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24장 - 이것이 하얀별의 뜻이라(2)
"레나야!"
내 외침을 들은 레나가 시아의 공격을 막아냈다.
지금이 이번 공략에서 가장 위험한 타이밍인 만큼 굉장히 긴장이 몰려왔다.
"칫."
레나가 시아의 마력을 버텨내는 동안, 나는 투신의 사슬을 발동시켜서 시아를 묶어내기 위한 시도를 계속했다.
"어우, 틈이 없네."
우리는 좀 전에 시아에게 모든 진실을 설명했고, 당연히 이번에도 시아는 폭주해서 난리를 치는 중이었다.
당연히 이렇게 싸우게 될 것을예상했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 아르카가 함정을 가득 깔아놓아서 그나마 상대할 만한 수준으로 디버프가 들어간 상태였다.
- 어우
- 괜찮은 것 맞음?
- 와 진짜 이걸 3명이서 싸우네
- 5명도 빡세던걸 3명이 하네
- ㄹㅇ이제 사람 더 구해야겠다
- 난이도 제정신인가ㅋㅋ
- 레나 또 죽겠다
'레나가 슬슬 지쳐가네.'
아무리 레나가 탱커라고 해도, 시아의 공격은 평범한 화력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기에 계속 레나 혼자 감당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뭔가 특출난 해결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안네야!"
위험한 짓이기는 해도, 내가 시아의 본명을 부르는 것으로 어그로를 잠시나마 끈다.
그래서 레나가 쉴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슬슬 위치를 다 파악했겠네.'
이제 투신의 사슬로 묶어야 하는 약점의 위치는 다 파악했을 것 같았다.
물론 위치를 아는 거랑 투신의 사슬의 능력을 발동시키는 건 다른 문제이기는 하지.
하지만 우리는 그 해결 방법을 이미 알아내서 계획을 짜둔 상태였다.
"레나야 잠시만 버텨줘! 이제 진행할 거야!"
"오케이!"
투신의 사슬의 능력은 사슬이 동시에 모든 약점에닿기만 한다면 발동한다.
그럼 그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서 투신의 사슬을 재료로 함정을 만든다면?
이번 계획은 그것이 핵심이었다.
"아르카! 위치 숙지 됐지?"
"어!"
물론 투신의 사슬은 기본적으로는 디버프라고 보기에는 어려워서 아르카의 함정 스킬로 바로 활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연습할 시간만 있다면 오버라이팅을 사용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고, 이미 전투 시작 전에 연습을 많이 해둔 상태였다.
"레나야 오른쪽으로 어그로!"
"해치웠나!"
"제발 닥쳐!"
계획대로 정상적으로 동작한 함정의 사슬이 약점의 위치들을 정확하게 찔러냈다.
그리고 이런 꼼수도 조건을 달성한 취급이기에 투신의 사슬의 능력이 발동하여 시아를 속박했다.
"얀별아 최대한 빨리!"
확실히 아르카가 마음이 급해질 만한 상태였다.
투신의 사슬이 제대로 묶고 있기는 했지만, 금방이라도 시아의 마력 때문에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았으니까.
"시아야!"
나는 시아의 손을 붙잡으면서 최대한 밝은 생각을 담아서 마력을 폭발시켰다.
이번에도 똑같이 저 마력에 당할 생각은 없었다.
- 우승!
- 와 이게 되네
- 저번보다 스무스하네
- 근데 이제 어떻게 함?
- 저번처럼 하면 안됨?
- 저번에 그거 재현이 되긴 하냐고ㅋㅋ
- ㄷㄱㄷㄱ
"정신 차려. 아델을 비롯한 다른 애들이 네가 이러길 바라서 그 이름을 준 게 아니잖아."
"아니야. 결국 내가 그 아이들을 선택했으니까 그 아이들이 죽은 거야."
"그건 그 아이들이 선택한 거야!"
방금 내 마력으로 밀어냈음에도 시아의 마력이 끈질기게 몸에 달라붙으려고 했다.
나는 내 마력을 폭발시키는 것으로 시아의 마력을 어떻게든 밀어내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니, 네 말이 정답이라고 치자. 하지만 그렇게 죄책감을 느낀다면 너는 더욱더 이러고 있으면 안 돼."
원리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시아는 어떤 힘으로 아델을 고쳐냈었다.
어떤 건지는 몰라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소리였다.
"아델은 아직 살아있어. 그리고 너는 그런 아델을 구할 힘이 있고. 조금이라도 그 아이에게 미안하다면 그 힘을 다룰 노력을 해야지!"
"내가, 아델을 살릴 수 있어?"
"그래. 넌 할 수 있어."
조금이나마 반응이 있었다.
이대로 쭉 밀어붙이면 될 것 같은데?
"하, 하지만 난 아무것도...."
"날 믿어. 너에게는 특별한 힘이 있어."
"특별한 힘...."
