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화 〉32장 - 어떻게 사람 이름이 응우옌(4)
"일단 이 근처에 있는 건 다 묶어둔 것 같네요. 고생하셨어요."
"체온을 보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네요. 진짜 좀비인가?"
"이게 치료약이 먹힐까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굳이 음식을 먹이지 않아도 버틸 것 같긴 하네요."
혹시나 해서 식량을 건넸지만, 굳이 먹으려는 생각 자체가 없어 보였다.
감염자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그저 비감염자를 물어뜯어서 혈독을 옮기는 번식 본능뿐이라고 해야 하나?
전형적인 좀비의 설정과 유사하네.
- 와 진짜 징그럽네
- 좀비는 좀 어지럽네
- 무협이니까 강시아님?
- 으 냄새
- 오늘만큼은 체험모드의 패배를 인정합니다
- 개역겹다 진짜
- 근데 ㄹㅇ 무공쓰는 거 보면 살아있는 것 같은데
내가 살려야겠다고 판단한 이유도 그거였다.
좀비들은 생전에사용하던 무공을 사용했고, 나는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서 게이머의 혼을 천마신공으로 스위칭해야 했다.
아무튼 저 사람들은 불쌍한 피해자들이니까, 구할 가능성이 있다면 노력해보고 싶었다.
"대부분이 침식 때문에 떨어진 사람들이죠?"
"네, 아마 이쪽이 문이라 그런가 봐요."
절반 정도는 옛날에 입을 법한 구시대의 복장이었지만, 나머지는 더럽긴 해도 요즘 시대의 옷들이었다.
아마도 침식 때문에 이곳에 떨어진 베트남 사람들이겠지.
"일단 숲을 벗어나 보죠. 분명 밖에도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넵."
아무리 좀비가 창궐해서 난리가 났다고 쳐도.
여기 세계관이 무협인 이상 살아남은 사람들이 꽤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혈교에 대한 힌트를 얻는 것이 가장 먼저겠지.
물론 혈교가 아니라 다른 집단일 수도 있지만.
그건 뭐 결국 이름만 다르지 혈교랑 다를 바가 없을 테니까.
하여튼 이건 인위적인 누군가가 만든 물건일 가능성이 컸다.
그게 아니더라도 치료제나 백신을 만들 방법이 존재하겠지.
그렇다면 그것에 대한 힌트라도 얻어야 했다.
"잠시만요."
한참을 이동했을까.
인위적으로 길을 터놓은 것으로 보이는 큰 비포장도로 비슷한 것이 나왔다.
아까까지 우리가 지나온 길이 사람만 다닐 수준이었다면, 여기라면 마차도 충분히 이동할 수 있겠는데.
"저쪽이네요. 바퀴 자국이 있어요."
- 오
- 드디어 사람 만나나?
- 근데 새외무림이면 여기가 ㅇㄷ지?
- 베트남이면 남만쪽 아닌가?
- 이상한 소리 들리는데
- 아 제발
- 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럼 그렇지
망할.
나는 다리에 마력을, 아니 내공(內功)을 밀어 넣고 박찼다.
우르르 몰려있는 감염자들과 그런 감염자들이 공격하지 않는 수상한 복면을 쓴 녀석들.
그리고 그들과 대치하고 싸우고 있는 사람들까지.
너무 뻔한 전개라서 황당할 정도였다.
이건 딱 봐도 우리보고 구해놓으라는 소리인데?
"흡!"
급하게 끼어든 내가 검을 휘두르자, 복면인은 단검을 집어던지며 물러섰다.
날에 거무튀튀한 뭔가가 묻어있는 걸 보면 독인가?
아니면 피가 눌어붙었던가, 어느 쪽이든 저런 것에 맞아줄 이유는 없었다.
"다, 당신들은...."
"괜찮으신가요!?"
"소문주님! 상처가 심하십니다. 움직이시면...."
"괜찮아요. 장로님.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제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세함으로써 자신들의 전력이 밀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복면인들은 상황을 보다가 급하게 숲속으로 숨어서 사라졌다.
높은 확률로 저 녀석들이 혈교겠지.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남만야수궁의 소문주인 대묘라고 합니다. 은인분들은 처음 보는 복장을 하고 계시는데, 혹시 서역에서 오신 분들입니까?"
"천마신교의 교주인 천마 하얀별이라고 합니다. 남만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천마라면.... 마, 아니.... 크흠. 중원에서 오신 분이었군요."
