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능멸도 이런 능멸이 없다.
이든을 향한 마르코의 눈에 살기가 비추다 못해 일렁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도 모자라 아예 매장하려는 듯한 그의 모습에 마르코가 불같이 화를 냈다.
“이, 이이…. 미친 새끼가…!”
이는 마르코뿐만 아니었다.
줄곧 무미건조한 모습을 일관하던 드레이븐 남작도 상당히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오냐. 죽는 것이 그토록 소원이라면 내 즐겁게 네놈을 도륙 내주마!”
진즉 도발에 넘어간 마르코가 냅다 도약해 순식간에 이든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역시나 예선전 때와 마찬가지로 마르코는 쾌속의 공격을 구사했다.
휙.
깊숙이 안쪽까지 파고 들어오는 것이, 초장부터 일격필살이라 봐도 무방했다.
마르코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든의 숨통을 노리던 그때.
이든이 잔상처럼 사라지며, 마르코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이런!”
검을 휘두른 반경이 컸던 탓에, 마르코가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었다. 일순 핏발 가득 섰던 그의 눈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젠장!”
그때.
휘이이이이익!
어디선가 날아온 흑색의 검집이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퍼억!
“컥…!”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마르코의 목이 꺾일듯한 기세로 숙여지며 바닥을 향했다.
쿠웅.
검집으로 뒤통수에 한번. 그리고 그 힘을 못 이겨 바닥을 구르며 바닥에 또 한 번 부딪힌 마르코의 머리. 1타 2피란 무엇인지 정확하게 보여주는 한 수였다.
“컥! 콜록…!”
“그 정도로 안 죽어. 일어나.”
“이 개자식이…!”
마르코의 눈에 더욱더 선명한 핏발이 섰다.
붉게 충혈된 눈만큼이나 그의 얼굴 역시 붉게 달아올랐다.
이든에게 얻어맞고 아픈 것보다 추한 꼴을 보였다는 쪽팔림이 더욱 컸다.
마르코가 검을 역수로 쥐곤 지탱하며 일어났다.
그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으르렁거렸다.
“분수에도 안 맞는 여유 부린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멍청한 머리 한 대 때려서 주제파악 좀 하게 만들려 했더니만, 한 대로는 부족했냐?”
“으윽! 일단 네놈의 그 혀부터 잘라주마!!!!!!!!”
역시 백전노장답게 나이는 허투루 먹은 것이 아니다.
상대를 열 받게 하는 데에도 상당한 도가 튼 그였다.
이든의 도발에 마르코가 잔뜩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재차 달려들었다.
휙! 휙휙! 휙!
냅다 달려들었지만, 또 멍청한 짓을 반복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처음과 달리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검을 휘두르며 이든을 압박하는데, 눈이 보여도 피하길 힘든 것을 이든은 잘만 피해 댔다.
‘예선전 때도 그렇고 지금도 상당히 빠른 쾌검이다.’
쾌검을 자랑하는 드레이븐 가문의 검술은 칼스테인 가문의 것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검술의 정교함 자체만 본다면 동급.
하나, 그것을 쓰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동급의 검술도 수준 차이가 월등히 나기 마련이다.
“쥐새끼처럼 잘만 피해대긴!”
마르코가 이를 바득 갈며 위협적인 속공을 펼쳤지만, 이든의 기감은 한 치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파밧!
그때, 검을 피하던 이든의 신형이 재차 땅으로 꺼진 듯 사라졌다.
“한 번 속지, 두 번 속을 것 같냐!”
마르코가 휘두르던 움직임을 멈추고는 그의 뒤통을 선점하여 막던 그 순간.
뻐어어어어어어억!
“……!!!!!”
마르코의 엉덩이에서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일순 불이 난 것 마냥 뜨거워지는 엉덩이에 마르코의 이마에 핏대가 그득 섰다.
“끄허어어어어……!”
이든의 검집이 마르코의 엉덩이를 냅다 후려갈긴 것이다.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릴 내던 마르코가 곧바로 바닥을 굴렀다.
