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처음.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든은 수련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야만 했다.
단순히 내공을 빨리 쌓는데 그치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시각을 극복하기 위해 기감과 신경을 평시에도 늘 일체화시키는 것.
붕붕붕….
이든이 몸을 풀 듯 허공에 나무 막대를 휘둘렀다.
한참 덜 자란 고사리 같은 손에서 제법 그럴듯한 손놀림이 나왔다.
“오오!!!! 이든! 대단한데!!!”
의도한 것이 아닌 묘기에 루디가 곧바로 환호성 지르자 이든이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참 적응 안 되네.’
당연하지.
과거 천마신교의 무신으로 숭배받던 그가, 새파랗게 어린놈과 대련이라니. 전생의 세인들이 봤다면 손가락질 하며 혀를 찼을 것이다.
하지만…
“준비됐어?”
지금까지 수련의 성과를 확인하기엔 이만한 것도 없었다.
‘적당히 놀아주는 척하면서 수련하는 거지. 끌끌…’
이든의 물음에 루디가 신나서 대답했다.
“당연하지. 괜히 맞고 울지 마라, 이든!”
‘풉!’
내가 져서 울어!?
이든이 헛웃음을 삼키곤 재차 표정을 관리했다.
“뭐, 내가 질 리는 없지만, 날 한 대라도 때리면 매일 너랑 놀아줄게.”
“헛,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했던 이든의 제안에 루디가 재차 물었다.
“그럼! 난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놀자고 시작했던 것이 호언장담하는 이든의 모습에 루디의 기세가 사뭇 진지해졌다.
이든이 웃음을 머금었다.
‘애는 애인가. 이런 말에 금세 기세가 달라지는 것이 귀엽군.’
입가에 지어졌던 미소도 잠시, 이든도 한껏 진지해지며 천마심공의 마기(魔氣)로 전신의 기감을 자극했다.
일순 깜깜했던 세상이 환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온 주변의 기척이 그의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박….
루디의 발걸음 소리.
스윽….
루디가 쥔 막대기가 움직이는 소리.
후우….
루디의 숨소리마저 놓치지 않고, 그의 기감에 잡혔다.
“간닷!!!!”
먼저 움직일 생각을 않는 이든의 모습에 루디가 선수를 치려는 듯 발을 구르며 달려들었다.
후웅…!
일곱에서 여덟 살이나 됐을까.
아이가 휘둘러 봤자 얼마나 위협적이겠냐마는 이든의 얼굴엔 장난기라곤 없는 진지한 모습이었다.
휘릭!
이든이 몸을 살짝 비틀어 루디의 공격을 흘리자, 전력으로 달리던 힘을 주체할 수 없었던 루디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꿍!!
“이크!”
“뭐야. 지금 눈이 안 보이는 나도 못 맞추는 거야?”
아무리 아이라지만 이대로는 별 훈련이 되질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이든이 비아냥거리며 루디를 자극했다.
애는 애인지 별것도 아닌 도발에 흥분해서는 루디의 얼굴이 금세 붉어진다.
“이잇! 각오해. 이든!”
평소 루디의 성격이라면 넘어지기 무섭게 울음을 터트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든의 도발에 아픈 것도 잊고 재빨리 일어서 재차 막대기를 휘둘렀다.
훙~! 훙~!!
어디서 본 것은 있는지 자세는 제법 그럴듯한데, 무슨 생각 중일까.
공격을 피하는 이든의 표정은 어째선지 한 점 변화가 없다.
‘확실히 일차적으로 눈으로 보고 기척을 느끼는 것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오로지 기척만으로 피하는 건 확연한 차이가 있군. 내공 수준은 이미 일류를 훌쩍 넘어섰지만, 겨우 이정도론 택도 없지. 여전히 불편한 건 어쩔 수 없군.’
아직 일곱 살에 불과하지만,
신교. 더 나아가 무림 제일 심법인 천마심공 덕에 이 나이엔 절대로 불가능한 내공을 쌓아 올린 그였다.
다만 마기의 대부분이 보이지 않는 눈을 대신해 기감에 사용됐기에, 활용할 수 있는 내공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딱!
이든이 고민에 심취하던 그때. 매섭게 노려오던 루디의 막대기가 이든의 바로 코앞에서 막힌다.
루디가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했다.
“…어?”
“어? 는 무슨. 요놈이 아주 죽기살기로 휘두르는 것 보게.”
이든이 검을 살짝 늘어뜨리곤, 루디의 볼기를 쳐댔다.
퍽.퍽.
“아! 아야! 야! 아파아!!!”
단순히 엉덩이만 노리는 것 같은데, 어째선지 루디는 이든의 막대기를 도무지 막을 수가 없었다. 루디가 얼얼해진 엉덩일 부여잡고는 꽥 소릴 질러댔다.
