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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3화 〉26장 - 신데렐라의 시간(4) (143/182)



〈 143화 〉26장 - 신데렐라의 시간(4)

이제 구리에게는 닿을 수 없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의입술에서 전해져오는 따스한 온기가, 몸을 달아오르게 했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세상을 지배한다.
있을 리 없는 감각이 나에게 화끈거리며 달려든다.

실제로는 아무런 감촉도 없었지만.
이건 내가 이제까지 했었던 키스 중에서 가장 두근거리는 키스였다.

"구리야...."

[수호 대상인 '시유'의 각성 능력이 변동됩니다.]
[통신(D): 수호령의 목소리가 전해집니다. 다른 것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일정 기간마다 등급이 하나씩 내려갑니다.]
[전파(C): 평범한 전자기파를 흘립니다. 통신의 등급이 내려갈 때마다 등급이 상승합니다.]

왜 하필 이럴 때 능력이 변동하다니.
참 짓궂은 타이밍이었다.
아직 내 목소리는 전해지지만, 이제 내 표정이나 행동은 보여줄 수 없게 되겠지.

"더 늦었다면 후회했을 거야."
"뭐?"
"이젠 후회하고 싶지 않았거든. 역시 오늘이 마지막 기회였네."
"구리 너...."

구리는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하고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에게 제대로 마지막 인사를 해주고 싶어서  여행을 기획한 거다.
서로를 아직 볼 수 있을 때.
마지막 추억을 남겨두고 싶어서.

"하, 기분이 이상하네. 바로 옆에서 말을 해주는데. 옆에 있다는 실감이 안 나."
"미안."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는데?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는 시스템이 문제인 거지."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애초에 내가 구리에게 진하게 다가가지 않았다면, 이렇게 헤어진다고 해서 구리에게 큰 상처가 되진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내 잘못이 맞기도 하거든.
나는 구리가 원하지도 않는 해피엔딩을 강요하는 죄인이니까.

"목소리만 들어도  처져있네. 임마, 정신 차려."
"왜 이렇게 상냥해. 구리답지 않게."
"뭐, 임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스윗시유ㅋㅋㅋㅋ
- 구리가 스윗하면  이상하긴 해ㅋㅋ
ㄹㅇ패드립 박다가 갑자기 스윗하게 말하면 이상하지
- ???: 아니 착하게 말해줘도 지랄이야
- 진지하게 보고있다가 터졌잖아ㅋㅋㅋ
- 분위기 좀 유지해봐!!!!
몰입 다 깨졌네ㅅㅂ

구리가 착하게 말하면 뭔가 기분이 이상해.
빨리 욕으로 변환해서 해줘.
응응응.....

"너 진짜 애미 뒤졌지? 아 진짜 얼마  남았으니까 착하게 말하려고 했는데. 도와주질 않네."
"푸흡, 너무 신경 쓰지 마.  네가 편하게 말하는 게 더 좋아. 그게 구리답지."
"진짜 지랄하네. 하, 시발...."

너는 욕할 때가 가장 귀여워.
빨리 포상을 내려주십쇼 구리님.

"후,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 돌아가자."
"그래."

여기 숙소도 빌렸다고 했었지.
확실히 구리가 이번 여행에 신경을 많이 썼다.

"오, 여기 왜 이렇게 좋아?"
"몰라. 가장 적게 남은 숙소 중에 골랐는데? 아마 여기가 제일 시설이 괜찮나 보네."

여기 원래 시험장으로 쓴다고 하지 않았나?
어떤 시험장이 참가자를 이렇게 좋은 숙소를 주냐고.

"아, 여긴 아마 학생한테 안 줄걸? 시험 기간 아니면 교관들 숙소도 빌려주거든."
"아하."

그렇다면 이해할 만한 퀄리티였다.
무슨 본격적인 호텔 같은 느낌이라서 뭔가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씻고 나올게. 들어와서 엿보면 죽는다?"
"같은 여자인데 뭘 그리 걱정해. 몸에 소금기 남으면 안 좋으니까 깨끗하게 씻어."
"항상 네 눈이 음흉하니까 그렇지. 그리고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네가  엄마냐?"

저 새끼는 걱정을 해줘도 지랄이야.
생각해보니까 내가 항상 구리한테 그랬구나.
미안하다.
그치만 내 안에서 불타오르는 악질의 영혼이 나를 자꾸 그리로 이끈단다.

['시련발아'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ㄹㅇ 방장이 악질이네. 그래서 언제 훔쳐보시나요?

"제가 아무리 악질이라지만, 구리가 샤워하는 걸 시청자들과 다 같이 훔쳐볼 정도로 미친놈은 아닌데요?"

