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주말 아침이 밝기 무섭게, 이든은 곧바로 포목점으로 향했다.
그가 들어서자 포목점 주인이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이든 총각, 일찌감치 왔네! 마침 마무리 작업이었는데 딱 맞춰왔네!”
“그렇습니까?”
“그럼! 내 실력 몰라? 어여 들어와.”
잠시 뒤, 작업을 모두 마친 포목점 주인이 이든에게 옷을 건넸다.
“뭐해. 어서 입어보지 않고!”
옷을 받아든 이든의 얼굴에 더없이 밝은 미소가 폈다.
매일같이 같은 옷만 입다가 간만에 입어보는 무복에 절로 콧노래가 나올 지경이었다.
받아든 무복을 받쳐 입자 주인이 냉큼 물었다.
“어때. 품은 잘 맞고?”
“아주 잘 맞습니다.”
주인 눈엔 살짝 넉넉해 보였지만, 오히려 그 또한 멋스러웠다.
게다가 앞으로 이든의 몸이 더 커질 것을 고려한다면 넉넉한 것이 오히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내가 봐도 참 잘 만들었는데… 이걸 이든 총각이 봤으면 싶은데 그게 아쉽구먼.”
“누가 만들어주신 건데요. 보나 마나 아주 멋질 겁니다.”
“그것도 그거지만 입은 사람 옷 태가 아주 좋아.”
“그렇습니까?”
“그려. 아무튼, 좋다니 요 며칠 동안 열심히 만든 보람이 있구먼.”
“감사합니다. 정말 잘 입겠습니다.”
“그려. 이제 바쁠 텐데 어여 가!”
“예. 그럼 오늘 하루도 수고하십시오.”
무복을 챙겨 입은 이든은 전생의 모습 그대로 능숙하게 허리춤에 검을 찼다.
역시나 천상 무인 아니랄까봐. 그 모습이 퍽 잘 어울렸다.
“자, 그럼 가볼까.”
이든은 곧바로 신법을 밟았다.
옛 생각이 났던 걸까.
움직이는 내내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
일과가 끝나고 오후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휴일이었던 이라아가 어째선지 오후가 다 되어서 출근했다.
사실 출근이라기보단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가 이곳이었다고나 할까.
그때, 게럴드 지부장이 안을 서성이는 이리아를 발견하곤 반갑게 말을 건넸다.
“이리아, 쉬는 날엔 여긴 어쩐 일이야. 누굴 만나기라도 하는 거야? 오늘따라 더욱 예쁜걸!”
이리아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그게…. 오늘 이든 씨랑 이곳에서 보기로 했거든요.”
“오오오오! 그래? 그래서 자네 얼굴에 이리 웃음꽃이 폈군?”
게럴드의 능청스런 물음에 속마음을 들킨 것 마냥 이리아의 얼굴이 더욱 새빨개졌다.
“지부장님도 참! 근데요… 저 오늘 정말 평소보다 괜찮아요?”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고. 이든이 부러운걸. 이렇게 어여쁜 아가씨랑 저녁 약속까지 잡고 말이야. 크크! 아무튼 잘 해보라고, 이리아.”
“고마워요, 지부장님!”
게럴드와 이리아가 대화를 나누던 그때, 이든이 막 배송을 마치고 들어오고 있었다.
두 사람의 기척에 이든이 의아한 얼굴로 입을 뗐다.
“다들 이곳에 계셨습니까?”
“어! 이든 왔는가!”
“이든 씨, 어서 오…세요.”
이리아가 반가운 얼굴을 하다 이든의 모습을 보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말끔히 차려입은 검은 무복, 허리춤에 멋스럽게 검을 찬 모습이 평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붉게 물든 이리아의 얼굴을 힐끗 살피던 게럴드가 이든이 들고 있던 서류를 냉큼 뺏었다.
“아직 사무관님께 확인받지 않은 서류입니다.”
“에이! 확인이 뭐 중요한가. 이든 자네가 한 건데. 남은 일은 나한테 맡겨두고 어서들 가보라고. 이리아가 여기서 코 빠지게 자넬 기다렸다고.”
“그랬습니까?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리아 씨.”
“아, 아니에요! 저도 금방 와서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어요.”
게럴드가 어서 가라는 듯, 이든과 이리아의 등을 밀다시피 했다.
“자자, 밤은 생각보다 짧다고. 어서들 가라고! 끌끌!”
게럴드의 주책맞은 소리가 영 싫지만은 않은지 이리아가 얼굴을 잔뜩 붉히며 이든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두 선남선녀를 바라보며 게럴드가 흐뭇한 얼굴을 하는 사이.
옆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사무관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지부장님. 길드원 간에 사내 연애는 싫어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긴 한데. 둘 다 어린 나이임에도 워낙에 능력도 출중하고, 무엇보다 멋지고 예쁘지 않나. 이런 경우엔 그저 잘되라고 응원해주는 게 제일이라고.”
“그럼 저도….”
