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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11/250)

11화.

식당 안의 모두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못할 광경에 입을 쩍 벌렸다.

맹인으로 보이는 자가, 식당에서 소란을 피우던 파락호들을 말 그대로 압도한 것이 아닌가.

“내, 내 팔…. 내 팔이…!!!”

드라이의 시선이 넝마가 된 자신의 한쪽 팔을 향했다.

뼈가 부러진 수준을 넘어 걸레짝이 되었다. 한눈에 봐도 회복은 절대 불가능한 수준.

그는 무도 대회를 앞둔 예비기사 지망생이었다.

그런데 검수가 무엇보다 소중한 팔 하나를 잃었다.

이보다 치욕스럽고, 이보다 절망스러운 순간이 더 있을까.

저벅저벅.

그때, 발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드라이의 시선이 옮겨졌다.

어느새 다가온 이든이 그의 남은 한쪽 팔을 밟고 서 있었다.

밟은 이든의 발에 힘이 들어갔다.

꾸욱.

“내가 후환을 남기지 않는 것이 버릇이라서 말이야.”

우드드득.

점차 힘이 들어갈 때마다

그의 팔에서 섬뜩한 소리가 나며 금이 가고 있었다.

드라이의 얼굴이 일순 하얗게 질렸다.

이미 팔 하나를 잃은 상황이었다.

근데 남은 팔 하나마저 잃는다면….

드라이가 황급히 소리쳤다.

“그, 그만!!!! 아, 알겠소!!! 내, 내가 잘못했소…. 용서해주시오!!!!”

“용서?”

“내, 내가 감히 경을 알아보지 못하였소. 제발 부탁이니 자, 자비를 베풀어주시오……!”

“자비는 얼어 죽을. 내 팔을 자르겠느니 어찌하니 하던 새끼를 내가 뭘 믿고?”

“그, 그건…!”

“아까도 말했지만, 난 후환 따위 남겨두지 않는다.”

팔을 지그시 누르던 발이 번쩍 들리자 드라이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퍼억!

“꾸에에엑!”

그때. 드라이의 턱이 공중으로 치솟더니 이빨 몇 개가 비산했다.

그가 재차 바닥을 나뒹굴었다.

드라이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이든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그의 수하들을 향해 입을 뗐다.

“정신들 차렸으면 니들 형님 데리고 꺼져. 마음 바뀌기 전에.”

“네, 네…. 아, 알겠습니다…!!!”

조금 전까지 바닥을 나뒹굴던 놈들이 맞는지 행동이 굉장히 신속했다.

놈들이 드라이를 들쳐메고 서둘러 식당 밖을 빠져나가자 이리아가 그의 곁으로 황급히 다가왔다.

“이든 씨… 어디 다치신 곳은 없는 거예요?”

“다친 곳은 없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 사이, 상황을 수습하러 주인이 부리나케 그들 곁으로 달려왔다.

“이든, 자네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괜한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마침 시끄러웠던 것들 치워주어서 우리야 고맙지. 오히려 도와주지 못했던 것이 미안하구먼. 오늘 저녁은 내가 둘에게 대접하고 싶군. 먹고 싶은 것, 마시고 싶은 것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시키게!”

딱히 탓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범부들이야 무림 일의 끼어들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애초에 끼어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니, 뭐 그럴 것까지….”

“에헤이! 거절하지 말고, 자자 이리아 씨도 어서 앉으시고. 제대로 대접할 테니 좋은 시간 보내라고.”

결국, 한바탕 소동 아닌 소동이 지나고 이든과 이리아는 뜻하지 않게 대접까지 받으며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시간이 흐르고 창밖의 하늘마저 완전히 어두워질 무렵.

이든은 이리아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걷고 있었다.

별다른 말 없이 걷고 있었지만, 옆에 같이 걷는 이리아의 표정은 그토록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어느덧 이리아의 집 앞까지 당도하고 둘이 마주 서는데, 이리아의 표정은 마치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다.