내가 그렇게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자마자,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신규 미션이 등록되었습니다.]
- 욕실 훔쳐보기: 100,000원

"이 미친놈들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만원은 못참지
-  바로 펀딩각이지ㅋㅋ
- 만원 추가하러 간다
- 미친놈들 진짜
너희들이 게임 사서 훔쳐보면 되잖아ㅋㅋㅋ
- ㄷㄷㄷㄷㄷㄷ
- 저 돈이면 게임을 사는데
- 그 시유랑 여기 시유는 다른 시유입니다....
- 암튼 다름ㅋㅋ

10만원으로 시작한 미션금은 구리가 샤워기를 틀고 머리를 감기 시작하는 동안 쭉쭉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100만원에 가까워져 가고 있는 금액을 보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보, 볼까?"

돈으로 후려치면 신념 따위는 손쉽게 박살 나는 법이다.
그리고 이게 이 돈만 있으면  모르겠는데....

'이거 받으면 큐브온 썸네일 하나 뚝딱이야.'

핫클립 모음집 영상에서 메인에 내걸기에 무엇보다도 좋은 소재였다.
이걸 큐리에이터로써 참을 수 있어?
절대  참지.
그리고 구리는 내가 보이지 않잖아?

'조용히 눈에 담기만 하고 나오자.'

어차피 이 게임은 19세 게임이 아니라서 수위를 넘는 부분의 감각은 차단된다.
특히 시각이면 위험한 부위는 다 가려지게 되어있다.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닐까?

- 가즈아
- ㅋㅋㅋㅋㅋㅋ
- 자본에 굴복하는 표정
- 근데 100만원은 못참긴 해
- ㄹㅇㅋㅋ
- 100만원이면 탕수육에 소스를 부으라고 해도 해야지
- 신념? 그게 뭔데ㅋㅋㅋ
 가나연?

나는 떨리는 발걸음으로 욕실  앞으로 다가가서, 숨을 참은 채로 욕실 안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혹시 내 숨소리가 들리면 걸릴 수 있어서 그걸 조심할 생각이었다.
구리한테 들키면 얼마나 경멸받을지 예상하기 어려웠다.

'잠시만, 그건  나쁘지 않은데.'

나는 갑자기 생각이 삼천포로 빠진 상태로 욕실내부를 확인했다.
뿌연 연기가 가득한 내부에서는 샤워기로 인한 물소리가 가득 차 있었다.
살짝 부자연스럽게 수증기가 따라다니면서 그녀의 가슴과 하반신을 가렸다.

머리카락과 몸의 라인을 따라서 흘러내리는 물과 물방울들.
작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신의 몸을 쓰다듬는 구리의 몸짓.
마지막으로 수영복 때도 느꼈던 완벽하고 아름다운 몸!

ㄱㄴ
- 수증기 꺼져!!!
- 젖은 머리 개오지네
- 아 물 흐르는거봐 ㅅㅂ
- 개꼴리네
ㅗㅜㅑ
- ㅁㅊ
- 이거지

분명 수영복보다도 제대로 보이는 면적이 작을 텐데,  수증기 뒤에는 알몸인 구리가 있다고 생각하면 엄청나게 야해 보였다.
심지어 몰래 훔쳐보고 있다는 배덕감도 엄청나게 몰려왔다.
나는 조용히 숨을 참은 그대로 문밖으로 머리를 꺼냈다.

"후우...."

천천히 심호흡하며 진정하기로 했다.
넌 아무것도  본 거야 하얀별.
이따가 구리가 나왔을 때 훔쳐봤다는 걸 걸리면 안 된다?

"얀별아."
"어, 어!?"
"아니, 있냐고."
"이, 있지?"
"응, 아직 들리네."

구리가 안심하면서 대화를 마쳤다.
아마 그 잠깐 사이에 대화도 나누지 못하는 수준까지 갔을까  걱정이 되었나 보다.
쟤는 저런 걱정을 해주는데, 나는 샤워하는 거나 훔쳐봤다니.
하얀별 너는 쓰레기야.

[미션 성공: 욕실 훔쳐보기]
- 1,17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하지만 돈은 좋은 거야.
이게 진짜 이만큼 쌓일 줄은 상상도  했는데.
그냥 가볍게 나쁜 짓만 했을 뿐인데, 117만원이 들어온다니.

"리액션은 게임 끝나고 해드릴게요."

나는 시청자들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속삭여서 말했다.
아무래도 여기서 리액션을 하다 보면 구리가 이상하게 볼 테니까.

"후우, 시원해라."
"다 씻었어?"
"어. 따뜻해서 잠 온다."
"머리는 다 말리고 자야지."
"알아."

