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콰앙!!
무언가에 얻어맞기라도 한 듯 테이머의 몸이 주륵 뒤로 밀려났다.
밀려난 그의 몸이 벽에 부딪혀 가로막히고서야 멈출 무렵.
“쿨럭!”
한 움큼 피를 토해낸 테이머의 시선이 힐끗 옆으로 향했다.
테이머의 눈이 옆에 널브러진 국경수비대장 록을 향했다.
‘이, 이런 어쩌다가 이런 일이…!!!’
록의 꼴은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이었다.
양팔은 뼈마디가 모두 부서지기라도 한 것인지 넝마와 같은 꼴이었고, 얼굴은 피떡이 되어 혼절한 상태였다.
아무리 부패한 군인이었다곤 하나, 명색이 국경수비대장이었다.
그의 무위가 결코 낮지 않을 터였다. 헌데….
‘손도 못 쓰고 저리 당하다니…!’
그나마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마저 사라진 셈.
제아무리 살려달라 목놓아 소리쳐도 이곳의 소리가 밖에 들리리 만무했다.
저벅저벅….
다가오는 발소리에 테이머의 시선이 재차 앞의 이든을 향했다.
“대, 대체 원하는 게 뭡니까…!”
“상황 파악이 느리군. 그걸 이제야 묻다니.”
이든이 허릴 숙여 테이머 길드장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경매 초반 팔려나간 소녀들 어딨는지 불어.”
“그, 그건…!”
테이머는 물음에 쉬이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바닥의 생명은 신용이었다. 우습게도 말이다.
이런 불법적인 거래일수록 구매자의 신상에 관해선 묵과해야 하는 것이 이 바닥의 암묵적인 규칙 아니던가.
헌데….
눈앞에 저 마귀와 같은 사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대답을 안 하다간 자신에게 무슨 사달이 벌어질지 감히 예상되질 않았다.
테이머가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우물쭈물하던 그때.
떼진 이든의 입에서 살벌한 음성이 내뱉어졌다.
“역시 좋게 말해선 들어 처먹지 않는군.”
“…무슨?”
콰직.
의아한 표정을 하던 테이머의 눈이 일순 부릅떠졌다.
핏발선 그의 눈이 부서진 소리가 난 곳을 향했다.
이든의 발이 어느새 넝마가 된 자신의 팔 한쪽을 인정사정없이 밟고 있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휘몰아쳐 밀려오는 고통에 테이머가 괴성을 질러댔지만, 아무도 뛰쳐 들어오는 이 하나 없었다.
그만큼 이 방은 소리 한점 새어나가지 않을 철벽의 방음이 갖춰진 곳이었다.
테이머의 눈이 회까닥 넘어가며 거품을 물고 혼절하기 직전.
파바바밧.
이든의 검지가 테이머의 혈 곳곳을 찔렀다.
흰자로 가득하던 테이머의 눈에 차츰 검은 동공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든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착실히 대답하도록. 그전까진 넌 기절하고 싶어도 기절할 수 없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해. 알겠나?”
“…!”
붉게 충혈된 테이머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이든이 넝마가 된 테이머의 손에서 발을 떼곤 반대편의 멀쩡한 손을 재차 밟으며 물었다.
“다시 묻지. 경매 초반에 팔려나간 소녀들 사간 새끼. 누구야?”
팔을 엉망으로 만든 것이 효과가 대단했는지, 이든의 물음에 테이머가 황급히 답했다.
“…트, 트러블러… 트러블러 남작입니다.”
“트러블러 남작?”
“예…!”
“확실해?”
“화, 확실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이, 이제 돼, 됐나요?”
“되긴 뭘 돼.”
이든의 발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우득.
테이머의 손에서 뼈마디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끄륵.…!”
테이머의 입에서 핏물이 주륵 흘러내렸지만. 이든의 말대로 기절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그저 생생히 고통이 밀려올 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든은 질문을 계속 이어갔다.
“회원증이 있던 금고 열쇠, 그리고 저기 아가씨들 족쇄 풀 열쇠 내놔.”
“여, 여기. 여기 주머니에 있습니다.”
이든이 발을 떼자 테이머가 거진 넝마가 될 뻔한 남은 손으로 황급히 열쇠 꾸러미를 건넸다.
받아든 이든이 한쪽에서 물끄러미 모든 것을 지켜보던 카르엘에게 그것을 건넸다.