[미션 성공: 자신을 천마라고 소개하기]
- 91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자연스러웠다
- 90만원은 못참지
- 마교라고 하려다가 멈칫했네ㅋㅋㅋㅋ
- 스윗천마라 다행이네
- ㄹㅇ 스윗천마 아니면 목 날아갔지
- 돌겠다 진짜ㅋㅋㅋㅋㅋ
- 스윗천마ㅇㅈㄹㅋㅋㅋ
또 이상한 별명 만들고 있네.
근데 어차피 여기는 중원도 아니고 새외무림이잖아?
천마 좀 사칭한다고 큰일이 나겠어?
그리고 정 뭐하면 우리 천마신교를 게이트로 투입하면 거짓말이 아니게 된다.
그냥 동명의 단체일 뿐이지.
나도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한 짓이었다.
"뭐, 저희 교단이 사파로 여겨지는 건 흔한 일이죠. 그래서 저들은 뭐 하는 이들이기에 대묘님을 습격한 겁니까? 묘한 강시도 부리던데요."
"그, 그것이.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갑자기 창궐한 혈독이라고 불리는 전염병입니다. 피가 섞이면 감염되고, 감염된 상태면 죽은 것 같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죠."
"그럼 저들이 그 전염병을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여기도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상태는 아닌가?
그나저나 남만야수궁이면 상형권을 쓸 텐데, 상처가 나면 위험한 좀비를 상대로는 꽤나 불리하겠네.
심지어 만약 감염되어서 좀비가 상형권을 쓰면 도구를 요구하지 않기에더 골치가 아파진다.
"까다롭네...."
"예?"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분의 안내를 받아서 남만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런 강시들에게 습격을 받았습니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더니, 역시 일이 터진 거였군요."
"큼....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그럼 염치없지만 조금만 신세를 지겠습니다."
"네? 아, 넵."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염치없는거 맞음?
- 아ㅋㅋ 꼬우면 네가 생명의 은인 하던가
- 당당할만하지
- 심지어 악명 깊은 천마?
- 가불기걸렸네
- 근데 솔직히 구해줬는데 신세 좀 져도 괜찮지
아니 그렇게 말하면 제가 쓰레기 같잖아요.
내가 말하려던 의도는 이게 아니었는데....
"아, 제가 갈 곳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또 습격받으실까 걱정이 되어서...."
"알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 뭔가 협박당한 사람처럼 말하지 말라고요.
진짜로 걱정돼서 따라가려는 거였는데.
어차피 식량은 충분히 가지고 들어와서 굳이 대접받을 필요는 없었다.
"장로님, 포기하고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상태로 오독문까지 가는 건 무리인 것 같아요."
"예 소문주님. 돌아갈 준비를 하라고 명해두겠습니다."
우리는 남만야수궁으로 돌아가는 동안 이제까지 있었던 일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남만야수궁은 현재 문주와 그 부인이 독살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남만 지역에 혈독이 퍼져나갔고, 소문주인 대묘가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구르고 있다는 소리였다.
"태웅 장로님이 도와주신 덕에 최대한 안정화하는 건 성공했지만.... 결국 치료제를 구하는 것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던 도중에 오독문에서 치료제를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서 찾아가려던 도중이었습니다."
"오독문이라.... 확실히 독에 조예가 깊은 곳이니 혈독의 치료제를 만들었을 수도 있겠군요."
병 이름이 굳이 혈독인 이유가 있을 거다.
분위기만 보면 그냥 바이러스 같은 전염병 같지만, 실제로는 독이라서 해독제를 구해야 하는 식일 가능성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런 경우에는 당연히 독을 연구하는오독문이 해독제를 만들 가능성이 크겠지.
"그럼 오독문에 해독제가 있다는 소리군요."
"소문일 뿐이라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남만 전체가 이렇게 혈독에 감염된 이들로 가득한 것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혈교가 오독문으로 가는 남만야수궁을공격했다.
이러면 정말 오독문이 치료제, 아니 해독약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방금 그 녀석들도 독을 사용했죠. 독공까지는 익히지 않은 것 같았지만.... 좀 의심이 가는군요."
"설마, 저희 부모님이 돌아가신 게...."
"그들의 소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남만야수궁의 문주님이 혈독을 퍼트리는 것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죠."
아니면 반대로 혈독 조차도 남만야수궁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일지 모른다.
하여튼 혈교의 목표에 있어서 남만야수궁이 방해라고 판단된 건 확실하다.
그럼 우리는 남만야수궁을 지키는 걸로 시작하면 되겠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유 소저에게도요."
