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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화 〉26장 - 신데렐라의 시간(3) (142/182)



〈 142화 〉26장 - 신데렐라의 시간(3)

"아까 싸울 때 갱신된 거지?"
"...어"

거짓말로 얼버무려 넘어가는  불가능했다.
구리도 상태창을 통해서 현재 능력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갱신된 타이밍도, 아까 내가 싸울 때 운을 띄운 덕에 속이긴 어려웠다.

"죽여준다더니 거짓말쟁이네."
"미안"
"뭐, 별로 기대도 안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해야  말이 적혀야 할 원고지는  빈 상태를 벗어나질 못했다.
조금 더 늦게 들키고 싶었는데.

"한 단계 강해졌는데도 이것밖에 안 된단 말이지...."
"그건 어쩔  없잖아."
"하아, 딱히 필요하지도 않지만. 아까 왠지 화력이 올랐더라."

내가 우물쭈물하니까, 구리는 오히려 밀어붙이기 애매했는지 한숨만 푹푹 쉬기 시작했다.
진짜 이걸 뭐라고 변명해야 하나.
물론 내가 억지로 진행했다는  들키지 않은 모양이지만....

"하긴 오지랖 덩어리인 네가 날 죽일 리가 없지. 내가 괜한 기대를 했어."
"구리야...."
"애초에 나도 좀 생각이 바뀌었고."
"어?"
"죽는  도망치는 거잖아? 난 더 고통받아야 하는 사람이고."

- 
- 마참네!
- 이걸 포기하네
- 이게 정답이었다고?
- 하얀별! 하얀별! 하얀별!
ㄷㄷㄷㄷ
- 겜잘스ON
- 이야 이게 되네...?
- ㄴㅇㄱ

솔직히 이쪽 루트를 노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 될 것이다.
구리가 고통스럽게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 분명 이쪽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고려하고 진행을 했으니까.

'조금 아쉽긴 하지만.'

구리가 이런 판단을 내리기 전에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이 고통보다는 행복할  있는 세상임을 깨닫고, 죽어버린 그녀가 원했던 것이 구리의 행복임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이겠지.

"아까 거기 누워서 쭉 생각해보니까 괘씸하더라고."
"어?"
"그렇게 고통스러우면서 내 행복 따위를 빌었을  같아. 그 바보 녀석은."
"...그렇겠지."
"그게너무 괘씸하더라. 이대로 편하게 죽으면 걔 바람을 들어주는 것 같더라."
"그건 또 뭔...."
"나는 최대한 길게  녀석을 기리면서 고통스러워  거야. 나를 떠나고 그런 생각을 한 그 녀석이 왕창 후회하겠지?"
"후회하겠네. 미친 듯이."
"그렇지?"

구리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기숙사의 방으로 쏙 들어갔다.
확실히 틀린 말은 없었다.
구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그녀라면, 자기가 죽더라도 구리만큼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겠지.

"복수할 생각이 있냐고 했었지?  거야. 그 녀석들 전부 죽여버릴 거야."
"정말?"
"남은 내 인생에 최대한 아연이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그런 거라면 복수도 해야겠지."
"그건 좀 마음에 드네."

계속 고구마로 진행되면 어쩌나 했는데.
좋은 이유로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녀석들이 정의 구현될 거라고 생각하니까 조금 통쾌해진다.

"뭐, 그건  나중에 생각해야겠지."
"...지금은 스펙이 낮으니까?"
"그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어?"

구리는 피식 웃더니 말없이 침대로 기어들어 갔다.
그리고는 끝까지 말해주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말을 하다 말아!

"스킵할게요."

- 뭔지는 말해주고가!
- ㅔ
- 자드가자드가자드가자드가자드가자드가자드가자
- 근데 뭔가 느낌 좋긴 한데
ㄹㅇ가능성이 보인다
- 시원한 복수 좋지
- 가즈아
- 해피엔딩 가나요? 가나요? 가나요?

해피엔딩 마렵네.
물론 미래는 구리가 선택하는 그대로 흘러가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구리가 힘든 것들을 잊고 행복한 미래에 도달했으면 좋겠다.
물론 지금의 구리로는 그게 힘들어 보이지만.

'그래도 아직 끝난 게 아니잖아.'

시간은 더 남아있다.
그 시간 동안 최대한구리를 행복한 아이로 만들도록 노력해야겠지.
그게  게임에서 플레이어인 나의 역할이었다.

"어, 어라? 그 짐은 다 뭐야?"
"가자."
"어, 어딜!"

구리는 아침이 되자마자 꽤 다량의 짐을 가방에 쑤셔 넣고 있었다.
옷가지랑 간식 같은 것들이네.
어디 던전 공략이라도 가려는 건가?

"아연이 대신 좀 해주라."
"어?"
"아연이가 바다에 가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불렀거든. 나는 귀찮다고 계속 미뤘고. 결국은 일이 터져서 불가능해졌지만."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서 나라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동안에 같이 가겠다는 소리네.

