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26장 - 신데렐라의 시간(2)
전격으로 인한 고통이 심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이 게임은 제한해제까지 적용된 게임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전격으로 인해 느껴지는 감각과 마비되어 어지럽혀지는 정신의 감각은 꽤 현실적이었다.
아마도 이걸 사실적으로 구현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겠지.
"읍! 으읍!"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저항할 수 없는 몸을 구리의 몸이 짓누르고, 그녀의 입술이 무자비할 정도로 내 호흡을 틀어막았다.
산소가 부족해서인지 어지러운 감각이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나를 짓누르던 구리의 팔은 치워졌지만, 이미 힘이 풀려버린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구리는 그걸 알고 있는지 내 움직임은 무시하고, 내 머리를 끌어안으면서 혀를 집어넣었다.
- ㄷㄷㄷㄷㄷㄷㄷ
- ㅁㅊ
- 헉
- ㅗㅜㅑ
- 소리 너무 외설적이에요
- 개쩌네
- 이거 맞아??
- 갓겜ㄷㄷㄷㄷ
혀까지 넣는 건 진짜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아니, 뭐.
물론 혀 넣어서 당하는 게 당황스럽긴 한데,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그게 아니었다.
방금까지 마력 향상 훈련실에 있었던 것이 원인인지, 구리의 입 안에 피 맛이 느껴졌다.
나는 현재 구리의 상태가 생각보다 위험하다는 것이 가장 당황스러웠다.
구리는 내가 당황했다는 걸 즐기듯이 한참이나 진득하게 내 입안을 탐한 후에야 나를 놓아줬다.
"하욱, 후욱."
"울기는."
구리는 멍해져 있는 내 눈가를 부드럽게 닦아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제까진 깡으로 버틴 거였는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구리야! 너 진짜...!"
"쿨럭, 에잇 시팔. 피 좆같네. 확실히 기분이 많이 더럽구만."
"빨리 여기서 나가자."
"진짜 너 병신이야?"
"뭐?"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래.
대체 왜 나 같은 거한테 신경을 쓰는 거야?
아연이도, 너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야.
독백 같은 구리의 담담한 말.
하지만 근간에는 극한의 자기혐오가 깔려있다.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유 같은 게 필요해?"
"뭐?"
"네가 예뻐서 반했나 보지. 그것도 아니면 네가 이렇게 멍청하게 착해빠진 성격이라 좋은가 보지! 그딴 게 무슨 상관이야!"
"......."
"난 네가 좋아. 네가 고통받게 해줄 거라고? 거짓말이야! 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진짜 병신 호구 새끼들 밖에 없네."
"네가 할 소리야?"
"풉"
아까까지 움직이지 않고 버티던 구리가, 드디어 몸에서 힘을 뺐다.
나는 그대로 구리를 안아 든 채로 문을 향해 달려갔다.
"좀 괜찮아?"
"괜찮다니까. 존나 안 믿네."
"그러니까 평소에 신뢰를 좀 쌓았어야지."
"거짓말은 나보다 네가 더 많이 했잖아."
"어쩌라고. 속은 새끼가 병신이지."
- ㅋㅋㅋㅋㅋㅋㅋㅋ
- 당당
- ㅋㅋㅋㅋ왜 당당한데
- 자병두병ㄷㄷ
- 그래도 살리긴 했네
- 정신이 혼미해진다
- ㄹㅇ진짜 구리 사람같네
- 사실 이거 리트라이죠?
놀랍게도 이건 리트라이가 아니라 싱글 게임입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구리를 만날 수 있죠.
근데 좀 말 안되긴 하네.
어떻게 구리가 그런 방식의 AI야?
"몸은 좀 괜찮아?"
"콜록. 괜찮아. 피 좀 나는 정도?"
"어디. 내장?"
"엉. 아마 쉬면 낫겠지."
"쉬면 낫겠지 이지랄. 병원 가자."
"무슨 병원이야."
솔직히 걱정될 수밖에 없다.
더 방치되었으면 죽을 수도 있는 곳에서 몸을 망가트린 거니까.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서 문제가 있는지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오지랖 진짜 병이네."
"네가 그렇게 만든다니까? 가만히 두질 못하겠어."
"저기요. 마치 제가.... 님을 그렇게 만든다는 듯이 말하지 마시죠?"
"맞는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맞는데ㅇㅈㄹ
- 꼴리게 하지 말던가~
- 암튼 그럼ㅋㅋ
- 구리 표정ㅅ씹ㅋㅋㅋㅋ
- 교주님 인성 진짜
- ㄹㅇ 개웃기네
솔직히 저는 억울합니다.
이 게임이 저를 과몰입하게 한 거고, 구리가 저를 오지랖을 떨게 했어요.
저는 암튼 당한 겁니다.
당한 것임.
"근데 왜 화 안 내냐?"
"뭐가?"
"아니, 억지로 키스했잖아. 심지어 놀라서 울기까지 하더만."
