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5/250)

25화.

“여기야. 이곳이 수도의 자랑 중 하나인 마법사 아카데미야. 리아도 이곳을 수료하고 우리 길드로 바로 취업했지.”

“그렇군요. 잠시만요.”

이든이 잡았던 로즈의 손을 놓고는, 아카데미를 둘러싼 벽면 한쪽에 마기를 두른 손가락으로 뭔가를 새겨 넣었다.

칼스테인 영지에서 배송을 업무를 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그 나름에 위치와 방향을 표시해 놓는 것이었다.

“됐습니다.”

이든이 다시 손을 내미는데, 로즈는 부끄러워하면서도 망설임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근데 친구 만난다고 하지 않았어? 오늘 보지 않고?”

“친구들은 내일 만날 생각입니다.”

“그, 그래?”

“그래서 말인데요.”

“응?”

“염치 불고하지만, 기사 아카데미도 안내해 줄 수 있을까요. 그곳에 다니는 친구도 있어서요.”

“그럼!”

기사 아카데미는 마법사 아카데미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모처럼 휴식이었지만, 로즈는 그와 함께 걷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리고 어느새 기사 아카데미 앞에 다다랐다.

“이곳이 기사 아카데미. 기사가 되길 희망하는 인재들이 모인 곳. 마법사 학교와 다르게 학생 대부분이 귀족들로 이루어져 있어.”

로즈의 설명을 듣던 이든은 내심 감탄했다.

‘대단하군. 문 앞에서 선 것만으로도 기세가 남달라. 과연…. 애들이라도 무인은 무인이라는 건가.’

이든이 다시 마법사 아카데미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곳에 마기로 한자 무(武)를 적었다.

‘이 정도면 내일 혼자서도 올 수 있겠어.’

오직 이든만이 느낄 수 있는 기운으로, 그만이 알아볼 수 있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

“로즈 씨, 이제 됐습니다. 그만 돌아가시죠.”

“어? 어어… 그래. 그래야지!”

종일 수도를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돌아가자는 말에 어물쩍 답했지만, 내심 이대로 돌아가기 너무 아쉬웠다.

“저기… 이든. 우리 돌아가기 전에 한잔하지 않을래? 내가 괜찮은 주점을 알고 있는데.”

한잔하자는 말에 이든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싸움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이 술이었으니.

그가 거절할 리가 있나.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술이요? 좋지요.”

***

“오! 로즈 아니야?”

“그간 안녕하셨어요, 아저씨.”

“나야 항상 똑같지 뭐. 그래, 일은 어떻게… 잘 돼가나?”

“저도 뭐 그냥 똑같죠.”

“하하하!”

로즈의 말에 호탕하게 웃던 주인의 시선이 이든을 향했다.

“남자 친구?”

“예!? 나, 남자 친구 아니에요. 이번에 들어온 신입이에요. 하하하…,”

주점 주인이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뭐야. 그냥 물어본 건데 왜 이리 평소답지 않은 반응이지?”

“하하하…. 그런가요?”

로즈를 바라보는 주인의 시선이 둘을 쭉 훑더니 씩 웃는다.

“내 이곳에서 가장 분위기 좋은 곳으로 안내해 주지. 거기 로즈랑 같이 온 젊은 친구도 따라오시게. 로즈 자네가 이곳에 앉게 될 날이 오다니. 내가 다 기쁘군!”

“아저씨!!!”

주인의 짓궂은 농담에 로즈가 얼굴에 불을 켰다.

“크하하! 미안, 미안. 늘 마시던 거로 가져다주면 되지?”

“네!”

“알겠어. 잠시만 기다리게.”

주인이 술을 가지러 가는 사이, 이든이 말을 꺼냈다.

“재밌는 분이네요.”

“응. 수도에서 근무할 땐 일을 끝나고 오는 길에 항상 여기 들렀어.”

“혼자서 말입니까?”

“같이 올 사람이 없었거든. 항상 저기 바 앞에서 혼자 홀짝이면서 주인아저씨랑 수다를 떨었지.”

“그랬군요.”

주인이 안내해 준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이, 그들의 자리로 술이 나왔다.

“자, 늘 마시던 걸로 보틀로 괜찮지?”

“좋아요.”

