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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5화 〉30장 - 여름의 미아(3) (165/182)



〈 165화 〉30장 - 여름의 미아(3)

출입 금지를 해둔 옥상치고는 참 별 볼 일 없는 모습이었다.
나는 옥상의 문고리를 걸어 잠그고는 천천히 난간으로 걸어갔다.

"여기서 떨어지면 뭔가 바뀔까."

잘 모르겠다.
나에게 그만큼의 가치가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오빠야 유명한 큐리에이터고, 사실 방송하기 전에도 유망한 피아니스트 지망생이었다.
내가 항상 무시했던 언니는 어떠한가, 그녀도 이미 큐리에이터로써 자리를 잡았다.
오로지 우리 집에서 붕  있는 것은 나 뿐이겠지.
오빠야 내가 아직 학생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말하겠지만....

'학생이면 뭐가 다른가?'

학생이면 모든 게 허용되는 것일까.
어리다면 이런 식으로 살아가도 괜찮다는 의미일까.
나에게는 살아가는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긴,  녀석들도 나에게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겠지.
그렇기에 나를 무시하는 거다.

"전부  탓이네."

물론  녀석들은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괴롭힐 거다.
그게 삶의 즐거움인 녀석들이니까.
하지만 결국 내가  녀석들에게 선택된 것은 내가 얕보였기 때문이다.
겨우 부모님이 없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한다고 하면, 비슷한 상황에서  지내는 애들한테 굉장히 실례가 되는 소리잖아.

나에게는 특별한 꿈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텅 비어있고, 그저 오빠나 언니의 덕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버러지다.
그런 내 연약함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여기서 떨어지면 신문 구석 정도엔 오르겠지."

엄청난 민폐가 될 거다.
근데 뭐 내가 민폐를 끼친 게 한두 번인가?
아무리 내가  잘못이라고 인정하더라도 나는 사람이고, 그 녀석들이 미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걔들이 조금이라도 귀찮았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어쩔 수 없잖아.

오빠에게도 언니에게도 나는 짐이겠지.
애초에 나만 아니었어도 오빠는 피아노를 포기하지 않았을 거다.
오빠가 피아노를 포기하지만 않았어도 언니가 그렇게 괴로워하면서 방송을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전부, 전부 내가 있어서 일어난 일이다.

난간에 서서 아무것도 모른 채 운동장을 뛰노는 아이들을 구경한다.
높은 곳이라 그런지 강하게 몰아치는 바람이 몸을 떠미는 것 같다.
이대로 떨어지면 되려나?

"그게 네가 원하는 마지막이야?"
"...누구?"

학교와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의 새하얀 원피스.
그리고 아무리 봐도 평범하게 생각할 수 없는 새하얀 머리카락과 보라색 눈동자.
애초에 옥상 문은 내가 잠가놨을 텐데, 어떻게 옥상으로 나온 거지?

"네 인생의 마지막 카드를 내려놓으려고 했던 거지?"
"너는 누구야?"
"그렇다면, 내가 여기서 원카드를 외치면 카드 한 장 더 뽑아야겠네? 미리 원카드 선언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건 무슨 궤변이야?"
"그냥, 네가 거기서 떨어지는 걸 지켜보기만 하면 후회할 것 같았거든."

이상한 애다.
괜히 휘말리면 귀찮아질  같다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어느새 난간에서 내려와 그 소녀에게 걸어가고 있었다.

"사실은 그냥 내가 어릴  봤던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장면이야. 죽으려는 주인공한테 저렇게 말한 사람이 카드를 건네주거든."
"그래서, 나한테 그 카드라도 줘보겠다는 거야?"
"응, 어때?"
"...보여줘봐, 궁금하긴 하네."

내가 그렇게 답하자, 그녀는 말을 아주 잘 듣는 착한 아이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손길이,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씩씩하던 언니의 손길 같아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언니...."
"아, 그러게! 내가 언니네? 나는 이제 성인이니까."
"구라치네."
"진짜거든? 바로 죽어서 별로 의미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죽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마치 자기가 유령이라도 된다는 듯이 말을 하네.
유령이면 내 머리는 어떻게 쓰다듬고 있는 건데?

