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25장 - SSS급 능력이 되었다(2)
파지직!
시야가 암전된다.
그리고 몸 주위에서 스파크가 튀는 소리가 나더니 곧 눈앞이 환해졌다.
[당신은 '시유'의 수호령이 되었습니다.]
"오...."
수호령이라.
아마 내가 히로인을 지키는 일종의 귀신 같은 존재가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능력이 된다는 표현을 했구나.
[수호 대상인 '시유'의 각성 능력을 열람합니다.]
[통신(A): 수호령의 모습과 목소리 등이 전해집니다. 수호령이 마력으로 행하는 행동 또한 볼 수 있으나, 이 마력은 현실에 바로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일정 기간마다 등급이 하나씩 내려갑니다.]
[전파(F): 미약한 전자기파를 흘립니다. 통신의 등급이 내려갈 때마다 등급이 상승합니다.]
"잠시만요. 뭐 이렇게 길어?"
- ㄷㄷㄷㄷㄷㄷ
- CU쨩...
- 등급이 내려간다고?
- 복잡하네
- 전파는 올라가네
- 현실에 영향 못주는 거임?
- 어려워
- 그뭔씹
아마 통신의 랭크가 내려가는 것은 시간제한 같은 느낌일 거다.
이 게임도 결국 엔딩이 있는 게임이니까 그 엔딩의 기준을 통신이 끊어지는 걸 기준으로 했겠지.
대신 통신이 끊어지면 전파라는 전투용 스킬이 강해지는 거고.
['티크크티'님이 100시간을 후원합니다.]
- 능력(천마)
천마 밈은 성좌들도 미는 거구나.
그나저나 능력이 나오기 전에 보낸 것 같은 내용인데, 그럼 이 후원도 딜레이가 있나?
좀 신기하네.
"엄청나게 잘 자는데?"
나는 침대에서 죽은 듯이 자는 시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내가 시유의 수호령이라서 그런지 쓰다듬는 것도 모두 감각이 전해졌다.
'몸에 상처가 엄청 많아.'
애들한테 맞은 것으로 보이는 것도 많았지만, 가장 확 와닿았던 것은 너덜너덜한 수준의 손목이었다.
아마 자살을 위해 수도 없이 손목을 그었던 흔적이겠지.
살아있는 것이 기적일 정도였다.
그나저나 능력 각성 어쩌고 하는 거 보면 여기도 이능력 배틀물인가?
얘는 이제까지 각성하지 못해서 무시와 괴롭힘을 당한 거고?
"끄응, 아연아?"
"뭐?'
시유가 아연이라는 이름을 중얼거리는 순간 스파크가 튀면서 짧은 영상이 재생되었다.
「괜찮아. 별것 아니니까.」
영상에는 시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다른 여자애가 있었다.
아연씨처럼 은발이지만 그 외에는 아예 다른 분위기의 소녀였다.
아마 그녀의 이름이 아연이겠지.
처음에는 아연이라기에 아연씨 이름인 줄 알고 당황했다.
"너, 넌 누구야?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이제 일어났네."
시유는 깜짝 놀라서 침대에서 뒷걸음질 치며 나에게서 멀어졌다.
하긴 나라도 내 방에서 모르는 사람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으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나? 모르겠어?"
"내가 그걸 어떻게...."
"너 각성했어."
그 순간 시유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그리고 짧게 상태창이라고 중얼거리더니 몸을 떨기 시작했다.
- 상태창!
- 울려고하네
- ???: 이왜진
- ㄹㅇ멘탈 개약해보이네
- 이거 시작부터 너무 피폐한데?
- 으윽
"왜, 왜 이제야...."
"내가 너무 늦었지?"
"왜 전부 끝난 다음에서야...."
끝났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유가 무척이나 슬퍼한다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시유의 머리를 쓰다듬어줬지만, 시유는 내 손을 뿌리치며 화를 냈다.
"만지지 마!"
"하지만...."
"아."
내가 당황하자 시유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스파크가 튀면서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구리야. 빨리 손 보여줘. 지금이라도 치료해야....」
「만지지 마!」
「아....」
이건 분명히 시유의 기억일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역류해서 나에게도 보이는 연출이겠지.
"...미안"
시유는 과거의 기억 때문인지 방금 행동을 금방 사과했다.
나는 CU라고 적힌 그녀의 명찰을 가리키며 말했다.
"CU라, 그거 구리지? 그럼 구리라고 불러도 될까?"
- ㄹㅇCU는 구리지
- 방금 영상에서 구리라고 불러서 그런가
- 오
- 반응 엄청나네
- 구리양ㄷㄷ
- 아연에 구리에 다 금속이네
- 이름이 노린거 같네
모험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왠지 시유, 아니 구리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만약 구리가 뱉어내는 저 영상들이 기억을 자극해서 나오는 거라면 그 기억을 자극할 필요가 있겠지.
