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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23/250)

23화.

“대표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한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습격으로 혼비백산한 모습을 보이는 상단의 무사들과 달리, 유니콘 길드원들은 케인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느새 방패를 들고 대표들 옆에 섰다.

그때, 방패를 들고 최전방에 서 있던 톰슨이 주변을 연신 살피더니 의아한 얼굴로 입을 뗐다.

“로즈? 로즈는 어디 있어!”

톰슨의 말에 그제야 생각이 난 듯 앙휄이 난감한 얼굴을 했다.

“로, 로즈는 입맛 없다고 근처 호수에 다녀온다고 했는데?”

“뭐? 거기가 어딘데…!”

“화, 화살 날아온 쪽….”

“뭐어!? 이런 미친…. 로즈!!!!!!!!!!!!!!!!”

톰슨의 우레와 같은 외침이 숲속 가득 퍼졌다.

***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근처 호숫가에서 세수를 하던 로즈가 휙 하고 고갤 들었다.

톰슨의 목소리가 들린 듯한 착각이 들어서였다.

“뭐야. 잘못 들은 건가? 재수 없게 하필이면 환청도 그 자식 목소리로 들린담….”

로즈가 마저 세수를 끝내려고 호숫가로 다시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그녀의 손이 뚝 멈추더니 허리춤에 차 있던 단검을 향했다.

바스락.

인기척이었다. 한두 명도 아닌 상당히 많은 수의 기척이었다.

‘젠장…!’

자신을 향한 시선에서 서슬 퍼런 살기가 느껴졌다.

로즈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곤 먼저 선수를 치기 위해 발을 떼던 순간.

피잉!

화살 하나가 날아와 그녀의 허벅지를 스쳐 지나갔다.

“윽!”

화살이 훑고 간 자리에 피가 배어 나왔다.

위치가 발각된 이상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움직임에 제한까지 생겨버린 것이다.

잠시 후,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초록 피부를 한 거한의 괴물이었다.

‘오크…? 국경 지대 안에 어째서 오크가…!’

뜬금없는 오크의 등장에 로즈가 당황한 얼굴을 했다.

이곳 수도 국경 안은 칼스테인 영지와 더불어 가장 몬스터 개체수가 적은 곳이었다.

특히나 오크가 출몰했다는 정보는 여태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로즈가 어찌해야 할지 망설이는 사이, 오크들이 눈길을 주고받으며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가 일제히 활을 겨눈다.

피잉! 파바밧!

육안으로 식별되는 개체수는 두 명 정도였지만, 날아온 화살의 개수는 생각보다 많았다.

숲 안쪽에 더 많은 오크들이 있단 뜻이었다.

“윽…!”

휘익!

로즈가 재빨리 피하는 사이, 부상을 입은 허벅지에서 통증이 밀려왔다. 단지 스쳐 베인 것뿐인데, 상처 부위에 검붉은 피가 흘렀다.

촉에 독을 바른 것이다.

로즈의 움직임이 주춤하는 사이, 남은 오크들이 숲속에서 기어 나와 로즈를 향해 일제히 활을 쏘는데 그 수가 어림잡아 열댓 명에 달했다.

“젠장! 재수도 없지…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멀쩡했다면 어렵지 않게 도망칠 수 있었겠지만, 통증 때문에 극히 느려진 움직임.

피이이이이이이잉!

그때, 화살 하나가 로즈가 도망칠 곳을 선점하여 날아들었다.

피하기에도 늦은 상황. 죽음을 직감한 로즈가 눈을 질끈 감았다.

푹!

“…응?”

분명 화살이 박히는 소리가 났는데, 아무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로즈가 감았던 눈을 살짝 떴다. 그녀가 놀란 얼굴을 한다.

“괜찮습니까. 로즈 씨!”

“이든…!”

***

한 발이었던 화살은 곧이어 수십에 가까운 화살 비가 되어 호송차를 노렸다.

수많은 사상자가 날 수 있는 상황.

