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24장 - 이것이 하얀별의 뜻이라(4)
금색 빛은 점점 사람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거기까지라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저거 너무 지연이랑 닮았는데?
"나?"
금색 빛의 형태에 당황한 지연이는 갑작스러운 금색 빛의 공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공격에 휘말렸다.
그 순간, 지연이와 금색 빛 사이로 뛰어 들어간 메구미가 몸으로 그 공격을 막아냈다.
쾅!
"정신 안 차려!"
"서, 서은아!"
- 캬
- 저건 또 뭐임?
- 겁나 멋있구용
- 메구미!메구미!메구미!
- 서은이 개잘해
- 서온서온서온
- ㅗㅜㅑ
- 이름 좀 통일해서 불러ㅅㅂ
- 와 지연이가 둘!
"시끄러워! 말 걸 시간 있으면 자리나 잡아!"
"으, 응!"
그제야 정신을 차린 지연이가 원래의 포지션인 후열로 돌아갔고, 나를 비롯한 나머지 인원도 연습했던 포지션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메구미도 빠져!"
레나와 메구미가 자리를 바꾸면서 연습했던 포지션 그대로 완성했다.
이거 쓸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나저나 저 빛은 대체 뭔데 지연이를 닮은 거지?
"후, 일이 재밌게 돌아가는걸?"
- ?
-말하네ㄷㄷ
- 지연이랑 목소리 똑같다
- 지연이 mk2네
- 오...
- 눈나ㅏㅏㅏㅏㅏ
- 오우 쉣
- 저게 지연이라고?
저게 지연이라기엔 발성이 너무 차이가 났다.
아니, 발성이 다르다기보다는 의도적으로 비웃는 톤을 낸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지.
"뭐야, 아무것도 모르나 보네. 저기요 이지연씨? 대답해 보세요?"
"네?"
"음, 진짜 옛날의 나네. 하긴 나는 죽었으니까 오히려 내 쪽이 가짜려나?"
영문 모를 이야기를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다들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대치 상태만 유지하고 있었다.
"넌 누구야."
메구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마도 저 녀석의 모습이 지연이랑 똑 닮았으니까 저렇게 조심스러운 거겠지.
"정말 오랜만에 보면서 그렇게 이야기하면 슬퍼. 사랑스러운 배신자씨?"
"너, 설마...."
메구미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조금이나마 감이 왔다.
'저번 공략 성공에서, 메구미는 배신자라고 몰린 상태로 끝이 났어.'
즉, 메구미를 배신자라고 부를 수 있는 이지연은....
"너, 미래의 지연이야?"
"정답!"
밝고 기운차던 지연이는 메구미를 잃은 이후로 어두워져 갔다.
나중에 공략 멤버들이 모여서 만나러 갔지만, 이미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었지.
저건 리트라이로 인해서 심플월드가 과거로 돌아가기 전의 지연이였다.
"너, 설마...."
메구미도 대충 상황을 파악했는지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떤 원리로 여기서 정신을 차렸는지는 모르겠는데. 거기, 이지연씨? 과거의 나? 뭐라고 불러야 하나...."
"에?"
"아, 뭐 됐어. 호칭이 뭐가 중요하겠냐. 내가 충고 하나 할게."
"충고?"
"지연아, 듣지 마!"
메구미가 당황해서 힘으로 막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마법으로 가볍게 그녀를 밀어낸 미래의 지연이가 말을 계속했다.
"서은이는 배신자야. 널 완전히 속이고 있지. 저기 있는 얀별이도 한통속이고."
"무슨 소리야! 서은이가 날 배신한다니! 서은이는 그럴 애가...."
"맞아. 서은이는 너에게 나쁜 짓을 할 생각은 없어. 나쁜 짓은 자기 자신한테 하는 귀여운 배신자거든."
"귀여운 배신자?"
"자신을 희생해서, 너를 구할 생각밖에 없는 멍청이야. 자기 따윈 어떻게 되던 상관이 없지. 너만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해."
이건 정말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우리는 지연이에게 상황 대부분을 숨겼다. 그건 그녀가 혼란스러워하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지연이가 알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네.
"아니, 이번에는 달라. 이번에는 다른 방법으로 100레벨을...."
"오, 얀별이 너도 몰랐구나. 대단하네, 이번에는 얀별이도 속인 거야?"
속이다니?
나는 설마 하는 생각이 들어서 메구미를 바라봤고, 메구미는 고개를 숙였다.
"보험이었을 뿐이야."
"자살이나 다름없는 짓을 하고 보험이라고?"
"잠시만, 메구미! 너 설마...."
몸에 심으면 마기에 잠식되는 대신 마력 등의 스펙이 강화되는 씨앗.
그걸 이번에도 몸에 심고 있었다고?
