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26장 - 신데렐라의 시간(1)
나는 구리를 덮친 모양새 그대로 시스템 텍스트를 읽으며 굳어버렸다.
게임 초반부터 예상하던 전개지만, 실제로 눈앞에 닥치는 것은 꽤 당황스러웠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 아ㄷㄷㄷㄷ
- 맞다 이게 있었지
- ㅁㅊ
- 시간제한이 있었지
- 하나씩 잃어버리는구나
- 이제 마력 못쓰네
- 허....
"아니면 좀 비키지?"
"잠시만 구리야."
"뭐. 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니까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대로 구리에게 제대로 나를 각인시키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그 조급한 마음은 급발진을 낳았고, 내 급발진은 구리에게 입술로 박치기를 하는 거였다.
"읍, 으읍!"
"하아, 하아. 흐읍!"
나를 거부하며 밀쳐내려는 구리를 무시하며 입술을 부딪치기 위해 몸을 들이밀었다.
구리는 내 키스를 거절하고 싶어도, 이미 위치에서 밀리는 상황이라 계속 당하고만 있었다.
"좀 꺼지라고!"
파지직!
구리의 손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몸을 직격하며 저릿한 감각을 느끼게 했다.
마치 무언가에 갈려 들어 가는 감각.
감전이다.
"개새끼야! 무슨 짓이야!"
"...미안"
감정에 과몰입하고 있었던 것이 원인일 것이다.
조급한 마음과 나중엔 이것조차 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저질러 버린 일이었다.
"울고 싶은 건 나거든? 왜 네가 쳐 울고 지랄이야!"
"......."
심지어 눈물까지 생겨나 있었다.
정신 차려 하얀별.
구리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게임의 캐릭터야.
너무 과몰입하면 위험해.
- ㅗㅜㅑ....
- ㄷㄷㄷㄷㄷㄷㄷ
-급발진 오졌다
- 클립 따고 왔습니다
- 키스는 ㅇㅈ이지
- 너무 과몰입하셨는데
- ㄹㅇㅋㅋ
- 괜찮으시려나
물론 내 플레이 스타일이 과몰입인 것은 맞다.
시청자들도 대부분 그런 나를 보러 오고, 나도 그럼 나를 보여주려고 한다.
하지만 방금은 과몰입하면서 구리를 구하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 급발진까지 했다.
이건 지양해야지.
"또 이딴 짓 하면 죽여버릴 거야."
"다음부턴 그러지 않을게."
"...개새끼"
구리는 욕을 내뱉더니 혼자서 기숙사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두 번이나 허락 없이 입술을 훔쳐 갔으니, 이는 중범죄가 틀림없다.
나는 그렇게 범죄자가 된 심정으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러분, 죄송해요. 죄책감이 너무 심해서."
물론 키스에 대한 죄책감이 아니다.
내가 구리에게 하고 있었던 행동들에 대한 죄책감이지.
내가 구리에게 소중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구리에게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경험을 반복하는 것이 된다.
그야 이 게임은 결국 내가 구리 곁을 떠나야만하게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존재가 되어야만 구리의 앞날을 설득할 수 있다.
구리가 모든 걸 포기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
"이기적이죠?"
- ㄴㄴㄴㄴ
- 오히려 구리 살리려고 그러는 건데
- ㄹㅇ
- 머 그정도야
- 게임인데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 저는 재밌음
- ㄹㅇㅋㅋ
- 이대로 쭉 가시죠
"고마워요."
여기 시청자들은 말을 참 착하게 한다.
봇이 빠르게 채팅을 차단하는 것 때문인지, 스위치의 시청자들이 착하게 채팅을 치는 문화가 형성되어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착하게 치지 않는 사람이 다 차단으로 죽어서 그런 건가?
"후우, 확실히 반응이 바뀌긴 했던데."
싫다고 하긴 했지만, 맨 처음에 닿을 때는 떨면서 눈을 감았으니까.
잠시내 입술을 받아들인 이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밀어내려고 했다.
'분위기에 휩쓸린 거겠지만.'
하지만 순간적으로 그 키스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었다는 거다.
그것만으로도 크나큰 발전이겠지.
구리 안에서의 내가 굉장히커졌다는 소리니까.
"어?"
시간을 스킵해서 아침이 되었는데 기숙사에 구리가 없었다.
아마도 어제 일 때문에 말없이 나가버린 모양이었다.
찾아봐야겠네.
'잠시만.'
어제와는 기숙사의 물건들 차이가 컸다.
구석에 던져져 있던 가방이 사라졌고,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던 책들도 일부 사라졌다.
설마 얘가 공부하러 갔다고?
"이건 좀 예상 밖인데."
무슨 바람이 분 건지는 잘모르겠지만, 아마 어제 일들과 관련이 있을 거다.
