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250)

7화.

“오늘 배송할 물건은 뭔가요?”

“윌턴 씨네 대장간이군. 내용물은 유리 장식이야. 배송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거야.”

“걱정 마세요.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배송할 테니까요.”

“어련하실까.”

이후, 이든은 배송 업체 길드 유니콘에 취직했다.

이곳의 지부장 게럴드는 이든을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눈도 안 보이는 친구가 와선 대뜸 취직시켜달라니 어찌나 난감했던지….

물론 게럴드 지부장은 처음에 거절했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매일같이 찾아오는 근성에 마침 파손 걱정 없고 가장 쉬운 배송을 시험 삼아 맡겼었다.

그런데 웬걸?

일 처리가 굉장히 빠르고 깔끔한 것이다.

결국, 이든을 고용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엔 가장 쉬운 일부터 맡겼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배송이 말도 안 되게 빨라지더니 급기야 현재는 이곳 지부의 에이스가 되어있었다.

“아 참, 이든. 이번 달도 개인 최고 기록 달성이야. 자네 덕분에 길드원들이 제대로 자극받고 있다고.”

“그럼 이번 달도 상여금은 두둑이 주시는 겁니까?”

“당연한 소릴. 이번엔 수도의 길드장님이 특별히 신경 쓴 모양이야. 길드장님께서 이든이 누구냐고 상당히 궁금해하셔.”

“그렇습니까?”

이곳 지부는 다른 영지에 비해 성과가 적어 수도 본부 눈 밖에 난 곳이었지만, 이든이 들어온 후 단기간에 가장 높은 성과를 기록한 지부가 되었다. 길드장 또한 이든이 누군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달쯤, 길드장님께서 이곳을 방문하신다네. 이런 기회도 흔치 않은데 한번 만나 보는 것이 어떤가?”

허례허식같이 귀찮은 일은 질색이었지만, 조직 생활에 누를 끼칠 만큼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든은 굳이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네,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좋아! 그럼 그렇게 알고, 오늘도 고생하라고.”

이든은 곧장 걸음을 옮겼다.

밖을 나서기 전, 한 사무관이 배송 품목들을 그에게 전달했다.

윌턴의 대장간 물건이 워낙 중요하다 보니 남은 품목은 서신과 같은 가벼운 것들이었다.

“자, 슬슬 출발해 볼까.”

물건을 받고 밖을 나서기 무섭게 이든은 곧바로 신법을 펼쳤다.

이윽고 그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더니 번개와 같은 속도로 공중을 밟기 시작한다.

다른 길드원들이 땅을 밟고 사람들을 피해 움직일 때, 홀로 하늘 위를 날아다니니 그의 개인 실적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당연지사였다.

“윌턴 씨네 대장간이라면 이쯤이었던가.”

신법을 밟으며 시원하게 날던 이든의 신형이 문득 한곳에 우뚝 멈춰 선다.

남들이라면 길이 생각나지 않을 때 지도를 살피겠지만, 이든의 방법은 조금 달랐다.

“여기군.”

이든의 걸음이 윌턴의 대장간 옆 벽을 향했다.

벽엔 야방(冶坊)이라는 한자가 적혀 있다.

그만이 알아볼 수 있는 글자로, 일전에 마기로 새겨 놓은 것이다.

벽에 새겼으니 맞는 곳에 왔는지 만져서 읽을 수 있었고, 새겨진 장소와 한자의 획수에서 느껴지는 마기 양으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장치해 둔 것이었다.

“계십니까.”

“이게 누구야. 이든 아닌가!”

작업에 몰두하던 윌턴의 눈이 이든의 목소리에 이끌리듯 그곳을 향한다.

“이야! 오늘도 정말 빠르군. 이 먼 곳까지 말이야.”

“항상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오히려 내가 더 고맙지. 자네 덕분에 오늘 작업을 빨리 끝낼 수 있으니 말이야.”

반가운 낯으로 이든에게 물건을 건네받은 윌턴이 조심스레 포장을 뜯었다. 내용물을 확인한 윌턴이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역시 자네답달까. 조금도 금이 간 데가 없군.”

윌턴이 건네받은 물건은 정교하게 세공된 유리 장식이었다. 배송 중에 조금이라도 파손이 되었다간 오늘 작업량이 배로 늘 뻔했다. 다행히 배송되는 물건의 얼마나 중한지 안 유니콘 길드의 지부장이 특별히 신경 써 이든에게 배정한 것이다.

“그럼 서명 부탁드립니다.”

물건을 잘 받았다는 서명을 끝낸 윌턴이 웃으며 그것을 다시 넘겼다.

“자, 여기 있네.”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 하루도 수고하십시오.”

서명을 건네받은 이든이 다음 장소로 옮기려던 그때, 윌턴이 그를 불러 세웠다.

“아, 이든! 전에 부탁했던 ‘검’ 말일세. 이틀 뒤면 완성될 것 같네.”

곧장 이든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정말입니까?”

“그래. 자네가 그려줬던 도안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려 애썼네. 도안에 조금 문제가 있었던 부분은 내가 임의로 보완했지만, 썩 나쁘진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밝게 인사를 하며 떠나는 이든을 보며 윌턴이 신기하단 얼굴을 했다.