“아프잖아. 바보야!!!”
“…응?”
나름 살살 했다고 생각했는데?
살짝 울음 섞인 듯한 루디의 목소리에 이든이 곤란한 얼굴로 물었다.
“마, 많이 아팠냐…?”
“…훌쩍.”
이든이 멋쩍은 듯 볼을 긁적였다.
놀이를 빙자한 수련이었지만, 애를 울리다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나 갈래…!”
루디가 욱신거리는 볼기를 문지르며 걸음을 떼던 그때.
이든이 황급히 그를 붙잡았다.
“야, 야…!”
“…”
“앞으로 내가 매일 놀아줄게. 됐지? 응?”
“진짜…?”
“그래. 그러니까 오늘 있던 일은 엄마한테 이르기 없기다?”
“…아라떠.”
“사나이끼리 약속이다. 엉?”
이딴 일로 사나이끼리의 약속이라니 과거 무진이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참 웃지못할 모습이다.
“응. 사나이끼리 약속!”
“하하… 그래그래.”
그래도 애는 애라고.
이런 거로 화가 금세 풀린다.
싱글벙글한 루디의 목소리에 이든이 한숨을 푹 쉬다가 이내 표정을 풀었다.
‘귀찮겠지만 잘된 일이야. 앞으론 저 꼬맹이를 상대로 실전 연습에 치중해야겠어.’
물론 그마저 수련으로 써먹기 위한 이든의 노림수였지만.
***
그날 저녁.
집으로 들어선 이든은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향했다.
그때, 방 안에서 그의 어머니 메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든이니?”
“예. 어머님.”
“왜 또 주방에 가 있어. 엄마가 알아서 저녁 차릴 텐데.”
“저도 이제 곧잘 하는 거 아시잖아요. 전 괜찮으니 들어가서 쉬십시오.”
늦은 나이에 이든을 가졌던 것이 원인이었을까.
최근 몇 년 사이, 메리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든이 한참이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훨씬 의젓했다는 것이다.
당연하지. 애가 애가 아닌데…
달그락.
탁탁탁.
주방에 쌓여 있던 식기 도구들을 정리하고, 능숙하게 재료를 손질하는 이든의 모습은 도저히 시각 장애가 있는 사람의 움직임이라곤 생각하기 힘들었다.
‘어쩜. 누굴 닮아 저리 어른스러운지.’
집안일을 돕는 이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메리는 정말이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이가 가진 장애도 장애지만, 남편과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든과 오랜 시간을 함께 못 할진대, 이 아이를 두고 어찌 세상을 떠날까 하는 노파심에서였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이든은 자신의 처지에 불평하지도 않았고, 또래의 아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너무 의젓하게 잘 자라주었다.
“어머님. 몸은 좀 어떠십니까?”
“으응. 괜찮구나.”
눈이 보이질 않음에도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보는 이든의 모습은, 볼 때마다 신기했다.
“다행입니다. 하루빨리 더 좋아지셔야 할 텐데 말입니다.”
이든이 준비하는 저녁은 고기 스튜였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없는 살림은 아니었기에 끼니는 항상 부족함 없이 차렸다.
최근엔 메리의 건강이 안 좋아진 탓에 넘기기 쉽도록 부드러운 스튜 요리를 주로 먹었다.
이든의 능숙한 움직임에 저녁은 늦지 않게 금방 준비되었다.
“어머니, 식사하십시오.”
“그래.”
고소한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지고, 메리가 막 차려진 상 앞에 앉던 그때.
그녀의 남편인 브라운이 막일을 끝내고 들어섰다.
“어디서 이리 맛있는 냄새가 나나 했더니, 우리 집에서 나던 냄새였군!”
“왔어요, 여보.”
“몸은 좀 어때?”
“괜찮아요. 지금은 혼자 걸을 만해요.”
“다행이야…. 어서 빨리 기운 차려야지.”
브라운이 메리의 손을 꼭 잡았다. 최근 들어 급격히 나빠진 메리의 건강에 그는 매일 부인의 걱정뿐이었다.
“이것 봐요. 이든이 차린 저녁이요.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느는 것 같아요.”
메리의 말에 비로소 브라운의 눈이 상으로 향했다.
몇 년 전부터 아픈 엄마를 대신하여 혼자서 저녁 준비를 해온 아들.
참으로 대견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게 말이야. 자 그럼 어서들 숟가락들 들자고. 잘 먹으마, 아들.”
“맛있게 드십시오. 어머님, 아버님.”
브라운과 메리가 숟가락을 든 후. 이든도 자리에 앉아 스튜를 한 술 들었다.
맛이 꽤 좋았던 모양인지 브라운과 메리의 얼굴에 미소가 폈다.
“스튜가 입에 맞으십니까?”
