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하아…. 이를 어쩐다.”
그답지 않게 얼굴에 근심이 한가득하다.
무진이 이든으로 다시 태어나 열다섯 살이 되던 해.
그는 요즘 부쩍 고민이 많아졌다.
어젯밤 잠에 들기 전, 부모님의 대화를 우연히 들은 이후부터였다.
***
어젯밤.
“아이고…. 삭신이야.”
브라운이 무릎과 허리를 연신 두드리며 앓는 소리를 했다.
그런 남편을 보며 메리 역시 걱정이 많은 얼굴이다.
“당신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평소보다 귀가하는 시간도 늦어지고….”
브라운이 어색한 얼굴로 자신의 볼을 긁었다.
“아……. 그게 투입되던 공사 현장이 바뀌었거든. 돈을 더 많이 준다고 해서….”
말끝을 흐리며 말하는 브라운 모습에 메리가 침울한 표정을 했다.
그간은 모아둔 재산이 있어 브라운도 너무 무리할 필요 없이 돈을 벌어왔지만, 생각보다 길었던 자신의 병중이랑 부쩍 자란 이든으로 최근 들어 가게 상황이 좋지 않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던 참이었다.
브라운 역시 이를 알고 있었기에 최근 무리하여 일했던 것.
메리가 거칠어진 브라운의 손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이럴 게 아니라. 나도 이제 조금 괜찮은데, 시장이라도 나가서 일을 돕는 게 낫지 않겠어요?”
아내의 말에 브라운이 정색을 했다.
“말이 되는 소릴. 몸 나아진 지 얼마나 됐다고 일을 나간다는 소리야. 그러다 또 건강 안 좋아지면 그땐 정말 큰 일이라고.”
“그렇지만…….”
메리가 손끝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당신이 이리 고생하는 모습을 내가 어떻게 보고만 있어요. 당신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너무 걱정 말어. 나 아직 한창이야. 한창!”
“한창은 무슨.”
브라운이 거칠고 조금은 앙상해진 손으로 메리의 어깰 감싸 안았다.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일할테니까. 너무 걱정 말어…. 그래도 우리 아이가 좀 더 클 때까진 내가 노력해야 하지 않겠어?”
“여보….”
무거운 주제가 오가는 노부부의 방안.
그리고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이든이 침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살다살다 내가 이런 고민을 다 하게 될 줄이야.”
쓴웃음을 짓고 있지만, 표정에 그림자는 쉽게 가시질 않는다.
“일을 해야 하는데, 이를 어쩐다…….”
전생에도 돈을 가지고 고민해본 적이 없다 보니 쉽게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인 생활부터, 천마에 이르렀던 때까지 그가 언제 돈 관리를 제대로 해봤겠는가.
마인 때야 교내에서 먹고 재워주니 아무런 생각이 없었고, 천마에 자리에 올랐을 때도, 신교 관련 사업장을 관리하며 재경을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어 그때 역시 돈에 쪼들려봤던 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돈 문제 자체를 가지고 고민을 깊게 해본 적이 단연코 단 한 순간도 없었다.
무인은 그저 무(武)에만 정진하면 그뿐.
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과거 그의 지론이였으나….
개뿔.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사람 사는 곳엔 본디 돈 문제가 떠날 수 없다.
그건 범부도, 심지의 무인도 마찬가지. 피할 수 없는 필수 과제 같은 것이다.
‘크흠. 지금에 와서 보니. 과거에 나도 참으로 대책 없었구나.’
현실로 들이닥친 재정적인 문제를 몸소 체험하니 전생의 천마였던 시절, 재경을 담당하던 이들이 자신을 대신하여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나저나…. 진짜 앞으로 어떡하지.’
지난 팔 년간, 공터와 집, 이따금 시장만 전전하며 오로지 남은 시간은 수련에만 몰두해온 그였다.
전생의 깨달음과 비결이 있으니 가파른 상승세로 강해졌고, 안 보이는 눈 문제도 적응이 되어 갈 무렵에 이런 문제에 발목이 잡힐 줄이야.
“수련도 중요하지만, 역시 지금은 가족들 일손을 돕는 것이 우선이다. 근데 무슨 일을 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눈이 보이지 않는 그가 구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한데…
문제는 그가 가장 잘하는 게 싸움이라는 것.
‘이걸 어디에다 써먹어. 해봤자 용병일…?’
살다 살다 자신의 능력을 어디에 써먹냐고 말할 날이 올 줄이야.