“자넨 일이나 열심히 해.”
“예.”
딱 잘라 말하는 게럴드를 사무관이 힐끗 노려보았다.
“뭘봐?”
“…서류요.”
눈이 마주치자 얼마 있지도 않은 서류를 정리하는 척 딴청을 피웠다.
***
이든이 향한 곳은 칼스테인 백작 영지 내에서도 음식 잘하고, 분위기 좋기로 소문난 전통 깊은 곳이었다. 워낙 유명한 곳이다 보니 귀족뿐만 아니라 영지에서 좀 잘나간다는 양반들과 여인들도 자주 들락날락하는 곳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든. 오셨군요.”
“예약된 자리 부탁드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일 전망이 좋은 자리를 비워뒀습니다. 반갑습니다. 이리아 씨, 어서 들어오시죠.”
식당에 직원이 이든과 이리아를 안내했다. 반갑게 맞는 직원의 모습에 이리아가 물었다.
“이곳에 몇 번 오셨어요?”
“배송 건으로 자주 오는 곳 중 한 곳입니다. 급한 일이 있으면 이곳에 주인이 항상 절 찾으셨거든요.”
“아…!”
이리아가 그제야 이해했다는 얼굴을 했다.
길드에 오는 물건 중엔 간혹 식재료 배송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대부분 당일 배송을 원하는 급한 주문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곳에서 들어오는 의뢰가 대체로 그랬다.
“여기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직원이 내민 의자에 앉은 이리아가 고갤 숙이며 자리했다.
생각보다 너무 근사한 곳에 온 터라 이리아의 표정은 꽤 얼떨떨해 보였다.
직원이 옆에서 둘의 주문을 기다리던 사이, 이든이 그를 불렀다.
“혹 추천해주실만한 메뉴가 있을까요?”
“금일 금별 코스 요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건 어떠신지요?”
“그럼 그걸로 부탁드립니다.”
“예, 알겠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주문을 받은 직원이 떠나고, 이리아가 들릴 듯 말 듯 한 말투로 물었다.
“일 때문에 몇 번 이곳에 오긴 왔었는데…. 여기 엄청 비싸지 않아요?”
“모처럼 대접해 드리는 건데, 좋은 곳으로 모셔야죠.”
“…고마워요.”
잠시 뒤, 음식들이 차례로 나오고 이리아와 이든의 대화가 한창 무르익을 때쯤이었다.
“그럼 이든 씨는 기사가 되는 게 꿈인 거예요?”
“아, 무도 대회 말이군요.”
“이든 씨가 제 생각보다 훨씬 강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한편으로 걱정돼서….”
“아뇨. 기사가 꿈은 아닙니다. 무도 대회 참가의 목적은 순전히 호기심입니다.”
“호기심이요?”
“네. 제가 지금 어느 정도인지….”
이든이 말을 이어나가던 그때, 이곳으로 한 무리의 사내들이 들어왔다.
“크하하하!”
입장부터 여간 시끌벅적한 것이, 앞에서 얘길 듣던 이리아 뿐만 아니라 식사 중이던 사람들 모두가 얼굴을 한가득 찌푸렸다.
“크하하하! 무도 대회의 우승을 기원하며 내가 살 테니, 오늘은 마음껏 먹고 마시고 취하라고!”
“예, 형님!”
“이야 우리 형님이 이런 비싼 곳에 다 데려와 주시고 여기에 여자만 있으면 딱 맞을 텐데요!”
“인마! 여기가 무슨 그런 곳인 줄 알어? 그리고 이 형님이 무도 대회 전부터 힘 빼서야 되겠냐?”
“아하! 그렇지요! 크크….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좀 자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소란스럽게 입장한 사내들이 대충 어느 한 곳에 걸터앉고는 다짜고짜 주문했다.
“어이! 여기 제일 맛있는 걸로 가져와!”
행색은 멀끔한데, 하는 짓은 영락없는 파락호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직원은 그것조차 꽤 익숙한 모습이었다.
“예…! 그럼 늘 드시던 걸로 드리겠습니다!”
직원이 황급히 주문을 넣으러 떠나고 사내들이 재차 시끄럽게 입을 뗐다.
“아무튼, 칼라슈 그 새끼한테 하마터면 찍힐 뻔했다니까. 그 장님 새끼 때문에….”
“그래도 좋게 끝나 다행이지 않습니까. 하마터면 무도 대회 시작도 전에 일 치를뻔했잖습니까.”
“그렇지. 낄낄! 지금 생각해도 아주 오금이 저린달….”
그때, 무리 중 한 명이 그의 말을 멈춰 세웠다.
“형님.”
“엉?”
“저기 저 창가 쪽의 여자, 유니콘 길드의 비서장 이리아 아닙니까?”
“이리아가 여길 왔다고?”
일행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말대로였다.
일행이 가리킨 곳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이리아가 먼저 와 앉아 있었다.
“진짜 이리아잖아! 근데 앞에 저 자식은 누구… 엉?”