"근데 아카데미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어?"
"아카데미 소유의 섬이 하나 있거든. 원래는 시험장으로 쓰는데,  시기에는 신청만 하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아하."

- ㄷㄷㄷㄷ갓겜
- 바다씬 가능이네
이건 좀 갓겜이 맞는데??
- 와 구리수영복구리수영복구리수영복
- 온천씬을 써먹었으니까 이번엔 바다씬ㄷㄷㄷ
- 이게 게임이지
- 스토리 스토어 믿고 있었다고!!
- 오

그리고 다수의 시청자가 좋아하는 수영복씬인 만큼 채팅창의 화력이 빠르게 불타기 시작했다.
라발렌때도 온천씬은 좋았지.
스토리 스토어는 확실히 오래 게임을 만들어 온 만큼, 게이머의 니즈를 잘 알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가 단순히 보여주기 위해서 만든 것들이 아니야.'

작품 내에  녹아 있는 편이었다.
라발렌 때는 거기에 제대로 된 루트 분기점이 있었고, 3명의캐릭터 전원이 시간 모여있는 당위성을 마련해줬다.
이번에는 구리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이겨내는 것과 직결되는 위치에 있는 장소가 바다로 되어있다.
머리를 잘 쓰네.

"이건 좀 신기하네."
"네가 포탈을 이용할 수 있을지 확신도 없고, 어차피 놀러 가는 건데 굳이 급할 필요도 없어서 이거 이용신청을 냈어."
"겉보기에는 그냥 자동차 같은데. 물 위를 달리네."
"...자동차 맞는데? 애초에 자동차가 물 위를 왜 못 달리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자동차가 물 위를 달리는  '상식'이잖아?
- ㄹㅇㅋㅋ
- 암튼 물 위 달리는 건 당연하다고ㅋㅋㅋ
- 이게 이세계의 상식?
- 자율주행까지는 비슷한데 물 위 달리는게 확 깨네ㅋㅋ
- 엌ㅋㅋㅋㅋ

확실히 이 세상은 내가 원래 살던 세상과 다르게 자율주행까지는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여기도  위를 달리는 자동차는 없어서인지 다들 게임 내 세계관을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이런  게임의 재미긴 하지.

"후, 과자나 먹어야지."
"나도 먹고 싶어."
"어쩌라고.  부러워하라고 나 혼자 먹는 건데? 꼬우면 내가 만질  있게 만들어와."
"아악!"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봉쇄죠?
- 꼬우면 드시던가ㅋㅋ
- 이걸 못먹네
- 아 밥 먹으면서 봐야겠다
- 바로 과자 가져오기
- ㅅㄱㅋㅋㅋㅋ

이 게임은 갓겜이긴 한데 너무 악랄하게 만들어져 있다.
여기서부터는 먹질 못하게 해놓았네.
주인장  열어!
먹을 수 있게 해줬다가 빼앗는 게 어디 있어!

"너, 진짜 먹는 거 좋아한다."
"맛있는  먹으면 행복하잖아."
"그러냐?"

과자 봉지를 뜯어 놓고 하나씩 집어먹으면서, 맥주캔을 하나 뜯는 구리의 모습을 보니까 정신이 날아갈 것 같았다.
나도 주라고!
와 근데 심지어 맥주까지 마신다고?
 넘네.

"크, 오랜만에 마시니까 좋네."
"너무하네...."
"거짓말 한 벌이야. 좀 더 부러워해라."

섬에 도착할 때까지 쫄쫄 굶으면서 구리의 먹방을 구경하는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구리의 표정이 꽤 밝아서 다행이었다.
맥주를 좋아하는 건 의외네.

"계속 보고 있을 거야? 수영복 갈아입어야 하는데?"
"보고 있고 싶지만, 화낼 것 같으니까 참을게."
"어, 제발 꺼져."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어차피 보이지도 않을 텐데
ㄹㅇㅋㅋ
- ㄲㅂ
- 두근두근
- 수영복! 수영복!
- 제발 비키니 제발 비키니 제발 비키니
- 가즈아
- 시유교단은 구리의 비키니복장을 응원합니다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구리의 수영복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라발렌에서 소연이 수영복을 그렇게 예쁜 걸 보여줬던 사람들이잖아.
나는 이번에도 믿고 있다.

"와, 시발."
"괜찮아?"
"미친 존나 예쁘다."
"오바 좀 하지 마라."

- ㄷㄷㄷㄷㄷㄷㄷㄷ
- 가능
- 존나 이쁘네 진짜ㅋㅋㅋㅋ
- 와 평소에 입고 다니던 옷 쓰레기였네
- ㅅㅂ 몸매봐
방장님 비켜봐요 시유 좀 찍게
- 방장님 빨리  안갈아 입어요?  진짜 수준차이나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놈들 진짜
- 오우쉣

새하얀 색감으로 만들어진 비키니에 분홍색 라인이 튀지 않게 보조해준다.
가슴골에 있는 투명한 구슬 장식이 빛을 반사하며 반짝이고.
서툴게 묶인 끈이 이런 옷에 익숙하지 않아 보이는 귀여움까지 보여주고 있다.

