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25장 - SSS급 능력이 되었다(3)
나와 구리는 아침이 되자마자 기숙사를 나서서 아카데미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굉장히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 학교네.
"오랜만에 나가는 거라고 했지?"
"어."
"아카데미에 친구는 없어?"
"...아, 씨. 존나 시끄럽네."
"이게 화나?"
이상하네.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여려분이 생각하기에도 그렇지 않나요?
- ㅋㅋㅋㅋㅋㅋㅋ
- !인성
- ㄹㅇ빡칠만하지
- 겁나 괴롭히시네
- 근데 오히려 이러니까 좀 덜 피폐하네?
- 오....
- 타로하실 때도 그렇지만 사람 잘다루심ㅋㅋ
- ㄷㄷㄷㄷ
- 개화날듯ㅋㅋㅋ
물론 나도 알고 하는 짓이었다.
원래 이런 사소한 곳으로 짜증을 유도해야 깊숙한 짜증까지는 닿지 않는 법이었다.
다만 조금 전에 친구 이야기는 조금 지뢰 발언이었네.
그런 소재는 조심해야지.
"아무튼 아카데미 구경시켜주기로 약속했잖아? 빨리 안내 해줘!"
"그래, 누가 해주지 않는다고 했냐?"
"응응응...."
- ???: 응응응은 욕하고 싶을 때 대신하는거야
- ㅋㅋㅋㅋㅋㅋㅋ
- 아니 왜 자꾸 중독되냐고ㅋㅋ
- 공주님은 어쩔 수 없지
- 요즘 다들 응응응거리네
- 응응응
- ㅅㅂㅋㅋㅋㅋㅋㅋ
- 응응응 멈춰!
구리는 나를 데리고 아카데미 건물을 순회하는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카데미 왔으면 이렇게 다른 사람한테 안내받으면서 구경하는 건 역시 국룰이지.
그런데구리가 나를 처음으로 데려간 곳은 의외로 강의실이었다.
"이런 느낌이야."
"오, 그럴듯해. 비어있지만."
"강의 없는 강의실로 왔으니까 당연히 비어있지."
이 집 디자인 잘하네.
대학교 강당 같은 느낌이면서 세계관의 고딕스러운 분위기를 잘 살렸다.
나중엔 여기서 구리가 공부하는 모습도 볼 수 있으려나?
"그다음은?"
"음, 지금 시간이면 아침 배식이 끝나지 않았을 테니까 식당으로 가볼까."
"오, 식당? 좋지."
역시 큐브 게임의 묘미 중 하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거니까.
살도 안찌고 얼마나 좋아.
- 얀돼별지
- 그만 먹어....
- ㄹㅇ살 안찐다고 브레이크를 안밟아
- 최근에 큐브에서 자꾸 과식하면 현실에서도 과식한다는 연구결과가....
- ㅋㅋㅋㅋㅋㅋㅋㅋ
- 근데 얀별님은 현실을 나가지도 않는데 어캐 과식하실?
- ㄹㅇ 요즘에 리트라이 한다고 큐브에서 살잖아
'하긴 지금은 먹는거에 맛들리면 위험하긴 하지.'
당장 서버 점검 끝나면 리트라이에서 살아야 하는데, 거긴 먹을 게 부족하니까.
최근에 심플월드 게이트는 먹을 거는 풍족해서 그런 고민 없이 살았지만, 슬슬 리트라이 적응을 위해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방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와, 시발 맛있겠다."
"어차피 귀신이라 못 먹는 거 아니야?"
구리는 식판에 배식을 받아서 구석진 테이블에 앉았다.
나는 반대편에 앉아서 구리를 부러워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손으로 잡는 건 안 되는데.... 하지만 구리가 먹여준다면?"
"미쳤냐?"
"먹어보고 싶단 말이야."
윽, 앙탈 부리는 느낌이라 내가 너무 역겨워.
하지만 그런 모순을 이겨내야지만 저기 식판에 있는 치킨을 얻어먹을 수 있다.
치킨 내놔!
"아아."
"이게 돌았나?"
"아아아아."
나는 계속 입을 벌리고 있었다.
물론 구리가 먹여준다고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것 자체가 억측이지만,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포기할 수 없었다.
저 바삭해 보이는 튀김의 향기는 절대 참을 수 없지.
"그래, 쳐 먹어라. 쳐 먹어."
"하음!"
다행히 구리가 먹여주는 음식은 먹을 수가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이 게임의 개발자들은 정말 천사들이었다.
이걸 먹을 수 있게 해놓다니....
- 진짜 돼지네
- ㄹㅇㅋㅋ
- 별이 아니라 돼지 아이콘 파야할듯
- 돼지자리ㄷㄷㄷ
- 여러분 돼지는 사실 음식 먹는 량을 잘 조절하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돼지한테 사과하세요.
- 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만 먹어!!!
