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8화 〉29장 - 이 왕국은 공주가 납치당하는 전개에 약하다(2) (158/182)



〈 158화 〉29장 - 이 왕국은 공주가 납치당하는 전개에 약하다(2)

"역시, 이번에도 나가는  어렵겠네."
"한동안은 절대로 나가지 말라는 어명이 있으셨거든요? 물론 이번에도 제가 사 왔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고마워 류아."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이다.
그런데 금방 류아에게 잡혀서 끌려온 덕에 센트로를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했었고, 그래서 가능하면 내가 자주 갔던 가게들 정도는 직접 가보고 싶었는데....
내가 사라졌었다는 것이 큰 충격이었는지 절대로 내가 단독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류아랑 같이 나가는 것까지 금지할 줄이야.'

솔직히 왕국에서 류아만큼 든든한 사람은 별로 없는데.
괜히 이렇게까지 속박하는 것이조금 답답했다.
그런데도 아직 전체적으로 마음이 편안한 건, 이 갑갑한 궁 내부조차도 무척이나 그리웠기 때문이겠지.

"빨리 드세요. 식겠어요."
"잘 먹을게. 아, 카니씨는  계신대?"
"네. 건강하시다고 하던데요? 공주님 드린다니까 돈도 받지 않으시고 주셨다고 들었어요."
"아, 그걸 받으면 어떻게 해."
"안된다고 말은 했다는데, 오히려 받지 않는 실례라면서 억지로 보냈대요."

그게 그렇게 되나?
그래도 뭔가 받아버리면 미안해지는데.

"와, 이거지. 이 편안한 맛...."
"취향 참 특이하시다니까."
"류아가 맛알못인 거야.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맛알못?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아, 뭔가 자연스럽게 줄임말로 말해버렸네.
그나저나 왕국어도 은근히 줄임말을 쓰기에 괜찮았구나.
예전에는 이걸 이렇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아, 아무튼. 카니 여관 스프는 맛있어."
"알았어요. 누가 아니래요? 정말 이럴 때마다 공주님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내가 뭐가 대단해?"

류아는 피식 웃으면서 내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줬다.
이거 왠지 놀리려는 것 같은데?

"어디를 가도 공주님을 좋아하는 사람뿐이잖아요. 솔직히 공주님이 왕위에 오르셔도 반대할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걸요?"
"아, 안 한다니까! 애초에 누님이 있는데 무슨 내가 왕위에 올라!"
"에이, 알아요. 그만큼 우리 공주님이 평판이 좋으시다는 거죠."

그놈의 평판.
나는 그냥 해야 할 것만 하는 것 같은데 왜 다들 이런 모자란 나를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애초에 내가 무슨 능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가진 거라고는 그저 공주라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자리뿐인데.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것으로 인해서 왕국이 멸망할 때도 나만을 살려서 내보냈던 거겠지.
왠지 왕국에 돌아오고 나니까 많은 생각이 드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닐 텐데.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방송할 때도 비슷했구나.

"나는 너무 과분하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분명  정도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 텐데."
"그런 말도 안 되는 말 하지 마세요."
"어?"

류아가 나를 꼭 안아주면서 어깨를 토닥여줬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얼마 전에도 들었던 내가 암살자 폐지를 주장했다는 사건에 관한 이야기였다.

"기억은 나지는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저는 살아있어요. 공주님이 저에게 삶을 주신 거죠."
"그러니까,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니까."

딱히 그 시절이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은 아니다.
지금 들어봐도  사건은 굉장히 불합리하고 잘못되어 있었다.
당연히 바뀌어야 하고, 공주의 자리에 있는 내가 그걸 두고  수는 없었겠지.

"되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씀하시는 공주님이 대단한 거거든요."
"...그래? 하지만 나는 공주로 태어나서 엄청나게 많은 혜택을 받고 있잖아. 그 대신 당연히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거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쪽이 대단한 거라고요. 공주님은 너무 사람이 착해요."

그럴지도.
그래도 이젠 아니야!
요즘에는 방송하면서 악질 짓도 많이 배워왔단 말이야.
가끔 채팅방에서 악질이라고 칭찬해줄 정도라고.

"이 공주님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제가 불안해서 옆에서 떼어놓을 수가 없어요."
"누가 들으면 류아가 어마마마라도 되는 줄 알겠다."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공주님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정말로 류아가 그렇게 행동해줄 것이라는 건, 내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이미 한  경험해본 일이니까.
자신의 온몸이 부서져 가면서도 나 하나를 살리기 위해서 검을 휘두르던 그녀의 모습을.
나는 절대로 잊을 수가 없으니까.