주인이 웃으며 자릴 비켜주고, 각자 잔에 따른 술을 넘기는데 이든이 저도 모르게 ‘크’ 소릴 냈다.

“와! 이거 정말 강하군요. 아주 좋은데요?”

“그렇지? 여기 아주 괜찮지 않아?”

기대에 찬 로즈의 눈빛, 이든이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네. 술맛도 좋고, 사람들도 점잖고 조용한 것이 아주 좋습니다.”

“훗. 그래서 내가 이곳에 빠지지 않고 들른다니까.”

술을 연거푸 들이켜고, 둘이 허심탄회한 얘길 나누며 꽤 취할 무렵이었다.

벌컥!

“크하하하! 아! 학교 몰래 빠져나오기 진짜 빡세네!”

“그러게. 진짜 학교 근처에 여기 없었으면 진작 그만뒀다!!”

주점의 문이 열리기 무섭게 유달리 목소리가 큰 사내 둘이 들어왔다.

“주인장! 여기! 늘 마시던 걸로!”

“하하, 예!”

아직 새파랗게 어린것이, 중년이 훌쩍 넘어 보이는 주인장에게 반말을 지껄이는 것이 썩 보기 좋아 보이진 않았으나 주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 근데 칼라슈 그 새끼 졸라 재수 없지 않냐?”

“야 말도 마라. 진짜 그 새끼 면상 볼 때마다 밥맛없다니까. 아주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났지. 시발!”

‘기사 학교 학생들인가?’

칼라슈란 이름이 언급되자 이든은 저도 모르게 관심이 쏠렸다.

“자자, 이거 마시면서 화들 좀 삭히시게!”

주인이 맥주 두 잔을 앞에 놓는데, 가져다 놓기 무섭게 들이켜더니 곧이어 잔을 싹 비웠다.

“끄으윽!”

“아 새끼. 트림은 좀 옆에다 해라. 사람 면상을 보고 하냐, 미친놈아.”

“크하하! 미안하다!”

기사로서의 덕목엔 비단 검술뿐만 아니라 지켜야 할 품위도 있었다.

그 점에서 본다면 확실히 저 둘은, 대회 통과를 떠나 수습 기사로선 실격이다.

주인이 둘이 깨끗이 비운 잔을 치우고는 새 잔을 놓는데, 처음과 달리 한 번에 들이켜진 않았다.

조금씩 술을 마시던 중 한 사내가 눈짓으로 로즈를 가리켰다.

“어이, 저 여자 어때?”

“응?”

옆에 있던 동료의 눈짓에, 시선을 돌리는데 로즈를 흘깃 보던 그가 입맛을 다셨다.

“와씨…. 몸매 봐라.”

“어때. 괜찮지?”

자칫하면 당사자에게 들릴 수도 있으련만 둘은 개의치 않는 듯 말 같지도 않은 소릴 계속 지껄여댔다.

“아 근데 남자랑 같이 있나 보네.”

“어, 잠깐.”

“왜?”

“저 여자랑 같이 있는 남자, 장님 아냐?”

“뭐?”

동료의 말에, 옆에 있던 사내가 시선을 맞은편 이든에게로 향한다.

여인 앞에 앉은 사내의 얼굴.

수려한 외모긴 했지만,

내내 착 감긴 눈이 맹인임을 증명했다.

그의 입가 한쪽이 삐죽 올라간다.

“하! 어디 같이 있을 남자가 없어서 장님이랑…. 야. 이 형님이 저 여자 데리고 올 테니까 준비하고 있어라.”

“야… 우리 일찍 들어가 봐야 돼. 내일 실기 시험인 거 잊었어?”

“에이! 뭐 어때. 잔뜩 먹인 담에 얼른 취하게 만들면 되지. 잠깐 기다려 봐.”

당연히 꼬실 수 있다고 생각한 듯, 의기양양한 걸음으로 사내가 로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흠흠!”

서먹했던 분위기가 막 풀릴 무렵.

웬 방해꾼의 등장에 로즈의 표정이 영 좋질 못하다.

“뭐야?”

“아까부터 쭉 보고 있었습니다. 아주 매력적이셔서요.”

방해꾼의 눈이 로즈의 몸을 다시 쓱 훑는다.

