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250)

18화.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손님들이 영지 내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사전에 전달받은 이리아 비서장은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이곳 지부에 배정된 호송팀 대장 케인입니다.”

케인의 모습은 천생 무인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나란히 선 사람들이 보였다. 그중엔 케인과 마찬가지로 푸른 방패 용병 단원 출신도 있었고, 최근에 투입된 신입 길드원도 있었다.

“환영합니다. 지부장님께서 마침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같이 들어가시죠.”

“예.”

케인이 몸을 돌려 뒤에 동료들을 향해 입을 뗐다.

“자자, 그럼 난 지부장님을 만나 뵙고 올 테니 다들 사고 일으키지 말고 가만히들 있으라고.”

“예~.”

“…….”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부터 고개만 까딱이는 모양새, 어수룩하다 못해 몰상식한 모습이 숱한 전쟁터를 누비며 사람 한번 제대로 상대해본 적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들에게 뭐라 하는 이들이 없었다.

돈을 좇으며 피와 살점이 튀기는 싸움터를 전전해 온 그들에게서 풍기는 위압감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다들 아직 어리고, 사람을 상대하는 데 미숙한 놈들이라….”

케인이 멋쩍은 듯 말했지만 이리아는 애초에 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녀 역시 비서장으로 있으면서 별별 인간들을 다 접해 왔기 때문이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어서 들어가시죠.”

“예.”

이리아의 안내에 지부장실로 들어서자 마침 게럴드가 방금 끓인 차를 탁자에 올려놓고 있었다.

“어! 어서 오게. 케인 대장, 수도에서 이후론 2년 만이지?”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지부장님.”

“뭐. 보시다시피 요즘 신수가 훤해지긴 했지. 허허! 자, 어서 앉게. 마침 차를 끓였으니.”

“예.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안내했던 이리아가 다시 밖으로 나가고, 게럴드와 케인이 마주 앉았다.

“그때 자네랑 만났을 땐, 우리 지부에 호송팀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지.”

“사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때 만남이 마지막일 줄 알았거든요.”

“푸훕…!”

솔직하다 못해 허를 찌르는 케인의 말에 게럴드가 마시던 차를 도로 내뱉었다.

“크, 크흠! 하긴 당시 우리 지부 영업 실적이 제일 꼴찌이긴 했지.”

“그런데 근 2년 사이에 뒤바뀌지 않았습니까. 본부 다음으로 가는 영업 실적이라니. 듀란드 공작 영지 지부장님께서 상당히 분해하시더군요.”

케인의 말에 게럴드가 수긍했다.

“그럴 만도 하지. 거기가 어디 보통 영지인가. 수도 다음가는 최대 도시이지 않나. 그런 곳이 우리보다 영업 실적이 떨어졌으니 분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네.”

“대체 누굽니까?”

“응?”

허공을 응시하던 게럴드의 시선이 다시 케인을 향했다.

“길드장님께 들었습니다. 이곳에 새로 들어온 길드원이 지금의 영업 실적을 만들었다고 말입니다.”

“그런 셈이지.”

“이름이….”

쾅!

그때, 갑작스레 지부장실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오고가는 고성이 들리는 것이 필시 싸움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 소리에 케인이 난감한 표정을 했다.

“이런…. 아무래도 저희 애들이 길드원분과 싸움이 난 듯합니다.”

“훗. 그럴 만도 하지. 워낙 거친 친구들 아닌가?”

“이런 장님 새끼가, 지금 뭐라고 했어. 나보고 멍청하다고!?”

우당탕!

“이런….”

게럴드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벌써 배송을 끝내고 왔나 보군.”

게럴드의 말에 케인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예? 아직 점심 전입니다. 벌써 배송을 마치고 오는 길드원도 있습니까?”

게럴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지부장실 문을 열었다.

“그럼 케인 대장, 소개하지. 우리 지부를 수도 다음가는 실적을 세운 지부로 만들고, 이번에 새로이 호송팀 일원으로 들어갈… 이든일세.”

케인의 시선이 문이 열린 지부장실 밖으로 향했다.

그곳엔 호송팀과 시비가 붙은 한 사내가 보였다.

큰 키에 다부진 체격, 수려한 얼굴을 한 사내였다. 다만 특이점이 있다면.

‘…응? 맹인?’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수려한 외모를 한 미청년의 감긴 눈이 케인의 시선과 맞부딪쳤다.

***

어김없이 점심이 채 되기도 전, 배송을 마치고 복귀 중이던 이든의 걸음이 일순간 빨라진다. 길드 안에서 평소와 다른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설마. 본부에서 온 사람들인가?’

어느새 길드 문 앞까지 온 이든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새로 맡게 될 업무로 잔뜩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역시 무인은 무인이구먼. 문밖에서부터 벌써 분위기가 다르잖아.’

끼익.

이든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무관이 평소보다 그를 반기며 맞아주었다.

“어, 어서 오세요. 이든. 하하….”

잔뜩 겁먹은 듯한 사무관의 목소리.

“본부에서 사람이 왔나 보군요.”

“맞아요. 근데…. 본부에서 보낸 사람들치고 분위기가 좀….”