“저 친구, 저런 식으로 웃을 줄도 알았던가. 별일이구먼….”

윌턴의 대장간에서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이든의 얼굴엔 내내 미소가 지워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환생한 뒤로 처음 잡게 되는 진짜 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기분을 보여주듯 신법을 밟는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경쾌했다.

오후에 해가 절정을 보일 무렵. 모든 배송을 끝낸 이든은 서명이 적힌 서류를 건넸다.

게럴드의 비서 이리아가 이든이 건네는 서류를 최종적으로 확인하고는 금고에서 돈을 꺼냈다.

“이든 씨, 오늘도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돈을 건네받은 이든은 따로 확인도 않고 그것을 안주머니에 넣었다.

“확인 안 하셔도 되는 거예요?”

“한 번도 액수가 틀린 적이 없는데 굳이 확인해서 뭣하겠습니까. 이리아 비서장님을 믿습니다.”

언뜻 무미건조한 어투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상대에 대한 강한 믿음이었다. 이든의 말을 듣던 이리아가 쑥스러운 얼굴을 했다.

“뭐, 뭘요. 그냥 제 일이니 열심히 하는 것뿐인걸요. 그보다 오늘도 바로 퇴근하시는 건가요…?”

마치 그의 시간이 비길 바라는 투였다. 여자가 이 정도 신호를 보냈으면 눈치를 채야 하건만. 풋풋했던 젊은 시절이 까마득히 오래전 일이니, 이 부분에 대해선 이든도 무딜 수밖에 없었다.

“예. 장 좀 보다가 가서 저녁 차리려면 분주히 움직여야죠.”

“아, 네…. 그렇군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이리아 씨도 조금만 더 고생하십시오.”

잔뜩 풀 죽은 이리아를 뒤로하고, 이든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

그가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저녁을 준비했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 메리가 한소릴 했다.

“너는 일 끝나고 오자마자 또 일이니? 이제 어미 몸도 좀 괜찮아졌으니 넌 들어가서 좀 쉬려무나.”

메리가 팔을 걷고 나서려는데 이든이 재빨리 막아섰다.

“안 됩니다.”

“응? 안 되긴 뭐가 안 돼?”

“…이제 제 요리 실력이 월등히 뛰어날 거라 예상됩니다.”

어머니가 편히 쉴 수 있도록 핑계를 댄다는 것이 고작 이거였다. 이든의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메리가 웃음을 터트렸다.

“풉! 고작 몇 년 요리 좀 했다고 이 어미를 이길 수 있을까. 자, 비켜 봐.”

이든을 멀찍이 떨어뜨린 다음, 그녀가 소매를 걷어붙이곤 주방 일에 가담했다. 그 사이, 브라운이 일을 마치고 들어오고 있었다.

“응? 메리? 오늘은 당신이 요릴 하는 거야?”

“그것이 제가 한사코 말렸는데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셔서…. 죄송합니다.”

아아….

좌불안석이 이 기분.

언제 느껴봤더라.

아마 일개 마인 때…?

이든의 말을 듣던 브라운은 웃으며 그의 등을 토닥였다.

“괜찮다. 엄마도 이제 많이 건강을 되찾았으니까. 계속 가만히 있기 무료한 게지. 그럼 오늘은 간만에 메리의 요리를 먹겠군.”

그때, 브라운이 메리 옆에 다가가 일손을 도왔다.

그 모습을 직접 볼 순 없었지만 이든은 가슴 한구석에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가족의 사랑이라….’

고아로 태어나 마교의 일원이 된 뒤로, 숱하게 전쟁터만 전전해 왔던 그였다.

그러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선대 천마로부터 신공을 사사하게 되고, 이후 그분의 자릴 이어받아 종파들로부터 인정받고 정략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때도 가족이 있었지만….

그때와 지금과는 가족이란 의미가 너무도 달랐다.

노부부의 사랑,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

이든은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다.

세상만사의 근원인 사랑이란 것이. 비로소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참…. 적응하기 어렵다니까.’

그 사이, 요리가 완성되어 식탁에 놓였다. 이든이 일을 시작한 이후로 자금이 넉넉해져 올라가는 음식 가짓수가 예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많아졌다.

“자, 어서들 잡숴요.”

“간만에 메리가 만든 요리라 기대되는군. 잘 먹을게요.”

“잘 먹겠습니다.”

이든은 말없이 메리가 차려준 저녁상을 꾸역꾸역 삼켰다.

밥을 넘기는 이든의 얼굴에 묘한 감정이 깃들었다.

복잡한 듯, 어려운 듯.

지금 그에게 있어 부모란 존재가 어느새 가슴 깊이 자리한 것 같았다.

밥알 삼키는 그의 목구멍에 왠지 속으로 삼킨 눈물이 같이 들어오는 듯 했다.

‘부모님이라….’

어떤 모습이실까.

오순도순 얘길 나누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릴 때마다.

한 번도 뵙지 못한 두 분의 얼굴이 아른거리는듯한 착각마저 든다.