“카르엘 씨.”
“…예!?”
“족쇄 푸시고, 금고에서 물건들을 꺼내서 챙겨주십시오.”
“아, 네…!”
이든에게 열쇠를 받기 무섭게 카르엘이 황급히 자신과 엘프의 족쇄를 풀고는 금고에서 서류뭉치들을 꺼냈다.
“이, 이제… 됐나요…?”
“아니. 아직.”
“또…또 무엇을?”
질문이 날아오면 아는 한에선 무어라도 대답할 기세.
하지만 이든에게 들려온 말은 뜻밖에도 다른 것이었다.
“남은 건 마저 끝내야지 않겠어?”
“…예? 나, 남은 거라니….”
공포에 젖어 흔들리는 그의 눈이 슬쩍 그나마 멀쩡한 한 손을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콰직.
“끄아아아아악!”
재차 이어진 테이머의 괴성.
이든이 떼었던 발로 재차 테이머의 남은 한 손을 밟은 것이다.
그의 손이 반대편 손과 마찬가지고 넝마가 되었다.
“끄, 끄르르륵!!!”
양손을 잃은 테이머의 목구멍에서 피거품이 뿜어져 올라왔다.
그 사이, 옆에 널브러져 있던 록이 정신을 차리곤 힘겹게 입을 뗐다.
“너, 너 이 자식… 네놈이…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성 싶으냐…!”
이든의 고개가 록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돌려졌다.
이든이 희미하게 웃으며 입을 뗐다.
“그래. 아직 네놈을 마무리하지 못했군.”
이든이 터벅터벅 걸어가 록의 앞에 섰다.
록 역시 테이머와 거진 비슷한 꼴을 하고 있었다.
그때, 이든의 발이 록의 다리로 향했다.
콰직.
발목에서 종아리로.
종아리에서 대퇴부로 이든의 발이 사정없이 록의 다리를 넝마로 만들며 올라가고 있었다.
“끄, 끄르르륵! 끄으으으으으윽!”
사지가 피로 물든 록의 입에서 피가 한 움큼씩 토해져 나오고 있었다.
록의 다리 한쪽을 완전히 넝마로 만든 이든이 다시 발을 옮겨 록의 남은 한쪽 다리로 향했다.
그가 입을 뗐다.
“백성들에게 걷은 세금으로.”
콰직!
“녹봉을 받는다는 새끼가.”
콰지직!
“묵과한 것도 모자라. 받은 뇌물로 여자를 사들이고 희롱을 해?”
콰드드드득!
“끄으으으으으으아아아악!”
목청이 찢어질 듯 록의 괴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의 목과 눈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이든…!!!”
카르엘의 목소리에 이든의 발이 멈칫했다.
“카르엘 씨?”
“이, 이제 그만… 그만하셔도 돼요…”
“…”
카르엘은 어느새 이든 곁에 다가와 그의 몸을 붙잡고 있었다.
이든의 고개가 카르엘과 함께 들어섰던 엘프에게 향했다.
“당신도 그러길 바랍니까?”
그때, 엘프가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하염없이 울었다.
그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뗐다.
“…그, 그만하셔도 좋아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제 그만 그를 놓아주세요…”
자칫 성 노리개로 팔려갈 뻔한 그녀들이지만, 더는 이 참혹한 현장을 두 눈 뜨고 지켜볼 수가 없던 탓이다.
그들의 모습에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만하죠.”
“흑…흐윽!”
우는 여인들을 뒤로하고 이든이 재차 록 앞에 섰다.
“운이 좋군.”
이든의 음성에 붉게 충혈된 록의 눈이 힐끗 이든을 향했다.
희미한 동공이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생명을 가까스로 붙잡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든의 손이 록의 목을 향했다.
“다만 목숨은 거둬가지.”
마치 닭의 모가지를 비틀듯.
이든의 손이 록의 목을 콱 움켜쥐었다.
콰직. 툭.
록의 머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든이 손에 점철된 그의 피를 털어내던 그때.
굳게 닫혔던 그들의 방문이 거친 소음을 내며 열렸다.
“저, 저기 맡겨놓으셨던 검을 가지고…. 허업…!!!!”
방안에 들어왔던 사내가 참혹한 현장을 보고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든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마침 그렇지 않아도 검을 가져다 달라 부탁하려던 참이었는데 말이야. 이리 가져오겠나?”