그래서 나는 영상에서 아연이라는 소녀가 시유를 부른 것처럼 구리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로 했다.
「시유는 C랑 U잖아? 그럼 원소기호로 구리! 나는 아연이니까 찰떡인 별명 아니야?」
「하,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히히, 부끄러워하긴.」
「누가 부끄러워했다는 거야!」
"절대로 그렇게 부르지 마."
"왜?"
"그건 내가 정해. 내가 싫다고."
"에이, 왜. 구리라는 이름이 어감 더 좋은데."
"...짜증나"
구리는 결국 포기하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해했다기보다는 나를 설득한 시간조차 아깝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는 구리를 그렇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내 이름은 아연이야."
"뭐?"
「내 이름은 아연이야. 너는 시유였지? 잘 지내자.」
「꺼져.」
「에이, 그러지 말고.」
- 오
- 이걸 아연이라고 해버리네
- 근데 얀별님 본명 아연 맞지 않음?
- 엌ㅋㅋㅋㅋㅋㅋ
- 그러네ㅋㅋㅋ
- 그건 진짜 생각도 못했네
- 이걸 아연이라고 해버리네
"음, 이 이름이 불편한가 보네. 그럼 얀별이라고 불러. 내 별명이니까. 서로 별명으로 부르는 사이라니 좋네."
"너, 너 설마...."
"왜 그래?"
"...그럴 리가 없겠지. 잊어줘. 얀별아."
일단 이름은 텄고.
혹시나 해서 이름을 아연이라고 했더니 반응이 강했다.
역시 그 아연이라는 여자애에 대한 기억이 강렬한 모양이었다.
"암튼 나는 네 수호령이고, 그럼 친하게 지내야 하지 않을까?"
"친하게 지내긴 무슨."
"강해지고 싶은 것 아니었어?"
"...그랬었지."
"그럼 내가 강해지는 법을 알려줄게."
"필요 없어."
그리고 이쯤 되면 예상이 갈 수밖에 없었다.
PV에서 봤던 불타서 보이지 않던 사진의 일부.
저렇게까지 구리가 그리워하는 아연이라는 소녀.
'죽었구나.'
그러니 늦었다고 말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때 자신이 더 강했다면.
각성을 조금이라도 빨리해서 뭐라도 할 수 있었다면.
그럼 뭔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기회는 돌아올 리가 없으니, 그 후회는 자신을 찌르는 칼날이 된다.
그 반복 속에 구리의 마음은 너덜너덜해져 있을 것이다.
"복수는 하지 않아?"
"복수?"
그렇다면 구리에게 줄 수 있는 남은 동기는 단 하나뿐이다.
복수.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에 일조한 모든 것들에 대한 복수.
"내가 할 수 있다고?"
"당연하지. 내가 이래 봬도 SSS급 능력이거든."
"뭔 개소리야. A급이잖아."
대충 알아먹어.
게임 제목에서는 SSS급 능력이라고 했단 말이야.
이거 과대 포장으로 신고하면 먹히냐?
"나 한 번 믿어보라니까 그러네."
"요즘엔 귀신도 사기를치네...."
- ㅋㅋㅋㅋㅋㅋ
- !게임
- SSS급 능력이 되었다
- 아ㅋㅋ
- 이걸 안 믿어주네
- 수상할만해
- ㄹㅇ약팔이도 아니고 SSS급ㅋㅋㅋ
그나저나 구리 AI가 얼마나좋은 거야?
심플월드나 리트라이는 진짜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거라고 쳐도, 이건 그냥 싱글 게임이니까 순수하게 AI 아니었어?
'물론 소연이도 엄청 자연스럽긴 했는데.'
그건 잠깐이니까 연출빨이라 쳐도, 여기는 계속 플레이가 이런 식인 모양인데....
이게 티아를 인수한 AI 기술의 힘인가?
솔직히 지금은 싱글 게임이 아니라 리트라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얘가 진짜 사람이 아니면 뭐냐고.
"그래. 그럼 복수도 싫다는 거지? 다른 원하는 건 없어? 나는 수호령이니까 네가 원하는 걸 이뤄줘야지."
"날 죽여줘."
"뭐?"
"죽여달라고."
구리가 진지하게 꺼낸 말은 예상했던 것 중 하나에 해당하는 말이었다.
복수도 싫고, 구할 것은 잃어버렸다.
그런 구리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죽음뿐이겠지.
- 아
- 진짜 개패고 싶네
- ㄹㅇ 멘탈 다작살났네
- 으 너무 피폐해
- 신작 너무 매운데?