설마 그 자식들이랑 부딪히지 않는 걸 회피라고 생각하고, 부딪히는 편이 고통이라고 생각한 건가?
만약 그런 생각으로 간 거라면 위험하다.
물론 이제 구리가 오러를 사용할 줄 알고, 능력의 수준도 올랐긴 해.
하지만 상대는 인원수가 너무 많았다.
"대체 어디로 간 거야?"
그런데 아카데미를 전부 뒤져봐도 구리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강의 중인 곳들도 들어가 봤지만 역시나 없었다.
- 어딨지
- 흠
- 밥먹고 있는거 아님?
- 이미 어디로 끌려간 걸지도
- ㄷㄷ
- ㄹㅇ사라졌네
- 그냥 다 뒤져보죠?
"잠시만요. 만약 구리가 있으면 지금 위험할 법한 장소부터 가보죠?"
일단 프롤로그에서 나왔던 구리가 맞고 있던강당.
거기는 아까 이미 확인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남은 거라면....
"마력 향상 훈련실?"
물론 지금은 폐쇄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그래도 상대는 사람을 죽이고 묻어버릴 만큼 권력이 있는 놈들이다.
걔들이 거길 다시 열어서 구리를 가둬놓았어도 이상할 게 없지.
'구리가 정말 거기 갇혀 있으면 큰일인데.'
이제 구리는 각성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다.
각성자는 마력 향상 훈련실에 너무 오랜 기간 방치되면 마력이 폭주해서 사망한다.
그렇다면 구리가 정말로 위험한 상황일 수도 있었다.
"망할."
문제는 내가 거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는 건데.
구리도 그곳에 폐쇄되었다는 말만 했지, 그 장소가 어디인지는 정확하게 말한 적이 없다.
나는 수호령이라서 누군가한테 말을 거는 것도 무리고, 물건을 뒤적거리는 것도 할 수가 없다.
내가 만질 수 있는 것들은 게임상에서 앉거나 눕는 등의 필수적으로 상호작용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있는 오브젝트 뿐이니까.
이런 상태의 장점이라면 닫힌 문을 통과할 수 있다는 정도인데....
'구하러 안에 들어갈 때는 좋겠지만....'
당장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상황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능력이다.
진짜 이 몸뚱아리 무능하네.
"야, SSS급 능력이라며! 겁나 구리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암튼 SSS급이라고
- SSS급(쓸모없음)
- 게임이 플레이어를 과대평가ㅋㅋㅋ
- 아ㅋㅋㅋ
- 교주님 정도면 SSS급이 맞긴해
- ㄹㅇ어디갔지
아무래도 훈련실이니까 저번에 봤던 능력 훈련장 근처에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훈련장을 살펴봤지만, 역시 저번에 확인했던 건물들 말고는 다른 점이 없었다.
그리고 아카데미의 지도는 있어도 거기에 마력 향상 훈련실이표기된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가봤던 곳은 제외. 너무 먼 외각도 일단은 제외하자.'
그럼 물리적으로 확인을 해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되겠지.
훈련과 관련이 있을 법한 건물이면서, 내가 가보지 못했던 장소를 찾아야만 했다.
"여긴 아니고."
가장 그럴듯해 보였는데, 여기는 성적이 되는 이들에게 전용으로 지급되는 훈련실이 있는 건물이었다.
마력 향상 훈련실은 누구나 사용 가능하다고 했었지.
그럼, 여기보다는 조금 더 건물이 노후화되었을 가능성이 크겠구나.
나는 지도를 찍어둔 스크린샷에 체크 표시를 하며 건물들을 모두 살피기 시작했다.
사실상 노가다나 다름없는 작업이었지만, 방법을 찾는답시고 시간을 계속 낭비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어쩔 수 없었다.
- ㄹㅇ 어디지
- 그럴듯한 곳은 다 본 것 같은데
- 저쪽 공터 보심?
- <삭제된 채팅입니다.>
- ㄷㄷㄷ
- 스포ㄴ
- 이렇게 하는게 맞아?
"이렇게 하는 건 아닐걸요."
다만 지금은 이 방법이라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라 이렇게 하는 거지.
이번에 확인하는 곳은 강의실이 모여있던 곳 중에 들어가 보지 않은 유일한 건물이었다.
생긴 것은 다른 건물들이랑 똑같긴 한데, 혹시 모르니까.
"닫혀있네?"
건물의 상태에 뭔가 기시감이 들었다.
홍보지가 다른 건물들은 통일되어 있는데 여기는 혼자 달랐다.
마치 여기만 갱신을 하지 못한 것 같은데....
'여기일 가능성이 크겠네.'
얼마 전에 건물이 폐쇄되었다면 당연히 최근에 붙은 홍보지가 있을 수 없다.