그런데 용병 업체에서 자신을 써줄까.
이제 열다섯밖에 안되는 애를.
게다가…. 눈도 안 보이는 맹인을?
‘…그럴 리가 없지.’
하지만.
“후우….”
이든이 자릴 털고 일어났다.
이런 문제는 가만히 앉아 고민한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다.
발로 뛰어가며 어떻게든 지푸라기라도 붙잡아보는 것.
“까짓거 안 되면 말고!”
***
그런데.
이건 뭐 눈이 안 보이니, 일을 구하러 다는 것부터가 노동이다.
사람마다 하는 말도 틀리고, 막상 가면 용병 길드가 아니라. 다른 곳이다.
지금껏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잘 적응해오며 살아왔지만, 오늘 처음으로 시각의 중요성을 여실히 깨닫게 되는 것 같았다.
‘어휴 하루빨리 눈을 뜨기라도 해야지 원…. 드래곤 눈알이라도 파먹어 봐? 듣자 하니 전설 속 동물이라며, 영물이 그 정도 힘도 없을까….’
하다 하다 드래곤 눈알까지 파먹어서 눈을 뜰 생각을 하다니….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어떻게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걷다 보니, 원하던 곳에 도착하긴 했다.
“여기가 그래도 이 근방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란 말이렷다.”
이든이 입가 한쪽이 삐죽 말아 올라갔다.
어찌 보면 앞으로 하게 될 이 용병 일이 그간의 수련 성과를 확인할 수도 있는 계기가 되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돈도 벌고, 싸움도 하고. 그야말로 일석이조지.”
이든이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곤 길드의 입구를 열고 들어섰다.
끼익.
“어서오…세요.”
손님을 맞아 황급히 인사를 건네던 사무관이 일순 말끝을 흐렸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
손님인 줄 알았는데 들어온 것은 키는 크지만, 얼굴은 앳된 소년에 심지어 눈까지 안 보이는 맹인이었으니 그가 당황할 만도 했다.
하지만 사무관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곤 이든을 정중히 안내했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 길드엔 무슨 용건으로 오셨습니까? 혹시 맡기고 싶으신 의뢰라도…!?”
용병이라고 호송과 같은 굵직한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 신변 보호도 그들의 일 중 하나였다.
아마도 사무관이 본 이든 역시 그런 의뢰 중 하나를 맡길 것이라 짐작했건만….
돌아온 것은 전혀 뜻밖에 대답이었다.
“혹시 일손이 부족하지는 않으십니까?”
‘응…?’
사무관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
저게 무슨 소리야?
일손이 부족하지 않냐니….
‘설마…. 일자리를 구하러 온 거야?’
물론. 일자리를 구하러 오는 사람은 많다.
용병 일이란 게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라 애초에 정규직이라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고….
하루에도 워낙에 많은 사람이 길드에 가입했다가 관두기 반복이다 보니, 대부분 용병 업체들이 상시로 용병을 모집하곤 했지만….
사무관의 눈이 힐끔 이든을 향했다.
‘눈도 안 보이는 녀석이 무슨 일을…. 혹 사무관 일을 해보려고…?’
그런데 눈이 안 보이면 글자와 숫자는 어떻게 읽으려고?
제일 중요한 게 그거인데!
사무관이 난감한 얼굴을 하다가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일이라면 혹시 어떤 일을 알아보러 온 건지 얘기해 줄 수 있을까?”
사무관 눈에 비친 소년.
이든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씩 웃었다.
“당연히 용병 일이죠. 안 보이는 눈으로 어찌 사무관 일을 하겠습니까?”
‘…’
그건 용병 일도 마찬가지고!!!
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엔 사무관 눈앞에 소년의 얼굴이 너무도 해맑았다.
그렇게 좋게좋게 타일러서 보내자.
라고 생각 사무관이 입을 열려던 그때.
“무슨 일이야?”
익숙한 목소리가 둘 사이의 대화를 가로막는다.
사무관이 난감한 얼굴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 오셨습니까. 길드장님!”
“으음.”
길드장이 고갤 끄덕이곤, 사무관 옆에 이든에게 시선을 넌지시 던졌다.
길드장이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얜 누구…?”
척 봐도 손님이 아닐 것 같으니 다짜고짜 얘란다.
“아 그것이…. 이 꼬마가….”
사무관이 안절부절못하며 말을 꺼내지 못하던 그때.