그녀의 입이 옴짝달싹하길 반복하며 우물쭈물하던 그때.

이든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저기…. 이든 씨.”

“네.”

“혹시….”

“…?”

“그냥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혹….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좋아하는 사람 말입니까?”

이리아가 안절부절못한 눈으로 이든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이든이 재차 입을 열었다.

“글쎄요. 아직 그 부분에 대해선 따로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

이리아는 내심 있다고 말하길 바랐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길 바랐는데, 이든의 대답에 적잖이 실망한 것인지 그녀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다 다시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저… 그럼, 또 저와 이렇게 만나 줄 수 있을까요. 서로 시간이 되는대로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 말은….”

에둘러 말하며 이리아가 말을 더듬던 그때.

이든이 불쑥 끼어들었다.

“이리아 씨.”

“예?”

꼭 게럴드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이쯤 되면 이든도 알 수 있었다.

앞에 있는 여인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혹시 저에게 호감이 있으십니까?”

갑자기 훅 들어온 이든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이리아의 표정이 벙쪘다.

“예…? 저, 저기. 그러니까….”

이리아가 더듬거리며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는 사이, 이든이 말을 이어나갔다.

“이리아 씨는 참 좋은 사람입니다.”

“네…?”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말이었다. 이든이 재차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는 이리아씨의 생각만큼 괜찮은 사람이 아니고요.”

“이든씨…?”

이든이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간 살아오며 그의 손에 얼마나 많은 피를 묻혀왔던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죄 없는 이들의 생명을 거두어 왔던가.

스스로 원해 패도의 길을 걸었으나, 죽음을 앞두었던 그 순간엔 과거 자신의 길을 후회하였다.

패도를 걸었던 자신과 이로 인해 상처 입었던 가족들.

그토록 후회했음에도….

‘결국 난 패도를 놓지 못하고 있다.’

이든이기 이전, 무진이란 사람이 원래 그랬다.

“이리아 씨가 저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걸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왜냐면 이리아 씨가 가슴 아픈 사랑을 하지 않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 같은 사람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스스로 패도를 걷기를 바라는 사내의 진심이 담긴 말.

이리아가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를. 그리고 그녀의 삶 대부분이 그저 가슴 아픈 기다림으로 끝나질 않길 바라는 그의 진심이 닿은 걸까.

이리아의 맑은 눈망울에서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요. 근데요. 난 알아요. 이든 씨는 역시 정말 좋은 사람이란 걸요….”

서러운 눈물이 아니라.

그의 세심한 거절에 나온 감동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이리아가 뺨의 흐르던 눈물을 닦아내고 입을 열었다.

그녀가 그토록 바랐던 첫사랑은 결국 이렇게 막을 내렸다.

밤은 깊어갔고, 거리는 조용했다.

아무도 듣는 이가 없었고, 둘의 대화는 달빛 아래에서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

“끄으으으…”

드라이가 연신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그의 옆엔 급히 호출을 받고 달려온 성직자가 그의 팔을 치료하고 있었다.

후우우웅.

금이 갔던 퉁퉁 부은 손목이 점차 원상태로 돌아왔다.

하지만.

성직자의 눈이 남은 다른 팔을 향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걸까.

반대편 팔은 도무지 신성력으로 어찌할 수준이 아니었다.

한 손이 불구가 되어 돌아온 동생의 모습에 내내 지켜보던 마르코가 씹어뱉듯 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마르코의 물음에, 드라이와 함께 온 일행들이 차마 고갤 들지 못하며 바들바들 떨었다.

“그것이…. 일전에 무도 대회 신청하던 날에 봤던…. 장님 말입니다.”

“장님…?”

그 장님이라면….

모를 리가 없다. 마르코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그 녀석이 왜.”

사내의 입이 우물쭈물하다가 이내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그놈한테 당한 겁니다…!!!”

“그 무슨 개소리야!!!”

