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250)

29화.

“가장 외곽 쪽에 탁자야. 중요한 손님일수록 중앙 탁자로 안내하지. 나름 있어 보이게 꾸몄는데 좀 부족했나.”

“설마요. 그건 아닐 겁니다. 그보다 주변 탐색을….”

로즈의 시선이 옮겨져 주변을 훑는다.

잠시 후, 본격적으로 경매가 시작되면 누구보다 바삐 움직여야 하는 그녀였다.

그 사이 내부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더는 초대된 사람들이 없는지 몇 개 비지 않은 탁자엔 더는 사람들이 채워지지 않았다.

잠시 뒤, 내부에 조명이 꺼지고, 불빛이 일제히 단 위로 날아가 밝게 켜졌다.

마법으로 밝게 켜진 단 위로, 육중한 몸에 정장으로 멋을 낸 사내가 뒤뚱거리며 올라왔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도 이렇게 초대에 응해주시고 자릴 빛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분위기와 진행자의 말주변만 본다면 한편의 극을 위한 무대 같다.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자리해 주신 귀빈들께 보답하고자 저희 테이머 길드에선 오늘! 어느 때보다 최상급의 상품들을 준비했음을 보증합니다.”

두구두구두구….

객석의 기대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무대 뒤편에서 음악 소리가 울려왔다.

“별걸 다 준비해뒀네.”

가만히 듣던 로즈가 기어코 한 마디 꺼내며 비아냥댔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보여드리는 것이 제일 확실하겠지요. 소개합니다! 테이머 길드에서 준비한 첫 번째 상품입니다!”

그때, 무대 뒤에서 붉은 천으로 덮인 옥이 올라오고, 진행자를 향하던 불빛이 그것을 비춘다. 이목이 그곳에 집중된 순간, 로즈가 이든만 들리도록 말을 꺼냈다.

‘다녀올게.’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끄덕.

말이 끝나기 무섭게 로즈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로즈가 사라지고 잠시 뒤,

휙.

진행자의 손끝에서 천이 걷히고,

곧이어 옥 속에 나신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입맛을 다시는 관중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진행자가 재차 입을 열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레이젤입니다. 젖살조차 아직 빠지지 않은 앳된 소녀이지요. 미모도 상당하지요?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귀빈들에게 이만한 상품이 또 있겠습니까. 아, 참고로 다 아실 테지만 저희 테이머 길드에선 오직 귀빈들을 생각하여 상품에 전혀 손 하나 대지 않았다는 점 참고해두시길…. 후후….”

단지 나이만 어린 것이 아닌, 처녀라는 점을 강조한다.

귀빈석의 몇몇 남자들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고,

가만히 듣던 이든의 미간은 찌푸려졌다.

‘애를 상대로. 단단히 미쳤군.’

옥에 갇힌 소녀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욕망으로 가득 찬 따끔한 시선들이 그녀의 피부로 와닿을 정도였다.

“자 그럼. 경매를 시작하지요.”

진행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앙에 자리한 사내가 손을 들었다.

“백 금.”

금화 백 개.

보통 사람은 죽어라 일해야 모을 수 있는 집 한 채 값을 소녀의 몸값으로 너무도 쉽게 내뱉는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저 어린 소녀를 탐하기 위해 몇몇 이들이 금액을 높이기 시작했고,

이윽고 천금까지 천정부지 올라갔다.

“천금입니다. 더는 없습니까!”

진행자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천금이라면 아무리 이곳에 귀빈들이라도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게다가 뒤이어 공개되지 않은 상품이 많았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더는 값을 부르는 사람이 없자 진행자가 첫 번째 경매를 마쳤다.

“첫 번째 상품. 천금으로 낙찰됩니다! 상품은 낙찰자분의 댁으로, 저희 길드원이 안전하게 배송해 드립니다.”

낙찰된 상품은 이제 오롯이 구매자의 것이었다.

소녀가 있던 옥이 붉은 천으로 다시 가려지고, 사내들의 손에 실려 무대 뒤편으로 나간다.

첫 상품부터 생각 외로 긴 시간이 지났다.

***

그 사이, 로즈는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과거의 이력답게 그림자를 방패 삼아, 어둠 속을 파헤치는 그녀의 움직임엔 거침이 없었다.

스윽….

이목이 상품에 쏠려있는 사이, 로즈는 무대 뒤편에 마련된 지하를 뒤지고 있었다.

미로 마냥 복잡하게 나 있는 지하 통로. 하지만 그간에 경험으로 이쯤은 눈감고도 되돌아갈 수 있었다.

턱.

그때, 벽을 짚으며 걷던 로즈의 걸음이 일순 멈추었다.

