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30장 - 여름의 미아(5)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할 것만 같았다.
물론 아연씨가 살아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재회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혹시 저번에 만났던몬스터와 비슷한 계열인가 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갑자기 겨울님이 나온 게 묘했으니까.
"무슨 상황인지 설명을 해주시겠어요? 자기소개도 좀 해주시고요."
"아,맞다. 죄송해요. 저는 여름이라고 합니다."
여름이라.
아마 겨울님과 맞춰서 만든 이름인 것 같았다.
그럼 이제까지 아연씨는 쭉 겨울님과 알면서 지냈던 건가?
"...오랜만이네요"
"......."
마음속이 굉장히 복잡했다.
그녀를 오랜만에 만나서 느끼는 반가움, 안도,기쁨.
이 와중에도 뭔가 이상하다는 경계심, 겨울님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생기는 불안감.
- ?
- 아는 사이인가
- 저번에 그 침식에서 만난 느낌이랑 비슷한데
- 쌍둥이가 있으신가
- ㄷㄷㄷㄷㄷㄷㄷㄷ
- 뭐지
- 그래서 여기서 겨울이가 왜 나옴?
- 대체 뭐임
- 와 근데 방송 초기 얀별님이랑 똑같이 생김ㄷㄷ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었다.
"후, 대충 상황 설명을 해주세요. 갑자기 겨울님을 구해달라는 건 무슨 뜻이에요?"
나는 지금 겨울님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으니까 대충 감이 오고 있지만.
시청자들은 갑자기 겨울님이 나오니까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모두가 이해하려면 설명을 좀 듣는 편이 좋겠지.
"저랑 겨울이는 신서울을 구경하다가, 침식에 휘말려서 이 세상에 떨어졌어요."
"역시 그랬군요. 현재 그런 식으로 떨어진 사람이 많을 거라고 예상하는 중입니다."
최대한 진정하고 진행을 해야 한다.
지금 너 방송 중이야 하얀별.
나중에 방송이 꺼졌을 때 물어봐도 괜찮잖아.
"저희 둘은 시작하면서 천사로 시작했어요. 그리고 대충 상황을 파악한 뒤에는 밖으로 연락을 하려고 했었죠."
"하지만 하지 못하셨군요?"
"네. 연락하기 전에 습격을 받아서 정신이 없었어요. 저와 겨울이가 싸우긴 했는데, 제가 쓰러졌던 동안 데려간 모양이에요."
그래서 높은 확률로 겨울이가 타락의 탑으로 끌려갔을 거라고 예상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재 겨울님이 패닉 수치가 높아진 것도 타락의 탑에서 타락을 당하고 있기 때문인가?
원래라면 그 시점에서 패닉 수치가 높아져서 로그아웃되어야 하지만, 현재 겨울님은 큐브를 개조한 탓에 그것이 불가능했다.
'어떻게 보면 버티고 있는 상황이 되겠네.'
최대한 빠르게 겨울님을 찾아서 꺼내드려야 했다.
그러고 나서 그녀의 상태가 안정되면 바로 로그아웃을 시켜야겠지.
['설화월화'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설화님의 후원 내용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겨울님이 그런 식으로 위험한 것은 보고만 있기 좀 그랬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타락의탑을 들어갈 방법부터 찾아내야 한다.
'우선은 겨울님부터 구하자.'
아연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그 뒤에 해야 할 일이다.
당장 저 높아진 패닉 수치가 오래 유지되면 어떤 악영향이 있을지 모르는데.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위험했다.
"여름님의 말을 기본으로 잡고 진행을 해보죠. 그럼 타락의 탑부터 들어가야 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지금 우리가 악마가 아니라 천사라는것.
몰래 들어가서 확인하고 와야 하는데, 이러면 악마 쪽에 들어간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맞으려나?
아예 악마 쪽 인원이 겨울님을 찾아도 되겠지만....
'아무래도 전투력 부분이 마음에 걸리네.'
간단하게 말하고 있지만 여기는 S급 게이트다.
당연히 A급 이상도 충분히 활동할 수 있겠지만, 가능하면 S급인 내가 가는 것이 전투력 면에서 확실한 성능이 나올 거다.
특히 정화의 탑이나 타락의 탑은 예상대로라면 이 게이트에서 가장 중요도가 높은 지역 중 하나일 테니까.
"말은 쉽지만, 적 본거지란 말이지."
