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250)

22화.

그의 얘길 듣던 케인이 물었다.

“응? 그게 뭔가.”

“어차피 수도까지 가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그 사이에 앞으로 몬스터들의 습격이 없을 거라 장담할 수 없잖습니까?”

“그렇지.”

“놈들을 몬스터의 먹이로 던져 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럼 피를 흘리지 않고도 무사히 수도로 갈 수 있을 겁니다.”

대답 한번 가관이다.

이든의 설명에 케인과 리갈마저 식겁했다.

“자, 자네, 진심인가…?”

“좋은 방법 아닙니까?”

“아, 아니…. 좋은 방법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건….”

케인이 망설이던 그때. 이든이 마저 대답했다.

“어차피 도적질과, 여자들을 납치해 유린한 순간부터 사람이기를 포기한 놈들입니다. 짐승보다 못한 것들이니 마땅히 다른 짐승들의 밥으로 던져줘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됩니다.”

무미건조한 얼굴로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이든의 모습은 산적들 눈엔 마귀를 넘어 저승에서 즉결심판을 일삼는 염라를 보는 듯했다.

케인이 고민하던 그때, 리갈이 고갤 끄덕였다.

“이든의 말이 맞네.”

“리갈 대표님?”

“이든의 말대로라면 우리 상단뿐 아니라 대장의 길드원까지도 피를 흘리지 않고 안전히 수도에 도착할 수 있을 거요. 우리 사람이 더 중하지, 한낱 이들의 목숨이 중하겠소?”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지만 여전히 찜찜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케인이 마지못해 고갤 끄덕였다.

“…그럼 그리하도록 하죠. 대원들은 모두 이쪽으로.”

케인의 입이 떨어지자, 주변의 길드원이 잡아 온 산적의 팔다리를 단단히 결박했다.

각 수레에 한 명씩 끌려 들어가는 산적들의 모습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자네 말이야.”

케인의 시선이 다시 이든을 향했다.

“지금 느끼는 거지만 자넨 무서울 정도로 도가 지나칠 때가 있는 것 같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더 무서운 건, 그걸 주변 사람들이 납득하게 만든다는 거지.”

“대장님의 의견은 어떠십니까. 저 버러지들을 어찌해야 할지.”

케인의 시선이 결박된 채 수레에 오르는 산적들을 향했다.

“잘 모르겠네. 사실 저 불쌍한 여인들을 보면 그간 저들이 벌여 온 행각이 얼마나 극악무도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네. 옳다 그르다 할 자격이 내겐 없어. 어찌 보면 자네의 의견이 그녀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지도….”

“그거면 됐습니다.”

“응?”

이든의 고개가 여인들의 기척을 향했다.

“그리고 비단 여인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응?”

“지금 여기서 산적들을 제대로 벌하지 않으면 추후에 또 다른 산적들이 산채에 들어설 겁니다. 본보기를 보여야 훗날 호송을 나섰을 때 조금이나마 위험을 조우할 가능성이 적어질 겁니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네….”

“그럼. 이만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곧 불침번이라서요.”

“그러도록.”

발을 옮기는 이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케인의 표정이 묘했다.

도가 지나칠 만큼 과격하긴 했지만, 하는 모든 행동엔 그 이유가 명명백백했다.

마치 백전노장을 앞에 두고 얘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참이나 이든의 등을 바라보던 케인이 이내 고갤 젓는다.

‘하아…. 나도 이만 다시 자야겠군.’

한차례 소동이 끝나고, 다시 밤이 깊어져 가고 있었다.

***

산 채로 던져져 몬스터에게 잡아 뜯기고 먹히는 산적들의 모습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그들의 처절한 비명은 뒤이어 차례를 기다리는 산적들에게 말 못 할 공포를 심어주었지만, 먹이로 던지는 사람도 꺼림칙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좋든 싫든 간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포박한 산적들을 몬스터들의 먹이로 주자는 이든의 계획이 제대로 통한 것인지 쓸데없는 자잘한 전투는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호송 내내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끔찍한 이 방법을 도중에 중단하지 않은 까닭은 비단, 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끔찍한 광경에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핏발 선 눈으로 산적들의 숨통이 끊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여인들.

그녀들의 얼굴에서 그간 쌓인 증오심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대체 그간 얼마나 고통받았으면 저리도 눈에 독기를 품는단 말인가….”

수레가 위험 지역을 벗어나고 수도 국경 인근에 다다랐을 때쯤엔, 이든이 데리고 온 여인들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그녀들은 상단과 길드원들이 먹을 배식을 대신하였다.

덕분에 남은 기간 맛있는 식사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다시 밤이 깊어 오고, 이든이 불침번을 서고 있을 무렵.

타닥타닥.

