제가 있어서 기억을 잃으셨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건 좀 빡치는 일이네요. 왠지 다시 방송 켜면 나도 모르는 업보가 쏟아질 것 같은데."
확실히 그건 좀 무서울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2년 분량의 흑역사들을 영상 후원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두려워졌다.
"하여튼, 가끔 올게요. 아르카단 여러분이 많이 보고 싶어 하거든요."
"...맨날 괴롭히기만 하는데 무슨."
아르카님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계속 방송에 대해서만 신경 쓰는 것이 티가 났다.
역시 최대한 빨리 오픈베타가 열리면 좋을 것 같은데, 녹스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네.
"그나저나 탑은 언제 다 깨냐...."
탑의 분량상 단기간에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였다.
게이트 바깥 상황을 모르니까 최대한 빨리 해결하는 편이 좋긴 하겠지만, 그러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을 때려 박아야 하는 것이 탑 공략이었다.
"와, 잠시만...."
그리고 공략 시간을 넉넉하게 잡는다고 해도 공략 자체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일단 장비 세팅부터 문제다.
심플월드의 장비 자체는 사용할 수 있겠지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장비가 전혀 없으니 장비부터 파밍해야 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같이 공략할 파티원이었다.
유저가 나 말고는 없으니까 일면식도 없던 NPC로 파티를 꾸려서 공략을 진행해야 하니까.
"진짜 막막하네."
아르카님의 집을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통해 1층으로 이동했다.
일단 낮은 층계는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 미리 좀 해둘 생각이었다.
"별로 안 어렵네."
- 여기서 어려워할 짬은 아니지
- 사실 40층까진 쉽긴 함
- ㄹㅇㅋㅋ
- 스무스하네
- 애초에 초반은 레벨링 용이잖아
- 초반부는 원래도 고인물들이 고속컷했음
- ㄹㅇ 개빠르네
체감상 49층까지는 무리 없을 것 같은데?
아니 근데 49층을 한 번도 안가도 1층에서 바로 가게 해주면 안 되나?
'하긴 49층의 인스턴스 던전이 생성이 되어야만 나오는 함정이니까.'
심플월드 탑 1층에는 49층으로 바로 보내주는 함정이 존재했다.
문제는 이게 49층을 누군가가 들어가서 인스턴스 던전을 생성해야만 나타난다는 점이었다.
만약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길이면 바로 1층에서 49층으로 이동해서 공략할 수도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조금만 쉬죠."
21층을 클리어하고 잠시 앉아서 쉬기로 했다.
21층까지 연속으로 달렸더니, 아무리 난이도가 쉬워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슬슬 출발해야겠네."
잠시 시청자들과 잡담을 나누다가, 슬슬 몸이 괜찮아진 것 같아서 22층으로 이동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이동했다.
"네, 오늘은 가능하면 49층까진 깨놓고 자려고요. 어라?"
엘리베이터를 동작시키기 위해서 손을 들어 올린 순간,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재차 버튼을 확인했다.
"뭐야?"
분명히 22층까지만 활성화되어 있어야 할 엘리베이터의 버튼이 23층까지 활성화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