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화 〉30장 - 여름의 미아(6)
"포카 하이. 와, 드디어 만나네."
"오, 진짜로 얀별이가 둘이네. 이쪽이 여름님?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포카님."
아무래도 리트라이는 미니맵이 없고, 게이트 내부 지도는 우리가 가지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 내부에서 구한 지도를 사용해야 했다.
문제는 계속되는 전쟁 때문에 만나는 장소가 애매하다는 거였다.
그래서 처음 약속했던 장소를 못 찾는 상황이 발생해서 조금 헤맸다.
"근데 진짜 쌍둥이 같네. 옷이랑 목소리랑 조금씩 다르긴 한데, 그래도 뭔가 근본적인 느낌이 비슷하다고 할까? 일란성 쌍둥이 느낌."
"어, 그나저나. 악마 쪽도 날개가 있구나."
천사 쪽만 날개가 있고 악마는 뿔인가 했는데.
그냥 날개가 검은색일 뿐이지 크게 다른 디자인은 아니었다.
하긴 그래야 비행 부분에서 불리하지 않겠지.
"아무튼 그냥 얌전히 수레에 실려서 들어가면 끝일 거야. 원래는 기절 상태가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있는데, 지금 시간대 사람이 워낙 대충인 사람이라서 그냥 통과시킬 거거든."
"그런 것까지 조사했어?"
"기본이지."
역시 심플월드 공략파의 짬이 나오는구나.
굳이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준비가 다 되어있었다.
"수고하십니다."
"어."
타락의 탑을 지키던 악마가 대충 손을 흔들더니 길게 하품을 했다.
되게 만사가 귀찮아 보이는 분위기였다.
뭐, 덕분에 우리가 무사히 들어가니까 다행이지.
아연씨와 나는 문제 없이 탑 안에 도착했다.
탑 안에는 사람이 들어가 있는 큐브 느낌의 장비가 잔뜩 들어차 있었다.
이제 여기 들어가면 천사에서 악마로 바뀌는 거겠지.
- ㄷㄷㄷㄷㄷ
- 무슨 큐브방도 아니고
- 큐브방 광고ㅋㅋㅋㅋ
- 오우야
- 타락이라고 하니까 뭔가 야하네
- ㅋㅋ 이 디자인으로 큐브방 만들면 무료 광고 가능
- 무슨 영화 같네
포카는 우리를 할당된 타락용 기계에 내려놓고 조용히 타락의 탑을 빠져나갔다.
괜히 이번 사건에 연관되지 않고 계속 악마 측에서 행동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날개가 보이지 않도록 간단히 변장한 뒤에 겨울님을 찾기 시작했다.
내부가 워낙 어두웠기 때문에 꽤 수상한 차림에 속하는 우리의 상태로도 문제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물론 조금만 더 있으면 들킬 것 같긴 한데....
"그건 뭐예요?"
"USB인데, 이거로 내부를 해킹해서 겨울이의 위치를 알아볼 수 있어요."
"그런 것도 가능해요?"
"무기로 팔고 있던 걸 사 왔어요."
그런 무기도 판매하는구나.
큐브와 비슷하게 생긴 장치에 USB를 넣고, 주변에 우리를 보는 사람이 있는지 경계한다.
그러다가 결과가 나오면 그 결과에 맞는 위치로 다시 이동해서 반복.
"여기서는 층을 올라가야 할 것 같은데요?"
"점점 경비가 삼엄해지네요. 더 위쪽으로 들어가는 건가?"
플레이어는 정화나 타락이 먹히지 않고, 대신 그로 인한 고통으로 인해 패닉 수치만 올라가는 거라고 가정하면.
이제까지 겨울님은 계속 타락이 먹히지 않는 상태였을 것이다.
그럼 이게 여기 악마들 처지에서는 이상한 일이잖아.
그래서 위에 보관된 더 고급형 기계를 사용하거나.
혹은 상태를 자세하게 살피기 위해서 그런 것이 가능한 연구실 같은 위치로 이동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확실히 탑의 상위층에 겨울님이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겠네.
- 잠입 게임이었네
- 진짜 둘 다 어떻게 안들키는 거지?
- 와 시발 깜짝이야
- ㄹㅇ막 움직이는 것 같은데 항상 딱 피해
- 가즈아
- ????
- 방금 먼데ㅋㅋㅋㅋ
"이쪽이 맞네요. 이제 오른쪽 길이요."
"네."
아연씨도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동 방향을 잡을 때 위쪽인지부터 확인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러면 무조건 무력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겠는데?
최대한 조용히 빠져나갈 생각이었는데, 만약 겨울님이 있는 기계가 누군가가 지키고 있는 주요 대상이라면 무조건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충돌이 시작되면 우리 쪽으로 병력이 집중될 거고.
