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26장 - 신데렐라의 시간(5)
「그건 또 뭐냐? 싸우기 전에 당 보충이라도 하게?」
"보면 몰라? 포도알 두 개를 나란하게 붙여둔 거지."
「아니, 그러니까. 우리가 싸우는데 그게 왜 필요하냐고.」
셀레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구리의 행동을 비웃기 시작했다.
아까 포도가 필요해서 산다고 했던 이유가 이건가?
- 포도시유ㄷㄷ
- 그래서 저게 뭔데
- ???
- 여기서 갑자기 포도가 왜 나오는데
- 엥?
- 포도씨유ㅇㅈㄹㅋㅋㅋ
- 갑자기?
확실히 지금 상황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많았다.
분명 조금 전에 구리가 한 말을 생각하면 저 포도가 엄청난 역할을 해줄 것 같은데....
포도에 그런 힘이 있다고?
"모르나 보네. 넌 내 현재 능력은 다 틀어막을 수 있게 준비했지만, 이런 간단한 상식은 모르는구나?"
「뭐?」
그렇게 말한 구리가 포도알을 든 채로 셀레나에게 달려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전기가 쏟아졌고, 셀레나는 그걸 어렵지 않게 흩어냈다.
확실히 전기 공격은 대비가 되어있는 모양이었다.
「분명 내가 소용없다고....」
"아직 안 끝났어!"
그 순간 구리가 들고 있었던 포도알의 사이에서 스파크가 튀더니 눈부신 불길이 쏟아져 나왔다.
화르륵!
구리는 그걸 예상했다는 듯이 셀레나의 배에 쑤셔 박았고, 그 불길은 그대로 셀레나의 배를 헤집어놓았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켁, 케흑....」
"전자기파는 이런 식으로 사용해서 플라즈마를 만들 수도 있거든."
- ?????
- 방금 뭐냐고ㅋㅋㅋㅋ
- 뭐야 어떻게 한거야
- 아니 포도에서 불이 왜 나옴?
- 마법의 포도ㄷㄷ
- 아 저거 ㅅㅂㅋㅋㅋ
- 뭔데 나도 알려줘!!!
- 플라즈마가 왜 나오는데ㅋㅋㅋㅋㅋ
- 저거 왜 저러는 거임?
"저도 몰라요...."
포도를 들고 능력을 쓰면 전기가 플라즈마로 바뀝니다.
뭐 그런 판타지 설정이라도 있는 거야?
굉장히 당황스럽네....
['설명충'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포도에 특정 파장의 전자기파를 쏘아내면, 내부에서 계속 반사되면서 모이게 된다. 이를 포도 두 개를 붙임으로써 그 접점을 통해 플라즈마로 만들어 쏘아낼 수 있다.
"야발, 뭐라는 거야."
저게 어느 나라 외계어야.
제발 알아듣게 설명해주세요.
저 같은 문과 찐따들은 저렇게 말해도 못 알아듣습니다.
['설명충'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간단하게 말하면 전자레인지에 저렇게 포도 넣고 돌리면 똑같이 됨. 그냥 과학적으로 맞는 현상임.
저게 과학적으로 원래 저런 거라고?
그럼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던 과학은 대체...?
아니 무슨 특별한 무언가도 아니고 포도를 전자레인지에 넣는다고 플라즈마가 나와?
「쿨럭, 우엑....」
"루, 저 녀석 데리고 꺼져. 너까지 상대하긴 귀찮으니까."
「나한테 공격을 제대로 넣을 수는 있고?」
"없지. 하지만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개싸움 한번 붙어볼래? 아마 그럼 그사이에 저 병신년이 죽을걸?"
「...칫」
루는 아쉽다는 듯이 배에서 나온 피가 흥건한 셀레나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방금 루가 능력으로 상처를 간단하게 치료하는 것 같던데, 아마 힐링 계열 능력이 있나 보네.
"쟤는 회복 능력이랑 반사 비슷한 능력이 있거든. 대신 반사는 꼭 자기한테 날아온 공격만 가능하지만. 그래서 가장 골치 아프지."
"근데 왜 처음부터 쟤가 나서지 않았대?"
"그럼 재미없잖아. 쟤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나를 골탕 먹이고 싶어서 저러고 온 거야."
그러다가 예상외로 구리가 제대로 카운터를 먹인 덕에 도망쳤다는 거다.
결국 이러면 나중에 다시 만나면 문제가 될 것 같은데.
"솔직히 오늘 만나지 않아도 괜찮았어."
"어?"
"근데 너한테 보여주고 싶더라고. 그래서 머리를 좀 굴렸지."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면, 구리의 능력은 더 강해지게 될 거다.
그렇다면 저런 녀석들은 그냥 쓰러트릴 수 있겠지.