그때, 상단을 향해 날아오던 화살들이 투명한 막에 막히더니 일제히 바닥에 나뒹굴었다.

우우우웅.

리아의 손에서 일렁이는 푸른 빛, 신성계열의 방어 마법을 펼친 것이었다.

피이이이잉!

투툭! 투툭!

화살 비들이 다시금 날아왔지만, 다시금 리아의 마법에 막혔다.

한차례 위기는 넘겼으나, 마법을 지속하며 대표를 보호하던 리아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 갔다.

날아온 화살이 멈춘 것을 확인한 케인이 급하게 외쳤다.

“길드원들은 대표님들 옆에 붙어 있고, 톰슨은 날 따라와! 무사들은 짐꾼과 여인들을 보호하는 데 만전을 기하도록! 게일은 지원 사격해!”

“옙!”

케인과 톰슨이 방패를 앞에 두고 리아의 마법 영향권 밖으로 뛰쳐나가는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초록 피부의 거대한 괴물들이 커다란 태도를 들고 나타났다.

“오크!?”

“젠장 하필이면 오크라니!”

오크는 대륙에 서식하는 몬스터 중 가장 인간과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었다.

단순히 형태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습성, 생활 방식 등 많은 것들을 소수 부족 인간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그들이 호송 과정에 있어 가장 위험한 부류 중 하나인 이유는, 바로 인간과 같은 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쿵쿵!

위협하듯 거대한 발을 구르며 칼과 방패를 들고 달려드는 모습은 산적들과 다른 차원의 위협이었다.

꿀꺽…!

톰슨과 케인이 절로 마른침을 삼키며 오크들을 향해 달려들던 그때.

콰아아아아앙.

숲 한가운데에 큰 폭음이 울렸다. 폭발의 크기가 상당한지 숲의 나무가 일시에 휘청거렸고,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울렸다.

소란스럽던 전투 현장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이, 이게 무슨 소리….”

그때.

…쾅! 쾅! 콰앙! 콰아앙!

풀숲에 곧 연달아 폭음이 일더니, 숲 한가운데를 휩쓸기 시작했다.

오크 무리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었다.

“이, 이 무슨….”

톰슨과 케인의 시선이 숲 한가운데로 향했다.

엄청난 연쇄 폭음과 함께 먼지처럼 터지고, 사라져가는 나무와 오크 무리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든!? 뭐야. 로즈도 같이 있잖아!”

폭풍과도 같은 아수라장 속을 멀쩡히 헤치고 날아오는 인형(人形).

폭발을 일으킨 장본인은 다름 아닌 이든이었다.

그리고 로즈가 이든의 품에 안겨 있었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이든은 재창조했던 대나이천마 신법이 아닌, 전생의 무진 시절 사용하던 천마군림보 신법을 펼치고 있었다. 의식이 흐릿한 로즈를 안고 그녀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현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방도로 이것밖에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쿠콰콰콰콰쾅!

신법을 펼치며 이든이 지나간 자리가 폭음과 함께 쑥대밭이 되었다.

오크 무리는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고, 울창한 나무는 먼지처럼 사라졌다.

둘을 알아본 톰슨이 고래고래 소릴 질렀다.

“야이! 미친년아! 어딜 싸돌아다니다가 이제야…! 엉?”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던 톰슨의 얼굴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로즈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든!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로즈를 품에 안고 복귀한 이든이 그녀를 일행들에게 건네고는 다짜고짜 리아부터 찾았다.

“이따가 설명하겠습니다! 리아 씨! 치료 마법 쓸 줄 아십니까?”

“예…? 예! 가, 간단한 것 정도는 할 수 있어요!”

“로즈 씨의 몸에 맹독이 퍼지고 있습니다. 일단 그것부터 막아주십시오. 다들 조심하십시오! 놈들 무기에 독이 발려 있습니다. 전 우선 저놈들부터 족치고 오겠습니다.”