들어갈 때까지만 속일 수 있다면, 내가 들어가서 깽판 치는 것이 좋은 방법일 거다.
물론 이것도 어느 정도는 내부의 도움이 있어야 하고.
그 도움을 누구에게서 받을지는 사실 이미 정해져 있는 문제였다.
"어 얀별아."
"포카는 악마 골랐었지?"
"그렇지? 뭔가 필요한 거 있어?"
"혹시 타락의 탑 위치를 알고 있어?"
안타깝게도 방금 게이트에 진입한 포카가 그런 세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위치와 어떻게 진입하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었기에, 조사가 끝나면 말해주겠다고 답이 왔다.
그럼 한동안은 우리도 이쪽 상황에 익숙해지면서 기다려야겠네.
"여름님, 일단 악마 쪽 사람들에게 어떻게 진입하면 좋은지 조사해달라고 했습니다. 당장은 바로 진입하긴 어려울 것 같고, 그쪽 조사가 끝나면 바로 진행하죠."
"...알겠습니다"
아연씨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마 겨울님이 그런 상태인 것이 마음에 걸리시는 거겠지.
아연씨의 성격대로면 굉장히 많이 걱정하고 있을 거다.
'그나저나겨울님이 아연씨랑 같이 있었다니.'
그럼 저번에 타로 볼 때 했던 그 질문이 우연이 아니었구나.
아연씨한테 이야기를 듣고 알고서 했던 질문인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아연씨는 왜 나한테는 만나러 오지 않았던 거지?
방송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
멍하니 여러 생각만 떠올리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는 계속 방송 진행하는 건 무리겠네....
"일단 여관을 잡죠. 그리고 오늘은 정말 급하게 접속한 거라서 저도 휴식을 취해야 하거든요?"
"아, 네."
물론 당장 겨울님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면 달려가야겠지.
하지만 지금은 악마 쪽 유저들이 정보를 모아올 때까지는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가능하다면 지금 휴식을 최대한 취해 놓아야지.
"갑자기 켠 방송인데, 많이들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별바
- 뭔가 의문투성이로 끝났네
- ㅠㅠㅠㅠ
- 뭐가 뭔지
- ㅂㅂㅂㅂㅂㅂ
- 푹 쉬세요
- 안녕히 주무세요!
- 얀바ㅏㅏ
방송을 종료하고.
둘만 남은 아연씨와 나는 말없이 눈초리만을 주고받았다.
사실상 저번에 편지로 이야기를 나눈 이후로는 처음으로 대화하는 셈이었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아연씨."
"지한씨...."
내 방송의 첫 매니저이자.
내가 지금 사용하는 몸의 원래 주인.
그리고 이제까지 나타나지 않다가, 결국은 나타난 것까지.
알고 싶은 것투성이였지만 그걸 뭐라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정보가 비어 있었다.
"일단, 그 몸 때문에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어요. 처음부터 그 몸은 제가 아니라 지한씨를 위한 몸이니까."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시작부터 엉뚱한 말씀을 하시네.
아무리 아연씨가 죽었어도, 이 세계의 아연씨는 분명 살아있었다.
그런데 이 몸이 어떻게 내 것이 된다는 거야.
"나중에, 조금 더 설명하기 적당한 때가 된다면 알려드릴게요. 아무튼 죄책감은 느끼지 마시란 거에요."
"그래요. 아연씨야 항상 착해 빠졌으니까 그렇게 말씀하시겠죠...."
별로 이상한것도 없긴 하다.
아마 별로 대단한 이유가 있지는 않겠지만, 안심시킬 생각이겠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뭔가 이유가 있다는 건데....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네.'
애초에 우리가 이 세상에 불려온 것부터 이상하니까.
혹시나 해봐서 떠봐도 답해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다음은 이제까지 아연씨가 어디서 지냈느냐에 대한 건이다.
"겨울님이랑 친하신 모양인데, 이제까지 어디서 지내셨어요? 겨울님 집은 절대 아닐 거고."
그런 거라면 설화님이나 루냐님이 모를 리가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뭔가 가슴이 꽉 막히는 듯한 감각이 몰려왔다.
그러고 보면 왜 겨울님은 한 큐브에서 2개를 접속했던 거지...?
"아, 지한씨도 아시죠? 수호령이라는 거. 뭐, 최근에 방송에서 스능되도 하셨으니까 아실 수밖에 없겠지만...."