그러면 무조건 대형으로 싸움이 벌어진다.
특히 적군인 천사가 자신들의 제일 중요한 기지까지 쳐들어온 셈이 되니까, 이곳의 경비는 더 삼엄해지겠지.
그 뒤로는 기회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무조건 이번에 성공해야겠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최대한 악마들과 맞닥뜨리지 않으면서 최상위층까지 이동하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딱 거기서 들켰다는 거다.
"누구야!"
아마 여기부터는 일반적인 악마는 출입할 수 없는 모양이다.
이상하게 몸을 가리고 있는 우리를 보자마자 무기를 들이대며 길을 막았다.
그때 상황을 파악한 아연씨가 나에게 말했다.
"얀별님, 저기 중앙에 붉은 기계 보이시죠? 혼자 다른 거."
"네."
"저기예요. 제가 갈 테니까 얀별님이 상대 좀 해주세요."
"네?"
아연씨는 말을 마치자마자 훌쩍 날아오르더니 빠르게 중앙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악마들은 그녀를 막으려고 했고, 나는 그녀의 뒤를 쫓아 날아가서 악마들의 공격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급발진 미쳤네.
"여기 이상으로 지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천사!? 여기까지 쳐들어왔다고?"
"정답."
물론 이곳에 있는 악마들에게 아무런 악감정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여러분을 막아야지 겨울님을 구할 수 있거든요.
그나저나 오랜만에 날개를 펴고 날아다니니까 편안한 느낌이었다.
리트라이를 하던 시절의 감각이라고 해야 하나?
아, 슬슬 마력 좀 충천해야지.
나는 여신의 계략의 스택을 하나 소모해서 마력을 회복했다.
물론 마법의 효과도 증가했기에, 전투도 확실히 수월해진 느낌이 들었다.
"설마 렐릭을 노리고! 이 망할 천사들이!"
"흡!"
몇 명을 제외하고는 그냥 마력으로 만든 방어막만으로도 진입을 막을 수 있었다.
그게 통하지 않는 실력자들도 대부분 A급인 느낌이라, 스택을 소모하기 시작하면 정말 어렵지 않게 제압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뭐, 그래도 최대한 아껴야지.'
굳이 아까운 스택을 소모할 필요가 없으니까.
어차피 나는 겨울님을 구할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되는 거였고.
저들은 나를 쓰러트리고 아연씨까지 제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너무 급해질 필요 없어.
...그렇게 생각하면서 싸우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좀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오래 걸려요?"
"이거 해킹해야 오픈할 수 있어요!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음, 그럼 그냥 끝내는 게 빠를 것 같기도 한데.
시간이 지나면 다른 곳에 있던 병력도 전부 이쪽으로 몰려올 텐데, 그냥 지금 인원은 빠르게 정리하는 것도 괜찮으려나?
나는 판단을 끝내자마자 가지고 있던 마력을 전부 꺼내 들었다.
"일단 마력 남으면 아까우니까 다 쏟아놓고, 스택 하나만 더 쓰자."
스택을 소모하자 소모했던 마력이 최대치까지 차오른다.
스택을 아끼기 위해서 방금까지 적당히 힘을 겨루며 선을 지켰던 것이 무너진다.
내가 쏟아내는 마법의 화력을 이겨내지 못한 악마들이 주춤했다.
"역시 오네."
확실히 탑에 있는 병력 전체라기엔 약하다 싶었는데.
훨씬 많은 인원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른 것보다....
'누가 봐도 혼자 강해 보이는 녀석이 있네.'
솔직히 다른 것보다 그의 검에서 느껴지는 오러가 굉장히 무서운 기운을 품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러는 굉장히 날카롭게 벼린 믿음이라서, 보기만 해도 수준이 느껴질 때가 있다.
'가볍게 간을 보면서 부딪히면 질 거야.'
나는 마법으로 양손 검 하나를 만들면서 집중했다.
1대1의정석은 가장 오래 연습했고, 심플한 설정의 오러를 사용하는 거지.
원래 기본기가 모든 거라는 말도 있잖아.
"천마신공, 제2식"
- 크
- 가즈아
-국룰이지
- 이걸실
- 오?
- 베기!!!
- 얼마만에 보는 2식이지?
- ㄴㅇㄱ
마음을 안정시킨다.
지금은 다른 모든 감정과 생각을 내려놓는다.
해야 하는 생각은 단 하나.
곧 나와 부딪힐 무언가를.
아니 부딪힐 무언가일 필요도 없다.
그저.
베어내는 것만을 생각한다.
"베기!"
콰앙!
상대의 검과 부딪히는 순간 서로 다른 성질의 오러가 반발하며 폭발이 일어나고.
어느 한쪽이 깨지지 않은 상태로 마찰하며 끼긱거리는 소리를 낸다.
"이걸 비기네."