"하여튼, 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아니니까. 그런 카드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수호령 '신아연'이 당신을 선택합니다.]
[시스템: '당신을 지키는 수호령'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을 지키는 수호령이 '신아연'으로 등록됩니다.]

"이런  가능하거든."

내 시야에 떠오르는 정체불명의 메시지.
일반적인 상식을 초월하는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방금 자기가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아니라고 한 것 치고는, 누가 봐도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올법한 상황을 일으켰다.

"너, 너는 대체 뭐야? 환각?"
"나는 환각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야. 죽었을 텐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영혼만 유지하는 귀신의 신세지."
"귀신!?"

하긴  이상한 메시지에서도 수호령이라고 되어있구나.
그나저나 수호령은  뭐야?
나를 지켜주는 귀신이라는 뜻인가?

"네가 진심이라는  알아. 아까 그 난간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이 고민했을 줄도 알고 있어."
"아, 씨. 잘은 모르겠지만. 훈수 둘 생각이면 꺼져. 내가 알아서 해."
"왜냐면 나도 똑같은 자리에 서서 고민했으니까."
"......."

죽었다고 했었나.
하지만 그녀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이렇게 떠도는 거겠지.
그렇게생각하니까 이야기는 들어봐야겠다 싶었다.
내가 고를 선택지에 대한 선배의 조언이 되니까.

"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셨어. 물론 양쪽 모두. 그나마 다행이라면 보험금은 여유롭게 나왔다는 거네."
"......."
"왜 그게 다행이냐면, 알고 보니까 나한테는 시한부 불치병이 있더라고? 그 병원비를 감당하려면 그 정도의 돈은 있어야 했어."

시한부 불치병이라.
확실히 어차피 죽게 될 것을 빨리 죽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자원만 축내는 쓰레기라는 생각까지 들었을지 모른다.
최소한 그 자리에 있던 게 자신이었다면 그런 생각을 했을 거다.

"가족은 아무도 없지, 몸은 아주 고통스럽지. 그냥 죽어서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했어. 그리고 가끔은 너처럼 옥상의 끝에 서서 하늘을 바라봤고. 솔직히 떨어지는 거 무섭지만, 별로 무섭지 않잖아. 그 모순된 감정, 너라면 이해할  있으리라 생각해."
"응, 그렇지."

누군가는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왔구나.
그렇기에 나를 공감해줄 수 있구나.
그것이 생각보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한씨라는 사람의 인터넷 방송을 보기 시작했어. 그냥 심심해서 돌아다니다가, 타로를 봐준다고 해서 들어갔었지."
"타로?"
"응, 타로를 가지고 소통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거든."

그 당시의 그녀는 그저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었다고 한다.
가족은 이제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고.
항상 병원에 갇혀있는 그녀에게 친구가 생기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나한테 그러더라, 힘내라고. 그리고 그걸 이겨내기 위해 희망을 하나만 찾아보자고."
"희망이라.... 무서운 말이네."
"그러게, 정말 너무한 사람이지? 심지어  뒤에 한 말이  무시무시하다?"
"뭐라고 했는데?"
"나한테 무한한 가능성이 있대. 뭐든 해낼 수 있을 거래."

그저 병원에서 병과 싸우는 나날만이 남아있는 인생.
자신은 그저 자원만 축내는 쓰레기.
그렇게 생각하던 그녀에게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해줬다고 한다.

"말이 안 되는 헛소리잖아."
"그렇지. 근데 그걸 들으니까 옛날에 봤던 그 애니메이션이 떠오르더라고."
"아까 그 원카드 어쩌고 하는?"
"응."

그 애니메이션은 죽으려던 주인공이 그녀의 새로운 인생이 담긴 카드를 받으면서 시작된다고 한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준 것은, 그녀에게는 마치 새로운 인생을 얻을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겠지.
그래서 그 별것 아닌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는 것.

"단순하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까, 아니면 지한씨가 특별했던 걸까. 아마 나는 후자라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 이름이 지한이야?"
"응, 류지한. 그리고 나는 그 사람 방송을 꾸준히 챙겨봤지. 워낙 작은 방이었으니까 내가 있어 주는 거에 엄청 고마워해 주고, 필요로 해주더라."
"필요로...."