물론  모든 건 구리가 비키니를 완벽히 소화하는 몸매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괴롭힘당했던 것이 원인인지 상처의 흉터가 많이 있긴 했지만, 그걸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몸매에 눈을 빼앗기게 된다.

"내가 뚫어지겠다. 그만  봐!"
"잠시만 나 쓰러질  같아."
"왜!?"
"너무 좋아서...."



☆ ☆ ☆ ☆ ☆ ☆

"너 진짜 돌았냐?"

객관적으로 볼  평범한 수준인 것 같은데.
뭐, 내가 가슴이 엄청나게 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외모가 엄청나게 특출난다고생각하지도 않으니까.
그냥 쟤랑 아연이가 콩깍지가 너무 씐 거지.

'그래도 오랜만에 입으니까 좀 신기하네.'

아연이가  옷을 골라줄 때는 내가 무슨 비키니냐면서 난리를 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부질없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별것 아닌 거에 화내지 말고  즐길  있게 해줄걸.
그게  대단한 거라고.

"와, 심장 멎을 뻔했네. 평소에 옷 좀 제대로 입고 다녀!"
"그 정도야?"
"비키니가 문제가 아니라, 네 외모가 너무 빛이 나는데....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옷이구린걸 얼굴이랑 몸매가 커버한 거였네."
"그만 띄워줘라. 자꾸 그러면 진짜인  알아."
"진짜니까 좀 믿어!"

내가 널 어떻게 믿어, 이 거짓말쟁이야.
그나저나 저 녀석이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다행이네.
그거면 된 거겠지.

"수영은 할 거야?"
"가볍게 몸만 담가야지."

솔직히 둘이서 물에서 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 수영해봐야 별로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빨리 올걸.
그럼 같이 물장난 정도는 칠  있었을 텐데.

'지금 후회해서 뭐 해.'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아연이 때처럼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보내는 것은 더는 사양이다.
이번에는 끝나기 전에 조금이라도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구리야 브이 해봐! 브이!"
"뭔 브이야. 넌 휴대폰 들지도 못해서 사진도 못 찍잖아."
"그래도!"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
그래도 오늘은 쟤가 해달라는 건 최대한 해주기로 했으니까.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고.

"이, 이거면 돼?"
"헉, 너무 좋다. 무조건 저장해."
"뭘 어디다 저장하는데...."

가끔 굉장히 4차원적인 말을 한다니까.
귀신이라서 그런 건가?

"그거 그쪽에 물을 더 뿌려야 하지 않아?"
"이렇게?"
"응. 그래야 고정될걸?"

수영하는 시간은 아무래도 길지 못했다.
솔직히 별로  생각도 없었는데, 얀별이가 내가 수영하는 걸 보고 싶다고 해서 물에 몸만 담근 수준으로만 했지.
물에서 나온 뒤로는 계속 모래로 성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오케이. 이 정도면 된 것 같다."
"오, 그럴듯한데?"

바다에서  다 물에 들어갈  있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 귀신이랑 이러고 있으면 시간이 느리게 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아연이랑 같이 있었을 때처럼, 이 녀석과 같이 있다 보면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

"벌써 해가 지네."
"슬슬 정리하고 돌아갈까?"
"...그래야겠지."

어느새  녀석도 내 마음에 너무 깊이 들어와 버렸다.
헤어지는 것이 정해져 있는 운명임에도, 나는 이 녀석을 아연이 만큼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해버린 거다.
멍청한 새끼.

"진짜 넌 쓰레기야."
"갑자기?"
"그걸 알고도 당해준 나는 바보고."

한 번 아연이에게 당했다면, 같은 수는 잘 피했어야 하는데.
저 녀석의 사탕발림에 속아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난 바보가 맞다.

"거기 가만히  있어봐."
"응? 응."

그녀에게 앞으로 다가가서 얼굴의 높이를 맞춘다.
그리고 천천히 내 입술을 그녀의 입술로 가져다 댄다.

허공이다.
아무것도 닿지 않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당황한 탓에 크게 떠지는 눈동자와 붉어지는 뺨.
내 눈이 확실하게 뇌리에 담아내는 우리 둘의 입술이 닿는 반짝이는 광경.
그리고 두근거리는 심장이 모든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우리가 닿을 수는 없어도  마음만은 진실한 것이라고.
촉감이 없더라도 이 저릿한 행복이 담긴 기억만큼은 진실이라고.
나는 확신하며 조용히 두 눈을 감고 지금의 두근거림을 만끽했다.

"구리야...."

그리고 내가 다시 눈을 떴을때.
내 시야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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