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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16/250)

16화.

“칼라슈, 이게 무슨 짓이냐.”

아들의 돌발 행동에 칼스테인 백작이 그를 나무라려던 찰나, 칼라슈가 먼저 해명했다.

“아버님, 아니 백작님. 여기 제 손에 들린 감독관이 드레이븐 남작에게 뇌물을 받은 감독관입니다.”

“호레이쇼?”

백작이 감독관의 얼굴을 확인하자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호레이쇼 감독관이 뇌물을 받았다니…. 자세히 말해 보라.”

“말 그대로입니다. 호레이쇼는 남작에게 은밀히 뇌물을 받고, 그의 아들 마르코가 이든과 예선전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추첨을 조작했습니다. 그 때문에 이든은 추첨 표를 뽑지도 못하고 마르코와 예선전을 치를 수밖에 없었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툭.

칼라슈가 남은 반대편 손에 쥐고 있던 부러진 검을 경기장 바닥에 떨궜다.

“이 검은 감독관이 마르코에게 예선전 당시 지급한 대련용 검입니다. 제가 확인해 본 결과 이 검엔 날이 서 있더군요.”

“알버트, 검을 확인해 보도록.”

기사단장 알버트가 마르코가 예선 때 사용한 검을 확인했다. 알버트가 백작에게 고했다.

“진검이 맞습니다.”

웅성웅성

알버트의 말에 관객들이 다시금 수군댔다.

알버트와 칼라슈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든의 행동에도 정당성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백작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자신의 영지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백작님.”

한참을 말없이 있던 칼라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든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애초에 이 모든 것을 꾸민 배후의 드레이븐 남작과, 감독관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우리 가문의 잘못입니다….”

칼라슈도 고갤 떨궜다. 가문의 명예가 땅에 떨어질 것을 알고도 이든을 대신해 변호하고, 아버지에게 누를 끼친 것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칼라슈는 고갤 들어라.”

잠시 후, 백작의 음성에 칼라슈가 고갤 들었다.

“알버트 대장은 즉시 이든 참가자의 포박을 풀도록.”

“충!”

백작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알버트 대장이 손수 포박을 풀었다.

“아직 무도 대회 진행 중이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리겠다.”

그의 말에 모두의 이목이 백작에게 쏠렸다.

“드레이븐 가문은 제국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사사로운 감정을 개입하여 본 영지에 누를 끼쳤다! 더 나아가 이는 황제 폐하에 대한 모독과 같은 바. 이에 본 영주는 드레이븐 남작의 모든 권력을 폐하고, 그의 식솔들을 변방으로 유배한다. 또한, 비리를 저질러 본 대회가 갖는 의미를 더럽힌 감독관은 사형에 처한다.”

영주는 영지의 지도자. 자신의 영지 안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이라면 직접 판결에 대한 권한 또한 있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영주님!!!!!”

사형 선고가 내려진 감독관이 울고 불며 살려 달라 애원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지하 감옥으로 끌고 가라!”

알버트가 명령을 내리자 대기하던 기사들이 애원하는 감독관을 강제로 끌고 내려갔다.

감독관이 끌려가는 사이, 판결을 끝낸 줄 알았던 백작의 입이 다시 열렸다.

“이든.”

“…?”

백작의 음성에 이든의 고개가 그가 서있는 방향을 향했다.

“자네는 비록 규칙에 위배 된 행동을 했다곤 하나, 이는 드레이븐 남작과 본 가문의 실수로 일어난 사건이므로 이든이 저지른 죄는 모두 정상 참작한다. 다만 제국 창설 이래로 유지해 온 무도 대회의 규칙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바. 이든의 대회 참가권을 박탈한다.”

“아버지!”

“모든 판결은 이것으로 마친다. 칼스테인 칼라슈 참가자는 다음 경기를 준비하도록.”

칼라슈가 당황해 나서서 변호했지만, 백작이 딱 잘라 거절했다.

비록 자신의 아들이지만 경기장에 선 이상, 참가자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칼라슈.”

그때, 옆에서 가만히 듣던 이든이 칼라슈의 이름을 불렀다.

“변호해 주어서 고맙네. 진심일세.”

“이든….”

성내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로 피해를 입은 이든을 구제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칼라슈는 고갤 숙였다. 할말을 잃은 칼라슈를 향해 이든이 재차 입을 열었다.

“안타깝게 됐군. 자네와의 대결은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지.”

다른 참가자였다면 참가권 박탈이란 처분에 절망했을 테지만, 이든은 칼라슈와 대결이 미루어진 것에 대한 아쉬움만을 건넸다.

칼라슈가 고갤 들어 이든을 바라봤다.

“아쉽지만 이번 재회는 여기까진가 보군. 이든, 절대 포기하지 말고 지금 걷고 있는 그 길, 계속 걸어라. 나도 나의 길을 계속 걸을 테니. 그럼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

“옳은 말이다.”

서로 각자의 길을 걷는다 한들 결국, 무(武)의 길(道)이란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되어 있다.

전생에 정점에 섰던 무진이었기에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다음에 보자, 칼라슈.”