- ㄹㅇ게임만 하면 먹방각 잡네
- 돼지님 죄송합니다. 얀별님이 너무 돼지라서.... 앗?
"와, 개 맛있네."
"그런가? 항상 먹다 보니까 그런가보다 싶은데."
"빨리 요리사분들께 사과드리십시오. 진짜 어지간한 치킨집보다 맛있구먼."
"...치킨집이 뭔데?"
"닭튀김 파는 곳."
"닭튀김만 파는 음식점도 있구나...."
이런 세계관이 달라서 생기는 상식의 괴리까지 잘 잡아놨다.
이 정도면 내가 스토리 게임을 하는 건지 리트라이를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인데.
스토리 스토어 그들은 신인가?
"다행히 사람이 별로 없네?"
"슬슬 끝날 타이밍이니까."
"아하."
우리가 거의 마지막으로 왔던 건지, 금방 식당은 정리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없는 거구나.
"아."
"귀신도 배고프거나 그러냐?"
"아닐걸?"
애초에 진짜 귀신이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큐브 게임에서 음식 먹는 거랑 실제로 배고픈 건 상관이 없다.
애초에 필요한 영양분은 수액을 통해 제공되는 식이지.
다만 리트라이는 너무 현실적이라서 캐릭터의 공복에 맞춰서 음식물을 섭취해야 하긴 했다.
"그럼 안 먹어도 되는 거 아니냐?"
"맛있잖아."
"...에휴"
그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건가?
구리는 그렇게 생각하는 표정으로 천천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내가 먹는 것도 좋지만 먹는 걸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
"히히."
"뭘 그렇게 봐. 사람 밥 먹는 것 처음 봐?"
"구리가 먹는 건 처음 보지?"
"에휴."
- 뭔가 얀별님 캐릭터가 다르네
- ㄹㅇ 평소에 우리한테 이렇게 해봐!!
- 이게 힐링 얀별?
- ㄷㄷㄷㄷㄷ
- 라발렌 생각나네
- ㄹㅇ소연이한테 푹빠졌을 때 감성이네
- 근데 뭔가 소연이랑은 다른데
- 뭐지?
- ㅇㅇ이건 먼가 이래야 하니까 한다는 느낌
시청자들의 판단은 옳았다.
나는 일부러 천진난만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중이었다.
그래야 구리가 마음을 열기 쉬워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지금 구리는 나한테 마음을 연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죽여주겠다는 약속 때문에 억지로 따르는 것에 불과하다.
'이 정도로 현실적인데 배드엔딩을 만나는 건 사양이야.'
처음부터 힘을 빡 주고 가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가능하다면 바로 좋은 엔딩을 만나고 싶으니까.
뭐, 그걸 못하더라도 최선은 다하는 것이 게이머의 도리기도 하지.
"여긴 뭐야?"
"능력 훈련장. 실력이 좋으면 따로 배정되지만, 일정 이하의 실력이면 여기서 해."
"흐음."
딱히 대단한 시설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원거리 능력자를 위한 움직이는 타겟 제공이나, 화력 연습을 위한 샌드백 같은 기본적인 설비였다.
"별건 없네."
"뭐, 솔직히 제대로 된 훈련이 필요하면 던전 순회를 하지."
"아하."
그런 세계관이구나.
던전이라는 실습 공간이 있으면 그쪽에 더 신경을 써서 구성했을 가능성이 컸다.
심지어 개인 훈련이 필요한 상위 능력자는 따로 설비를 제공한다면 저거로 충분하다 판단했겠지.
"여긴 도서관."
"오, 신기하다."
이게 아카데미의 도서관이라는 문물인가?
근데 뭔가 현실의 도서관이랑 비슷하면서도 다르네.
저건 검색하는 건가?
"여기서 책을 찾아서 고르면 날아와."
"미친."
- ㄷㄷㄷㄷㄷㄷㄷ
- 날아온다니
- 신개념 현대문물ㄷㄷ
- 실제 도서관도 찾으면 기계가 꺼내주긴 하는데ㅋㅋ
- 이건 좀 감성 오지네
- ㄹㅇ이게 아카데미지
- ㅗㅜㅑ
검색한 책이 하늘을 날아서 나에게 도착한다니.
이런 감성은 진짜 누가 생각한 거야?
오지네.
"여기 있는 책은 다 공부하는 책이야?"
"아니, 소설책 같은 것도 있어."
파지직!
꽤 오랜만에 재생되는 구리의 과거 영상이다.
아마 이 도서관에도 추억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어때, 신기하지?」
「...조금」
「별로 관심 없어 보이네. 책 싫어해?」
「공부하는 책은 싫지. 여기 소설책 같은 것도 있어?」
「당연하지. 기다려봐 내가 추천해 줄게.」
아, 예전에는 오히려 구리가여길 소개받았구나.
