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화 〉27장 - 어서오세요 우리들의 신서울에(5)
건물이란 건물은 전부 다 몬스터에 의해 무너지고, 그 수는 지평선에도 몬스터가 보일 정도로 끝이 없었다.
저 정도면 북한은 괴멸 상태라고 확신해도 될 것 같았다.
"상황은 어때요?"
"천마신교? 그 사람들 얀별이 네가 보낸 집단이야? 그 사람들 덕에 확실히 편해졌어."
"다행이네요. 소민 선생님은 어디 다치신 곳 없죠?"
"나는 뭐, 아직도 각성을 못 했으니까."
계속 후열에만 있어서 다칠 일도 없었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저기서 몰려오는 몬스터들의 질까지 높은 건 아니라는 거네.
'하긴, 침식 밖으로 튀어나오는 건 침식보다 수준이 낮으니까.'
그래도 오래 방치되면 게이트 랭크랑 비슷한 수준으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다만 아무리 북한이 괴멸 상태여도, 지금 갑자기 몰려온 걸 고려하면 얼마 전까지는 잘 버텼다는 소리지.
'심플월드가 게이트를 커버할 타이밍에 침식을 좀 치웠을 거야.'
그렇다면 지금 몰려오는 몬스터는 새로 생긴 게이트가 많아서 감당하지 못한 녀석들일 거다.
즉, 만들어진 지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는 거지.
그럼 해봐야 B급 몬스터가 제일 쌔려나?
"일단 처리를 좀 해봐야겠네."
나는 창고에서 꺼내온 A급 마력 심장을 쥐고 최대한 몬스터들만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아무래도 최대 화력을 쏟아부으려면 다른 공격들이랑 겹치지 않는 편이 좋으니까.
"이쯤이면 괜찮을 것 같은데."
마력석의 마력을 최대한 뽑아내서 하나하나 바늘로 조형한다.
지난번에 이런 방법을 쓸 때는 검 모양으로 만드는 것만으로도 벅찼지만....
"대회 때 써먹은 걸 재활용하는 거긴 해도. 이 정도는 되어야 광역기겠지."
궁극기 게이지로 만든 바늘을 비처럼 쏟아내는 기술.
이거 나중에 큐브온에서 별명처럼 붙은 기술명이 있었지.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생각도 하지 못했겠지만, 나한테는 뇌리에 박힐만한 이름이었다.
왜 하필 우한이야.
"쏟아져라. 우한의 비!"
쏴아아!
하늘을 빼곡히 채운 마력의 바늘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꽤높은 곳에서 쏟아내고 있어서 굉장히 띄엄띄엄 공격하긴 하지만, B급 이하 몬스터들에게는 하나하나가 즉사기에 가까운 공격이다.
오히려 공격이 띄엄띄엄 이라서 죽어 나가는 몬스터의 수는 훨씬 늘어난다.
-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 와 시발 개쩌네
- 이걸 우한의 비를 써버리네ㅋㅋㅋ
- 이걸 마력으로 해버리네
- 필살기가 또ㅋㅋㅋ
- 이거 로메 아니잖아ㅋㅋㅋㅋ
- 왜 자꾸 로메 기술 가져오냐고
- 미친 몹 죽는 거 봐
- 영화 찍냐고
로메에서 쓰던 기술을 자꾸 가져오는 이유는 간단했다.
기술은 가져다 쓰라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필살기 게이지라는 파괴력 높은 애너지를 오버라이팅해서 사용하는 걸, 마력석으로 대신했을 뿐이기도 하고.
물론 마력석은 내 힘이 아니라서 더 어려운 편이지만, 그만큼 내가 계속 성장했다는 증거겠지.
"이 정도면 한숨 돌릴 수 있겠죠?"
"...이게 S급이구나 싶네."
"강하긴 해도, 무려 A급 마력 심장을 소모해서 쓴 기술이니까요. 약하면 그냥 낭비지."
그거로 자동 충전되는무기만 만들어도 전력이 하나 늘어나는 건데.
물론 저 정도 인원을 전력 하나로 처리하려면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 지금은 이런 식으로 인원을 팍팍 줄일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당장 우리 쪽이 밀리지 않아서 피해가 생기지 않으니까.
"참 신기해."
"뭐가요?"
"게이트가 사라질 때, 그런 꿈을 꿨거든. 새로운 인류의 희망이 나타나지는 않을까. 우리를 구해주러 나타나지 않을까."
"그래요? 하긴, 실제로 게이트가 사라진 건 인류가 부활하는 데 도움이 되었잖아요."
"그것도 그건데. 나는 그 새로운 희망이 내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거든."
- 아ㅋㅋ
- 그렇긴 하지
- 인류의 유일한 S급!
- 하얀별! 하얀별!
- 오늘도 방장뽕에 차오릅니다
- 교주님은 희망이 맞지
- 이게 우리 방장이다!!
진짜 나를 부끄럽게 해서 말려 죽이려고 작정을 하셨나.