시아가 내 말에 동조하며 조금씩 마음이 풀어지자 아까부터 걸리적거리던그녀의 마력이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 오 되냐?
- 이번이 진짜 정석같네
- 이게 설득이 되네
- 그 와중에 매번 마력 흩는거 오지네
- ㄹㅇ개고였어
- 내가 알던 하얀별이 맞냐? 맞네
- ㅅㅅ
[75층 미션 완료
시아를 저지.(1/1)]
공략 클리어를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고 마력의 흐름을 정돈했다.
어느 정도는 애드리브였는데 괜찮았던 모양이네.
"아? 얀별 언니?"
"그래. 좀 괜찮아?"
금방 정신을 차린 시아가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기 시작했다.
왜 저런 눈으로 보지?
"아니, 어? 왜 시뮬레이션이 아니지?"
굉장히 당황한 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어, 시뮬레이션?'
시뮬레이션이라면 내가 지난번에 시아를 만날 때 이용한 시뮬레이션 던전을 말하는 거겠지?
"시아 너 기억하고 있어?"
물론 시뮬레이션을 통해 공략을 진행할때도 시아는 시뮬레이션 이전의 일들을 기억하긴 했다.
그게 이번에도 마찬가지인가?
"그 정도 권한은 있거든요. 어떻게 된 거예요?"
"어쩌다 보니까 시간이 과거로 돌아갔다고 해야 하나?"
당장 간단하게 설명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중에 따로 자세한 내막을 설명해 주는 편이 좋겠네.
"그러고 보니까 레나 언니도 살아있네? 언니!"
시아는 레나에게 뛰어가더니 그녀가 신기하다는 듯이 여기저기 쿡쿡 찌르기 시작했다.
"시아야, 언니를 장난감처럼 다루는 건 그만두지 않을래? 안 그래도 방금까지 너한테 많이 맞아서 힘들어...."
"앗, 죄송해요. 오랜만에 보니까 반가워서."
헛기침을 한 시아가 손을 휘두르자 그녀의 손등에서 빛이 나타나더니 미완성 실험체들을 향해 쏘아냈다.
[시나리오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합니다.
새로운 종족: 시아족]
- 이번엔 진짜다
- 시아족! 시아족!
- ㄹㅇ이거 보려고 왔지
- 주모!
- 이번에는 종족 오픈하나?
- ㄷㄱㄷㄱㄷㄱ
이번에는 시뮬레이션이 아니기 때문에 강제로 귀환할 일이 없으니까 이 가능성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하아, 뭔가 많이 꼬인 것 같기는 한데. 하여튼 75층 클리어 축하드려요."
"얀별아, 시아가 갑자기 이상해졌어."
"너보다 이상할까?"
"아르카 너 진짜 죽을래?"
오히려 아르카가 레나를 놀리는 진귀한 장면이라니.
이건 바로 앞에서 얌전히 감상할 가치가 있었다.
"얀별이가 싱글벙글하니까 무슨 생각인지 알 것 같아서 화나네."
내가 너무 티 나게 웃었나.
그치만 나도 스수스러운 면이 있어서 이런 상황을 보면 재밌단 말이야.
"아, 미안해요. 언니. 당황하시라고 그런 건 아니었어요."
"괜찮아. 네가 무사한 것만으로도 지금은 만족스러우니까."
나는 이미 지난번에 비슷한 상황을 겪었기 때문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레나한테는 좀 당황스러울 수 있는 부분이겠지.
"음, 그럼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야겠죠."
잠시 고민하던 시아는 허공에 마력으로 글씨를 써가면서 설명을 하기시작했다.
"심플월드에는 성좌라는 직책이 있어요. 반신이라는 말이랑 비슷한 의미에요."
- ?그뭔씹
- 처음 듣는 용어가 튀어나오네
- 그게 뭔데ㅋㅋㅋ
- ㄹㅇ심플월드가 섭종하고 알게 되는게 레전드다
- 성좌?
- 성스러운 의자?
- ???
- 별자리?
아마도 네즈가 되려고 했던 성좌가 이거겠지.
대체 성좌가 뭐길래 네즈는 그 많은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성좌가 되려고 했을까.
"반신?"
"일단 성좌가 되면 기존 NPC가 받던 권한의 제약을 벗어나요. 루프 등의 사유로 생겨난 기억을 열람하거나, NPC가 볼 수 없는 시스템을 확인할수도 있죠."
그 설명을 NPC 본인이 한다는 점에서 뭔가 깬다는 생각은 나만 드는 걸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일반적인 스킬을 넘어서는 개념적인 능력을 얻는다는 점이죠."
"개념적인 능력?"
"이를테면, 기존 시스템에는 없는 종족을 만드는 능력이라던가."
"아."
시아는 성좌가 되면서 새로운 종족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얻었고, 그 능력을 이용해서 기존의 실패한 실험체들의 몸을 치료했다는 소리였다.
"새로운 종족이라는 게 시아가 만드는 거였구나?"