이든이 경기장 밖으로 나가 대기실로 향하던 그때.

우아아아아아아!

“멋진 싸움이었다!”

비록 참가권 박탈이라는 결과가 떨어졌지만, 이든의 등 뒤로 관객들의 함성이 쏟아지고 있었다.

***

대기실로 들어서자, 참가자들이 하나같이 박수를 치며 이든을 맞이했다.

짝짝짝.

이미 전황을 전해 들은 참가자들이 이든을 위로하기 위해 다가왔다.

“비록 참가권이 박탈되었다곤 하지만, 불의에 맞선 자네의 용기는 정말 멋졌네.”

“그래. 여기 있는 모두가 자네의 실력에 감탄했다고, 그 드레이븐 남작을 보기 좋게 쓰러뜨렸으니 말이야.”

뜻밖에 반응에 이든이 얼떨떨해 하던 그때, 발리스타가 다가왔다.

“아쉽게 됐소. 이든 형하고도 싸워보고 싶었는데 말이오.”

그의 말에 이든이 피식 웃었다.

‘그러게, 나도 마찬가지다. 너무도 아쉽게 됐어.’

“이제 어찌 할 생각이오?”

“확실한 건 아니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세상 밖을 돌아다닐 생각이오. 밖에 나가 다양한 무인들을 만나 보고 경험해 보고 싶소.”

“역시. 이든 형은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사내답소.”

참가권을 박탈당한 후 의기소침해할 줄 알았는데, 너무도 의연한 모습에 발리스타는 내심 감탄했다.

애초에 아카데미 입학에 뜻이 없었던 이든은, 단지 이 후기지수들과 검을 나눠 보지 못한 아쉬움만이 컸다.

척.

그때, 이든이 자신을 위로하러 와준 기특한 후기지수들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대들의 꿈, 이곳에서 반드시 이루시게. 그리고 나 또한 다른 곳에서 다시 그대들과 만나기를 기대하겠네.”

이 말을 건네는 이 순간만큼은 이든이 아닌, 무진이었다.

정점의 무진이 후기지수들의 성장을 기대하며 진심으로 건네는 말.

비록 포권이 무언지 몰랐지만, 이든의 진심이 느껴지기엔 충분했다.

짧은 인사 후 이든은 대회장을 떠났다.

그리고 무도 대회가 재개되었고, 최종 승자는 칼스테인 칼라슈가 되었다. 비록 참가권 박탈과 함께 퇴장으로 마무리 지었으나, 이든의 무용담은 대회가 끝난 이후에도 오래도록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칼스테인 칼라슈와 함께 이든은 이번 사건 이후로 유명 인사가 되었다. 또 다른 천재가 등장했다는 소문과 함께.

***

어스푸름한 달빛아래.

한 중년인이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비싼 술을 들이키고도 그의 표정엔 한점 변화가 없었다.

무감각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창밖을 응시하는 사내.

그의 손이 움직이고 다시 잔에 남은 술을 마저 비웠을 때.

그때 비로소 그의 눈이 흔들렸다.

칼스테인 백작.

“이든. 이라고 했던가….”

대회에 열기가 채 식기도 전이었음에도, 그의 얼굴은 그토록 차가울 수가 없었다.

똑똑.

“들어오거라.”

마치 누가 있기라도 아는양, 그는 조용히 그를 불러들였다.

문이 열리고 칼라슈가 들어왔다.

대회를 우승했음에도 한 점 기쁨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모습.

칼라슈가 고갤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없다.”

오늘 있었던 사건을 두고 하는 말들이었다.

“…후회하느냐.”

칼라슈는 고갤 저었다.

“아니요. 응당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 역시 그렇다.”

이든을 변호하고,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생각하고 있을 아들의 짐을 덜어준다.

“…오히려 난 네가 자랑스럽다.”

칼라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고맙구나.”

무심한 듯, 강한 그 격려에 칼라슈가 고갤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

무도 대회 이후에도 이든의 일상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와 함께 이든의 배송 또한 순조롭게 이어졌다. 그리고 오후가 되어 역시나 업무를 빠르게 마친 이든이 최종 검토를 받기 위해 길드로 귀환하던 참이었다.

“어, 이든 왔는가!”

어째 평소보다 더 열렬히 환영하는 지부장의 모습에 이든이 의아한 표정을 했다.

“무슨 좋은 일 있으십니까?”

“하하, 좋은 일은 무슨! 다름이 아니라… 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하나!?”.

“전에 했던 말이요?”

이든의 성격상 중하지 않은 것은 거의 잊어버리고 살다시피 하는지라,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일전에 수도에서 길드장님이 오신다고 하지 않았나.”

“아. 기억납니다. 그 얘기 하신 뒤로 벌써 한 달이나 지난 겁니까?”

“이 사람, 그간 얼마나 바쁘게 지냈기에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고 사나. 아무튼 내 자네가 언제 오나 코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네. 지금 길드장님께서 와계시네.”

“길드장님께서요?”