“으음. 고소하니 아주 맛있구나. 고기 스튜 만드는 법은 누구한테 배웠다고?”
“옆집 루디네 어머님한테 배웠습니다.”
“아아! 도나 부인 말이구나. 그래. 루디랑은 여전히 잘 지내고 있고?”
루디와 잘 지내고 있냐는 물음에 백전노장 이든도 순간 당황했는지, 흐지부지 답했다.
“예. 나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평소답지 않은 그의 모습에 브라운이 의아한 얼굴을 하다가,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얼마 전에 장터에서 루디를 만났는데, 그 아이 책을 정말 열심히 읽더군. 벌써부터 마법서를 유심히 보던데, 루디가 이든이랑 동갑이었지. 아마?”
브라운의 물음에 이든이 고갤 천천히 주억거렸다.
사실…. 걔 나이 같은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거든.
“예. 아마도…? 동갑일 겁니다.”
“그래서 내가 루디한테 왜 벌써부터 이리 어려운 책을 열심히 읽느냐고 물으니까. 루디 그 녀석이 하는 말이, 자긴 꼭 황실 마법사가 될 거라더군.”
이든은 줄곧 마법사라는 존재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마법에 관해서는 루디에게 지겹도록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백날 말로 들어봐야 얼마나 알겠는가. 설상가상 눈까지 보이지 않으니 현재로선 그게 뭔지 전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옆집 이야기를 하던 브라운이 시선을 옮겨 이든을 향했다.
“그래. 이든은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정했니?”
브라운은 혹여 이 질문이 이든에게 상처가 될까 봐 줄곧 물어보지 않았었다.
하나 지금에 와서 이든이 생각보다 훨씬 의젓하게 자라준 덕에 처음으로 이든에게 장래에 관해 물어볼 수 있었다.
메리 또한 상당히 걱정됐던 부분이라 이든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이든이 그런 노부부의 마음을 모를까.
다만 쉽사리 무인(武人)의 길을 걸으리라고 말을 꺼내지 못할 뿐이다.
눈이 보이질 않는데, 무인의 길을 걷겠다니.
놀라 까무러칠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아직…. 고민 중입니다. 결정되면 그때 가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그래. 그리 말해 주니 고맙구나.”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민감한 질문에 주눅 들지 않고 말하는 이든의 모습에 브라운이 그를 기특한 듯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릇을 비운 브라운이 수저를 놓았다.
“잘 먹었구나.”
“그래, 덕분에 너무 맛있게 잘 먹었구나. 설거지는 엄마가 할 테니 들어가서 쉬렴.”
“아닙니다. 설거지도 제가 할 테니 두 분 모두 먼저 들어가셔서 쉬십시오.”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듯 이든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깨끗이 비운 그릇을 챙기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 브라운이 미소 짓고는 메리를 부축해 방으로 자릴 옮겼다.
잠시 후, 설거지를 모두 마친 이든도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침대와 작은 책상이 마련된 이 조촐한 공간에서 이든은 시간이 될 때마다 천마심공을 운공해왔다.
‘내공의 양은 충분해. 다만… 아직은 눈을 대신할 만큼 충분치는 않아.’
루디와 있었던 모의 대련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여실히 느꼈다.
‘더…. 훨씬 더 많은 마기가 필요하다.’
일순, 이든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었다.
“흐읍!!!”
그러자 가히 무림 제일의 마공이라 논할 수 있는 천마심공이 이든의 단전에 끊임없이 마기를 채워 넣었다.
‘다행이야. 무림에 비해 진기는 정말이지 풍부하단 말이지.’
이든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
그것은 가히 남아돈다 해도, 부족함이 없는 진기 양이었다.
신교의 십만대산도 그렇고, 구파 역시 그랬다.
이들이 사람 발길 닿기 힘든 외진 기슭에 기어코 문파를 세운 이유!
단지 명성이라든지, 보여지는 허울이 아닌 어느 곳보다 진기가 풍부한 요점 때문 아닌가.
진기가 풍부한 곳은 수련의 성과를 높인다.
수련의 성과가 높다는 것은 곧 문파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돈 좀 있고, 세력 좀 있다 하는 문파들은 하나같이 좋은 땅을 알아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그런데.
이곳은… 그냥 사방천지 남아도는 것이 진기다.
그리고 이 진기라는 것을 가리켜.
‘마나라고 부른다지?’
다행이었다.
이렇게 풍부한 진기의 양이라면 필시 빠른 시일내에 과거의 경지에 도달하리라.
물론 중요한 건 단지 내공을 늘리는 것이 아닌, 그것을 어찌 활용하느냐이지만….
천마심공의 십이주천을 끝낸 이든이 자릴 털고 일어났다.
그가 양 무릎을 굽히곤 기마자세를 취한다.
‘일단 이 약한 몸뚱이부터 단단하게 만들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