"시스템상에서는 시아족이라는 이름으로 나와요. 종족 특성은 자신이 바라는 방향의 추가적인 능력, 외모적 특징은 성흔."
성흔은 손등에서 빛나고 있는 문신 비슷한 걸 말하는 거겠지?
저런 느낌으로 나도 능력을 지원받았던 기억이 났다.
"맞아, 저번에 줬던 성흔! 그거 큰 도움이 됐어."
"그거 쓰셨어요? 사용법 설명을 못 해서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하여튼 그런 식으로 능력이 추가되는 것이 시아족의 종족 특성이라는 말이었다.
"근데 문제가 있어요. 전에 성흔을 드렸던 것도 일회용이었죠?"
"아, 그랬었지?"
내가 받은 성흔은 일회용이라서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었다.
"그건 언니가 시아족이 될 조건을 충족할 수 없는 사람이라서 그랬어요. 시아족으로 등록하는 것에는 조건이 있거든요."
"조건?"
"일단 시스템에 다른 종족으로 등록된 적이 없어야 해요. 즉, 탑 출신이 아닌 NPC나 기존에 유저들은 등록이 불가능하다는 소리죠."
"아, 그럼 방금 치료한 실험 피해자들은 모두 탑 출신이라 가능한 거구나?"
확실히 제약이 심하긴 하네.
"그렇죠. 그리고 탑 출신이어도 시아족이 되면 탑 밖 출신처럼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어요. 시스템에 등록이 되거든요."
"그럼 시아 너도 지금 종족이 시아족이야?"
"네."
"그럼 시아 너도 다음 층 공략에 참여할 수 있겠네?"
"그렇게 되겠네요."
이건 꽤 중요했다.
만약 시아가 우리를 도와서 공략에 참여해 준다면 엄청나게 도움이 될 터였다.
"그리고 이건 제약이라기보다는 시나리오적인 문제인데요. 탑이 전부 클리어되어야만 유저들이 시아족을 생성할 수 있어요."
"오."
그래서 새로운 종족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정도로 넘어갔구나.
- 진짜 새로운 종족이었구나
- 그럼 뭐함 섭종했는데ㅋㅋ
- 이거 기획할 때는 섭종할 생각이 없었나보네
- 기획이고 뭐고 시아가 죽어서 보지도 못했는데
- ㄹㅇ이런걸 만들어 놓고 공략에서 시아 죽었다고 안풀었어?
- 진짜 심플월드는 레전드다
"그럼 성좌는 어떻게 해야 될 수 있는 건데?"
"조건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 경우에는 이 몸이 가진 능력을 모두 컨트롤 할 수 있게 되는 것만으로도 성좌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허, 참."
어떻게 보면 네즈가 생각했던 가설은 거의 맞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시아는 성좌가 되었으니까.
다만 성좌가 되는 것이 신인류를만든 사람이 아니라 그 신인류 본인이라는 점은그의 예상과 달랐지만.
'그리고 나한테 후원을 해주는 성좌랑은 다른 것 같아.'
시아의 설명을 보면 그냥 일종의 게임 내 직책에 가깝지, 게임을 넘어서 진짜 초월적 존재가 되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냥 용어의 이름만 같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았다.
뭐 정말로 연관이 있는지는 정보가 더 필요하겠지만.
"오케이, 대충 이해는 했어. 그런 의미로 시아 너도 우리 파티에 들어와 주라."
"언니가 바라신다면야. 솔직히 저는 언니가 아니었으면 저는...."
"도와주면 고맙지."
뭔가 부담스러운 말을 할 것 같아서 일단 시아의 말을 끊어버렸다.
"부끄러워하시긴. 그리고 이번에도 이거 드릴게요."
['시아의 성흔(비활성화)'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저번과 마찬가지로 내 손등에 성흔을 보내줬다.
이번 공략에서도 이걸 써먹을 수 있겠네.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 고민 좀 해봐야겠다. 솔직히 아직 이 위층들 공략은 짜는 도중이거든."
"혹시 이제 이야기 끝났니?"
"악! 깜짝이야!"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나까지 놀랐네
- 갑레튀
- ㄹㅇ시아랑 이야기하는거에 집중해서 레나랑 아르카가 있는 걸 잊어먹고 있었네
- 너무 어려워서 머리 터지겠다
- 아ㅋㅋ
- 얼마나 무시했으면 귀신 본 것처럼 놀라냐고ㅋㅋ
아, 지금은 나랑 시아 둘이 있는 것이 아니었지.
옆에 레나랑 아르카를 방치하고 너무 우리끼리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미안, 미안. 시아 이야기 듣다 보니까."
"하여튼, 무사히 공략한 거 축하드려요."
"그래, 우리는 내려가서 밥 먹을 것 같은데. 시아 너도 갈래?"
"아뇨. 저는 여기 정리해야죠."
시아는 침대에 누워있는 아델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그렇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