드라이는 저 지경이 됐는데 혼자 멀쩡히 돌아왔으니 더욱 볼 낯이 없었다. 사내가 눈에 핏발이 선 마르코 앞에 얼굴을 더욱 깊게 땅에 묻었다. 사내의 몸이 바르르 떨려 왔다.

“혀, 형님. 근데 그 녀석 정말로 보통내기가 아니었습니다. 마크도 녀석에게 아무것도 못 하고 당해 버렸습니다.”

“이놈이 끝까지 변명을…!”

“드라이가 장님한테 당해?”

그때, 한 중년 남자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버지…!”

모든 사실을 전해 듣던 중년의 사내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했다.

“칼스테인 가문에 밀려난 귀족이라고 멸시받는 것도 모자라. 장님한테 얻어맞고 와? 드레이븐 가문도 이제 끝나려나 보군.”

“아버님!!! 제게 맡겨 주십시오. 이번 사태를 제가 말끔히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몰락해 가는 가문, 영 미덥지 못한 아들들에게 그들의 아버지 드레이븐 드레이크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놈도 필시 이번 무도 대회에 참가한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그놈에게 동생이 당한 것 이상으로 갚아주겠습니다.”

그러나 드레이크의 표정은 여전히 냉담하기만 했다.

“무도 대회에 참가하는 사내가 한둘이더냐. 만약 놈이 중간에 탈락한다면 무슨 수로 그놈에게 복수한단 말이냐.”

“그래서 말인데…. 아버님께서 조금 힘을 써주셨으면 합니다.”

“무엇을.”

“놈과 제가 맞붙을 수 있도록 대진표를 조작해 주십시오.”

“조작은 얼어 죽을. 다 망해가는 가문에서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대진표를 조작한단 말이냐.”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버님!”

마르코의 의미심장한 말에 드레이코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내 손을 쓰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자신은 있는 것이냐.”

드레이코의 물음에 마르코의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

시간은 흘러 무도 대회 당일.

과연 국가적인 행사답게 엄청난 인파가 대회장 앞에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일부는 대회의 참가를 앞둔 아이들.

일부는 대회를 구경하기 위해 모인 구경꾼들이었다.

“참가자들은 정문으로, 관람객은 다른 문으로 입장 부탁드립니다!”

성 앞에서 병사들이 바삐 움직이며 사람들을 안내한다.

그 사이, 개중에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라고 했나… 이든이 참가하는 곳이…

브라운이 연신 고갤 두리번거리더니 병사들의 안내를 따라 대회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안은 사람에 치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번잡스러웠다.

저마다 무기를 챙기고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참가한 대부분이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청소년이었지만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최종적으로는 황궁 기사를 목표로 하고 있었기에, 확실히 범부에겐 없는 무인의 기도가 느껴졌다.

이동하는 사람들의 기운을 따라 이든 역시 한참을 걷던 중.

쿵.

미처 거리를 벌리지 못한 이든이 그만 앞사람과 부딪혔다.

이든이 미안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이런… 죄송합니다. 괜찮으십니까?”

이든과 부딪힌 앞서가던 사내가 눈을 부라렸다.

“아 거참. 눈 좀 똑바로 뜨고 다니…쇼?”

욕을 지껄이려던 사내가 일순 말끝을 흐렸다.

“죄송합니다. 눈이 보이질 않다 보니 그만 실수하고 말았습니다.”

“아아…. 하하하! 아, 아니오! 아니 뭐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도 하고 그러는 거지. 하하하!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오! 하하하!”

홧김에 한 말이었는데, 진짜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었을 줄이야.

허둥대며 말하는 사내는 제법 호탕한 모습이 있어다.

이든은 옛 생각이 나 저도 모르게 웃었다.

전생의 자신의 우호법이었던 동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같이 걷게 된 두 사람.

옆에 선 덩치 큰 사내가 이든에게 물었다.

“내 이름은 발리스타요! 형씨는 이름이 어찌 되시오?”

“이든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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