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23장 - 어리석은 광대의 기도(4)
내가 숫자를 착각했나?
분명 방금 클리어했던 곳이 21층일 텐데?
- ?
- 왜그럼?
- 22층 아님?
- 22층 왜 깨져 있지?
- 어?
- 다른 사람이 깬거 아님?
- 유저가 얀별님 뿐인데 누가 깸?
- ???
유저가 나 말고는 없다는 부분이 문제였다.
어지간하면 심플월드의 NPC들은 위험하므로 탑이나 던전에 도전하는 경우가 잘 없다고 알고 있으니까.
물론 공략이 완성된 층이라면 그 층에 관해 완전히 숙지한 이후에 간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첫날이니까 그럴리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가능성은 없는데.... 그럼 역시 NPC가 맞죠?"
23층 버튼을 눌러서 이동하려다가, 만약 22층을 공략한 것이 NPC라면 그 NPC를 영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0층 버튼을 눌렀다.
지금 23층으로 이동해도 신규 인스턴스 던전이 생길 뿐, 내가 그 NPC를 만날 방도가 없다.
그렇다면 그 NPC가 나올 때까지 엘리베이터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겠지.
"그러니까 아래에서 기다립시다."
- ㅇㄱㅇ
- 맞네
- 오....
- 그런 방법이 있었네
- 확실히 지금 파티원이 더 급하지
- 탑을 공략하려는 NPC가 있었구나
- ㄹㅇ흔하지 않은 인재지
그리고 한동안 엘리베이터의 앞에서 나오는 사람을 확인한 결과, 20분쯤이 지나서야 딱 한 명이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왔다.
"저기요, 잠시만요."
"네?"
내가 부르는 소리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당황했다.
왼팔에 보이는 상처를 생각하면,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공략을 멈췄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방금 탑에서 나오신 것 맞죠?"
"네, 무슨 일이신데요?"
- ?
- 뭐야
- ㄴㅇㄱ
- 와 진짜 오랜만에 보네
- 저게 누군데
- 왜 니들만 아는 이야기해
- 와ㅅㅂㅋㅋㅋㅋ
- 그래 그런 인간이 흔할리가 없지
- 엌ㅋㅋㅋ
그녀가 내 질문에 대답하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그리고 곧 당황한 사람의 후원까지 등장했다.
['포카버터칩'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어?
"어라...."
심상치 않은 채팅창 분위기, 그리고 어딘가 낯설지 않은 그녀의 얼굴에 오히려 내가 생각에 잠겼다.
분명 어디서 본 기억이 있는 얼굴 같은데?
"저,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레나요. 그쪽은요?"
"저는 하얀별.... 아? 레나씨라고요?"
이름을 듣고 나서야 그녀의 정체를 깨달았다.
심플월드의 75층에서 시아에게 죽었다던 NPC인 레나씨였다.
큐브온에서 본 적이 있으니까 얼굴이 익숙했던 것이겠지.
'그래, 레나씨는 NPC면서 공략에 신경 쓰는 타입이라고 했었지.'
그건 탑이 업데이트된 당일인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첫날부터 혼자서 탑을 공략할 생각을 했었구나.
['포카버터칩'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아니 미친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포하
- 포카 멘붕왔네
- 보고있었네ㅋㅋㅋㅋ
- 죽었던 레나가 살아돌아왔다
- 레나야ㅜㅜㅜ
- ㄹㅇ보고 싶었다
- 와! 레나!
- 과거로 돌아왔으면 레나도 살아있는게 맞지ㅋㅋ
- ㄹㅇㅋㅋ
"그런데요? 제가 몸 상태가 좀 안 좋은데 용건이 있으면 빨리 끝내지 않으실래요?"
"아, 상처라면 제가 치료해 드릴게요."
완벽하지는 않지만, 저 정도의 가벼운 상처라면 내 마법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당장 마력이 급하지 않으니까 효율도 무시할 수 있고.
"어,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오히려 제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잘 보이려는 거거든요."
“부탁이요?"
만난 대상이 예상외의 인물이라고는 해도, 결국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지금은 탑을 공략할 때 함께할 NPC를 구해야 하고, 그 대상으로 가장 적합한 것이 지금은 레나씨니까.
"제가 최대한 빠르게 탑을 공략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함께 할 사람을 모집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요? 저를 파티에 넣으시겠단 말이시죠?"
"네, 방금까지 탑을 공략하던 사람이 레나씨 맞죠? 제가 같이 탑을 공략해 줄 파티원이 필요하거든요."
"제가 깬 건 맞는데, 저 원주민이거든요. 괜찮으시겠어요?"
"알고 있어요."