“로즈가 독에 중독됐다고? 아니, 그보다 이든 자네 혼자 어쩌려고…!”

케인이 말리려 하기 무섭게 이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쿵 파밧!

지면을 밟은 이든의 신형이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지더니 어느새 오크 무리 중앙에 떨어졌다.

쿠우웅!!!

조금 전 폭발로 반이 넘는 오크 무리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타박.

공중을 디디던 이든의 발이 지면에 닿는다.

조금 전 폭발을 일으킨 당사자가 무리 한가운데에 들어서자, 오크들의 동공이 조금 전 땅을 흔들던 지진처럼 마구 흔들렸다.

채애앵-

이든이 흑색의 검집에서 검을 빼내 쥐었다.

스스스…….

모습을 드러낸 검신에선 시꺼먼 마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오오오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오크들이 저마다 무기를 들고 포효하며 두려움을 떨쳐내는데, 도리어 그것이 이든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휘릭! 휘! 휘익!

이든의 손이 번개와 같이 움직였다.

까만 마기가 피어오르던 그의 검신에서 흑색의 섬광이 사방을 휩쓸었다.

쓰으으으윽!

“……크오?”

검은색 반월 모양의 검기가 훑고 지나간 곳.

오크들이 의아한 얼굴을 하던 그 순간.

푸슈슈슈슈슛!

놈들의 몸이 반으로 갈라지며 사방에서 초록색 피 분수가 솟구치기 시작한다.

일수(一手)에 대량 학살.

몇 번 휘두른 것만으로 대부분이 유명을 달리했다.

“우오오오…! 우오오오!”

이쯤 되면 한낱 몬스터도 눈앞의 인간이 얼마나 위험한지 파악하였을 터.

시커먼 마기를 피우던 이든의 얼굴이 싸늘한 한기로 굳으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곧 그의 입에서 짙은 농도에 살기 띤 음성을 내뱉어졌다.

“꺼져.”

단 한마디.

그야말로 마왕이 이 땅에 현신한 모습으로 내뱉은 그의 한 마디에 오크들이 저마다 잔뜩 겁을 먹곤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뒤, 살기를 피우던 이든의 얼굴에 불안한 빛이 어렸다.

불현듯 로즈의 얼굴이 떠오른 것이다.

‘일단 급한 불부터 해결하자.’

오크 무리가 멀어지는 것을 기감으로 끝까지 살피던 이든의 신형이 다시 감쪽같이 그곳에서 사라졌다.

“로즈 씨는 좀 어떻습니까!”

어느새 동료들 곁으로 다가온 이든이 리아에게 물었다.

“일단 독이 더 퍼지는 것은 어떻게 막고 있기는 한데 완벽히 치료되지는 않았어요…!”

그 사이, 로즈의 독이 더 퍼지지 않도록 신성 마법을 펼치던 리아의 안색이 더더욱 창백해지고 있었다.

앞서 방어 마법을 펼치고 연달아 쓰는 마법이라 마나 소진이 컸던 탓이다.

“리, 리아. 네 안색이…!”

앙휄이 노심초사한 얼굴을 하는데, 리아는 애써 괜찮은 척했다.

“괜찮아요. 저보단 로즈 씨가 더 급선무….”

그때, 로즈가 치료 중이던 리아의 손을 잡았다.

“리아… 괜찮아. 곧 수도니까, 거기까지 참으면 돼. 이제 그만둬….”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요…! 이대로라면 로즈 씨는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리아가 여전히 하얗게 질린 얼굴로 어떻게든 마나를 쥐어 짜내던 그때, 이든이 치료 중이던 리아의 손을 치웠다.

“이든…?”

“리아씨, 어딥니까. 로즈 씨의 상처 부위가. 제 손을 그곳에 가져다 놓아 주십시오.”

“아, 아아 네!”

이든의 분위기 탓에 리아가 저도 모르게 이든의 손을 상처가 있던 로즈의 허벅지로 가져다 대었다.

상처 부위에 손을 얹은 이든이 불쑥 말을 건넸다.