보이지 않음에도 가만히 모닥불을 응시하는 듯한 이든의 모습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앳된 소년 같기도, 듬직한 사내 같기도 하였고, 세월이 무상함을 느끼는 노인 같기도 했다.

알 수 없는 얼굴로 있던 이든이 한곳으로 고갤 돌렸다.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종일 고생하셨는데 왜 안 주무시고요.”

“잠이 오질 않아서요….”

산적의 소굴에서 데리고 온 여인 중 한 명.

그녀는 수도의 한 용병의 출신으로 호송 중에 산적들의 습격을 받았다.

그 과정에 자신의 남편 또한 목숨을 잃었고….

이든 옆에 앉은 카르엘이 뭔가를 건넸다.

“저기, 이거….”

“이건….”

“일전에 저희 구해 주셨을 때 입고 계시던 옷이에요. 피로 더러워져서 제가 따로 짬날 때 세탁을 해두었습니다.”

카르엘이 말끔히 세탁을 끝낸 무복을 이든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곱게 갠 무복을 건네받은 이든이 미소 지었다.

“아주 깨끗이 해주셨군요.”

“그것을 어찌 아세요?”

“정성스럽게 세탁한 옷은 만져만 봐도 압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뭘요….”

“그럼 잠시….”

이든이 일어나 잠시 자릴 비웠다.

잠시 후 이든은 카르엘이 건네준 무복으로 말끔히 갈아입고 나타났다.

“버릇이라고 해야하나…. 역시. 이 옷이 아니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군요.”

이든이 다시 자릴 깔고 앉았다.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몇 개 집어넣고 불을 세게 피우더니 카르엘에게 넌지시 물었다.

“용병이었다 들었습니다. 이제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모르겠어요. 감옥에 있을 땐 무슨 일이 있어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막상 나오니 막막해요….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근심이 가득한 목소리.

듣던 이든이 조심히 입을 뗐다.

“계속, 하던 일을 하십시오.”

“네…?”

“남편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저는 헤아리지 못합니다. 다만 그 일로 하던 것을 못 하고 방황한다면 필시 남편분께서 슬퍼할 겁니다. 방황하느니 차라리 내키지 않더라도 하던 일을 계속하십시오. 그럼 분명 언젠가는 살아갈 이유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정말…그럴까요.”

카르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비단 그녀뿐이겠는가.

잡혀 있던 모두가 그녀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앞으로 누구도 선뜻 믿지 못할 것이고, 선택에 있어 항상 망설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남은 삶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

“제 대답이 정답이 될 순 없습니다. 그냥 수많은 길 중 하나입니다.”

정답이 될 순 없으나 하나의 길을 제시한다.

전생부터 그토록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어찌 무진 또한 그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겠는가.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무진은 달려왔고 벽을 깨부쉈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말해 줄 수 있는, 단순하지만 올곧은 길.

이든의 말을 듣던 카르엘이 눈물을 닦았다.

“고마워요. 정말… 정말 고마워요.”

살짝 눈물이 맺혔으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던 것이다.

“도움이 됐다니 저도 기쁩니다.”

이든도 따라 미소 지었다.

조금 후련해진 탓일까. 카르엘이 숨을 깊게 들이 내쉬더니 밤하늘을 바라본다.

“지금 보니 하늘이 정말 예쁘네요.”

“그렇습니까?”

“오늘은 종일 불침번이시죠?”

“예.”

“피곤하진 않으세요?”

“원래 잠이 없는 편입니다.”

“그럼 같이 있어 줄까요?”

“힘드실 텐데요.”

카르엘이 나뭇가지를 모닥불 안에 몇 개 집어 던져 놓고는 이든 옆에 좀 더 찰싹 달라붙어 앉았다.

“그러기야 하겠지만 심심할 테니 말 상대라도 해드릴게요.”

“…뭐 그럼 저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타닥타닥.

확실히 혼자 불침번을 서는 것보단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시간이 더 잘 갈 테지….

어느덧 찾아온 새벽, 떠들던 이든의 말이 어느 순간 뚝 멈춘다.

“말 상대해 준다더니 내 어깰 빌리고 있네….”

어느 순간 곯아떨어진 카르엘은 이든의 어깨를 빌려 잠을 청하고 있었다.

다음 날 날이 밝고, 상단의 사람들이 저마다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일 무렵.

주변 소음에 카르엘도 눈을 비비고 잠에서 깨어났다.

“으음… 이런, 미안해요. 제가 잠들어버렸….”

“잘 주무시더군요.”

“이건…?”

카르엘의 어깨에 이든의 털 달린 외투가 덮여 있었다.

아무리 추워도 산적들의 외투는 꺼렸었는지, 입지 않던 그녈 위해 이든이 벗어 덮어준 것이다.

“미안해요. 제가 밤새 기대고 있었군요…!