내 답변에 레나씨는 이해하지 못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긴 NPC랑 유저는 겉보기만으로는 구별할 수 없다.
그런데 내가 NPC인 걸 알고 있다는 부분이 이상하다는 거겠지.
"지금은 유저, 그러니까 방문자가 아무도 없어요. 저를 제외하면요."
"네? 점검 시간은 분명 조금 전까지였죠? 그럼 슬슬 다들 들어올 텐데?"
"그러니까요. 본래라면 들어와야 할 텐데, 아무도 오고 있지 않죠?"
그제야 내가 한 말을 온전히 이해했는지 그녀의 표정이 바뀌었다.
뭔가 평소와 다른 이변이 생겼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래서 원주민으로만 파티를 구성해야 하거든요. 그러던중에 첫날부터 공략에 도전하시는 레나씨를 본 거고요."
"그래서 저도 함께해달라는 거네요."
"네. 저는 꼭 탑을 클리어해야만 하거든요."
내 말에 한숨을 푹 쉰 레나씨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당장 답을 하기에는 무거운 주제네요. 일단 내일 아침에 여기서 다시 뵙죠. 그때까지 생각해 오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신중하게 답을 고민하는 모습에 오히려 안도했다.
혹시 혈기로만 일을 진행하는 성격은 아닐까 했는데, 굉장히 조심스럽고 세심한 스타일이었다.
"오케이, 이제 슬슬탑 정리할게요."
레나씨와 내일 약속을 잡은 건 좋지만, 탑 공략도 처음에 생각했던 49층까지는 해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49층까지는 그다지 어려울 게 없으니까.'
문제는 파티플레이의 형태가 시작되는 50층부터였다. 아니 사실 50층도 조심만 하면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가장 큰 문제는 5층마다 다른 세계관으로 이루어진 51층 이상이겠지.
'일단 거기부터는 만렙 컨텐츠라서 장비도 꽤 중요해지는데.'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만큼, 직접 던전을 돌아서 아이템을 파밍해 올 필요가 있었다.
'이번에는 과금도 안 되고, 아이템을 지원해 줄 다른 유저들도 없어.'
모든 층의 클리어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것은 굉장한 장점이었지만, 반대로 장비나 파티원 등의 부분에서의 제약이 커서 조심해야 했다.
"슬슬 원킬이 안나네."
40층 대에 진입한 이후로는 몬스터 잡기가 좀 귀찮아졌다.
물론 어디까지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귀찮아진 정도긴 했다.
"레벨링 하던 시절보다는 좀 약한 것 같은데?"
하긴 그때는 초반 전용 치트 무기를 가지고 사냥을 했었으니까, 지금보다 훨씬 편한 것이 당연했겠지.
'아, 그리고 특성이 꺼져 있구나.'
그때는 방송 중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간의 법칙 특성을 켜고 사냥을 진행했었다.
그것도 고려한다면 지금 스펙은 심플월드 만랩과 비슷한 수준이긴 하겠네.
'그럼 문제는 스킬이랑 장비가 되려나?'
심플월드에서 공략을 진행할 때는 만렙은 당연하고, 필요한 소모 아이템과 장비를 도배한 뒤에 제대로 된 스킬까지 활용했었다.
아이템은 어떻게든 해결한다고 쳐도, 스킬이 문제네.
'원래라면 각성 능력이 그걸 대체해야 할 텐데.'
문제는 내 각성 능력이 평상시 전투랑은 상관이 없는 녀석이라는 점이었다.
이러면 장비를 공략 시절보다 더 좋게 맞춰야 비슷한 스펙이 나오겠는데?
'과금도 못하는데, 장비 스펙은 더 좋아야 한다니.'
내가 그 당시에 동화 등급을 베이스로 두고 준신화 등급의 무기를 들고 시작했으니까, 이번에는 준신화급으로 도배를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본래라면 유저들이 가진 매물을 구매하면 되겠지만, 지금은 그것도 어려우니 대부분은 직접 파밍 해야 했다.
'방송 끄고 시간의 법칙 특성으로 파밍 해야 할 수도 있겠네.'
하여튼 이번 게이트 공략은 굉장히 장기전으로 들어갈 것 같았다.
그래도 이 게이트를 클리어하면 심플월드가 리트라이에 무사히 편입되는 거니까 노력해 봐야지.
"어우, 죽겠네."
48층을 클리어하고 기지개를 켰다.
여기서는 마력을 회복하면서 정비를 마친 뒤에 넘어가야겠네.
슬슬 난이도가 높아진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 좀 쉬세요
- ㄹㅇ오늘 개빡겜 하시네
- 근데 그럴만해
- 길뚫 속도 실화냐
- 심플월드가 나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 뭐야 심플월드 서비스 종료한 거 아니에요?