"그렇게 숨기고 싶어도, 이러면 드러낼 거잖아?"
미래의 지연이가 손을 잠시 들었다가 휘두르자, 다량의 얼음덩어리가 나타나더니 지연이에게 쏟아졌다.
처음에는 레나가 막아서려고 했지만, 금방 다른 마법으로 몸이 묶여버렸다.
"...쿠소"
처음으로 일본어를 내뱉은 메구미의 몸에서 징그러운 눈동자가 눈을 떴고,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르더니 얼음덩어리들을 베어버렸다.
- 쿳소
- 쿠소!!!
- 갑분일
- 아 메구미 일본인이었지ㅋㅋㅋ
- KUSOOOOOO!
- 으악 눈동자
- ㄹㅇ한국어 겁나잘해서 잊어먹음
- 눈동자 너무 혐오스러워
실제로 메구미는 나에게 말하지 않은 채로 몰래 씨앗을 몸에 심었던 거였다.
대체 저걸 언제부터 심고 있었대?
"봐, 여전히 너는 희생할 생각만 하잖아?"
"절대로 그럴 생각은...."
"그래? 그렇다면 증명해봐."
"어?"
"네가 아니라 다른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봐."
그렇게 말한 미래의 지연이가 마력으로 칼을 하나 만들더니 메구미에게 건네줬다.
"이거로 나를 찌르면 나는 틀림없이 사라질 거야. 내가 그렇게 암시해서 만든 무기니까."
"......."
"애초에 나는 죽은 사람이라니까? 사념 비슷한 것 같아. 그래도 이렇게 형태가 있는 만큼 충분한 경험치는 되겠지."
본래라면 메구미가 죽어서 채웠을 경험치를 자신이 대신 채우겠다는 소리였다.
그걸 메구미가 할 수 있겠냐고 몰아붙이는 거다.
"대충 상황을 보면 내가 나타난 이유가, 네가 희생하지 않기 위해서잖아? 그 정도는 눈치가 있거든."
그러니까 그 목표를 달성하면 되는데, 왜 망설이냐며 비아냥거렸다.
"그 얼굴로, 그 목소리로 그런 말 하지 마!"
"그래, 나는 망령이고 가짜야. 그럼 찔러서 지워버리면 되잖아."
"나, 나는...."
메구미는 칼을 쥔 채로 당황해서 떨고만 있었고, 이제 그런 메구미의 모습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지연아, 거기까지만 하자."
슬슬 지연이의 연기에 어울려 주는 것도 지칠만한 타이밍이었으니까.
"뭐?"
"1인 2역 연기는 그만하자고."
처음에는 나도 미래의 지연이가 왔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나타났던 메시지만 없었다면 전혀 의심하지 못했겠지.
[90층 미션 완료
이지연의 레벨이 100에 도달 (100/100)]
심지어 이 메시지가 나타난 이후부터 시아가 살짝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몇 가지 가정을 해보니까 대강이나마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거 그냥 마력으로 만든 가짜 인형이잖아. 그냥 네가 100레벨에 도달하면서 기억이 돌아왔을 뿐이지?"
"......."
기억이 돌아온 원인이 100레벨인지, 아니면 성흔의 능력 때문인지는 내가 알 도리가 없었다.
다만 그녀가 지난 공략 당시의 기억을 되찾았다는 전제를 깔면 상황 대부분이 설명된다.
그녀는 일부러 가짜 자신을 만들고, 그 가짜 자신을 연기해서 마치 미래에서 온 자신처럼 포장한 것이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내던졌던 메구미에게 화를 내기 위해서.
"너무 그러지 마. 메구미도 충분히 알고 있어. 그런데도 너를 너무 좋아하니까 자꾸 저러지."
"하아, 이걸 들켜버렸네."
- ?
- 아 그래서 아까 미션클리어 떴구나
- 오...
- 아니 미쳤냐고ㅋㅋㅋ
- 지연이 연기 왜 이렇게 잘하는데
- ㄹㅇ진짜 미래 지연이인줄
- 아니 이게 가짜네ㅋㅋ
- ?????
지연이는 우리에게 공략 상태가 시스템 메시지로 표시되는 걸 몰랐을 테니까 시도한 연기였을 것이다.
"근데 내가 화가 나지 않게 생겼냐고. 이 와중에도 자기가 죽으려고 고민하고 있었다니까?"
그렇게 말한 지연이가 손을 휘젓자, 가짜 지연이가 점점 투명해지더니 이윽고 사라졌다.
"서은아, 다시는 그러지 마. 그러면 다음에는 따라서 나도 죽어버릴 거야."
지연이가 메구미를 껴안았고, 메구미는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메구미 원래 저런 이미지였어?"