하지만 굳이전략을 짜면서까지 미리 그 녀석들에게 엿을 먹여준 건, 그 암 걸리는 상황을 계속 봐야 했던 나에게 바뀐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인 거다.
너무 착해 빠졌네.
"그리고 그렇게 당해야 더 짜증 날 테니까. 그때 다시 찾아왔을 때 압도적으로 깨부숴주면 더 진하게 괴롭힐 수 있고."
"잘 아네."
"그 녀석들이 알려준 거니까."
"아...."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말이었는데.
잘 생각해보니까 그렇게 되는 거구나.
- ㅠㅠㅠㅠㅠㅠㅠ
- ㄹㅇ 쓰레기들
- 한거 그대로 당하는거지 뭐
- ㄹㅇ 응급처치 못해서 죽었어야 하는데
- ㄲㅂ
- 다음엔 제발 죽여버려주세요
- ㄹㅇ좀 그래
"윽...."
"뭐야, 구리야! 괜찮아?"
"마력을 좀 많이 썼나? 살짝 어지럽네. 화력 강하게 한답시고 최대한 꼬라박았는데."
"빨리 기숙사로 돌아가자. 일단 포도라도 좀 먹어서 당 보충해."
원래라면 내가 부축하거나 안아서 데려갔을 텐데.
이제는 닿는 것이 불가능하다 보니까 구리 혼자서 돌아가야만 했다.
"후우, 후우...."
"감기 같은데. 어디 연락해서 도와달라고 할 수 없어?"
"...그나마 은아 정도. 근대 걔는 오늘 바쁠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괜찮아. 별거 아니야. 누워서 쉬면 나아져."
구리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그렇게 말하고는 조용히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편안하게 잠이 드나 했더니, 금방 악몽 같은 것에 시달리며 깨어나 버렸다.
"...꿈이구나. 얀별아, 있어?"
"응, 나 여기 있어."
"얀별아? 어라...?"
"구리야?"
뭔가 대화의 핀트가 엇나가는 느낌.
구리가 내 말을 듣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강하게 엄습했다.
[수호 대상인 '시유'의 각성 능력이 변동됩니다.]
[통신(E): 수호령의 메시지를 텍스트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일정 기간마다 등급이 하나씩 내려갑니다.]
[전파(B): 강력한 전자기파를 흘립니다. 통신의 등급이 내려갈 때마다 등급이 상승합니다.]
- 앗
- 이게 여기서
- 너무 빠른 거 아니냐고
- 왠지 갈수록 빨리 내려가는 것 같은데
- 와ㅅㅂ 악랄한 게임
- 하필 시유가 아플때
- 에바야
- 이건 진짜 아니지
"하필 이럴 때...."
"얀별아?"
나는 조금 전에 추가된 텍스트 입력 UI에 급하게 문장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내가 있다는 건 알려줘야 하니까.
[나 여기 있어 구리야. 몸은 좀 괜찮아?]
"이건 또 뭐야.... 아, 또 진행된 거구나."
[응...]
이제는 구리에게 목소리조차 전해줄 수 없었다.
그런데 아직도 한 단계가 남은 걸 보면, 거기까지 가면 소통 자체가 어려워질 것 같았다.
"정말,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구나."
[구리야. 무리해서 일어나면 안 돼]
"무리 아니야. 이제 좀 괜찮아서 그래."
거짓말이었다.
아직도 머리에서 식은땀이 막 흘러내리는데, 이게 어떻게 멀쩡한 상태야.
구리는 더 휴식을 취할 필요성이 있었다.
[아무리 내가 좋아도, 오늘은 좀 쉬어. 방금 바뀌었으니까 시간이 더 있을 거야.]
"아니, 계속 주기가 짧아지고 있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리야."
얘는 진짜 이럴 때만 눈치가 빠르다니까.
결국 나는 기숙사 밖으로 나가겠다는 구리를 말리는 것에 실패했다.
"갈 곳이 있어서."
[그게 어디인데?]
"영웅의 전당"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이네. 영웅 기념관 같은 느낌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나는 구리의 다음 말에 그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연이 보러 가게."
그러면 거기는 묘소구나.
확실히 영웅의 전당이라는 이름은 각성자들의 묘소 이름으로써도 적합해 보이긴 했다.
"참 좆같은 세상이야."
[그러게]
텍스트로 소통을 하다 보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구리가 하는방송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하얀별, 절찬 도방중.
"야."
[어?]
"아, 목소리 못 들으니까 뭔가 기분이 상쾌하네. 네 목소리가 참좆같았나보다."
[이 새끼가?]
"쿡쿡"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만,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확실히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기분이 처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마음이 좀 급할 수밖에 없어. 마지막으로 아연이한테 널 소개하고 싶은데, 조금만 더 늦으면 너랑 이야기할 수 없잖아."