마력 향상 훈련실이라면 꼭 다른 건물이랑 다를 필요는 없겠지, 내부에 장치만 제대로 설치하면 되는 거니까.
근데 뜬금없이 이렇게 강의실에 가까운 곳에 있다고?
나는 일단 문을 통과해서 안으로 진입했다.
그러고 나서 내부에 붙어있는 안내문들을 몇 개 읽어본 이후에야 이런 곳에 마력 향상 훈련실이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여기도 일종의 강의실이구나.
"아, 잘 안 보이시죠? 수업 시간표에요. 근데 1학기에서 갱신이 안 된 것을 보면 2학기 수업이 없거나, 폐쇄되면서 수업이 멈췄나 보네요."
아마 1학기만 수업이 있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결국 이 마력 향상 훈련실이라는 건 안전상 비각성자 대상으로 각성 확률을 올려주는 역할로 쓰였을 것이고, 그럼 아카데미에 갓 입학한 비각성자들이 듣는 수업으론 제격이지.
일종의 강의실이니까 강의실 건물들 옆에 비슷한 디자인으로 존재했던 거고.
"여기도 잠겨있네."
아카데미 대부분 자물쇠보다는 전자식 잠금이지만, 여기는 열쇠로도 동시에 잠글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다만 일부러 망가트린 것인지 열쇠를 사용하는 곳은부서져 있었다.
아마도 저번 사건 이후로 전자식 잠금만 사용하는 모양이다.
"들어갈게요."
파지직!
내부로 진입하자마자 스파크가 튀면서 눈앞에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빙고.
「누구 있어요? 역시, 아무도....」
「어?」
「아연아? 아연아!」
「히익! 거, 거짓말이지? 아연아, 일어나봐! 아연아!」
「아, 아아아악!」
영상은 너무 고어한 상황이라서 그런지 구리의 표정에만 포커싱을 맞추고 상황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구리가 큰 충격을 받았을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오열하는 구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하얀별 진정해, 저건 과거야.
- ㄷㄷㄷㄷㄷㄷㄷ
- 이거구나
- 아 아연이 발견했을 때네
- ㅁㅊ
- 저랬는데 PTSD안생길 수가 있냐고
- 어우
- 정신나갈것같애 정신나갈것같애 정신나갈것같애
"구리야!"
나는 영상이 종료되고 나서야 내부에 쓰러져있는 구리를 발견했다.
역시 구리는 이곳에 있었구나.
예상이 맞은 건 다행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구리의 상태였다.
"콜록, 시발. 여기까지 쫓아왔냐?"
"괜찮아? 어떤 새끼들이야! 누가여기다가 가뒀어!"
"호들갑 떨지 마. 별거 아니니까. 후우...."
"코피 흘리면서 그딴 소리 하면 누가 믿는데!"
다행히 목숨이 위험한 수준까지 오지는 않은 모양이네.
그래도 마력이 역류해서 위험한 상태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최대한 빨리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업혀. 나가자. 시발, 그 새끼들 나한테 걸리면 죽여버릴 거야."
"아니야."
"어?"
"그 새끼들이 여기 가둔 거 아니라고."
아니라고?
그럼 대체 누가....
- ?
- 에이 아니지?
- 아
- ㅅㅂ
- ???
- 눈치챈 내가 싫다
- 뭔데
- 왜 니들만 알아듣는데!!!
사실 이해는 하고 있었다.
구리가 이제까지 해왔던 반응과 성격을 생각하면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더 이상하겠지.
"그나저나, 일부러 가방까지싸놨는데 여길 어떻게 알고 왔대."
"너, 설마...."
"내가 직접 들어온 거야.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궁금해서."
"구리야. 너 제정신이야? 이건 고통 정도가 아니라 자살이야!"
"에이, 죽을 생각은 없었다니까? 어차피 문도 다 열어놓고 들어온 거야. 위험하면 나갈 생각이었지."
"그러다가 나가지 못하면!"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사고 아니겠어?
"야...!"
"아직 견딜 만 해. 아연이가 당한 고통은 이 정도가 아니었을 거야."
"개소리 그만해. 난 너 데리고 나갈 거야."
나는 구리를 강제로 둘러업고 밖으로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구리는 한숨을 쉬더니 전기를 발산했다.
"윽!"
"사사건건 참견하고, 짜증 나게. 궤변이나 늘어놓으면서 자꾸 오지랖이나 떨고...!"
"구, 구리야?"
전기로 인해 몸이 마비되자, 이번에는 구리가 내 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구리는 내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전기를 내보내서 내 움직임을 마비시켰다.
"아윽!"
"내 수호령이라더니, 그냥 제멋대로일 뿐이잖아! 당하는 사람의 마음도 좀 생각을 하란 말이야!"
그렇게 외친 구리가 무서운 기세로 내 입술을 덮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