"그게 왜 화가 나.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애초에 내가 억지로 당한 것 때문에 눈물이 나온 것도 아니고.
키스라면 내가 먼저 구리한테 강제로 했는데, 그거 가지고 화를 내면 내가 너무 양심이 없잖아.
"아니 그래도. 그냥 키스랑 혀까지넣는 건 다르지."
"글킨 한데."
"그치? 빨리 나한테 화내."
"오히려 개꿀인데?"
"씨발년아!"
이제 좀 구리가 정상적으로 돌아온 것 같아서 기쁘다.
이게 구리지.
방금까지는 뭔가 구리답지 않게 분위기를 잡고 있어서 좀 그랬어.
"이쯤 되면 그냥 나 놀리려고 그러는 거지?"
"아니, 근데 정말 화 안 났어. 눈물 난 건 그거 때문도 아니고."
"그럼 뭐 때문인데."
"네 입에서 피맛이 나길래. 그게 좀 무섭더라. 이대로 죽으면 어쩌지 하고."
"......."
내 말이 끝나자마자 구리는 나한테서 시선을 돌려버렸다.
너무 반응이 귀여운 거 아니냐?
"방금 대사 너무 반칙이야."
"아, 이쪽 좀 봐봐."
"꺼져 좀!"
내가 억지로 구리의 돌려 이쪽을 바라보도록 했다.
그러자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구리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눈동자가 살짝 흐려진 것이, 살짝은 사랑에 빠진 여자아이 느낌이라 굉장히 귀여웠다.
"이렇게 귀여운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너 진짜 미쳤지...."
후, 'SSS급 능력이 되었다'도 해보지 않은 녀석들이 사랑을 알겠냐?
이게 진짜 사랑이지.
구리가 너무 귀여워서 나는 행복하다.
처음에는 그냥 귀여운 캐릭터기도 하고, 아무래도 살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살리는 루트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구리한테 이미 푹 빠져버려서 살리지 않는 엔딩은 상상도 하기 싫어졌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과몰입 당해버렸다.
이건 구리가 너무 귀여운 게 잘못한 게 맞지.
"엄마없는 소리 작작하고 기숙사로 돌아가자."
"정말 안 계시긴 해."
"시발...."
- 강하다 강해ㄷㄷㄷ
- 패드립조차 막아내네
- 이걸 ㄴㅇㅁ를 박는다고?
- 근데 뭔가.... 가능임
- 가능
- 포상ㄷㄷ
- 미;친놈들ㅋㅋㅋ
- 순간 귀를 의심했는데 방장님 때문에 다시 의심함
- 정말 안계신대ㅅㅂㅋㅋㅋㅋ
구리가 강하게 말할 때는 이렇게 반응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응수하는 편이 좋다.
그래야 미친 새끼 보듯 보면서 이게 아닌데 싶은 표정을 보여주거든.
그런 반응이 되게 귀엽단 말이지?
「이야, 시유가 여기는 무슨 일이래?」
"애니...."
그렇게 둥글둥글한 이야기만 계속 진행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구리를 부축하고 돌아가던 도중에 구리를 괴롭히던 무리의 녀석 중 하나를 만났다.
프롤로그에서 구리한테 침을 뱉었던 놈이다.
"저 시발 새끼. 구리야 무시하고 가자."
"......."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냐니까? 우리 이야기 좀 하자.」
"시끄러."
「요즘 강의를 안 나와서 다들 걱정하고 있어. 걱정돼서 친구가 말하는데 듣는 척이라도 좀 하지?」
"하, 시발 왜 지랄이야. 지랄은."
「지랄? 말이 심하네.」
"꺼져. 좆같게 하지 말고."
「하, 이 새끼 봐라.」
애니라고 불린 녀석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손에서 불덩이를 만들어냈다.
화염계 각성자인가?
그리고 구리에게 그대로 내려찍으려 했다.
"구리야!"
"알아!"
구리가 전격을 뿜어내서 공격할 수 없도록 방해했다.
완전히 공격을 캔슬하진 못했지만, 확실하게 틀어진 각도 덕분에 어렵지 않게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능력? 너 설마 각성했냐?」
"그렇다면?"
「하, 그 병신 같은 년이 그렇게 좋은 거 다 찾아주더니. 결국 너 같은 쓰레기도 각성하는구나?」
"뭐?"
"구리야, 진정해! 말려드는 거야!"
다만 내 몸이 방해될 수도 있어서 제대로 도울 수가 없었다.
그저 말로만 구리를 도와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굉장히 답답하게 느껴졌다.
내가 마력만 쓸 수 있었어도...!
"죽어 새끼야!"
「하, 갓 각성한 햇병아리 능력으로 지랄을 하네.」
솔직히 구리의 능력은 객관적으로 봐도 강하지 않은 편에 속했다.