"......."
이제야 톱니바퀴가 맞아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연씨는 살아있던 것이 아니다.
죽은 뒤에 수호령으로써 겨울님의 곁을 지키고 있었던 거다.
내가 방송을 하는 것을 겨울님을 통해서 지켜보고.
겨울님의 집에 갔을 때도 나를 옆에서 지켜 보였을 거다.
나만 모르고 있었을 뿐.
"완전 착각하고 있었네요...."
"파도 파도 괴담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맞아요. 만나러 가지 않았던 게 아니에요. 만날 수 없는 몸이었던 거지."
그래서 겨울님은 아연씨와 함께 큐브에 접속하기 위해 큐브를 개조했던 거다.
그 도전은 성공했을 거다.
그러니까 아연씨가 내 눈앞에 존재할 수 있는 거겠지.
"그래도 너무 슬퍼하거나 불쌍하게 생각하지는 마세요. 겨울이 덕분에 사실상 되살아난 거나 마찬가지니까."
"......"
"만족하고 있으니까 너무 불쌍하게 보지 마세요."
그녀는 자신의 몸을 더듬으면서 활짝 웃었다.
그 웃음이 왠지 억지로 지은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역시 나중에 어떻게든 가능해지면 이 몸을 돌려드려야....
"구할 수 있겠죠...."
"겨울님이요? 당연히 그래야죠."
지금도 고통받고 있을 확률이 높다.
최대한 빨리 그녀를 구해서 아무 문제가 없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겠지.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설화님도 굉장히 동생 걱정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줘도 못 받네요. 그렇게 겨울이 덕분에 행복했는데, 저는 이렇게 행복해질 기회를 줘도 받지를 못해요."
"너무 그렇게 자책하지는 마세요."
그녀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냥 운이 조금 나빴을 뿐이다.
"아, 벌써 아침인가."
어제 아연씨와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머리에 두통이 좀 남아있었다.
아연씨는 벌써 나갔는지 여관에는 보이지 않았다.
여관에서 제공되는 아침으로 대충 끼니를 처리하고, 아연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데 연락이 도착했다.
"여보세요?"
"아, 얀별아. 대충 조사가 끝나서 알려주려고. 생각보다 보안이 강하지 않더라."
"그래?"
"응, 악마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더라고. 아마타락시킬 천사들을 데려갈수 있어야 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오, 그러면 우리를 타락시킨다는 명목으로 악마 쪽 유저들이 데리고 들어가면 되겠네."
일단 내부에만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실력행사로 처리하면 충분하다.
당장 들어가는 것부터가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이런 식으로 해결이가능할 줄이야.
생각보다 간단하게 넘어갈 수 있겠네.
"물론 들어가는 것만 그런 거지,내부를 살피는 건 권한이 더 필요해. 우리 같은 쩌리로는 어렵더라."
"그건 이미 예상했어."
그래서 굳이 무력 행사를 기본 선택지로 잡고 있었던 거고.
당연히 악마 측이 내부를 모두 살펴볼 수 있어서, 어렵지 않게 겨울님을 구할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모든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 가능성은 별로 없으니까.
"얀별님, 연락 왔어요?"
"네, 여름님. 그건 다 뭐예요?"
"혹시 필요할까 봐 무기를 좀 샀어요."
"아...."
아연씨가 어느 정도 실력과 스펙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리 열심히 준비하시는 모습이, 겨울님을 구하고싶어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짠해졌다.
이제 정확히 어떤 식으로 계획을 진행할지 짜보고, 최선을 다해서 시행하는 것만 남았다.
"포카야, 여기 두 명이 갈 것 같은데. 감당 가능할 것 같아?"
"충분할 것 같은데?"
"오케이, 그럼 우리가 제물인 척 몰래 들어가서 내부를 테러하는 거로 가자."
물론 테러는 눈속임이고, 그사이에 우리는 겨울님을 찾아야 한다.
혹시나 해서 콘소메님과 수증기님에게 물어봤더니, 아직도 기기의 패닉 수치는 높다고 했다.
그럼 아직도 겨울님은 타락의 탑에서 버텨주고 있다는 거겠지.
계획을 최대한 빨리 진행해야겠네.
"맞다, 저 방송 좀 켤게요."
"네."
아, 작전 시작하기 전에 방송은 켜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