먼발치에서 사람들의 기척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드르르륵.

사내 둘이 바퀴 달린 들것에 실어 무언가를 나르고 있었다.

오직 횃불 몇 개만 밝히고 있는 그곳에 로즈의 눈이 들것에 올려진 옥을 확인한다.

‘이것들이….’

로즈가 말없이 이를 악물었다.

들것에 실린 것은 첫 번째와 같은 어린 소녀였다.

얼마나 겁에 질렸으면

그토록 어두운 와중에도 소녀가 떠는 모습이 보일 정도였다.

‘어서 서둘러야겠어…!’

상품이 얼마나 남았는지,

이어질 경매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로즈의 움직임이 더욱 바빠졌다.

기척이 나왔던 곳을 따라가니, 역시 경매의 상품으로 올라갈 여자들이 보였다.

“흑흑….”

몸 하나 겨우 들어갈 좁은 옥에 가축처럼 갇혀 흐느껴 우는 모습.

거기엔 분명 눈에 익은 여자들이 다수 보였다.

로즈가 저도 모르게 검으로 손이 움직였다.

‘안돼. 아직 아니다. 빠져나갈 길을 따로 찾아놔야 해. 분명 어딘가에 뒷문이 있을 것 같은데.’

로즈의 움직임이 다시 바빠졌다.

비록 나라에서 묵과하고 있다곤 하나, 이런 곳엔 빠져나갈 뒷문을 준비해두기 마련이었다.

주변을 샅샅이 뒤지던 로즈의 움직임이 멈췄다.

지하 미로 한켠에 마련된 뒷문을 발견한 것이다.

끼익.

제대로 된 출구인가 싶어 열어서까지 확인하는데, 문을 열자마자 거리 뒤편으로 연결된 것이 출구가 확실했다.

나가는 길을 확인까지 했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로즈가 다시 여자들이 갇혀 있던 곳으로 향하는데, 그새 두 번째 경매까지 끝났는지 또 다른 여자가 들것에 실려 끌려가고 있다.

로즈가 급히 몸을 숨기곤 여자를 확인하는데, 로즈의 눈이 놀란 듯이 커졌다.

‘카르엘…!?’

세 번째 상품으로 준비되어 끌려가는 여자는 다름 아닌 길드원 카르엘이었다.

***

적나라한 뼈 소리.

경매 내내 이든은 끌어 오르는 화를 주체 못 하고 있었다.

“자 이어서 세 번째 상품입니다. 그 전 상품의 낙찰자분들께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이번에는 전혀 다른 취향이신 분들을 만족시킬 상품이 될 것 같군요. 후후후….”

몇몇 사람들의 취향에 국한되어 진행되던 경매.

진행자의 얘기에 비로소 남은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띤다.

곧이어 상품이 천에 가려진 채 등장하고,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진행자가 천을 치워 세 번째 상품을 공개했다.

휙.

오오오오.

상품이 공개되기 무섭게 많은 사람들이 감탄했다.

“어떠십니까. 풍만한 것이 아까 상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지요? 여기서 여러분들을 더욱 자극할 이야기가 있지요. 전직 용병인 그녀는 얼마 전까지 남편까지 있던 미망인이었습니다. 딱하게도 호송 과정에 남편을 잃고 말았지요.”

‘응?’

익숙한 이야기에 이든의 눈썹이 움찔했다.

“오오…. 후후후.”

자극적인 이야기까지 씌워지자 사람들의 짐승 같은 이목이 더욱 그녀에게 쏠렸다.

진행자가 기분 나쁜 웃음소릴 내며 재차 말을 이었다.

“후후후. 이거 제가 귀빈분들을 너무 흥분시켜 버렸나요. 여러분들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더는 지체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자! 소개합니다. 미망인. 카르엘 입니다!”

‘카르엘…!?’

그녀의 이름이 불리자 이든이 당혹스러워했다.

로즈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아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면 계획을 변경해야만 했다.

‘로즈씨가 그녀를 봤을까.’

본래는 조용히 아는 사람만 구출할 예정이었으나, 카르엘이 경매에 나온 이상. 낙찰을 받아야만 했다.

이든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애초에 이전 작전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모두를 구해내는 수밖에.’

소개가 끝나고 경매가 시작되기 무섭게 사람들이 입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백 금에서 시작됐던 금액은 어느새 천오백 금까지 올라가 있었다.

“자! 천오백, 천오백까지 나왔습니다. 더 이상 없습니까!”

천오백이면 사실상 낙찰가였다.

천오백 입찰금을 불렀던 사내의 시선이 카르엘에게 고정됐다.

사내가 저도 모르게 혀를 다셨다.