"응, 은근 울보야."
저번에 공략 성공하고 난 뒤에 시뮬레이션으로 찾아갔을 때도 울었거든.
그냥 강한 척하는 바보지.
[90층의 공략에 성공합니다. 86층의 진입 인원수 제한이 사라집니다.]
[이제 91층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분위기 망쳐서 죄송한데요. 우리 에이스 이지연씨, 마왕 좀 빠르게 끝내고 오실래요?"
"분위기 망치는 걸 알면 조금만 기다려 주면 좋겠는데?"
"아니, 바로 코앞까지 와서 사랑을 모르는 자신이 불쌍하다는 표정 하고 있거든?"
"어이가 없어서 그런다 인간."
"그렇대."
언제부터 이 층은 이런 분위기가 된 거냐고.
'저번에도 느꼈지만, 마왕이 너무 허무하게 죽네.'
100레벨만 찍으면 겁나 쉽고 99레벨은 불가능하다니 너무 작위적인 설정 아니야?
아무리 게임이라도 그렇지.
"하여튼 다들 고생했어."
공략은 끝났다, 마왕은 용사에게 죽었고, 이 세계는 구원받았다.
심지어 파티 전원이 무사한 상태로.
"우리 뭔가 빼먹은 거 있나?"
뭔가 빼먹은 듯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너무 허무하게 끝나서 그런가?
"이 바보가 심은 씨앗 처리해야지."
아, 그러네.
저 바보가 혹시 모른다는 이유로 몸에 이상한 걸 심고 다녔지.
"잠시만요!"
지연이가 마법을 써서 씨앗을 끄집어내려는데, 시아가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서 막아섰다.
"저는 효과는 남기고 부작용만 처리할 수 있어요. 시아족으로 종족 변경하는 거로요."
"아, 이제 여기가 클리어되었으니까 시아족으로 등록할 수 있겠네."
아까 이미 성흔을 사용한 지연이는 쿨타임에 걸려서 어렵겠지만, 메구미는 아직 성흔을 받은 적이 없었다.
"맞다. 시아족으로 변경하는 김에 이야기하는 건데, 메구미 너 다음 공략을 좀 도와주라."
메구미를 시아족으로 등록하는 동안, 탑에 대한 설명과 공략에 대한 부분을 대강이나마 설명해줬다.
"그럼 나는 못 따라가겠네."
"응, 지연이는 이미 성흔을 써서 한동안은 종족 변경을 시도하지 못하니까."
종족 변경을 하지 않으면 탑 출신은 탑 공략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제한이 있어서 파티에 넣을 수 없다.
애초에 메구미까지 들어오면 그것만으로도 파티 인원이 가득 차니까 큰 문제는 아니지.
"몸은 좀 어때요?"
"...엄청 가벼워"
하여튼, 이번에도 전체적으로 계획대로 일이 잘 풀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포카버터칩'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보상보상보상보상보상보상보상보상보상보상보상보상보상
"도배는 밴입니다. 만원은 고마워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신화급은 못참지
- 와 유료밴!
- 아 여기서 신화급 주지?
- ㄷㄱㄷㄱㄷㄱㄷㄱ
- ㄹㅇ오늘달달하네
- 무기였지?
- 무슨 아이템이었더라
"거, 무슨 마법 강화해주는 거였는데?"
하여튼 포카가 쓰기 적격인 아이템이었다.
확실히 나중 공략에서 그 아이템 덕을 크게 봤었지.
'이번에는 내가 쓰던가 시아를 주면 될 것 같은데.'
포지션 상 그게 맞을 것 같았다.
음, 아니면 의외로 메구미가 써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네.
"여기서 고르면 된다는 말이죠?"
저번 공략에서도 왔었던 보상 방이었다.
물론 여기서아이템 효과를 미리 볼 수는 없지만, 나는 여기서 어떤 걸 골라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거지."
내가 확신에 가득 차서 고른 지팡이는, 밖에 나와서 확인해 봐도 알고 있던 옵션 그대로였다.
[여신의 계략 (신화, 성유물)
사용제한: 무기
마력을 모두 소모하면 하루에 한 번만 계략 스택을 하나 추가한다.
계략 스택을 하나 사용하면 마력을 최대치까지 회복할 수 있다.
계략 스택을 사용하면 일정 시간 동안 마법의 효과가 100% 증가한다.]
- 크
- 와 영롱한거 보소
- ㄹㅇ십사기무기
- 성유물?
- 겁나 좋네
- 개사기템 ㄹㅇ
- 계략 아십니까? 겁.나.사.기.입.니.다.
- ㅊㅊㅊㅊㅊ
"크, 미친 성능. 잠시만, 성유물?"
뭐야, 성유물이 왜 여기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