"다 드셨어요? 그릇 가져다줄까요?"
"잠시만, 아직 조금 남았어."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다 먹어가는 스프가 굉장히 아쉽게 느껴졌다.
결국 바닥까지 긁어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릇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어?'

바닥에 뭔가 이상한 감촉이 느껴지는데.
테이프로 바닥에 뭔가를 붙여놓은  같은 느낌이었다.
쪽지?

"공주님, 왜 그러세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당황해서 급하게 쪽지를 숨겼다.
아마도 내가 음식을 준비해달라고 했다는 걸 듣고 카니씨가 전해주고 싶은 말을 적으셨나 보네.
부끄러운 말들이 적혀있을 것 같아서, 류아가 없을 때 혼자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쪽지를 숨겼다.

"산책이라도 하실래요? 아니면 혼자서 좀 쉬실래요?"
"그냥 조금 쉴게. 이따가  어두워지면 산책하자."
"네."

류아가 방을 나가자, 나는 조심스럽게 쪽지를 꺼내서 펼쳤다.
카니씨는 평소에 이런 부분에 잔소리 많이 하시더니, 상황이 이러니까 이런 쪽으로 잔머리도 굴리시는.....
응?

"한글?"

쪽지에 적혀있는 것은 왕국어가 아니라 한글이었다.
이게  여기에 적혀있는거야?

'설마, 벌써 게이트가 들킨 건가?'

그렇다면 큰일이었다.
만약에 공략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서 왕국을 멸망시키려고 한다면?
심지어 지금 리트라이는 생각보다 많은 유저들이 시작한 상태라서 병력을 모으는 것도 어렵지 않을 터였다.

"뭐야, 뭔가 이상한데?"

[숮즞잊 혽잦 캊닞 옂괁읒롲 낮옺짖 앉읒멵 섽틎롲 몾둦릊 줒긵닺]

굉장히 이상하게 적혀있는 내용을 보다가, 받침의 ㅈ을 억지로 끼워 넣었다는 걸 깨닫고 제외하면서 읽어봤다.
카니 여관으로 나 혼자 오라는 내용이네?
그렇지 않으면 센트로에 테러라도 하겠다는 거야?

"아, 시발."

생각해보니까 여기서 굳이 나한테 수증이라고  거 보니까, 이미 내가 공주인 것도 들킨 모양이었다.
나중에 방송키면 이 모습을 두고 엄청나게 놀릴 텐데.
놀리는 걸 떠나서 내가 게임  캐릭터라는 거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점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일단 전면전부터 하려는  아닌  같은데."

나랑 접촉하려는 모양이었다.
굳이 이런 방법을 취하는  보면 하얀별님인가?
그것도 아니면 아발론 크루 사람들이겠지.

아무튼 이렇게 만나러 오라는 부탁을 받은 이상 가기는 해야  텐데.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카니 여관에 혼자는커녕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거다.
내가 어떻게 류아 몰래 카니 여관까지 가겠어.

"아쉽지만 그냥 전화를 켜서 연락해야겠네."

심호흡을 깊게 한 뒤에 정지시켜둔 프로그램들을 실행시켰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우르르 쏟아지는 부재중 메시지들이 눈앞을 빼곡하게 채운다.
내가 잠적하는 동안 난리가 났었구나.

"여보세요? 수증기님. 지금 어디예요."
"...궁이요"
"사실 알아요. 그 쪽지에 위치추적 있거든요."
"네?"

쾅!
갑자기 엄청난 굉음이 들리더니 내  옆에 있던 벽이 무너져내렸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  ☆ ☆ ☆ ☆ 



건물의 벽이 부서진 것으로 인해서 흩날리는 먼지에 시야가 가려진다.
그 와중에 나는 미리 창문을 통해서 보고 있던 목표물을 확보하기 위해서 달렸다.
오케이, 정확했다.

"공주님! 무사하세요!"
"어, 류아.... 아마도 무사하려나?"

무사할 리가 없잖아.
이미 수증기님은 내 손바닥 안까지 잡혀있는 상태인데?
나는 저 기사가 달려든다면 언제라도 수증기님의 목에 상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누구냐!"
"아, 우리 공주님. 조금 거칠게 다루게 되어서 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포카님?"

포카가 천천히 걸어 나오면서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연습할 때는 오그라든다고 그렇게 힘들어하더니 실전에서는 겁나 잘하네.
이번 달 스트리머 연기대상은 포카다.