- 제발 무사히 공략해 주세요
- 아르카 방송 보고싶다
"아, 이거 심플월드가 아니고 리트라이에요. 리트라이에 있는 심플월드 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비를 마치고 49층에 올라오자, 익숙한 몬스터들이 나를 반겼다.
이름이 켈베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기서 아리아랑 처음 만났었지.'
혹시 아리아가 내려오지는 않을까 생각했지만, 공략을 마치는 순간까지 아리아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하긴, 이 시점의 아리아는 나에 대해서 모르고 있겠구나.
"오케이, 오늘 메인 컨텐츠 종료. 이제 쉴 곳을 찾아야겠네요."
몬스터 잡으면서 돈도 쌓였으니 여관 하나 빌려서 자면 문제는 없을 터였다.
그것도 아니면 아르카님 시청자들을 생각해서 아르카님을 찾아가도 괜찮겠지.
"...어느 정도는 아르카님도 진정을 했을 테니, 아르카님이랑 다시 이야기해볼까요?"
아까는갑자기 지금이 2년 후라던가, 방송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던가....
아르카님이 당황할만한 소재만 잔뜩 꺼내고 나온 것 같아서 마음에 걸렸다.
"아, 오셨네요."
내가 아르카님의 집에 도착하자, 꽤 피곤해 보이는 아르카님이 나를 맞이했다.
뭐야, 왜 저렇게 지쳐 보이시지?
"괜찮으세요?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원주민 새끼들.... 아니, 사람들 상대하다 보니까 지쳐서요. 들어오세요."
집 안에 들어가자, 아까는 보지 못했던 물건들이 거실 바닥이 주르륵 늘어져 있었다.
이게 다 뭐야?
"아까 제가 다시 방송을 시작하려면 클리어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그건 이번 업데이트로 생긴 탑일 거구요."
"...거기까지 생각하셨어요?"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방송을 다시 하고 싶어서요. 전 진짜 방송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거든요."
"아...."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화를 털어서 NPC들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 매물들을 최대한 끌어모은 것이었다.
장비 아이템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캐시로만 구할 수 있는 영약 아이템들이었다.
"아까 혼자 남아서 방송을 켜보려고 해도 방송도 안 켜지고, 밖에 나오니까점검 끝날 시간인데 유저들은 아무도 없고...."
전부 진짜였다고 깨달았을 때는, 시청자들이랑 만나지 못한다는 생각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마음이 아팠다.
나도 방송을 하는 사람으로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아르카님...."
"그리고 아이템만 지원할 생각은 아니에요. 가능하다면 저도 공략에 참여하겠습니다."
"네?"
그리고 아르카님의 선언이 이어지자마자 채팅창이 주르륵 올라가며 반대의 뜻을 내비쳤다.
대부분은 아르카님이 죽을 가능성 때문에 하는 걱정들이었다.
- ?
- 안돼
- 절대안된다
- 무조건 말려
- 아니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 에바야
- 제발ㅜㅜㅜ
- 아 그냥 얌전히 기다려
- 뭐??
- 아니 그냥 얌전히 있지 뭔소리야
['아르카단막내'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ㅈㄹㄴ
"스수들 난리 났어요. 절대로 용납 못 하겠다고 하네요."
"어이가 없네. 어디서 훈수질이냐고 해주세요."
물론 진짜로 내가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내 방송을 통해서 아르카님의 목소리가 그대로 송출되고 있었으니까.
"그렇대요."
아르카님이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채팅방의 반응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만큼 시청자들도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르카님이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곳이 아니라면 데려가지 않을 거니까요."
"......."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고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으면 공략에 나설 생각이 없었다.
무조건 안전이 우선이지.
- 아무리 그래도
- 에반데
- <삭제된 채팅입니다.>
- 아니 그러다 죽으면 책임 질거냐고
- <삭제된 채팅입니다.>
- <삭제된 채팅입니다.>
- 와 난리 났네ㅅㅂㅋㅋㅋ
- 과몰입 오지네 다들
- <삭제된 채팅입니다.>
오랜만에 티아가 엄청나게 일하고 있었다.
아니 뭐, 내가 말릴 일은 아니잖아.
솔직히 나는 아르카님이 전력이 되어주면 굉장히 감사한 쪽인데?
"그럼 일단 스킬 파악부터...."
방금 이야기의 연장선으로 아르카님에게 몇 가지 물어보려는 순간에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뭐야, 지금 연락할 사람이 있었나?
"아, 아르카님 죄송해요. 갑자기 전화가 와서요."
나에게 전화를 건 곳은 녹스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