몸에 가운만 걸친 구리가 욕실 밖으로 나와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나는 구리가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왜 말이 없어?"
"너무 예뻐서 멍하니 보다가...."
"진짜 너 죽는다? 그딴 소리 그만해. 좆같으니까."
"펙트를 막는 건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지랄노"

 슬퍼.
아니다 방금 나는 구리 알몸을 훔쳐봤지.
나는 구리 알몸을 훔쳐본 사람이잖아.
당당해져!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죽었으면 좋겠다."
"그래. 빠이."
"야!"
"......."
"잘못했어. 그러지 마...."
"헤헤"

구리가 너무 귀엽다.
이런 거로 악질 괴롭힘 하면 안 되는데.
하지만 구리가 특유의 귀여움으로 날 악질로 만든단 말이야.

"내일은 학교에 가서, 그 새끼들이랑 붙을 거야."
"진짜?"
"한 놈은 이미 반쯤 조져놨잖아? 남은 놈들이 문제지."
"...멋있네"
"개소리야. 그냥 자기만족이지."

그런다고 아연이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까.
구리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는 구리의 옆에 누워있지만, 구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조차 없었다.
진짜 좆같은 게임 같으니라고.
만지는 것까지는 허용해 줘야지.

"잘 자."
"응, 내 꿈 꿔."
"니애미."

한결같은 구리의반응을 즐기며, 나는조용히 스킵 버튼을 눌렀다.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해야겠지.

"음?"

다음 날은 돌아가는 자동차에서부터 시작했다.
구리는 아직 피곤했는지, 차에서도 쿨쿨 자고 있었다.

"구리야. 일어나.  왔어."
"음? 으응.... 맞다. 나 포도 사야 해."
"포도? 포도 먹고 싶어?"
"딱히 그런 건 아닌데.... 해볼 게 있어서."

갑자기 포도는 왜 나오는 거야.
아무튼 구리가 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도 크게 태클을 걸 생각은 없었다.
어련히 이유가 있으니까 포도를 사자고 했겠지.

"이거 어때. 싱싱한 것 같은데."
"크기도 가격도 정당하네. 이거로 하자."

구리가 포도를 사고 향한 곳은 기숙사가 아니었다.
아마 어제 말했던 것처럼 그 녀석들이랑 만날 생각이겠지.
너무 이른 시간인 것 같긴 한데.

"어제 다른 애한테 물어보니까, 그 녀석은 입원해서 치료 중이라더라."
"안 죽었나 보네. 까비."
"내가 그때는 화력이 부족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죽일 수 있을  같아."
"꼭 죽이라는 뜻은 아니고...."

다만 죽이지 않으면 본인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상대를 신경 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걔들의 목숨보다는 구리의 안전이 훨씬 더 중요하니까.

"근데 구리가 그럴 친구가 있었어?"
"뒤진다 진짜. 그리고 친구 아니야. 아는 애일 뿐."
"오...."
"전화  해볼게."

그런 역할을 해줄 만한 관계는 있었구나.
솔직히 조금 의외인데.

"어, 은아야. 그 새끼들 어딨어? 같이 있다고? 위치는?"
"어디래?"
"훈련장 구석. 걔들 원래 자주 거기서 놀거든."

아, 거기 기억난다.
아마 프롤로그에서 구리가 괴롭힘을 당하던 장소일 거다.
이게 마무리도 거기서 끝나게 되어있구나.

"루, 셀레나."
「이게 누구셔. 놀랍게도 애니를 때려눕힌 초신성 시유 아니야?」
"......."
「굳이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뭐 복수라던가 그런 건가?」
"구리야,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조지는 거에만 집중해."
"네가 말 안 해도 알아."

구리의 손에서 전격이 쏟아져 나온다.
저번에 봤던 것과는 확실히 달라진 수준의 화력이었다.

「이야, 진짜 들었던 대로 전기 계열인가 봐. 좋은 게 걸리긴 했네.」
"그런 것 같아. 너희들 조지기엔 딱 적당하지?"
「근데 어쩌지? 이미 내가 대비를 다 해놨걸랑.」

셀레나는 빈 유리병 하나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구리를 비웃었다.
저게 뭐길래 저렇게 당당한 거지?

"전기 내성이라도 잡쉈나?"
「연금술은 준비 시간이 있으면 확실히 카운터를 준비할 수 있거든. 항상 똑같은 능력을 써야 하는 너랑은 다르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다냐?"

하지만 구리는 그걸 이미 예상한 모양이었다.
아마 해결책을 미리 마련해뒀다고 봐도 되겠지.

「아, 물론 그냥 빛 쏘는 그런 바보 같은 짓도 먹히지 않아. 거기까지도 분석이 끝났거든.」
"그래, 내가 전기 말고 빛 같은 걸 쏠  있다는 건 알겠지. 애니한테 그걸 써먹었으니까."
「호오, 뭔가 다른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만약 이것도 네가 방도를 준비해왔다면 내가 진 걸 인정해야겠지. 특히 네가 공부만 똑바로 했다면 준비했을 테고."
「뭐?」

구리가 그렇게 말하면서 꺼낸 것은 아까 샀던 포도였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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