평소 관심을 보이던 여인이 웬 사내놈과 함께 있어 심기가 불편하던 참에 어쩐지 그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뭐야. 저거 그때 그 장님 아니야?”
“예? 설마요…”
“내가 만나 달라고 할 땐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저런 장님 새끼랑…!”
이리아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망신 줬던 놈과 함께 있다는 사실에 그의 심기가 더욱 불편해졌다.
일순 무슨 생각인지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든과 이리아가 있는 자리로 성큼 걸어갔다.
“이야, 이게 누구신가. 이리아 아가씨 아니야?”
그 모습에 이리아가 한숨을 내뱉곤 마지못해 아는 척을 했다.
“예. 드라이 님도 안녕하셨죠?”
인사치레지만 참으로 쌀쌀맞은 게 이든을 대할 때와는 영 딴판이다.
드라이가 능청스럽게 이리아 곁에 다가와 입을 뗐다.
“이리아, 이러면 나 정말 섭섭해. 내가 그렇게 만나 달라고 할 때는 들은 척도 안 했잖아. 근데 얼마나 대단한 놈하고 만나나 했더니 이런 장애인 새끼랑….”
“저기요. 말조심하시죠!”
듣던 이리아가 참다 참다 발끈해 일어섰다.
하지만 그마저도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드라이가 음흉한 얼굴을 하며 이리아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렸다.
“아니, 우리 이리아 씨는 화내는 모습도 이렇게 예쁘실까. 어때, 지금이라도 나랑 같이 노는 게. 응? 흐흐흐….”
“저기요. 이것 놔요…!”
이리아가 불쾌감 드러내며 손을 떨쳐내려했지만 쉽지않았다.
그때, 이든이 드라이의 손목을 콱 움켜쥐곤 입을 열었다.
“조용히 네 자리 가서 밥이나 처먹어. 이 손모가지 부러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뭐?”
듣던 드라이의 눈에 일순 흉흉한 살기가 일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직원이 황급히 다가와 둘을 만류했다.
“손님, 우선 진정하시고……!”
“시끄럿!”
“윽!”
쿠당탕!
드라이가 냅다 직원을 걷어찼다.
“이 새끼가, 어디서 감히 나의 행사를 방해하려 들어.”
발라당 넘어진 직원을 바라보던 드라이의 눈이 재차 이든을 향했다.
“어이 장님.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인데. 좋은 말로 할 때 이리아 놔두고 꺼져. 무도 대회 전에 병신되고 싶지 않으면.”
그가 손목을 움켜쥔 이든의 손을 뿌리치려던 그 순간.
덜컥.
사내의 눈이 일순 부릅뜨였다.
그의 팔이 이상하게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장님 새끼. 무슨 아귀힘이…!’
이든에게 붙잡힌 드라이가 옴짝달싹 못 하던 그때,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직감한 드라이의 일행들이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싸늘한 정적.
금방이라도 싸움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 없는 일촉즉발에 상황에 이든이 고갤 돌려 이리아를 향했다.
“이리아 씨.”
“예…?”
“위험하니 잠시 뒤로 물러서 계십시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안심하셔도 됩니다.”
“아, 알겠어요…!”
이라아가 걱정이 한가득한 얼굴로 뒤로 멀찍이 떨어지는 사이, 드라이의 일행 둘이 이든의 주변을 둘러쌌다.
드라이가 비릿하게 웃으며 이든을 향했다.
“어이, 이 팔 당장 놓지 않으면 네놈의 그 팔을 잘라버릴 줄 알아.”
드라이의 입이 떼어지기 무섭게.
스릉.
다가온 그의 일행들이 일제히 검을 빼 들었다.
“재밌네.”
“뭐?”
이든의 얼굴은 어느새 싸늘하게 굳어있었다.
“내기할까? 내가 네 팔을 먼저 가져가는지. 아니면 니들 따까리가 내 팔을 먼저 가져가는지.”
그때, 드라이의 손목을 움켜쥔 이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꽈악. 우드득.
힘을 주기 무섭게 드라이의 팔목이 쥐어짜지며 쪼그라들었다.
팔에 뼈가 산산이 부서진 것이다.
곧 식당에 괴성이 울렸다.
“으아아아악!!!! 이, 이런 씨발 새끼가!!!!!!!!”
“형님!!!”
“이, 이 미친 새끼가!!!”
드라이가 고통에 바닥을 구르며 괴성을 질러대는 사이, 어찌 손 쓰지 못하고 당황하던 일행들이 퍼뜩 정신을 차리곤 이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뒤져, 이 새끼야!”
이든을 향해 달려드는 두 개의 검.
휘익!!!!
하지만 두 눈 뜨고도 피하기 힘든 것을 이든은 가볍게 피해낸다.
이든의 손이 재차 번개와 같이 움직이고.
파바바밧!
“끄어어억!!!!”
어느샌가 검을 휘두르던 사내들을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