역시 S급 게이트인가?
이 정도로 진심으로 휘두른 1인기가 동수를 이룰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반대로 말하면 나와 검을 맞대고 있는 상대 또한 S급이라는 이야기였다.
"강하군"
"제가 좀 강하죠?"
이제야 방금까지 싸운 악마의 외모가 눈에 들어온다.
아까 전에 우리가 들어오는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악마였다.
그 귀차니스트가 이런 실력자였어?
그런 그의 아까 성격과는 상관없이, 지금 그의 눈 만큼은 올곧게 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처음부터 그의 눈과 오러에 집중하지 않고 외모 때문에 방심했다면 위험했을 거다.
"죄송해요. 제가 이긴 것 같네요."
평범하게 싸운다면 이렇게 비슷한 실력의 상대일 경우 인원수 때문에 내가 밀리겠지만....
나는 평소에 치트키를 챙겨 다니는 스타일이었다.
마법을 사용해서 가지고 있던 A급 마력 심장을 부순다.
그리고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마력을 끌어와서 검에 더하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마력 심장의 마력 그대로 화력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베기로 만들어진 오러에 추진력을 더 해줄 뿐.
하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가 있었다.
"뭐!?"
"제3식, 치트키"
갑자기 강해지는 내 오러의 출력 때문인지 그의 표정에서 당황이 묻어나온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오러에 대한 믿음을 잃는 순간....
빠각!
그의 검이 내 오러를 이겨내지 못하고 부러졌다.
- ㄷㄷㄷㄷㄷㄷㄷ
- 진짜 간지 미쳤네
- 이게 천마?
- 천마! 천마! 천마! 천마!
- 와 ㅅㅂ
- 존나 담담하게 강화하네
- 치트키 ㅇㅈㄹㅋㅋㅋ
- 진짜 존나 쌔네
검술에서 소모품 써가면서 이기면 치트키가 맞지.
다른 악마들은 방금 그 장면을 본 여파인지 함부로 덤벼들지 않고 있었다.
"열었다!"
"정말요?"
아연씨의 말을 듣고 달려갔지만, 기계 안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뭐야, 분명 여기에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아연씨?"
"콜록, 콜록.... 아, 분명 여기였는데?"
"전부 확인한 게 맞으면 나갑시다. 일단 나가서 고민해 봐요."
"네."
분명 성공적으로 기계를 해킹해서 내부를 열었는데.
거기에는 겨울님이 없다니.
그럼 겨울님은 지금 어디에 있다는 거지?
진짜 돌겠네.
"휴, 이쯤이면 쫓아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고생하셨어요. 근데 겨울이가 거기 없다니...."
"분명 기계는 겨울님 위치를 알려준 거죠?"
"네."
혹시나 해서 겨울님의 패닉 수치에 변화가 있는지 물어봤지만.
여전히 강제 로그아웃이 필요한 수준까지 올라가 있다고 답을 받았다.
"아, 얀별님. 이건 제 생각인데요. 혹시 성공한 게 아닐까요?"
"성공이요? 갑자기?"
무슨 뜻으로 한 말이지.
내가 고민에 빠져있자, 아연씨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내가, 아니 우리가 늦었나 싶어서요."
"늦었다? 설마 타락에 성공했을 거라는 거예요?"
"가정해 보는 거죠. 방금 저희가 열었던 기계에서 이미 타락에 성공했다고 칩시다. 그래서 겨울이가 이미 조종당하는 상태가 된 거죠. 이게 그나마 가능성이 크지 않아요?"
흠, 그리고 조종당하는 상태에서는 자신의 의지랑 상관없이 움직이니까 패닉 수치가 높고?
이것도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미치겠네.... 이러면 그냥 악마 쪽에 말해서 다 뒤져봐야 하려나요?"
"그러기엔 너무 맵이...."
"안 되겠죠? 하긴, 아까 타락의 탑 하나 뒤지는 것도 어려웠는데."
나는 이 와중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연씨가 이렇게까지 담담하게 상황을 풀어가는 냉철한 성격이셨나?
분명 나한테 무슨 일 터지면 자기가 달려 나가서 화낼 정도로 감정에 솔직한 분이었는데.
아연씨라면 아까 거기서 겨울님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지금보다 훨씬 당황하셨을 분이다.
지금은 당황했다는 말 자체는 하지만, 예상이라도 했다는 것처럼 해결 방법부터 모색하고 있잖아.
겨울님의 목숨이 달린 건이라 신중하신 건가?
"해피엔딩에 도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완전 실패네요. 그래도 겨울이는 이 순간에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죠? 더 힘내서 찾으러 가죠."
"지금은 그러는 수밖에 없겠네요."
뭐, 내가 너무 민감하게 생각한 거겠지.
지금은 겨울님 찾는 거에 집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