발정 난 짐승의 눈빛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일행 있는 것 안 보여요?”

“에이, 빼지 마시고 우리랑 같이 놀아요. 더 재밌게 해드릴게.”

쌀쌀맞게 말해도 소용없었다.

“됐으니까, 좀 저리 가지?”

“아, 그러지 말고 우리랑 놀자니깐. 왜 예쁜 누님께서 이런 장님이랑 놀고 있어?”

“뭐?”

생각보다 안 넘어온다는 생각에 사내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다.

“야, 너 죽고 싶어?”

이든을 비꼬는 말에, 로즈가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사내의 멱살을 잡았다.

스윽.

사내가 로즈를 확 끌어당기곤, 손으로 로즈의 엉덩이를 훑었다.

“어서 잔말 말고 따라와, 누님. 좋은 말로 할 때. 흐흐흐….”

“이 새끼가 진짜…!”

그때, 이든의 커다란 손이 사내의 손목을 낚아챘다.

“뭐야.”

한 손엔 손목을, 다른 한 손에 여전히 술잔이.

술을 한 모금 넘기던 이든이 잔을 탁자에 놓았다.

탁.

이든이 입을 열었다.

“내가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이 두 가지 있거든?”

“뭔 개소리야.”

“하나는 별 볼 일 없는 것들이 뭐라도 되는 양 까불고 다니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여자들 희롱하는 것. 너희는 둘 다 해당하는군.”

꽈악!

로즈의 몸을 더듬던 사내의 손을 꽉 쥐는 이든.

순간, 사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큭!”

“무슨 일이야!”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사내의 동료가 냉큼 달려와 덤벼들던 순간, 이든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덤비는 순간, 그때부턴 우리에게 싸움을 건 것으로 간주한다. 실기 시험 보기도 전에 미달해서 퇴학당하고 싶어?”

“이 새끼가……!”

비로소 사내들의 눈에 이든과 로즈의 허리에 찬 검이 보였다.

“무슨 자신감으로 세게 나오나 했더니, 용병 새끼들이었군.”

“뭐야. 이 새끼들이 용병?”

맹인과 여인. 도무지 용병으로 보일만 한 조합은 아니었다.

로즈를 희롱하던 사내가 불신 어린 눈을 하곤, 바닥에 침을 뱉었다.

퉷.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게 용병들이지.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자기들이 뭐라도 되는 양, 센 척하는 것들. 내일 실기만 아니었다면 가만 안 두는 건데, 운 좋은 줄 알아. 야, 가자! 술맛 다 떨어졌다. 시발, 놔! 이 새끼야.”

이든이 사내의 손목을 놓자, 잡았던 부위에 시뻘건 손자국이 그대로 남았다.

“어이, 장님. 웬만하면 이 근처에서 알짱거리지 마라. 다음에 눈에 띄면 진짜 죽여버릴 테니까. 알았어?”

“이것들이!”

이든에게 손목을 잡혀 아무것도 못 했으면서, 끝까지 자기들 할 말은 하고 가는 추태에 로즈가 발끈했다.

이든이 그녀를 말려 다시 자리에 앉혔다.

“전 괜찮습니다.”

“하지만 저것들이!”

“오늘같이 좋은 날에 굳이 싸울 일 있습니까. 방금 있었던 일은 잊고 남은 술이나 마저 마시죠.”

그때, 주점의 주인이 둘에게 다가오는데 미안한 표정이 역력했다.

“오랜만에 왔는데… 이거 미안하게 됐군.”

“아저씨가 뭐가 미안해요. 다 저것들 때문이지.”

로즈의 말에 주인장이 골치 아픈지 고갤 젓는다.

“에휴…. 이 근방 기사 아카데미에 다니는 양아치들이야. 한창 잘나가는 가문의 자제들이라는데, 그러면 뭐하나. 자식새끼들이 저 모양 저 꼴인데…. 자자, 그러지들 말고, 내 안주 하나 서비스로 줄 테니. 마시다 들 가라고!”

“그럼 이왕 줄 거 비싼 거로 줘요!”

“윽…! 알았네. 내 자네 얼굴을 봐서 그러도록 하지!”

