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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3화 〉31장 - 그대를 기다리는 알코르(5) (173/182)



〈 173화 〉31장 - 그대를 기다리는 알코르(5)

아연씨와 나는 한 손씩 사용해서 겨울님을 꽉 붙들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머리카락이 망가질 정도로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시작했다.
뭐, 큐브 안이니까 이런다고 머리카락이 망가질 리는 없겠지만.

"히익, 여름 언니가 둘.... 헤으응...."
"평소에 아연씨한테 많이 어리광부렸나 보네요. 하긴, 그러니까 나를 처음 봤을 때 그렇게 반응이 강했겠구나."
"겨울이가 강한 척하지만, 많이 여린 애거든요."

우리는 헤롱거리는 겨울님을 보면서 귀엽다고 키득거렸다.
원래 겨울님은 장난기가 있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당찬 이미지였다.
하지만 평소에 우리한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아연씨가 엄청나게 귀여워해 주고 있었겠네.

"아, 잠시만요. 편집자한테 연락이 와서.... 좀 민감할 수 있는 거라 써도 될지 물어보네요."
"편하게 확인하고 오세요. 큐브온 업로드가 먼저죠. 저도 기다리고 있어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실히 이번 공략이 그런 부분이 좀 많았지.
이 자리에 아연씨랑 겨울님도 있으니까 겸사겸사 물어보면 되겠다.
나는 주현씨가 보낸 영상 파일을 실행시켰다.

「아, 지한씨도 아시죠? 수호령이라는 거. 뭐, 최근에 방송에서 스능되도 하셨으니까 아실 수밖에 없겠지만....」
「완전 착각하고 있었네요....」
「파도 파도 괴담이라고생각하는 건 아니죠? 맞아요. 만나러 가지 않았던 게 아니에요. 만날 수 없는 몸이었던 거지.」

"아니 이건 못쓰지."

시작부터 실시간 방송이 아닌 녹화된 내용이 흘러나왔다.
이건 주현씨도 내보낼  없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왜 굳이 파일로 만들어서 보내준 거지?
그나저나 자막에 있는  글자를 왜 복사해서 위로...?

「그래도 너무 슬퍼하거나 불쌍하게 생각하지는 마세요. 겨울이 덕분에 사실상 되살아난 거나 마찬가지니까.」
「......」
「만족하고 있으니까 너무 불쌍하게 보지 마세요.」

"아, 파? 그, 만...."

어라, 뭔가 이상한데.
왜 조종당하던 아연씨가 했던 말의 앞 글자를 모으니까 그럴듯하게....

「구할 수 있겠죠....」
「겨울님이요? 당연히 그래야죠.」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설화님도 굉장히 동생 걱정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줘도  받네요. 그렇게 겨울이 덕분에 행복했는데, 저는 이렇게 행복해질 기회를 줘도 받지를 못해요.」

아파, 그만 구해줘.
최종적으로 완성된 자막은 그런 문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게 뭐지? 뭔가 뒤통수를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홀린 듯이 다음 영상을 재생시켰다.

「내가, 아니 우리가 늦었나 싶어서요.」
「늦었다? 설마 타락에 성공했을 거라는 거예요?」
「가정해 보는 거죠. 방금 저희가 열었던 기계에서 이미 타락에 성공했다고 칩시다. 그래서 겨울이가 이미 조종당하는 상태가 된 거죠. 이게 그나마 가능성이 크지 않아요?」
"......."
「미치겠네.... 이러면 그냥 악마 쪽에 말해서 다 뒤져봐야 하려나요?」
「그러기엔 너무 맵이....」
「안 되겠죠? 하긴, 아까 타락의  하나 뒤지는 것도 어려웠는데.」
「......」
「해피엔딩에 도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완전 실패네요. 그래도 겨울이는  순간에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죠? 더 힘내서 찾으러 가죠.」

[내가 미안해]

나는 말없이 아연씨를 붙잡았다.
그러다 아연씨가 대체  그러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나는 그대로 그녀를 껴안았다.
나는 왜 눈치채지 못했던 거지?

「정말 그릇 같죠? 지금부터 작업 시작할게요.」
「넵. 그건 뭐예요?」
「말  해드렸던가요? 이게 렐릭이라는 건데, 이 기계를 동작시키는 데 필요한 열쇠 같은 거예요.」
「.......」
「싫더라도 가만히 있어봐.... 아, 기계한테 말한 거예요.」
「기계도 반항해요?」
「어우, 그러네요. 이러면 조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혹시 바깥에서 대기하면서 누가 오면 막아주시겠어요?」

[정말 싫어]