“끄흐으으으윽!”
마르코가 이를 악물곤 고통에 새어나는 소릴 참아댔다.
보는 눈이 원체 많으니 오도방정 떨며 아파할 수 없던 탓이다.
퉁퉁 부어오른 엉덩이.
후끈거리는 볼기를 붙잡으며 마르코가 비틀비틀 일어나려던 그 순간.
이든의 검집이 일순 위로 휙 들렸다.
그리고 일어나던 도중인 마르코에 온몸을 사정없이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퍼억퍼억퍼억퍼억!
“내가!”
퍽퍽퍽퍽퍽!
“네놈들 같은 부류들!!!”
퍽퍽퍽퍽퍽퍽!
“잘 아는데!”
퍽퍽퍽퍽퍽퍽퍽!
“역사적으로!”
퍽퍽퍽퍽퍽!
“매타작이!!!!!”
퍽퍽퍽퍽퍽!
“답이었어!!!!”
퍽퍽퍽퍽퍽!!!!
“꾸, 꾸에에에……!!!”
어찌나 아팠을까.
이든이 사정없이 휘두른 검집을 온몸으로 맞던 마르코의 눈이 회까닥 뒤로 넘어갔다.
진즉에 다가가 말려하건만, 그 살벌한 모습에 감독관이 차마 다가가질 못했다.
관중들 역시 한호는커녕 기가 찬 눈으로 이든을 바라보던 그때였다.
“이놈!!!!!!!”
칼스테인 백작 역시 마찬가지로 당황해 어쩔 줄 몰라하던 그때.
그가 채 알아차리기도 전, 옆에 앉아 있던 드레이븐 남작이 어느새 자리에서 뛰쳐나와 이든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네놈이! 우리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키려 작정했구나. 시건방진 네놈을 이 자리에서 죽여주마!!!!!!”
쩌렁쩌렁 외치는 남작의 외침.
이든을 향해 달려드는 드레이븐 남작의 손엔 어느새 검이 들려 있었다.
“머, 멈추시오!!!!!!”
당황한 감독관이 그를 제지하려 했지만 이미 드레이븐 남작의 눈엔 뵈는 것이 없었다.
우우우우웅!
드레이븐 남작의 손에 들린 검에 푸른 기운이 일렁였다.
지면을 박차고 달려드는 드레이븐 남작의 모양새는 필시 자신을 막는 감독관과 이든을 한꺼번에 베어버릴 생각이었다.
“이든!!!”
관람석에서 지켜보던 브라운이 놀라 소리치던 그때.
남작이 감독관과 이든이 서 있는 방향으로 검을 휘둘렀다.
파앗!
일촉즉발의 상황.
휘이이이이이익!
검을 휘두르던 남작의 움직임이 덜컥 멈추었다.
남작의 눈이 이든이 쥔 검으로 향했다. 언제부터 뽑혀있던 걸까.
이든의 손에 쥔 검은 흑색 검집에서 나와 새하얀 검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푸슈우우우우우우우웃!
검을 쥔 남작의 팔이 반듯하게 갈리며 피 분수를 뿜어댔다.
잘린 자신의 팔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드레이븐 남작이 일순 고통에 찬 괴성을 질러댔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두 눈 뜨고 보기 힘든 그 끔찍한 광경에 관중들이 저마다 할 말을 잃던 그때.
어느새 칼스테인 백작의 기사들이 그들을 제지하기 위해 경기장 근처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 멈추시오!”
선두의 기사단장이 급히 연락을 받고 달려와 그들을 제지하려 했지만, 이든은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남작 가까이 다가간 이든이 그의 상체를 밟고 눌러앉았다.
검을 쥔 반대편 이든의 한쪽 손에 일순 검은 마기가 일렁였다.
“드레이븐 남작, 아버지로서 무인으로서 자식들을 잘못 가르친 것도 모자라 죄 없고 힘없는 범부까지 같이 베어버리려 했던 죄를 물어. 너의 모든 무공을 폐한다.”