“그래. 자네를 너무도 보고 싶어 하셔.”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었지만, 일전에 약속했던 것이 있었기에 이든은 길드장이 있는 곳으로 바삐 향했다.

똑똑.

“들어오게.”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문을 열고 들어서니 평소 게럴드가 있어야 할 곳에 레스타드 길드장이 앉아 있었다.

서류로 고정되어 있던 그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하다 옆에 있던 이든에게 옮겨졌다.

“어서 오게, 아! 역시 자네였군!”

이든의 얼굴을 보더니 마치 아는 사람인 것처럼 반겼다.

“저를 아십니까?”

그때, 레스타드 길드장이 이든 옆으로 가까이 다가가 냉큼 어깨동무부터 했다.

“알다마다. 며칠 전 무도 대회 때 백작의 초대를 받았네. 거기서 자네를 처음 봤지.”

“아…!”

“비록 몰락한 가문이라곤 하나, 과거 이곳을 다스렸던 드레이븐 남작을 보기 좋게 이겼는데, 내 어찌 자네를 몰라보겠나. 게다가 이렇게 훤칠한 사내를 말이야.”

이든이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감사합니다.”

“자자, 서 있지들 말고 어서 앉지.”

이든과 게럴드가 탁자 앞에 앉는 동안, 레스타드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차를 찻잔에 따랐다.

쪼르르르.

“그래. 자네, 올해 나이가 몇이지?”

“열다섯입니다.”

“열다섯이라. 아직은 그래도 많이 어리군.”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겁니까?”

찻잔에 차를 다 따르기도 전에 용건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것이 당돌하다.

레스타드 길드장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수도의 길드장을 앞에 두고 용건부터 묻는 건가? 자네 볼수록 물건이구만!”

길드장의 말을 듣고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는 이든과 달리 옆에 있는 게럴드 지부장은 내내 노심초사했다.

“그래. 내 본론부터 꺼내지. 내년에 유니콘 길드에서 새로운 사업을 벌일 생각이네.”

“새로운 사업이요?”

뜻밖에 소식에 놀란 이든과 달리, 게럴드는 이미 들은 것이 있어 태연했다.

“그래. 지금까지는 각 지부에서 배송 업무만 해왔지만, 최근 수도에서 새로 벌인 사업이 반응이 좋아서 말이야. 그래서 다음으로 성과가 좋은 칼스테인 영지에서도 새 사업을 개시해 보면 어떨까 싶어서 말이야.”

“그것이 뭡니까?”

“상단 길드를 호송하는 걸세.”

“호송 말입니까?”

이든이 놀란 얼굴을 했다. 불현듯 그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호오. 표국의 업무를 같이 하시겠다.’

“어떤가. 단순 배송뿐만 아니라. 상단 길드에서 대량으로 옮기는 물품을 호송한다. 괜찮지 않은가?”

“하지만 그건 기존에 용병이 하던 업무 중 하나 아니었습니까?”

레스타드 길드장이 말한 것은 사실상 기존에 있던 사업이나 마찬가지였다.

레스타드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맞아. 용병 업체에서 하던 업무 중 하나지. 그런데 상인 길드에서 이 용병들 때문에 여간 골머리를 썩이는 게 아니어서 말이야.”

“그랬습니까?”

“물건 중 일부를 슬쩍하는가 하면, 사전에 얘기된 계약금 외에도 호송 중간에 추가금을 요구하거나 주지 않을 시 그대로 철수해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더군. 제대로 된 용병 업체는 한정적이고, 그 제대로 된 업체조차 사전에 계약한 건부터 순차적으로 일을 진행해야 하다 보니 당장 일이 급한 상단 길드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공인되지 않은 용병 업체에 의뢰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야.”

“확실히 유니콘 길드라면 배송 업무에 관해선 이미 안정성이 입증된 업체니까요.”

“그렇지. 상단 길드 입장에선 싼 사설 용병 업체에 맡기느니 돈을 좀 더 주고서라도 입증된 곳에 의뢰를 맡기고 싶겠지.”

그때, 듣던 이든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러면 따로 전투 요원이 필요할 텐데요. 유니콘 길드 같은 경우엔 사실상 수도의 본부를 제외하고 전투 요원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전국에서 실시하는 이번 무도 대회를 순회하며 전투 요원을 포섭해 인력을 보강하려고 생각 중이네. 우선, 수도에 있는 호송팀 중 일부를 이곳 지부에 파견할 생각이네. 내 마음 같아선 자네를 수도로 데려가고 싶지만, 아직 어려서 말이야. 내년에 여기 호송팀이 신설되면 본격적으로 의뢰를 받고 업무를 수행하게 되는 것은 내후년쯤 되겠군. 그때가 되면 자네의 나이도 열일곱이 될 테니 그때부턴 세상 밖을 유람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지. 어떤가. 한번 해볼 생각 없나?”

뜻밖에 제안에 이든의 표정이 밝아졌다.

기회가 닿으면 세상 밖 구경을 하고 싶었다. 이든은 고민조차 하지 않고 답했다.

“물론입니다. 꼭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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