"태웅 장로님이셨던가요? 저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혈독을 이용하는 그놈들은 선을 넘었어요."
오히려 우리야말로 남만야수궁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최대한 빨리 치료제의 행방을 찾아서 상황을 해결해야 하니까.
혈독의 특성상 시간을 끌면 끌수록 피해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 연유로, 저희는 남만야수궁에 신세를 지면서 혈독을 해결하는 것에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희야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번 습격으로 그놈들이 혈독을 만들었다는 것도 확실해진 상황이고, 심지어 문주님을 살해한 범인일 가능성도 있으니.... 그들을 잡는 것에도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결론은 이러했다.
제일 중요한 목표는 혈독을 해결할 수 있는 치료제를 찾아내는 것.
정확히는 치료제도 치료제인데 만드는 방법 자체를 얻는 거겠지.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조건 혈교는 우리를 방해하러 올 것이다.
그럼 우리는 겸사겸사 혈교도 붙잡는 것.
이 두 개의 목표는 결국 남만야수궁이 앞으로 가질 목표와도 다르지 않다.
목표가 같다면 당연히 함께할 수도 있는 법이지.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소문주님의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정말 아무것도 필요 없으십니까?"
"정말 괜찮습니다."
어차피 여기에서 갑자기 성유물이 튀어나올 리도 없고, 정말 있다고 한들 그걸 줄 리가 없으니까.
그래도 우리한테 뭔가를 주고 싶은지 그는 계속 고민하던 끝에 타겟을 변경했다.
"그나저나, 이유 소저는 본래 남만에 살던 이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네, 그렇습니다."
"흠.... 그렇다면 혹시, 지금 어디 문파에 소속이 되어 있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무림과 관련이 없는 집단의 수장을 맡고 있었죠."
"...혹시 간단한 시험을 받아볼 생각이 있으십니까?"
태웅 장로는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는지 이유씨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딱히 거절할만한 이유도 없었기에, 이유씨는 고개를 끄덕였고.
장로는 책장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 중에서 마음에 동하는 것이 있다면 집어보시겠습니까?"
- ?
- 오...
- 기연ㄷㄷ
- 이걸 천마라 못받네
- 아ㅋㅋㅋ
- 이걸 김사랑이 받네
- 재롱은 하얀별이 부리고 보상은 응우옌이 받네
- 헉!
이런 방향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래도 뭐 이유씨라도 뭘 받으면 좋은 거겠지.
어차피 추후 S급 게이트 공략에도 이유씨를 끌고 가서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으니까.
"이거요."
책장의 책들은 뒤집혀 있어서 제목을 미리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유씨는 꽤 많은 책 사이에서 고민하더니, 중앙쯤에 있던 것을 하나 골라서 꺼냈다.
그 책에는 패천권법(狈穿拳法)이라고 적혀있었다.
"역시, 남만과 제대로 인연이 있는 분이셨군요. 저번 세대에서 명이 끊겼던 늑대라...."
"저 무공이 특별한 건가 봅니다?"
"남만야수궁에는 각기 동물을 대표하는 독문무공이 존재합니다. 패천권법은 늑대를 대표하는 독문무공이죠. 한동안 맥이 끊겨서, 익히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무공서로만 남아있는 상태라고 했다.
태웅 장로는 그녀에게서 늑대에 가까운 눈동자를 보았고.
따라서 혹시 늑대의 자리를 이어줄 수 있는 사람인가 싶어서 확인했다고 한다.
"원리는 잊혔지만, 남만야수궁의 무공서들은주인을 찾아갑니다. 아마 패천권법과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절대로 찾지 못했겠지요. 저도 실물을 처음 봅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무공서들을 통해 일종의 진법을 완성해놨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지만, 정확한 원리 자체는 저희도 모릅니다. 궁금하시면 직접 하나 골라보시겠습니까?"
"네."
나는 책장에 있는 책들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분명 아까 저 가운데에서 책을 꺼낸 것 같은데, 어느새 새로운 책이 자리하고 있었다.
신기하긴 하네....
"이거로 하겠습니다."
나는 아까 이유씨가 꺼낸 자리의 바로 왼쪽에 있는 책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제목을 확인하니, 환음기행(幻淫紀行)이라고 적혀있었다.
이거 무공서가 아닌 것 같은데...?
"이건 대체 뭡니까?"
"그것이.... 음양의 교접을 하는 내용이 담긴 서적입니다."
야설이라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