“흠.”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향해 노골적으로 경계하는 시선이 조금 전부터 느껴졌다.

그때, 들어서는 이든을 향해 이리아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든, 오늘도 어김없네요.”

“예. 그런 셈이죠.”

이든이 이리아에게 서류를 건네기 위해 본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나칠 때쯤이었다.

“뭐야. 장님이잖아?”

“장님? 근데 장님이 왜 칼을 차고 있어?”

“그냥 폼인가 보지, 뭐.”

“칼 차다가 뒤질 수도 있는데.”

“그래도 잘생기지 않았어?”

이든이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저마다 한마디씩 꺼내는 모양새가 참으로 무례했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이리아가 쓴소리를 했다.

“이봐요. 다들 말씀이 지나치신 것 아닌가요?”

“아, 아니. 그냥 그렇다는 거지, 뭐. 저희가 틀린 말 했습니까.”

“그래도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죠.”

이든의 일이라면 항상 발 벗고 나서던 이리아가 대신 따지던 그때.

이든이 그녀를 말렸다.

“괜찮습니다. 이리아 씨. 본부에서 온 사람들인데 이런 일에 비서장인 이리아 씨가 나서면 지부장님이 곤란해하실 겁니다.”

“그렇지만….”

“단….”

그때, 이리아를 향하던 이든의 얼굴이 본부의 사람들을 향했다.

“저는 일개 길드원일 뿐이니 무시하고 지나쳐선 안 되겠죠.”

일순간 휩싸인 정적. 모든 시선이 이든에게 집중됐다.

“저 새끼…. 지금 뭐라는 거야?”

“못 들었나? 장님이네 뭐네 떠들더니 그쪽은 귀가 먹었나 봐?”

“윽…. 후!”

순간 욱하던 사내, 톰슨이 진정시키듯 크게 숨을 내뱉곤 다시 입을 열었다.

“방금 우리가 한 말 때문에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지. 됐나?”

사과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때, 이든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어딜 가나 똑같군.”

“……?”

“칼 잡는답시고, 별것 아닌 것들 머릿속 하나같이 텅텅 빈 거. 내가 몇 번 경험해 봐서 너무 잘 알지.”

“이 새끼가 그냥 참고 넘어가려 했더니!”

쾅!!!

톰슨은 세상에서 멍청하다는 말을 제일 싫어했다.

그가 울컥 올라오는 화를 참지 못 하곤 분풀이하듯 길드 내 벽을 주먹으로 강하게 한 대 쳤다.

“톰슨, 진정해. 오자마자 사고 칠 생각이야?”

그때 옆에 있던 까무잡잡한 피부의 여인이 톰슨을 말렸다.

“저딴 말을 듣고 가만히 있으란 거야, 지금?!”

“가만히 있어도 모자라지. 정중히 사과를 받아야겠다. 방금 지껄였던 모두한테 다.”

“뭐…?”

비단 톰슨만이 아니었다. 등 뒤에서 흉을 보던 모든 사람에게 건넨 얘기였다.

톰슨이 자조 섞인 얼굴을 하고는 터벅터벅 걸어가 이든 앞에 섰다.

“못하겠으면 어쩔 건데. 엉?”

톰슨의 시비조에 이든이 한심하단 표정을 했다.

“역시… 여기서 네가 제일 멍청한 놈이 맞구나.”

빠직.

멍청하단 말을 제일 싫어하는데, 이 중에 가장 멍청해 보인단다.

불에 기름을 부은 격. 톰슨이 결국 폭발했다.

“이런 장님 새끼가 뒤지려고!!!”

톰슨의 우악스러운 주먹이 냉큼 달려들었다.

산만한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빠른 주먹.

이를 여유롭게 피해낸 이든이 코앞까지 날아온 톰슨의 주먹을 쥐고 흘리더니 그의 몸을 그대로 벽으로 밀어 날려버렸다.

쿠당탕!

주먹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어느새 벽을 들이박고는 꼬꾸라진 채 정신을 못 하는 톰슨.

그때, 지부장실에 나온 게럴드가 현장을 보고는 너털웃음을 쳤다.

“다들 통성명은 끝났나 보군. 어떤가. 이번에 온 호송팀일세.”

이든이 미소 지었다.

“아주 마음에 듭니다.”

그때, 호송팀 중 한 명이 이든의 이름을 아는 모양인지 불쑥 입을 열었다.

“이든…? 혹시 무도 대회에서 드레이븐 남작을 때려 눕혔다는 심안의 무사 이든을 말하는 거요?”

그 사이 이든의 소식이 수도까지 전해진 걸까.

본부에서 온 사람 중에도 이든을 아는 자가 몇 있었다. 그때, 케인이 톰슨을 잡고 일으켰다.

“가만히 있으라고 그렇게 주의를 시켰는데, 그새를 못 참나.”

“으으….”

톰슨을 향하던 케인의 시선이 이든에게 옮겨졌다.

“이해해 주게. 보시다시피 싸움터만 전전해 온 놈들이라 싸우는 법만 알지,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법은 모르거든.”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든이 모를 리 없었다. 전생에 일개 마인이었던 시절, 그 또한 이런 광경을 숱하게 보았었다.