- 정신나갈것같아정신나갈것같아
- 으아악
「구리야, 나랑 약속해줘. 절대로 자살하지 않겠다고.」
「...싫거든?」
「그래, 그럼 나부터 죽을래.」
「뭐? 자, 잠시만. 알았어. 약속할 테니까 진정해.」
그녀와 자살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자살은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를 잃은 이후로 구리는 누구보다도 죽음을 원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구리의 소원은 '죽음'이 되었다.
"그래."
"어?"
"그게 내가 원하는 거라면 그렇게 할게. 나는 네 소원을 들어주기 위한 존재니까."
구리는 내가 그렇게 반응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화들짝 놀랐다.
네가 하자고 한 거면서 본인이 놀라면 어쩌자는 거야.
"대신 죽게 해줄 때까지 나랑 어울려줘. 심심했단 말이야."
"...조건을 거는 거야?"
"어, 나는 귀신이라 제대로 놀지도 못한단 말이야. 네가 원하는 걸 도와줄 거니까 너도 날 도와주는 거지. 기브 앤 테이크!"
물론 정말로 구리를 죽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구리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려는 방법일 뿐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솔직히 싫다고 하면서도 내가 해달라는 걸 해줄 수밖에 없잖아.
구리가 원하는 걸 들어줄 유일한 열쇠가 나니까.
- 무슨생각이시지
- 가불기긴하네
- ㅋㅋㅋ죽여줄테니까 놀아줘
- ㄴㅇㄱ
- 와 근데 이게 맞지
- ㄹㅇ 클리셰 잘알이시네
- 여기서 마음 공략해서 살려야지
- ㄷㄷㄷㄷㄷㄷㄷ
"...정말이지?"
"굳이 너한테 거짓말해서 뭐 하겠어."
"하긴 그건 그렇지. 하지만 어떻게 죽이려고?"
"나는 널 만질 수 있거든?"
심지어 마력도 있어서 마법을 쓸 수도 있다.
현실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하지 못하지만, 구리에게는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죽이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설득력이 되겠지.
"그래. 하자."
"오케이."
그나저나 앞으로 뭘 하건 간에 프롤로그에서 구리를 괴롭히던 녀석들이랑 부딪히겠네.
걔들 때문에 방해받으면 구리의 멘탈만 무너질 것이다.
그거부터 대비를 좀 해놓고 시작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각성했으면 마력도 생겼겠다 간단한 호신술 정도는 배우자."
"...호신술?"
"오러라고 알고 있어?"
"그게 뭔데?"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쉬우려나.
나는 책상에 놓여있던 연필 하나를 들고 보여주기로 했다.
"이 연필이 뭐든 자를 수 있는 칼이라고 믿는 거야. 마법이 이런 방식인 건 알지?"
"신성 마법이 그런 식이잖아. 그래서?"
"이걸 믿다 보면 연필이 강해질 수 있는 최대치를 넘어가면 연필 끝에 오러가 만들어져."
"그럼 어떻게 되는데?"
구리는 대체 이런 걸 왜 배워야 하냐면서 틱틱거렸지만, 그러면서도 은근히 내가 하는 말에 귀는 기울여주고 있었다.
나는 실제로 연필에 오러를 맺히게 한 뒤에 자를만한 것을 찾아봤다.
- ㅋㅋㅋㅋㅋㅋ
- 선생님이 되어버렸네
- 어떻게되긴 잘리지
- 연필로 오러ㄷㄷ
- ㄹㅇ교육게임이네
- 내가 하는게 아니라 가르쳐야 의미가 있는 게임이네
- 저걸 ㄹㅇ 초보자한테 가르치네
- ???: 나는 첫날에 했어
내가 시범으로 책상 끝을 가볍게 잘라내자, 상상을 뛰어넘는 위력에 구리의 눈이 커졌다.
리트라이랑 다르게 이런 상식은 없는 세계인 모양이네.
아니면 구리가 그냥 무지한 걸 수도 있고.
"이런 건 신앙이나 검술을 익혀야 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효율은 좋겠지. 그래도 오러는 대부분 오러로만 막을 수 있으니까 익혀두는 것이 좋아."
"역시 아연이는 아닌가...."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지금까지도 내가 죽은 아연이와 같은 인물인 걸 의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이후 구리는 내 가르침을 따라서 금방 오러를 배웠다.
구리는 내가 해보라는 건 해보고, 처음 듣는 개념은 이해하려고 열심히 노력까지 했다.
저런 마음가짐과 재능을 가진 구리가 이제까지 각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절망하고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오케이. 이제 좀 잘 안 흩어지네."
"헉, 허억."
이 정도면 그래도 자기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는 수준이겠네.
실제로 얼마나 먹힐지는 해봐야 알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