“그, 그……. 무슨!”
드레이븐 남작이 흠칫하며 벗어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마기가 실린 이든의 주먹은 어느새 남작의 단전을 향해 있었다.
퍼억!
드레이븐의 두 눈에 초점이 사라지고, 검붉은 피를 토해 냈다.
“커억! 컥… 쿨럭!”
치이이….
연신 피를 토해 내던 남작의 입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이내 육중했던 그의 몸이 피접이 상접한 것처럼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한다. 단전이 파괴된 것이다.
“모두! 동작 그만! 이든 참가자는 드레이븐 남작에게서 떨어지시오!”
기사단장을 필두로 그의 수하들이 둘을 일제히 포위했다.
이미 볼일을 끝낸 이든은 드레이븐 남작에게 멀찍이 떨어졌다.
가까이 다가온 기사단장이 남작을 보더니 식겁한 얼굴을 했다.
“무슨… 사람이 어떻게 이토록 말라 비틀어진단 말인가!”
잘린 한쪽 팔에 간신히 숨만 붙은 드레이븐 남작의 몰골은 끔찍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경악한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내내 상황을 지켜보던 귀빈석의 사람들, 관람객들 또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당장 죄인을 포박하라!”
기사단장이 정신을 차리곤 부하들을 시켜 이든을 포박하기 시작했다.
“이든!!!”
고요한 정적 사이, 브라운의 외침만 덩그러니 울리던 그때.
당당한 얼굴을 하며 가만히 포박을 당하던 이든을 향해 칼스테인이 노기 띈 목소리로 외쳤다.
“자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는가!”
“예.”
“참가자 간의 격렬한 싸움으로 인한 불의의 사고에 대해선 참작이 된다. 하지만 난입한 관객을 공격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아들의 복수를 하겠답시고 저를 죽이러 달려드는 사람에게도 말입니까.”
“그 또한 마르코와의 대련에서 자네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다. 드레이븐 남작으로서는 충분히 화가 날 만한 상황이 맞다.”
“그래서 감독관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 겁니까?”
칼스테인 백작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래서 자네는 죄가 없다, 그 말인가?”
“저의 죄를 묻기 이전에, 백작님 본인의 사람들부터 잘 관리하시라 그 말입니다.”
“뭐라?”
웅성웅성.
이든의 말에 관객들이 수군댔다. 드레이븐 남작을 폐인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영주의 면전에 대고 모욕을 줬으니 당장 목이 베여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브라운의 경악 어린 눈동자가 이를 증명했다.
“백작님께선 오늘 내내 무도 대회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십니까?”
이든이 마르코를 발로 툭 치며 가리켰다.
“이놈은 대회 신청 날, 동생과 함께 절 장애인이라 모욕했던 녀석입니다. 이놈의 동생도 대회 전에 시비를 걸기에 병신으로 만들어줬지요. 그런데 꼴에 형이라고 저에게 복수하겠답시고 예선전 때 조별 대진표를 조작한 것도 모자라, 저를 죽이겠다고 혼자 진검을 들고 싸우더군요.”
“뭣이…?”
“대진표를 조작하고, 대련용이 아닌 진검을 지급한 것.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하실 수 있으십니까. 아니면…!”
이든의 발이 이번엔 드레이븐 남작을 툭툭 쳐댔다. 그 모습에 모두가 경악했다.
“이 양반이 감독관을 매수해 자기 아들의 복수를 도운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으십니까. 제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맞다고 생각됩니다만.”
“증명할 수 있나.”
“그건 제 몫이 아닙니다. 백작님께서 진상을 밝히셔야 하지요.”
자칫 오만해 보일 수 있으나, 똑 부러지게 말하는 것이 이든이 거짓을 고한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백작이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
“분하지만 그의 말이 사실입니다.”
“칼라슈?”
내내 대기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칼라슈가 경기장으로 걸어 나왔다.
질질.
그의 한쪽 손엔 피떡이 된 감독관이 끌려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