아연씨는 정말로 그냥 조종만 당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패닉수치가 올라갈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우리에게 뭐라도 말해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얀별님.」
「여름님, 거짓말이 장난이 아니시던데요?」
「별로 그렇게 대단한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요? 대부분 진짜였잖아요.」
「대상이 거꾸로라는 것만 빼면 그렇긴 하네요.」
「님도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다행이에요.」
"......."
「고통스럽나봐요? 자기한테 소중한 사람을 그런 식으로 이용당해서.」
「당연하죠. 이런 상황에서까지 시간을 끌려고 한다는 게 참 화날 정도로요.」
「마지막 인사를 해두시는  어떨까요? 아마도 이번에도 제가 이길 것 같고, 그럼 이분이랑도 평생 만나지 못할 것 같은데.」
「지랄하네. 절대로 그럴 일 없어. 여름님 몸에서 썩 꺼져! 이 더러운 천사야!」
「워, 워.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
「요점은 렐릭과 신화의 그릇이 단독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도, 세 개가 모이면 뭔가 다른 것이 된다는 거죠.」

[얀별님 고마워요]

가슴이 답답해진다.
분명 말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내가 기다리고 있었다고, 이렇게나 고통스러웠다고, 소리치고 있었다고.
말해 줄 수 있었잖아.
농담처럼 흘러가는 말로라도, 미안하다는 말 대신 나도 노력했다는 말을 할  있었잖아.

"왜, 왜  안 했어요?"
"뭐가요? 그, 지한씨?  숨 막혀요."
"왜   했냐고 이 멍청아!"
"뭐야, 얀별님.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굳이 힘든 기억을 들추고 싶지는 않아서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건 좀 원망해도 좋잖아.
미안하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바보들아! 왜 알아봐 주지 못했어!
그렇게 말하면서 화낼 수도 있었잖아.

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들을 위해서 영상 공유를 실행했다.
다만 영상을 굳이 이전 것을 새로 재생할 필요는 없었다.
아직도 다른 것들이 남아있었으니까.

「죄송하지만, 제가 하얀별님의 수준 파악도 하지 못한 상태로 싸움을 걸었을 리가 없잖아요? 방송으로 싸우는 걸 자주 봤는데, 그걸 모를까.」
「...네가 여름님인 것처럼 말하지 마!」
「송구합니다만, 저한테도 같은 기억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프라이버시 정도는 지키고 있잖아요?」
「닥쳐!」
「해보니까 그렇게 어렵지 않더라고요. 천마신공 제2식, 베기!」
「미친!?」
「요로코롬. 똑같이 할만한 실력은 되거든요.」

[죄송해요]

"이거 뭐예요? 잠시만.... 여름 언니 거짓말했어!? 기억 안 난다고 했잖아!"
"겨, 겨울아?  진정하고...."
"계속 고통스러웠던 거 맞잖아! 계속 우리한테  걸고 있었던 거예요? 우린 그것도 모르고...."
"......."

아연씨는 말없이 우리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이 영상의 상황을 기억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녀는 고통받으면서도, 그 망할 가짜 의식에 저항하려고 우리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있었다.
심지어 우리가 걱정할까 봐 통증 같은  모른다고,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었다.

「지랄하고 있네, 헛소리 할거면.... 읏!?」
「천마신공, 제2식. 베기! ...슬슬 항복하지?」
「한 번 밀렸을 뿐이야. 이제 30분 남았고, 이거만 버티면 우리의 승리야.」
「천마신공, 제3식. ...치트키!」
「씨발!?」

"지한씨"
"바보같아...."

나는 그녀를 껴안고 있는 팔에 가득 힘을 줬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머릿속에 여러 말이 뒤섞여서 엉망진창이 된다.
해야  말을 잊어버리고 만다.

"울지 마세요. 저는 정말로 괜찮으니까."
"언니...."
"다음부터, 다음에 또.... 이런 식으로 아픈 거 숨기면 진짜.... 방송 밴일 줄 알아요."
"그렇게 고민하고 하는 말이 그거에요?"
"...그렇다고 나쁜 말은 못하잖아요. 이렇게 착한 사람한테."
"지한씨 답네요."

어느새 나랑 겨울님이 아연씨한테 매달려 있는 모습이 되었다.
그런데도 왠지 그녀의 손을 놓을 수가 없어서, 말없이  상태를 유지했다.

"둘 다 울보네. 우리 상남자 같던 지한씨는 어디로 갔담?"
"내, 내가 언제 울었다고...."
"지금요. 뭐, 사실 지한씨는 항상 이랬지만요."
"또 말 돌린다...."

 말이 뭔가 재밌게 들렸는지 아연씨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리고는 나와 겨울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저는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어요. 오히려 기뻤거든요?"
"......."
"신체적으로는 정말 아팠죠. 근데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고, 저는 그렇게 겨울이를 구해주려는 지한씨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정말 든든했어요. 구해야 하는 게 나라는 걸 알면 최선을 다해줄 테니까."
"너무, 너무 늦었잖아요....."
"안 늦었어요. 정말로 지한씨는 저를 구해주러 왔잖아요? 최선을 다해서 검을 휘둘렀잖아요."
"저, 저는...."
"그 검에 담겨있던 지한씨의 마음 덕분에 얼마나 행복했는데요. 지한씨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어요. 자책하지 마세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착해빠졌을까.
나는 뭐라 반박도 하지 못한 채로 그냥 그녀의 온기를 느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겨울님도 마찬가지였는지, 한숨만 푹 쉬고는 아연씨의 볼을 꼬집으며 화를 낼 뿐이었다.