‘어서 빨리 저년과 재미 좀 보고 싶군. 후후후….’

진행자가 수차례 확인하고 낙찰을 외치려던 그 순간.

“이천 금.”

천오백 금을 훨씬 상회하는 금액이 불린다.

“이천 금! 이천 금! 나왔습니다!!!”

“뭐!?”

사내의 시선이 이천 금이 불린 곳으로 향했다.

어두운 실내 탓에 확인은 어려웠지만 하얀 털 외투를 걸친 젊은 사내로 보였다.

“치잇!”

여기서 포기하기엔 상품이 너무도 탐나던 사내였다.

“이천백 금.”

가격이 천정부지 치솟자 진행자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자 이천백 금 나왔…!”

“이천오백 금.”

“뭐?”

“이천오백. 이천오백 나왔습니다!!!”

이천백에서 또 한 번 이를 훨씬 상회하는 금액이 불린다.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지다 못해 대체 저놈은 뭔가 하는 얼굴이다.

오백 금 이상을 두 번 연속 부르는 대범함에, 아무래도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 여긴 사내가 거기서 입찰을 멈추었다.

“이천오백! 더이상 없습니까?!”

진행자가 더는 입찰자가 없는지 확인하는 사이, 입찰 막판 카르엘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머문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이천오백! 이천오백으로 낙찰되었습니다!”

검만 안 들었지, 한바탕 전투를 보는 듯했고, 카르엘의 낙찰자는 그야말로 상대의 허를 찔렀다.

짝짝짝.

이전 경매에선 볼 수 없었던 갈채 소리.

그러나 낙찰자인 이든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낙찰된 카르엘이 들것에 실리기 직전이었다.

[카르엘.]

오직 그녀만 들을 수 있는 이든의 전음이 카르엘에 귓가에 박혔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제가 곧 구해드리겠습니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목소리는 틀림없이 이든이었다.

내내 안절부절못하던 그녀의 얼굴에 비로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든이 구하러 왔다는 확신에 물밀 듯 밀려오는 안심.

‘끄흑… 흑…!’

붉은 천이 덮기 전 그녀가 쏟아낸 눈물을 어느 누구도 수상히 여기지 않았다.

그저 어떤 색마에게 팔려가는 여인의 서글픔. 그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카르엘이 들것에 무대 뒤편으로 옮겨지고, 경매는 잠시 열기를 식히고자 소강상태로 들어갔다.

그때, 이든이 앉은 자리로 술을 채우던 여자 한 명이 다가왔다.

“도련님.”

여자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이든을 불렀다.

모든 낙찰자는 ‘주인님’으로 호칭이 통일된다.

그런데 체격과 달리 조금은 앳돼 보이는 이든의 얼굴에 남과 다른 호칭으로 불러준 것이다.

“낙찰금액에 반을 선입금으로 받고 있습니다. 도와드릴까요?”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뒤적.

그리곤 품에서 수표를 꺼내 숫자를 적었다.

카르엘의 낙찰금액에 딱 반을 적곤 여자가 들고 있는 쟁반에 놓았다.

이든의 수표를 확인하던 여자가 싱긋 웃어 보이곤 이든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중앙에 자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중앙 말입니까?”

“예. 길드장님께서 도련님을 꼭 중앙으로 모시라 전하셨습니다.”

“나를? 혹 길드장님이 진행자입니까?”

“예. 진행자님께서 폰 하름 테이머이십니다.”

‘그렇군.’

땀을 뻘뻘 흘리며 한숨 돌리던 길드장의 시선은 내내 이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카르엘의 경매 동안 그가 보여준 씀씀이에 이든이 오늘 최고의 고객이라 생각했던 그가 여인을 시켜 이든의 자리를 중앙 귀빈석으로 옮기려 한 것이다.

‘일이 쉬워질 수도 있겠어.’

이든의 얼굴이 길드장의 기척이 느껴진 곳으로 향했다.

보일 리 없는데, 테이머 길드장이 마주 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도련님. 이쪽으로 오시죠.”

다가왔던 여인이 이든에게 팔짱을 꼈다.

길드장이 따로 시킨 것인지 바짝 붙어 옆에 끼고 움직이는 내내 여인의 물컹한 가슴이 이든의 팔을 주물러댔다.

뻔한 수법이었지만 아마 이런 식으로 단골을 만들었을 것이다.

또각또각.

여자가 신은 구두 소리가 어느 한 곳에 멈췄다.

“여기 앉으세요. 도련님.”

여자가 끌고 가다시피 한곳.

그곳은 다름 아닌 카르엘을 두고 설전을 벌이던 사내의 옆자리였다.

그만큼 그 사내 또한 중요 고객이란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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