얼어붙은 사내를 향해 이든이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 모습이 흡사 마귀와 같았다.
검을 쥔 이든의 주변엔 참살당한 길드원들의 시신들이 그득했다.
저항이라도 하려 했는지 저마다 무기를 쥔 채 쓰러져있는 모습들이었다.
바르르…
아직 살아있는 길드원이 몇 보이긴 했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황. 떨리는 손은 무기조차 제대로 꼬나쥐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지나쳐 입구로 향하던 이든의 걸음이 우뚝 멈추어섰다.
그의 고개가 한쪽으로 향했다.
바르르…
이든이 그 참혹했던 현장 속에서 공포에 떨고 있던 여인 중 한 명을 불렀다.
“릴리.”
“…도, 도련님….”
릴리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이든이 걸어갔다.
릴리의 얼굴은 어느새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도, 도련님… 사, 살려주세요…!”
자신을 죽이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던 걸까. 공포로 물든 릴리의 눈이 어느새 눈물로 흠뻑 젖어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든의 입에서 나온 것은 한없이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걱정 말거라. 너를 해하려는 것이 아니다.”
철컥.
이든이 쥐고 있던 검에서 피를 털어내곤 흑색 검집에 꽂아 넣었다.
“릴리.”
“네…?”
“나와 함께 가자.”
공포에 젖어 흔들리던 릴리의 눈이 일순 멈추었다.
그녀가 잘 모르겠단 얼굴로 재차 물었다.
“…네?”
“아까 내가 물었지. 이 일을 원해서 하는 것이냐고.”
“…”
“그리고 넌 아니라고 답했다. 할 줄 아는 것이 이것밖에 없다고 하였지. 내 말 맞느냐?”
분명 그런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 릴리는 저도 모르게 고갤 끄덕였다.
“…네.”
“할 줄 아는 것이 이런 것 밖에 없는 것이 아니다.”
“…”
“그저… 너가 처한 환경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강요했던 것뿐이야.”
“도, 도련님…?”
“그러니 내가 알려주겠다. 세상엔 이런 것 말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말이다. 그리고… 너 스스로 다시 일어설 힘을 내가 가르쳐주마. 어떠냐. 나와 함께 가겠느냐?”
이든이 릴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수많은 이의 피로 점철된 손.
자칫 섬뜩한 손으로 보였지만, 릴리에게 있어 그 손은 마냥 섬뜩하고 무섭기만 한 손이 아니었다.
“저, 저는… 그러니까… 저는…”
릴리의 눈이 재차 흔들렸다.
망설이는 듯한 그녀의 동공이 이든의 손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
이든이 그녀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결정했다. 따라오너라.”
“도, 도련님!”
릴리가 당황해서 그를 불렀지만 이든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가 강제로라도 릴리를 끌어내려 했던 이유.
그것은 운명을 뒤바꿀 선택의 기로 선 이들이 쉽사리 답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땐 강제로라도 붙잡고 바른길로 이끌어줘야 했다.
릴리가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이든의 손에 붙잡혀 끌려가던 그때.
이든이 걸음을 멈추고 남아 있는 길드원들을 향해 입을 뗐다.
무장한 길드원이 아닌, 이곳에서 순수히 잡일만 하던 길드원들이었다.
“오늘부로 테이머 길드는 영원히 폐장이다. 단지 일꾼에 불과한 너희들의 목숨까지 거둬가지는 않을 터이니. 부디 다시는 이런 일에 발을 들이지 말거라. 알았느냐?”
“…”
대답이 없자.
이든이 눈살을 찌푸리며 노기 띤 음성을 내뱉었다.
“알겠느냐!”
기가 실린 이든의 음성 재차 쩌렁쩌렁 울리자. 남은 이들이 저도 모르게 외쳤다.
“아, 알겠습니다…!!!”
“…”
“…?”
“대답만 잘하면 뭐해?”
“네…?”
이든의 얼굴이 재차 금세 차가워졌다.
“해산.”
대답은 즉각적이었고, 행동은 빨랐다.
“해, 해산!!!!!”
해산이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남은 이들이 무언가에 쫓기는 양 뿔뿔이 흩어졌다.
금세 텅 빈 길드 내부.
이든이 고갤 돌려 뒤따라오던 여인들을 향했다.
“밖에 저희 길드원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일단 모두 그곳으로 자릴 옮기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