"공주님의 몸에 생채기 하나라도 냈다간 각오해라."
"오, 그럴 생각 없어. 그럼 상품 가치가 떨어지잖아."
"나 상품이야?"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복귀하자마자 상품취급ㅋㅋㅋ
- 그러니까 누가 잠적하랬냐고ㅋㅋ
- 수증기 벙찐거 개웃기네
솔직히 모르고 당하면 당황스럽지
- ㄹㅇㅋㅋ
자기가 납치대상이 되다니ㅋㅋㅋ
- 라는 내용의 애니 추천좀

확실하게 말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이번 공략의 열쇠이면서 왕국이랑 거래할 상품이다.
아직 공략의 정확한 조건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걸 찾았을  시행하려면 협상할만한 물건이 있어야 하잖아.
그거론 수증기님만한 물건이 없지.

"그럼, 아마 가장 상품 가치가 높은 사람을 말한다면 공주님 정도가 되겠지."
"어, 어? 내가 그렇게 가치가 높나?"
"공주님! 조금만 기다리시면...!"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공주님 목에 칼자국 나는 거야!"
"칫...."

내가 하는 거지만 진짜 삼류 악당 같네.
하지만 지금 저는 이 왕국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의 거짓된 마음 없이 진심으로 이 좆같은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큐브온 조회수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서 싸우는 겁니다.
제발 믿어주세요.

"아니, 얀별님? 포카님? 이게 어떻게 된...."
- 제발 닥치세요

나는 급하게 채팅을 보냈다.
연기하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초 치지 말라고.

"히잉...."

내가 채팅을 보내자마자 힘 잃은 강아지처럼 축 처지는 모습이 조금 안쓰러웠다.
그래도 안쓰러운 건 안쓰러운 거고 해야 할 일에 방해는 되면 안 된다.
애초에 수증기님도 왕국이 멸망하는 건 원하지 않을 거 아니야.
조금만 협조해주세요.

- 아 진짜 저게 남자가 맞나?
- 와  미쳤네
개귀엽다
- <삭제된 채팅입니다.>
- 솔직히 꼴리긴 함
- 눈나ㅏㅏㅏㅏ
- 웨딩드레스 못참지
-공주! 공주! 공주!
- 진짜 수증기는 전설이다

자꾸 너희들이 그러니까 나까지 수증기님이 가능해질 것 같잖아
정신 차려 미친놈들아.
슬슬 너희들이 농담인지 진심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어.
무서운 스수들.

['증기나라수증공주'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수증기 그는 공주인가? 수증기 그는 공주인가? 수증기 그는 공주인가? 수증기 그는 공주인가? 수증기 그는 공주인가?

심지어 이제는 주현씨까지 나와서 악질 짓을 하네.
이 방은 스트리머도 악질이고 스수도 악질이고 매니저도 악질이고 편집자도 악질인 미친 방이 되어버렸다.
정말 바람직하군.

"솔직히 뭐가 이 왕국에 가장 소중한 것일까 고민을 많이 했거든. 그래야 좀 왕국이랑 딜을 제대로 할 테니까.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왕국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건  공주님이더라고."
"...쓰레기가"
"워, 워. 자꾸 우리를 자극하지 마. 아무리 중요한 상품이어도 그걸 때려야 가치가 올라가는 때도 있다는   알고 있거든."
"......."

오, 수증기님을 때린다고 협박하니까말을 되게  듣네.
그나저나 그냥 기사가 아니라 수증기님이랑 친한 사이 같은데?
그래서 더 난리인 건가?

"승아야!"
"응!"

나는 수증기님을포카에게 토스한 다음에 승아랑 같이 달려드는 기사를 막아섰다.
지금부터는 우리가 포카가 포탈 마법을 준비하는 동안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나저나 확실히  실력이 엄청나네.
이 정도면 아리아보다도 검술 실력은 나은 거 아니야?

'하지만, 너무 정직해.'

아리아가 상대하기 힘들었던 이유가, 워낙 변칙적인 공격을 많이 해와서 그랬던 거다.
하지만 이 기사한테는 그런 분위기가 없이 그저 정직한 검만 보였다.
근데 내 공격을 따라오는  보면 변칙적인 것에 익숙하긴 한 것 같은데, 왜 본인은 그런 공격을 전혀 사용하지 않지?
그런 의문을 품고 있는 와중에 기사가 잠시 뒤로 물러났다.

"공주님을 데려가려거든...."
"어라?"
"나부터 죽여...!"

그녀가 그렇게 말한 순간, 갑자기 검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시발 힘숨찐 메타였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