“이든, 한 잔 받아. 이거 마시고 방금 있었던 더러운 일은 그냥 잊자고.”

이든이 웃으며 로즈가 따라주는 술을 받았다.

그렇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둘 다 술에 얼큰하게 취했다.

시간도 꽤 흘렀는지 창밖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주점에서 나온 이든은 로즈를 들쳐메고 있었다.

“아니, 술도 못 마시는 사람이 뭐 이리 진탕 마셨대.”

로즈를 들쳐멘 이든이 어찌어찌 낮에 해산했던 숙소 앞에 도착했다.

방문 앞에 도착한 이든이 일순 난감한 얼굴을 했다.

“아…. 그나저나 로즈 씨 방은 어디야…?”

뜻밖에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다음 날,

해가 중천에 걸려서야 로즈가 숙취로 힘든 얼굴을 하며 일어났다.

“으…. 목말라. 하아….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잠에서 깬 로즈가 주변을 둘렀다.

익숙한 풍경. 늘 수도에 있을 때면 들르던 숙소였다.

안심한 듯 로즈가 다시 침대에 드러누우려던 그때.

“일어나셨습니까?”

익숙한 목소리에 로즈가 놀라 눈을 번쩍 떴다.

마침 이든이 욕실에서 나오는 참이었다.

“응? 이…든? 여긴…?”

“제 방입니다.”

“내 방은?”

“…저도 모르죠. 곯아떨어지셨으니까.”

“아….”

“그냥 빈방 아무거나 열고 들어왔습니다.”

“그 말은… 우리가 어젯밤 내내 같이 있었다는 거야?”

“그런 셈이죠.”

로즈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호, 호 혹시… 무,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이요?”

“그러니까 그….”

“아… 있었군요.”

“무, 무슨 일…!?”

화들짝 놀란 로즈의 눈이 흔들렸다.

그녀의 표정은 걱정보단, 기대에 가까웠다.

“코를 상당히 고시더군요.”

“뭐?”

“덕분에 잠을 한숨도 못 잤습니다.”

로즈가 경악한 얼굴을 했다.

‘미쳤지. 이든 앞에서… 내가 미친년이야…!!!’

-응. 맞아. 너 미친년 맞아.

라고 마치 톰슨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것을 왜일까.

그때, 침대 옆에 마련된 작은 탁자 옆에 이든이 뭔가를 올려두었다.

“어서 일어나서 드세요.”

“이건….”

“관리인에게 부탁해서 얻어왔습니다. 꿀 탄 물입니다. 숙취에 좋을 겁니다.”

“아, 고마워….”

“그리고 여기, 로즈 씨 방 열쇠입니다.”

“아! 고마워. 난 바로 나갈게.”

냉큼 열쇠를 챙겨 나가는 로즈를, 이든이 말렸다.

“괜찮습니다. 전 잠시 볼일이 있어 바로 나갈 참이었거든요. 좀 더 쉬고 계세요.”

“아! 오늘 수도에 있는 친구 보러 간다고 했지? 혼자 갈 수 있겠어….!?”

“걱정 마세요. 한번 다녀온 곳은 충분히 혼자 다녀올 수 있거든요.”

“그, 그래? 그럼 다녀와. 하하….!”

이든이 방에서 나가자, 로즈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다녀오라고 말했어… 꺄아아! 어떡해!!!”

-지랄도 풍년이다.

다시금 들려오는 듯한 톰슨의 환청. 그러거나 말거나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에 빠진 로즈였다.

***

여관 밖으로 나선 이든은 곧바로 마법사 아카데미로 향했다.

여전히 가는 데는 어려움이 따랐지만, 처음 왔을 때만큼 방향 감각이 아주 없진 않았다.

그렇게 마법사 아카데미 앞에 도착한 이든.

문제는 이곳부터 시작이었다.

아카데미 앞까지는 어떻게든 왔다지만, 처음 들어선 이 넓은 곳을 뒤져가며 친구를 찾기란 그에겐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답답한지 이든이 머릴 벅벅 긁어대며 인상을 썼다.

“하아…. 이놈의 눈 진짜. 어떻게든 빨리 방법을 강구해야지.”

그때, 이든이 지나쳐가는 사람을 붙잡았다.

“저기.”

“예?”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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