그녀에게 버틸 의미를 찾게 해줬던 거다.
자신이 이 치료를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리면,  사람 방송의 몇 없는 시청자가 줄어든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이 소식을 들으면 슬퍼할 거다.
그렇게 그녀의 비어있던 목표를 채워주기 시작한다.

"아, 그래. 나는 최대한 오래 살아서 이 사람의 매니저를 해야겠다. 이 사람의 방송이 커질 때까지는 내가 버텨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버틴 거야?"
"응. 하지만 결국은 죽어버렸네. 최선을  해도 모든 걸 해낼 수는 없나 봐."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정말 이기적인 생각만 해왔구나.
왜 언니랑 오빠가 나를 그렇게 소중히 대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거다.

"나는...."

이미 그들에게 삶의 의미였던 거다.
저 소녀가 지한이라는 사람의 방송을 보면서,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처럼.
오빠나 언니에게는 내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거다.
내가 깨닫지 못했을 뿐.

"어때, 죽으면 후회할  같지 않아?"
"많이 후회할 것 같네."

내 죽음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버팀목이 되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거다.
사람이라는 것은 그렇게 관계된 것이었다.

겨우 내가 편해지기 위해서 도망칠 위치가 아니었다.
내가 짜증 나는 녀석들을 귀찮게 하겠다는 것으로 소모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이다.
나를 이제까지 지켜준 사람들에게 너무나 나쁜 짓이니까.

"그 사람이랑 언니는 대단한 관계였겠네."
"응, 지한씨한테는 내가 필요했고. 나에게는 지한씨가 필요했어."

나는 이미 그런 존재가 옆에 있는데도, 자기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다고만 생각을 했다.
이러면 나는 좀 다른 상황이네.
새로 카드를 뽑을 필요조차 없잖아.

"맞다. 언니라고 했었죠? 언니, 언니가 처음에 마지막 카드를 내려놓으려고 한다고했잖아요? 그럼 새로운 카드를 뽑으라고."
"응."
"제가 착각했나 봐요. 내려놓기에는 카드가 너무 많아. 원카드가 아니라서 새로 뽑는 것도 무리예요."

내 말에 아연 언니는 피식 웃으면서 나를 살포시 안아줬다.
나는 그 뒤에 오빠에게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학교를 그만뒀다.
나를 괴롭히던 녀석들한테 굳이 신경 쓸 생각도 없었고, 다른 제대로 된 목표가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아연 언니가 제대로 된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지한씨라는 사람은 하얀별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서 방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 방송을 시작하는데도, 언니는 그저 내 눈을 통해서 가끔 방송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 현실이 너무나 답답하다고 느꼈다.
 둘이 서로 재회하고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다.

이제 우리 언니랑 오빠뿐만 아니라 아연 언니도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었고.
그런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길 바라는 것은 나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언니가 저 말고 다른 사람이랑 대화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나는 귀신인데?"

그때부터 정신과 관련된 것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상상이 실제로 이루어질 가능성을 포착하기 시작했고, 결국은 제대로 된 실마리까지 찾아내는  성공했다.
그 실마리는 큐브에서라면 충분히 언니의 행동을 끌어올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6월 25일 테스트입니다. 자, 이제 말해봐 언니."
"응, 겨울아. 들려?"
"어, 성공이야! 제대로 들려!"

[4월 25일 테스트 성공]

나는 결국 큐브에서 아연 언니의 정신을 접속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매칭이 제대로 되지 않는 부분을 조정하고 나니, 사실상 큐브 안에서는 아연 언니가 살아 움직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실험에 성공하자마자 언니에게 나의 꿈을 하나 이야기했다.

"아연 언니, 나 언니랑 방송해보고 싶어."
"...방송?"
"언니가 이제 얀별님을 돌봐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이제는 우리가 하고 싶은 방송을 하는 거지."
"내가 하고 싶은 방송이라...."

항상 내 옆에서 나를 지켜주고 위로해주는 아연 언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나랑 크게 다르지 않게, 빛나는 것을 포기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굉장히 닮아있는 우리가 함께 빛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 해보자."
"아, 그나저나 언니는 방송명 뭐라고 할래? 나는 그냥 본명으로 시작할 건데."
"딱히 생각나는 건 없는데...."
"그럼, 내가지어줘도 되는 거지?"

나는 전부터 생각해놨던 이름 하나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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