카르엘의 시선이 이든의 어깰 향했다.

그의 어깨가, 그녀가 자면서 흘린 침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미, 미안해요! 저, 저도 모르게 자다가 침을…! 기껏 세탁했는데, 도로 더러워졌네요….”

카르엘이 울상을 짓자 이든이 난감한 얼굴을 했다.

“침이었습니까?”

“네?”

“…전 눈물인 줄 알았습니다.”

“아….”

“침이었군요. 어쩐지 엄청 축축하더라니.”

“푸훕…!”

무미건조한 얼굴로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니 그것이 더 웃겼다.

순간, 카르엘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든 역시 마주 웃으며 천천히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자 가시죠.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본격적으로 호송을 시작하기 전, 여자들과 몇몇 짐꾼이 서로 도와 아침을 준비했다.

그때, 검을 닦던 이든의 곁으로 로즈가 슬쩍 다가왔다.

“신입.”

“네?”

잘만 이름을 부르다가 갑자기 신입이라 말을 바꾸는 것이 분위기가 묘했다.

“어제 내내 불침번 섰지.”

“예.”

“새벽에 잠깐 깨어나서 보니까 카르엘 씨가 침낭에 없던데, 그 여자하고 같이 있었어?”

“네.”

“네에~?”

“예?”

“네라고? 칫. 알았어!”

‘뭐야. 왜 저래?’ 라는 이든의 표정.

알 수 없는 말만 하고 휙 하니 돌아가 버리는 로즈를 향해 이든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있는 사이, 톰슨이 씩씩대는 로즈에게 다가갔다.

“질투?”

“닥쳐라.”

“훗. 내가 너하고 수년을 같이 다녔는데, 그걸 모를까 봐?”

“어쩌라고.”

“언제부터야?”

“좀 꺼져라.”

사늘하게 식은 로즈의 눈에서 언뜻 살기가 비치는 듯 했지만 톰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좀 솔직해져 보는 게 어때?”

“…….”

“너 이런 적이 한두 번이냐고. 매번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해서 후회하는 게.”

“하아…. 알았으니까 좀 가라.”

“아무튼 난 충고해 줬다. 고백 한번 못 해보고 뺏기면 억울하지 않겠냐?”

“하아… 진짜.”

톰슨 뒤통수에 대고 욕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틀린 말 하나 없었다. 로즈가 머릴 빡빡 헝클어댔다.

“고백이라니. 나 같은 게 무슨….”

로즈의 시선이 문득 이든의 뒷모습을 향했다.

어린 시절, 먹고살기 위해 청부업 일을 해온 그녀였다.

기구한 운명 탓에 웬만한 사내보다 더욱 거친 생활을 해온 그녀.

그러다 운 좋게 지금의 동료를 만났고, 사내 같은 자신의 성격상 용병 일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근래 들어 그간 감춰왔던 여인으로서의 본능이 나타났다.

마음에 드는 상대가 보이면 어느 순간, 그녀 자신도 모르게 짝사랑에 빠졌다.

줄곧 거친 사내들 틈에 섞여 살아왔기에, 좋아하는 사내를 봐도 늘 숨기기에 급급했고,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라 생각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이든을 바라보는 지금도 그랬다.

로즈가 한숨을 푹 쉬었다.

“에혀…. 일이나 하자.”

어느덧 호송을 시작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미 수도의 국경 안으로 들어온 탓에 모두 하나같이 붕 떠 보였다.

케인 대장이 대표들에게 말을 꺼냈다.

“오늘과 내일만 움직이면 수도에 도착할 듯싶습니다.”

케인의 얘길 듣던 리갈 대장이 뒤를 바라보는데, 호송 막바지에 이르러 각 상단의 사람들과 길드원들이 잡담을 나누며 걷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많이 친해진 모양이군요.”

세리 페리온도 한마디 꺼냈다.

“뭔가…. 좋아 보여요. 두 상단과 호송 길드원이 하나가 된 모습 말이에요.”

케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만 호송을 책임지는 대장으로선 지금과 같은 상황이 썩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호송이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저리들 풀어져서… 걱정입니다.”

“별일 있겠습니까. 수도 국경 안으로 들어섰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국경 안에서 상단을 공격할 리가요.”

“그렇기야 합니다만….”

전적으로 리갈 대표의 말이 맞긴 했지만, 여전히 케인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이 바닥에서 오래 구르다 보니 감이라는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해가 중천에 걸리고 한창 점심을 배식 중이던 무렵.

모두가 한숨 돌리며, 피로를 풀던 그때였다.

피이이이잉! 푸욱!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

“끄윽!”

불현듯 날아온 화살에 상단의 무사 중 한 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식사 중이던 무사들이 배식판을 내팽개치곤, 일제히 일어나 검과 방패를 들었다.

“습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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