아까 큐브온각 뽑아보겠다고 기술명 외친 것도 부끄러워 죽겠는데, 인류의 희망이니 뭐니 하는 건 진짜로 죽을 것 같았다.
살려줘.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까. 너희들처럼 싸울 힘도 없고."
"아니에요. 선생님."
"아니긴...."
"승아가 왜 각성자들을 사냥하게 되었는지 기억하세요?"
"몬스터한테 소중한 사람을 잃어서, 복수하고 싶어서잖아? 자기 자신이 S급이 되어서 모든 게이트를 무너트리고 싶어서."
"맞지만, 틀렸네요."
기본적인 틀로 보면 저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은 그녀를 붙잡아주던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승아는 언제나 괴물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처음 그걸 막을 수 있게 마음에 매듭을 묶어주었던 건 유라였고, 지금은 내가 그 매듭을 이어받았다.
"그녀에게 구심점이 되어 주던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이에요. 뭐, 그게 소중한 사람이니까 비슷한 의미긴 하네요."
"......."
"그 사람 역시 각성하지 못한 사람이었고요."
세랑이는 나쁜 방향으로 비뚤어지지는 않았지만, 자기 자신이 죄책감을 떠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야 자신에게 소중했던 사람인 '안경주'를 잃었기 때문에.
그나마 그런 세랑이를 비뚤어지지 않게 해주는 것은 소민 선생님과 예성 고등학교의 힘일 것이다.
사람은 관계를 잃어버리면 망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죽음이든 아니면 다른 무언가로 인해서든.
그리고 온전히 그 사람이 무너질 정도로 중요한 관계가 박살이 나면 절망하고 만다.
내가 아연씨를 잃고 방송을 그만두려고 했던 것처럼.
"모두가 선생님을 지키려고 하는 건, 선생님한테 미안하라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알고는 있는데...."
"다들 자기 자신을 위해서예요."
"자기 자신...?"
"당신을 잃고 난 미래를 감당하기 무서우니까."
그래서 지키기 위해 모든 걸 거는 거다.
오지랖을 자주 떠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그걸 견딜 수 없어서 그렇게 하려고 하는 거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오지랖으로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욕심이 있는 것 뿐이지.
그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목표고.
"그리고 선생님은 일단 머리를 쓰는 거지만 열심히 하고 계시잖아요? 그것 만으로도 1인분이에요."
"1인분이라...."
"애들이 2인분 3인분 한다고 자책하실 필요가 없어요. 1인분도 못하는 사람이 널렸고, 애초에 말이 1인분이지 선생님 정도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데 일조하고 계시는데요."
유라의 삶을 체험해봤기 때문에 저 자리가 얼마나 무거운지는 잘 알고 있었다.
얼마나 소민쌤이 일을 잘하는 건지,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많이 노력하고 있는지.
이제 나는 이해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충분히 빛나는 사람이에요."
"...정말 그럴까?"
"네, 그러니까 우리도 선생님을 신서울의 시장으로 세운다고 미는 거잖아요."
"내가 무슨 시장이야."
"할 수 있어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선생님 말고는 믿고 맡길 사람이 별로 없죠."
솔직히 이런 상황이 된 것은 승아의 탓이 컸다.
인천과 서울에 있는 생존팀이 너무 많이 무너졌고, 그나마 가장 안정적으로 굴러가던 곳이 예성 고등학교였으니까.
그렇다면 예성 고등학교의 시스템을 신서울에 적용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데....
'그러려면 시장은 소민 선생님이 하는 것이 좋지.'
뭐, 그래도 소민 선생님이 싫다면 하겠다는 다른 팀리더들은 있었다.
다만 최고 전력인 내가 보기에 가장 믿음직한 것은 소민 선생님이니까.
"어쩔 수 없어요. 모두를 살릴 수는 없으니까. 그런 자리에요. 엄청 무거운 자리죠?"
"...그러네"
"하지만 그 무거운 자리를 가장 잘 이끌어 줄 수 있는 게 선생님이거든요?"
"그런가?"
"네."
"...위로까지 받네, 미안해."
"틀렸어요."
"어?"
"그럴 때는 고마워 에요."
"아, 고마워."
"굳."
- 오....
- 말 되게 잘하신다
- 그러고보니까 요즘 타로 휴방 너무 자주 함
- 완전 설득당하셨는데
- 퍄
- ㄹㅇ타로 방송 마렵네
- 리트라이 때문에 타로를 못보네ㅠㅠ
- 아 그러게
- 타로 마렵다
생각해보니까 최근에 타로 방송을 자주 못 했네.
신서울이 안정화되고 나면 타로 방송도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리트라이는 모든 것이 실시간이라서 타로 방송 타이밍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애초에 현실에 나가서 휴식 취하는 날도 만들기 힘든데.'
그나마 심플월드에 가서 로그아웃하면 안전한 편이긴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가 너무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게 문제다.
유일한 S급 각성자라서 그런지 급히필요할 때가 많았다.
"슬슬 마력도 회복되었으니까 한 발 더 쏘고 올게요."