"으븝, 왜 그래에...."
"진짜 언니는 혼나야 한다니까?"
"히잉...."
"에휴, 내가 진짜 왜 이렇게 호구 같은 언니를 만나서 고생인지."
"고생이 아니라 행복이겠지만요."
"사실 그렇긴 하네요."

뭔가 통하는 느낌이 들어서 겨울님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정말, 아연씨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말려도 이런 흑우 짓을 그만두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지한씨도 딱히 다르지는 않잖아요?"
"제, 제가요?"
"아직 겨울이한테도 풀지 않은 썰이  많은데.... 여기서 얼굴 좀 붉어지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아, 아악! 하지 마세요. 뭔지 알 것 같아서 더 싫어!"
"뭔데! 왜 언니, 뭔데! 빨리 말해줘!"
"그건 안 돼요!"

저 유령 분명히 미화를 엄청나게 먹여서 말할 것이 틀림없었다.
높은 확률로 여기 넘어오기 직전에 있었던  사건이겠지.
그냥 내가 멍청해서 당한 걸, 뭘 미담이라는 듯이 이야기하려는 거야.

"조심하세요?"
"넵...."

생각해보니까  세계에서 유일하게 내 7년 치 흑역사를 보너스로 가진 사람은 아연씨밖에 없네.
다른 사람한테는 다 깝쳐도 아연씨한테는 깝치면 안 되겠는데....

"아,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라 답장하는 걸 잊어버렸네.... 저 연출로 큐브온에 써도 되냐고 편집자한테 연락이 왔거든요? 어떻게 할까요."
"괜찮아요. 지한씨한테 피해 없는 선에서 처리해 주세요."
"아, 그럼 편집할 때 저희 팀명도 같이 적어주시면  되나요? 저희 이제 방송 시작할 건데."
"그거 광고 효과 괜찮겠네요. 그렇게 할게요."

아마 저번에 겨울님이 말했던 둘이서 진행하는 방송 채널을 말하는 거겠지.
혹시 모르니까 자막 색상도 물어봐야겠다.

"여름 괄호 페어리즈에 겨울 괄호 페어리즈.... 이런 느낌이면 되겠네요? 색은 각기 분홍색이랑 하늘색. 이렇게 말해둘게요?"
"네, 그럼 될  같아요."

페어리즈라.
일단 기억에 확 남을 법한 이름이긴 하네.
그나저나 나 뭐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더 있었던  같은데....

"아, 아연씨. 혹시 그 가짜 NPC가 움직인 컨트롤, 정말로 아연씨 평소 실력이 그래요?"
"거기까진 아니에요.... 오러가 훨씬 안정적이던데요?"
"그거 말고는요?"
"비슷, 했나?"
"...나도 재능 좀 있었다 싶었는데, 이 몸으로 이렇게 느려서 죄송합니다."
"그, 그게 아니에요! 체험모드로 방송을 보면 같은 몸이라서 그런지 엄청나게 느낌이 잘 온다고 해야 하나? 그대로 따라  수 있더라고요."
"다른 방송은  되고,  방송만요?"
"네."

내가 밟아온 길을 그대로 밟아서 급성장하는 게 가능하다는 거구나.
물론 체험모드의 특성상 생방으로만 느낄 수 있지만, 사건이 터지기 전에 재활하는 느낌으로 꽤 많이 시청했다고 했다.

"저도 좀 자신이 있었는데, 여름 언니 성장 속도 보고 얼마나 황당했는데요. 이런 괴물이랑 같이 방송할 생각을 하니까 손이 떨리고 발이 떨리고 마력이 떨려요."
"좋다는 뜻이죠?"
"질투가 나는 건 사실인데, 그래도 떨리는 건 좋아서 그런 거긴 해요."

평소에 겨울님이 방송에 나오는데도 태연하게 말했던 점이나.
7년간 하꼬 방송의매니저 일을 하면서 다져진 아연씨의 멘탈이나.
여러 점을 생각할  전혀 걱정되지 않는 파티였다.

"아, 시청자 뺏기지 않게 열심히 해야겠네요."
"으악! 대기업이 신입 스트리머 경계한다!"
"말이 신입이지 너무 무시무시한 신입이잖아요."

심지어 이번 S급 게이트의 공략 때문에 이슈가  수밖에 없으니까.
뭐, 원래라면 출시도 하지 않은 리트라이의 영상 정도로 이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겠지만....

[큐브 신작 게임 리트라이에서 한국인 전원을 대상으로 베타 테스트 인원 확충 실시!]

지금 우리는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상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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