“로즈 씨, 절 믿습니까?”

다짜고짜 묻지만 로즈는 의심 한 점 없이 결연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믿어….”

“아플 겁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중독된 검은 피가 흐르는 곳.

이든이 검지와 중지로 마치 점혈을 하듯 로즈의 허벅지를 군데군데 찔렀다.

푸슛. 치이이!

잠시 뒤, 로즈의 상처에서 검붉은 피가 꿀렁꿀렁 솟아 나와 흘렀다.

“끄흑…!”

리아의 치료 마법이 독이 퍼지는 속도를 늦춘 탓에, 혈맥을 일시적으로 역류시켜 금방 독을 빼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아직 부족했다.

쫘악!

이든이 로즈의 허벅지 부위의 옷을 찢고는 상처 부위에 자신의 입을 가져다 댔다.

“이, 이든… 그러면 이든까지 위험…!”

“전 괜찮습니다.”

자칫하면 독을 빨아들이는 사람까지 중독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든은 한 점 망설임 없이 로즈의 상처 부위에 독을 빨아들이고 뱉기를 반복했다.

한참 독을 빨아내던 이든이 멈추고는 로즈 맥에 손가락을 짚는데, 비로소 그의 표정에 여유가 찾아왔다. 중독 증세를 보이던 로즈의 혈맥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걸로 한시름 놓았습니다. 로즈씨, 좀 어떠십….”

쪽.

이든이 한숨 돌리며 로즈에게 상태를 물으려던 그때, 로즈의 입술이 이든의 입까지 다가갔다.

평생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로즈가, 죽음에 문턱에 이르렀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더는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여긴 것이다.

“로즈 씨…?”

“고마워, 이든.”

묘한 기류 속, 그 모습에 길드원들은 생사가 왔다 갔다 하던 조금 전의 전투 따윈 잊은 지 오래였다. 톰슨이 경악한 얼굴을 했다.

“대, 대장….”

“응….”

“로즈가….”

“어….”

“로즈가 방금 남자한테….”

“응….”

“입, 입맞춤했어요.”

“내 살면서 이런 장면을 다 볼 줄이야.”

리아와 앙휄 또한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부족하던 마나를 쥐어짜느라 창백했던 안색은 온데간데없고, 혈색이 돌아온 것마냥 발그레해진 얼굴로 소녀의 모습을 보이던 리아가 앙휄에게 말을 건넸다.

“언니?”

“응.”

“정말 너무 아름답지 않아요?”

“응. 지긋지긋하던 용병 생활 중에 이런 꿀맛 같은 로맨스라니…. 너무 낭만적이야.”

그리고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오크의 급습으로 생긴 사상자들을 수습하니 금세 날이 어두워졌다.

한차례 큰 소동을 겪었던 호송의 마지막 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

팡팡팡팡팡!

로즈가 자다 말고 뜬금없이 괴성을 지르더니 침낭을 발로 팡팡 쳐대자, 옆에 있던 톰슨이 식겁한 얼굴을 했다.

“으앗! 시발, 깜짝이야! 이 미친년이 진짜로 미쳐버렸나!!!”

“어떡하지…. 내가 미쳤었나 봐. 그 상황에 이든에게 키스를 하다니…!”

로즈가 낮에 있었던 일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녀를 보던 톰슨이 한심하단 얼굴로 혀를 찼다.

“어떡하긴! 그냥 이왕 이렇게 된 것, 저돌적으로 밀어붙여야지.”

“저, 저돌적으로…? 어떻게…?”

부끄러워하는 와중에 로즈의 눈이 빛났다.

“어떻게는! 같이 불침번 서든지. 아니면 곧 있으면 수도에 도착하겠다! 이든이 묵고 있는 방에 들어가서 그냥 확 덮쳐버려!”

“더, 더더… 덮쳐버리라고!?”

“그래! 이든도 남자일 텐데 설마 거부하기라도 하겠어!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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