"응, 고마워.필생!"
"필생!"
나에게 경례를 하며 방긋 웃는 소민 선생님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웃으시면 저렇게 미인이신데, 평소에 좀 웃으시지.
휴대폰이라도 있으면 사진 찍어서 다른 애들한테 보여주는 건데.
저번에 은찬이랑 아동부랑 협력해서 휴대폰 만들어본다고 하던데, 아직도 개발이 안 끝났나?
"여기 정도만 쏘면 되겠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얼추 안정적이네?"
- 자기가 다 쓸어버려놓고ㅋㅋㅋ
- ㄹㅇ아까 우한의 비로 다죽었는데
- 이쪽까지 우한의 비 날리면 걍 정리되겠네
- 그냥 걸어다니는 폭격긴데?
- ㄹㅇ얀별님이 다 해결한수준이네
- 이 정도 되어야 교주 하는구나
- ㄹㅇㅋㅋ
그 정도로 효과가 좋았었나?
확실히 많이 죽기는 했는데, 그래도 해봐야 10분의 1 정도였는데?
'아, 많은 거구나.'
생각해보니까 적이 말도 안 되게 많은 상황이었지.
당장 절반의 인원도 시체 밟아가면서 이쪽으로 이동하려면 한참이 걸릴 수준이었는데, 그중에 10분의 1을 일격에 날렸으면 많이 죽인 게 맞았다.
확실히 내가 폭격을 가한 쪽은몰려오는 몬스터를 원거리 공격만으로 막아낼 정도로 안정화된 상태였다.
"이렇게 효과적이면 이번에도 제대로 쏴야겠네."
이름은 어떤 지역이 떠올라서 묘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기술을 쏴버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내가 없어도 대응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이제 나도 슬슬 자야 하니까.
- 저걸 또 쏘네
- ㄹㅇ 몹 쓸려나가는 게 공포네
- 아군이니까 다행이지ㅋㅋㅋ
- 뭔가 이번에는 담담하게 쏘니까 더 무섭네
- 약간 최종보스 느낌
- 팔 휘두르니까 싹 죽어나가는거 ㅅㅂㅋㅋㅋ
- 아아, 이게 천마다
"그만 띄워주세요. 그러다 날겠어요."
실제로 마력을 써서 날아다니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대충 상황이 정리되어가는 느낌이라 다행이었다.
"어떤 것 같아요?"
"완벽해. 좀 쉬어도 될 것 같아. 급하면 깨우겠지만. 지금은 교대로 돌릴 수 있을 정도로 인력도 충분해."
"다행이네요."
그렇다면 오늘은 이쯤에서 안심하고 들어가서 자야겠다.
그럼 방송도 이쯤에서 종료를 해야 하는데....
"오, 드디어 복귀했네. 오늘은 호스팅 보내드리고 끌게요."
- ㄴㄱ?
- 오늘은 어디로 가나요
- 오 오랜만에 호스팅이다
- 어디로 가나연?
- 벌써 방종이라니
- 오뱅알
- 포카고?
"포카도 괜찮지만, 오늘은 더 중요한 사람이 있어서요. 다들 오늘 즐거웠어요! 내일 봐요!"
나는 호스팅 명령어를 입력해서 방송을 종료했다.
그래도 아동부가 제대로 일을 했던 모양이네.
드디어 아르카가 방송을 다시 시작한 걸 보면.
['하얀별'님이 3726명을 호스팅 했습니다.]
- 난하
- 얀하
- 뭐야 여기로 왔네
- 오 아르카!!!!
- 선생님 살아나셨군요
- 드디어 아르카 방송이 켜졌구나
- 마참네!
- 아르카 복귀 방송은 못참지ㅋㅋㅋ
"오, 얀별아. 하이! 다들 난하!"
- 복귀 축하해! 오랜만에 방송 켠 기분은 어때?
"그야 행복해 죽을 것 같지."
하긴, 얘도 워낙 방송 중독이니까.
그나저나 영상 후원은 꺼놓은 모양이었다.
아쉽네, 나도 얘가 모르는 흑역사 좀 모아둔 게 있었는데.
"의외로 다들 내가 잃어버린 기억 가지고 뭐라 안 하더라. 배려가 넘치는 아르카단, 아주 좋아요."
- ^^7
- 우리를 뭘로 보시고
- 아ㅋㅋㅋ
- 영상 후원 열면 보자
- ㄹㅇㄹㅋ만 치라고
- ㄹㅇㄹㅋ
- 레아르카만 치자
- 스수만 믿으라고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어서 스수를 믿냐.
물론 스수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언제든 장난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믿어.
당장 나부터가 영상 후원만 열면 악질이 될 준비가 되어있는데.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게 좋다는 거야. 이 바보들아. 진짜 너희들은 2년이 지나도 그대로네. 뭐, 보이는 이름들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다들 정말 사랑해."
오늘은 기분 좋게 방송하는 아르카를 봐서 그런지, 굉장히 포근한 느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사히 복귀해서 정말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