마력을 잃어버린 내가 일반인 수준이라 그렇지, 지금 구리의 능력이 저 애니라는 녀석에게 먹힐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아까 공격을 막은 건 아무래도 상대가 방심했기 때문이겠지.
「빵!」
"큭...."
애니가 장난스럽게 손가락 총을 만들어서 레이저를 쏘기 시작했다.
작은 레이저 점이 조준점 역할을 하다가, 빵 하는 신호와 함께 강력한 레이저가 격발하는 식이었다.
「네가 각성한다고 뭐가 달라질 줄 알았어? 그런 건 없어 이 쓰레기야.」
"어쩌라고. 내가 쓰레기긴 한데, 그런 나를 못 죽이는 걸 보면 너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허,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던지는 건 여전하네.」
- ㄷㄷㄷㄷㄷㄷㄷㄷㄷ
- 위험한 것 같은데
- 괜찮은 것 맞음?
- 어캄?
- ㄹㅇ수호령은 아무것도 못하네
- 그냥 이렇게 보기만 해야하나
- 에반데
내가 구리한테 뭔가 도움이 될 방법이 없을까.
지금 구리의 능력으로는 애니랑 싸우기엔 너무 부족한 수준이었다.
안 그래도 구리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 이대로 무리하면....
'뭔가 없나? 제발....'
나는 기도하는 기분으로 게임 시스템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금까지 써보지 않은 기능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확실히 이 기능이라면 조금이라도 승률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미안해 구리야!"
"뭐? 뭐가! 흡!"
「뚫려서 뒈지기 싫으면 집중해 새끼야!」
이 게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와 구리의 소통 능력이 줄어든다.
하지만 그에 맞춰 구리가 가진 전파 능력은 더 강해지게 되어있다.
그런데 소통 능력을 시간이 되지 않아도 내릴 수 있는 기능이 존재한다면?
[수호 대상인 '시유'의 각성 능력의 변동을 신청합니다!]
[통신(C): 수호령의 모습과 목소리만이 전해집니다. 수호령은 수호 대상과 접촉할 수 없습니다. 일정 기간마다 등급이 하나씩 내려갑니다.]
[전파(D): 쓸만한 전자기파를 흘립니다. 통신의 등급이 내려갈 때마다 등급이 상승합니다.]
의도적으로 구리의 스펙을 올려주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거라면 지금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구리야! 지금이야! 조져!"
"좆같은 새끼야!"
"왼쪽 피해!"
아까보다는 확연하게 강해진 전격이 구리의 손가락을 따라 퍼져나갔다.
애니가 공격하는 방향을 내가 예측해서 구리에게 알려주고, 구리는 그 공격을 피해서 가며 애니에게 접근했다.
근데 전격은 원거리가 되는 거 아닌가?
- 아 단파장으로 쏘려는 것 같은데
- ㄷㄷㄷㄷㄷ
- 단파장이 머임?
- 그뭔씹
- 핵터질때 나오는 것 같은게 단파장임 이동 거리는 짧은데 강한거
- ㅇㅎ
- 몸에 직접 때려박아서 조질 생각인듯
화력이 약한 걸 땜빵 치기 위해서 단파장이라는 걸 이용한다는 건가?
나는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대충 근거리면 더 강력한 걸 때려 박을 수 있다는 소리겠지.
「이 새끼가!?」
"뒈져 병신아!"
쾅!
구리의 손에서 터져 나온 빛과 함께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다만 심하게 그로테스크한 연출이 나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 상대도 공격을 막아냈겠지.
「쿨럭, 내가 졌다고...?」
"아니 네가 이겼어."
「무슨 소리를....」
"죽일 생각이었는데 살았잖아. 그럼 내가 진 거지."
거의 시체 능욕에 가까운 구리의 발언에 애니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드디어 사이다를 처먹네.
좆같은 게임.
"구리야 몸은 좀 괜찮아?"
"어. 생각보다 쌩쌩하네."
"기숙사 돌아가서 좀 쉬자."
"...그래"
우리는 피를 토하고 있는 애니를 그대로 바닥에 방치한 채로 기숙사로 돌아갔다.
저러다 아무도 발견 못 해서 뒈지라지.
솔직히 그랬으면 좋겠다.
"고생했어. 기분 좀 나아졌어?"
"그닥."
"그래?"
"겨우 저딴 새끼 때문에...."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긴 구리는 그런 식으로 계속 나쁘게 생각을 해버리는 타입이지.
"윽...!"
"구리야!"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은지, 구리가 다리에 힘이 풀려서 휘청거렸다.
깜짝 놀라서 부축하려고 시도했다가, 뒤늦게야 지금 내 상태를 깨달았다.
'잠시만, 이거 이러면...!'
휙!
내 손은 구리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서 지나갔다.
다행히 구리가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방금 그 장면을 본 구리가 나를 싸늘하게 쳐다보면서 물었다.
"너, 방금 그거 뭐야?"
"그, 어...."
"상태창"
아, 조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