‘지금은 많이 늙으셨겠지….’

벌써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이 세계에서 역시 칠순은 절대 적지 않은 나이였다.

‘보고 싶구나. 부모님 얼굴이.’

***

저녁을 먹고 이든은 집 앞 공터로 나왔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이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천마심공을 운공하는 이든의 몸 주위로 시꺼먼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마기의 본질은 살기, 해서 이든의 주변은 항상 살얼음 같은 기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조금 달랐다. 피어오르는 검은 기운이 사그라들더니 이내 살얼음 같던 기운도 거두어졌다.

‘나도 참 오래 살았어. 악귀라 불리던 천하의 무진은 어디 가고, 복잡한 감정을 주체 못 하는 칠칠치 못한 할아버지가 됐구먼….’

천하제일의 무인도 결국 한낱 인간이다. 이든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얘, 오랜만이다?”

그때, 한쪽에서 들려오는 까랑까랑한 여자아이의 목소리.

“응?”

이든은 그곳으로 고갤 돌렸다.

그곳엔 두 개의 기척이 있었다.

하나는 조금 전 목소릴 냈던 여자아이겠고, 남은 하나는….

‘제법인데?’

여자아이 옆에 선 기척에서 제대로 갈무리된 기운이 느껴졌다.

이든의 얼굴에 흔치 않은 흥미가 어렸다.

그 사이, 가까이 다가온 여자아이가 대뜸 말을 건넸다.

“무사했구나, 너!”

“누구신지….”

“아무리 예전에 봤다지만 내 목소릴 그새 잊은 거야?”

여자아이의 목소린 잔뜩 토라져 있었다.

“우리가 예전에 본 사이인가?”

“그래! 예전에 이곳에서 우리 오빠랑 같이 봤잖아.”

“오빠?”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다가 오빠란 말에 불현듯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이든이 놀란 얼굴을 했다.

“설마. 그때 칼스테인 백작가의 싸가지 없던 꼬맹이?”

“그래! 근데 잠깐, 뭐라고. 싸가지 없는 꼬맹이!?”

이든이 비로소 아는 척을 하자 제인이 반가워하다가 일순 발끈한다.

“미안. 그때 이후로 너무 오랜만이라…. 그간 잘 지냈어?”

“나야 뭐. 잘 지내긴 했지. 너는 어때? 혹시 그날 이후로 무슨 일 없었어…? 갑자기 나쁜 사람들이 와서 손찌검했다거나….”

“응?”

혹….

제 엄마가 무슨 짓이라도 했는지 묻는 건가?

물론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제인이 묻는 꼴이 딱 그것이었다.

말끝을 흐리며 묻는 제인의 말에 한동안 잊고 지내던 옛 기억이 떠올랐지만, 굳이 과거에 있던 일을 들추진 않았다.

“그런 일 없었어. 걱정 마.”

“그래? 이상하네…. 뭐 아무 일 없었다면 다행이지만.”

딸인 그녀조차 제 어미의 성정에 걱정해서 물었을 정도면, 백작가 부인의 성격이 어떤지 유추할 수 있었다.

‘백작도 상당히 고달픈 삶을 살고 있겠구먼….’

그 역시 전생에 신교의 절대자였던 시절.

정략 결혼한 아내 때문에 속 꽤나 썩인 적이 얼마나 숱하게 많던가. 물론 본인 역시 썩 좋은 남편감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너는 어쩔 거야?”

대뜸 묻는 제인의 말에 이든이 고갤 갸웃거렸다.

“어찌할 거냐니, 뭘?”

“뭐야. 정말 모르고 있던 거야? 다음 달에 우리 영지에서 치러질 기사 시험 말이야.”

“기사 시험?”

일터와 집만 전전하며 수련만 해오던 그에게 세상 밖 이야기는 낮선 것이었다.

“이번에 수도의 아카데미에서 특기생 모집한다고 대대적으로 공표했잖아. 다음 달엔 우리 영지에서 무도 대회가 열릴 예정이라고.”

“무도 대회?”

“그래. 아카데미에선 매년 신입생을 특기생으로 모집한다고, 대귀족들은 아무런 제한 없이 입학할 수 있지만, 그 외에 별 볼 일 없는 가문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무도 대회에 통과해야지만 입학할 수 있지. 근데 이게 참가의 제한이 전혀 없거든? 평민들에겐 무도 대회 자체가 신분 상승의 기회라고나 할까?”

“그래?”

이든에게 신분 상승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의 관심은 오직 ‘무도대회’ 그 자체에 있었다.

그간, 이 몸에 익숙해지도록 초식들을 점검해 오며 수련을 해오긴 했지만, 단 한 번도 실전에서 사용해 본 적은 없었다.

물론 이든 정도되는 고수라면 실전 경험이 없어도 견고한 무공을 사용하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와 별개로 전투에 대한 순수한 갈증이 일었다.

“거기에 참가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데?”

“내일부터 우리 성에서 참가 신청을 받을 거야. 무도 대회도 성내 광장에서 할 생각이고. 어때, 생각 있어!?”

제인의 물음에 이든은 본능에 이끌리듯 말을 꺼냈다.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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