다만 알면서도 그랬던 것은 그 나름의 서열 정리였다.

이와 같은 무리에선 서열 정리를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오히려 골이 깊어진다는 것을 경험상 잘 알고 있었다.

“호송팀 대장 케인일세.”

“이든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호송팀으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소개할 거면 근처 술집에서 하는 것이 어떤가. 자네들 덕분에 사무관들이 단단히 얼어붙었다고.”

지부장의 말에 케인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무관 대부분이 잔뜩 얼어 있었다.

“그럼 남은 길드원은 근처 술집에서 소개할까 하는데, 어떤가. 서로 오해들도 풀 겸 말이야.”

“그것 좋지요.”

***

근처 주점 식탁에 빙 둘러앉은 이들의 분위기는 여전히 무거웠다.

분위기도 환기할 겸 케인이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자네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열여섯입니다.”

“열여섯? 흐음. 아직 많이 어리긴 하군.”

이든의 나이를 듣던 톰슨이 술을 마시다 말고 도로 뱉었다.

“열, 열여섯!? 내가 그럼 열여섯 살짜리 애한테 당한 거야?”

“크큭!”

“풋!”

새파랗게 어린놈한테 당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옆에서 케인이 혀를 찼다.

“아무튼, 이번에 수도에서 온 길드원들을 소개해 주겠네. 조금 전 자네에게 얻어터졌던 덩치는 톰슨. 나이는 스물넷일세. 힘 좀 쓰는 친구이지만, 아직 나잇값 못하는 철부지라네.”

“뭐요!”

눈을 부라리는 톰슨을 무시하고, 케인이 곧바로 옆에 앉은 까무잡잡한 피부의 여성을 가리켰다.

“또 다른 친구의 이름은 로즈. 나이는 비밀이라는군. 과거엔 청부업 일을 하다가 용병단 시절에 우리와 만나 줄곧 함께 일하게 됐지.”

“안녕~?”

“그리고 자네 바로 오른편에 앉은 친구는 게일. 우리 팀에서 원거리 저격을 담당하고 있어. 그리고 자네 왼쪽에는 앙휄. 여인이지만, 뛰어난 검술로 전투 시 최전방을 맡고 있는 친구지.”

“훗. 반가워.”

“그리고 얼마 전 마법 아카데미를 수료한 리아란 친구도 있네. 특기는 각자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하는 일은 결국 하나. 상단을 호송하는 것일세. 사실 여기 있는 우리는 극히 일부고 아직 수도에서 도착하지 못한 일행들이 많네. 그들은 나중에 소개하도록 하지. 그럼…. 우리 소개는 대충 끝났고, 이제 자네 소개를 듣고 싶은데.”

“저는 칼스테인 영지 지부에서 2년간 배송 업무를 맡았던 이든이라고 합니다. 작년 이맘때쯤 레스타드 길드장님의 추천으로 호송팀에 배정받게 되었습니다.”

“길드장님의 추천으로?”

이든의 얘길 듣던 케인이 놀란 표정을 했다.

이곳 지부에 새로 합류하게 될 팀원에 관해서 간략한 소개만 들었지.

그가 업무를 바꾼 것이 무려 길드장님의 추천이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놀란 건 비단 케인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 톰슨이 곤란한 얼굴을 했다.

길드장이 직접 선별한 사람에게 시비를 건 것도 모자라 주먹을 휘둘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던 이든이 본론부터 꺼냈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임무는 언제부터 시작되는 겁니까?”

이든의 물음에 케인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그렇지. 제일 중요한 얘기를 잊고 있었군. 우선 당장에 급한 볼일은 이곳 지부에 의뢰소를 증설하는 것이지. 본부에서 미리 경험해 본 바, 아무래도 일반적인 배송 업무와 상단의 호송은 철저하게 분리하는 편이 좋더군. 우리처럼 현장직 외로 의뢰를 받고 운송품 목록을 확인하는 사무관들이 별도로 배치될 걸세. 우선 우린 의뢰소 증설 작업 현장에 투입하려 하네. 자네는 따로 말이 있기까지 지금까지 해왔던 배송을 계속해 주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걸세.”

“알겠습니다.”

케인이 술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록 껄끄러운 첫 만남이었지만, 앞으로는 서로 지탱할 동료가 될 걸세. 우선, 이 한 잔으로 잠시나마 쌓였던 오해를 씻어버리자고.”

케인이 잔을 중앙으로 내밀자 다른 동료들도 일어났다. 이든도 마찬가지였다.

“새로 합류하게 된 친구를 환영하며. 위하여!”

“위하여!!!!!!”

케인의 선창에 남은 이들이 후창하며 술을 들이켰다.

그때, 술잔을 먼저 비운 톰슨이 입을 열었다.

“그… 아까는 미안했네!”

결코, 예의 바르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것도 나름 괜찮았다.

이든이 작게 웃었다.

비록 아름다운 첫 만남은 아니었으나, 이날 이후로 그들은 친구가 됐다.

술이란 것이 본래 그런 용도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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