당돌한 목소리가 끼어든다.
이든이 입을 열었다.
“일을 구하러 왔습니다!”
“일…?”
“예.”
“…여기가 무슨 일 하는 곳인 줄은 알고?”
“암요. 용병 길드 아닙니까?”
“그런데 알고도 여기로 일을 구하러 왔다고…?”
“네.”
‘뭐 이딴 새끼가 다 있어…?’
길드장이 얼굴을 와락 구겼다.
가뜩이나 바쁜 일정 와중에 실 없는 얘길 나눌 만큼 그는 한가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보일리 만무했지만, 꼴도 보기 싫었던 모양인지 그가 이든을 향해 손을 휘휘 저었다.
“어린 노무 녀석이 겁도 없이 어른을 놀리려 들어. 썩 꺼져!”
꺼, 꺼져…?
‘저, 저기 잠시만…!’
천마신교의 천마, 하늘이자 무림을 평정했던 사내가 이대로 쫓겨난다고!?
이든이 황급히 외쳤다.
“저, 저기! 이대로 내쫓는 게 어딨습니까. 시험이라도 봐야 하는 것….”
“눈도 안 보이는 놈이 시험은 얼어 죽을!!!”
쾅!
거칠게 닫힌 길드 문 앞에 서 있던 이든이 허탈로 웃었다.
“하, 하하….”
하지만 이 역시 예상치 못한 반응은 아니다. 충분히 각오했던 일 아니던가.
다만 직접 겪어보니 그 충격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여서 그렇지….
이든이 자신의 볼을 손바닥으로 연신 쳐댔다.
“정신 차려. 일할 곳이 여기만 있나. 두고 봐. 날 써주기만 하는 곳이 있다면 거기를 아주 제대로 키워볼 테니까.”
이든이 몸을 홱 돌리곤,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어딘가에 있을 용병길드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얼마나 흘렀을까.
중천에 있던 해가 어느새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이든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일 구하는 게 이리도 힘들 줄이야….”
주저앉은 이든은 그간에 있었던 대화들을 떠올렸다.
그의 뇌리에 깊숙이 남아, 도무지 떠나지 않는 한 단어.
꺼져!!!
그렇다.
일을 구하러 왔다고 말하니 하나같이들 반응이 꺼지란 말과 함께, 문전박대였다.
왜일까.
그가 한쪽 다리를 덜덜 떨었다.
엄습해오는 불안감.
지금이야 어떻게든 부모님이 벌어다 주시는 돈으로 버티곤 있지만, 아버지마저 몸져눕게 되면….
‘이러다간 등선은 커녕 굶어 죽는 거 아냐…?’
말도 안 되는 소릴!
이든이 고갤 휘휘 저었다.
‘안되지. 안돼!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아니, 그보다 내가 굶어 죽는다니 말도 안 되지!’
하지만 아무리 머릴 싸매고 고민해 봐도 일자릴 구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영지 내에 모든 용병 길드는 돌아본 것 같고, 설령 있다 해도 문전박대당할 것이 뻔했다.
그런데 다른 일을 할 건 더더욱 없는데….
이든이 그답지 않게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배달이요.”
응?
순간, 이든의 귀가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쫑긋했다.
배달?
“늦게까지 고생이 많구만.”
“뭘요. 그래도 이게 마지막 배송인걸요.”
“후훗. 유니콘 길드 덕분에 사는 게 얼마나 편한지 몰라. 가뜩이나 먹고 살기 바쁜데, 배달을 직접 해주다니. 고마워.”
“뭘요. 그게 저희 일인걸요.”
“자 여기. 잘 받았다는 서명 했어.”
“네.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배달….
배달이라고?
순간 이든의 머릿속에 벼락이 떨어지는 듯했다.
마치 깨달음을 얻었던 전생의 젊은 시절 그때처럼.
“배달…괜찮은데?”
괜찮을 수밖에.
“나 신법이 있잖아…!”
보이지 않는 눈으로 지난 팔 년간 남들 눈을 피해, 피나는 노력으로 신법을 연마해왔던 그였다.
덕분에 기감도 더욱 예민해져 눈에 띄게 발전하지 않았던가.
이든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병 일이 아닌 것은 아쉽지만, 당장에 살림이 더욱 중요했다.
‘유니콘 길드라 했지…. 이번엔 어떻게든 내 실력을 보이고 말겠어!’
이든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유니콘 길드로 향했다.
과연 이든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그건 두고 볼 일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