그런 구리가 지금은 나를 소개해준다니, 되게 재밌는 상황이네.
"도서관 되게 재밌네. 다음은?"
"잘 모르겠는데. 솔직히 아카데미에 갈 곳이 얼마나 있다고...."
"그런가?"
"모르겠어. 광장이나 가볼래?"
"광장 같은 게 있어?"
"매점 옆쪽에."
"매점...."
- ㅋㅋㅋㅋㅋㅋㅋㅋ
- 또 또
- 아니ㅋㅋㅋㅋ
- 아까 아침 먹었는데 벌써 매점을 노리네
- 먹는거 멈춰!
- 아ㅋㅋ
- ???: 사줘
아니 누가 보면 내가 아침밥 다 먹고 이러는 줄 알겠네.
아까 치킨 두 조각인가 얻어먹은 것이 전부인데 이렇게 돼지 취급 당하는 거 억울하거든요?
암튼 억울함.
"오, 분수가 있네?"
"분수 좋아해?"
"평범하게 좋지."
예쁘니까.
뭔가 특별한 기억이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왜?"
"있어, 그런 게."
구리는 짜증을 부리며 분수에서 시선을 돌렸다.
왠지 분수에 뭔가 안 좋은 추억이 있는 모양이네.
내가 그렇게 생각할 무렵 구리의 과거 기억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나는 분수 되게 좋아.」
「이게? 그냥 그런데.」
「되게 예쁘잖아. 특히 여기 분수는 앉은 사람의 마력에 따라 다르게 움직이잖아.」
「그래서 더 그래. 난 항상 칙칙하던데.」
구리가 그렇게 말하자, 다른 소녀가 구리 옆에 장난스럽기 앉았다.
그 순간 애매하게 흐트러지던 분수가 화려하게 치솟아 오른다.
「뭐, 뭐야?」
「칙칙하지 않게 만들어 봤어!」
「어? 그런 게 가능해?」
「나도 모르지만. 근데 나 혼자 앉았을 때보다 예쁘네. 구리 덕분이야.」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치, 부끄러워하긴.」
구리가 분수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당장 영상 속에서만 해도 좋아하지 않는다고까지 표현하지는 않았다.
'당연한 거지.'
이제는 잃어버린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이 깃든 장소.
그 사람이 좋아했고, 그 사람과 함께 할 때 아름답게 빛나던 장소.
혼자서는 여전히 칙칙한 이곳을 구리가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구리야. 맛있는 거 사줘."
"하, 뭐 먹고 싶은데?"
"아무거나 맛있는 거로?"
"제일 짜증 나는 주문이네."
「뭐라도 사올까?」
「난 구리가 좋아하는 거면 다 좋아.」
「제일 짜증 나는주문이네.」
구리의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예전의 추억이 떠오른다.
소중했지만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과의 아름다운 추억.
나는 그 추억을 이용하기로 했다.
"최대한 빨리...."
나는 무사히 구리 혼자 매점으로 보내는 것에 성공한 뒤에, 의자에 앉아서 마력을 움직여보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구리랑 몸이 닿지 않으면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없지만....
'미리 마력으로 실을 만들어서 구리 몸에 붙여 놨으니까.'
이 정도 꼼수는 숨 쉬듯이 할 수 있었다.
이제 나도 큐브 게임 뉴비는 탈출했으니까.
- ㄷㄷㄷㄷ
- 오 신기하다
- 이러려고 보낸거였구나
- 이게 먹고 싶어서 보낸게 아니네?
- 분수 이쁘당
- 이왜안?
- 아까 영상에 나온거 재현하시는 건가?
"네."
아까 구리의 기억에서 보여준 분수의 움직임을 재현할 수 있는 마력 패턴을 찾는 중이었다.
다만 구리가 매점에서 나오기 전에 다 찾아야 해서 시간이 너무 빡빡했다.
딸랑!
'이런 씨....'
완벽하진 않은데,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재현하는 것에 성공했다.
구리가 오기 전에 분수의 움직임을 모두 돌려놓은 뒤에 얌전히 기다린 척을 했다.
"오, 뭐야?"
"아이스크림콘. 이거 처음에만 먹여주면 알아서 먹을 수 있지?"
"아마도."
구리가 내 입에 아이스크림콘을 쑤셔 넣고는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구리가 의자에 앉자 구리의 마력에 맞춰서 분수가 요동쳤다.
"맛있냐?"
"응, 겁나 달고 맛있어."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구리 옆에 앉았고, 그와 동시에 마력을 움직였다.
구리의 마력에 따라 변화된 부분을 실시간으로 수정하면서 아까 본 기억 속 분수의 움직임을 재현했다.
파바바박!
화려하면서도 정갈하고 아름다운 분수의 모습.
"어, 라?"
나와 분수를 바라보는 구리의 눈동자가 굉장히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구리에게 달라붙으며 말했다.
"분수 되게 이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