[그래. 하지만 돌아가면 꼭 푹 쉬는 거야?]
"그럴게."
장난이 심했던 나도 오늘만큼은 심한 장난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항상 입이 험하던 구리도 오늘은 되게 부드러웠다.
의외로 우리는 이런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바보들이었구나.
"여기야."
작은 묘비에 아연이라는 이름이 적혀있고, 시들어버린 꽃이 몇 송이나 놓여있었다.
구리는 오는 길에 샀던 꽃을 그 옆에 올려두고는 혼잣말을 했다.
"오랜만이야. 아연아."
닿을 리 없는 목소리지만, 닿으리라 믿으면서 던져야만 하는 말.
구리는 조심스럽게 묘비의 위쪽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네가 그랬었지. 너 말고 다른 친구도 만들라고. 그래서 만들어왔거든. 소개해줄게."
[안녕하세요.]
"너랑 비슷한 멍청이야. 내가 아무리 밀어내도 다가오고, 또 다가와서 짜증이 날 지경이더라."
[그건 구리가 너무 꼴려서.]
"개소리하는 것까지 너랑 비슷했어."
개소리라니.
나는 항상 사실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구리가 꼴리고, 그 때문에 내가 악질이 된다는 것은 모든 시청자가 아는 사실이라고.
"그쵸?"
- 양심ㅇㄷ?
- ㄹㅇㅋㅋ
- 꼴리긴해
- ㄹㅇㅋㅋ만 치라고ㅋㅋㅋ
- 시유는 어쩔 수 없지
- 시유! 시유! 시유!
- 아ㅋㅋㅋㅋ
역시 시청자들도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누가 보면 그스그청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이게 전적으로 구리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판서님 저는 억울합니다.
"근데 참 인생 좆같더라. 얘도 곧 나랑 만나지 못하게 될 거래. 너도 보고 싶어서 죽겠는데, 얘까지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미안해 구리야]
"사과하지 마. 네 잘못 아니잖아."
내 잘못 맞아.
나는 네가 나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도록 유도해왔으니까.
그게 내가 너를 공략한 방법이니까.
「역시 여기 있었네.」
"...은아?"
「이야기는 들었어. 잘 성공했다며?」
그런데 입구 쪽에서 어떤 여자애가 걸어오더니 구리에게 말을 걸었다.
프롤로그의 패거리 중에서 관심 없다는 듯이 구석에 앉아있던 애였다.
「더 강해졌네. 확실히 너 재밌네. 내가 싸워보고 싶을 정도야.」
"꺼져. 오늘은 그럴 기분 아니니까."
「워, 나도 딱히 그런 말을 하려고 한 건 아니야. 다만 네가 말했던 게 걸려서 조사해봤거든?」
"조사라고?"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방금 합류한 캐릭터가 아까 구리가 말했던 은아라는 것은 알겠다.
어느 정도는 구리 편이라는 것도 알 것 같고.
문제는 저 둘이서 진행하는 대화 내용이었다.
「조사 결과 ■ ■■■ ■■■■ ■■■■ ■ ■■■■. 아, 역시 안되네.」
"뭐야, 방금 너 뭐라고 말한 거야?"
「오, 인지했네? 역시 네가 열쇠구나?」
열쇠?
얘들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야, 시유야. 지금 네가 누군가랑 헤어진다고 했지? 그럼 걔를 쫓아갈 방법이 정말로 있다면 어떻게 할래?」
"너, 거짓말이면 알지?"
「확실한 건 아니지만 가능성이 있어 보이거든.」
나를 따라간다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거 스토리가 이런 식으로 급발진해도 괜찮은 건가?
"도박이긴 해. 아, 걸렸나 보네. 이거나 빨리 받아."
"USB? 야, 너 갑자기 무슨 소리를...."
파앗!
그 순간 갑자기 새하얀 빛이 터져 나오더니 시야를 가려버렸다.
다시 시야가 돌아왔을 때는 굉장히 어리둥절한 표정의 은아가 남아있었다.
「내가 왜 여기에....」
"네가 직접 왔잖아. 너 진짜 괜찮아?"
「으,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나 일단 들어가서 쉴게. 나중에 보자.」
"쟤는 갑자기 왜저러는 거야?"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하였습니다.]
[게임을 종료하고 개발사로 피드백 데이터를 전송하시겠습니까?]
"오류라고?"
- ???????
- 갑자기?
- 아 안돼 여기서 끊는게 어딨어
- 제발 엔딩까지만 진행하죠
- 안대애ㅐ
- ㅠㅠㅠㅠㅠ
- 큐브겜 버그나는 건 오랜만에 보네
- ㄷㄷㄷㄷ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