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 (41/250)

41화.

식사를 끝내고, 뒷정리하는 이든의 등에 대고 메리가 물었다.

“벌써 내일이지?”

“예.”

“시간 참 빠르구나. 네가 수도에 갔다 온 지가 엊그제 같은데, 다시 또 그 먼 길을 떠나야 한다니…”

삼 일간의 휴가가 끝나고, 이든은 다시 내일 있을 호송을 나선다.

그가 원해 자원했던 일이었지만, 가족들과 함께 있을 시간이 적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기도 했다.

“이번에 떠나는 곳도 수도인 게니?”

“예. 지부장님 말씀으론 그렇다고 합니다.”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만, 항상 조심하렴.”

“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메리 눈에 비친 이든의 모습이 오늘따라 유독 커 보였다.

이든이 태어나던 날, 아이가 눈이 안 보인다는 사실에 얼마나 가슴 아파했던가.

하지만 걱정과 달리 아들은 너무 훌륭히 잘 자라주었다.

자신의 처지에 불평하지 않고, 장성한 아들의 모습에 메리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어머님?”

메리가 말이 없자 이든이 뒤 돌아 불렀다

“응. 그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메리가 고갤 저었다.

“그래. 마지막 휴일인데, 오늘은 어찌 지낼 생각이니?”

“음. 뭐 별달리 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집에서 쉬려 합니다.”

이든이 쉰다는 말은 사실상 수련을 의미했다.

그것을 아는 메리도 웃었다.

“그래. 그러거라. 계속 바빴는데, 한숨 돌릴 때도 있어야지.”

물기를 털던 이든이 뜬금없는 말을 꺼낸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응…?”

“그냥요… 그냥 너무 걱정 마시라는 겁니다.”

태생이 낯간지러운 얘기는 못 한다.

얼굴을 붉히며 얘기하는 이든의 모습에 메리가 모른 척해준다.

“훗. 누가 뭐래니.”

“크흠. 그럼 전 밖에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이든이 밖을 나서고,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메리가 중얼거렸다.

“저 애한테 저런 모습도 있었네. 이제야 좀 제 아비 닮은 모습이 보이네. 훗…”

***

공터로 나와 가부좌를 틀고 몸을 점검하던 이든의 표정이 자뭇 심각하다.

‘이제 한 계단만 넘으면 예전에 경지엔 얼추 비슷하게 도달하는데… 문제는.’

조급해진 탓일까.

“에휴….”

이든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실 지금의 성장 속도도 과거와 비교해서 말도 안 되게 빠른 수준이었다. 하지만…

전생의 그의 경지는 가히 하늘에 닿았다고 해도 모자람이 없던 수준.

지금이 성에 찰 리가 없다.

무림인에게 있어 성장에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보다 깨달음이다.

꾸준한 훈련과 깨달음을 통해 계속해서 수준을 높여가는 것이 본래의 정석이라면 이든 전생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사실상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성장 속도라면 이 남은 한 계단까지 올라가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전생의 경지와 지금의 차이는 한 계단 수준.

다만 그 남은 한 단계의 벽이 천지 차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그 전까지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영약이라도 있으면 속도를 내 볼 텐데, 이 세계에 영약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하고…”

지금 이든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내공을 비상식적으로 늘려줄 영약이었다.

“지금 이 속도라면 최소 이 년은 걸린다. 그래도 약관 전에 전생의 경지까지 도달하겠다는 목표엔 달성한 것이지만…. 아쉽다 아쉬워. 영약이 있다면 금세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을…”

전생의 경지를 코앞에 두었다.

물론 그 코앞이라는 것이 손에 닿지 않는 아직은 먼 얘기지만, 그래서 더욱 조급해졌다.

어서 빨리 본래 경지에 도달해 등선의 관한 실마리를 수색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에 내공을 늘릴 방법이 없으니 일단은 평소대로 수련을 통해 내공을 쌓는 수밖에…

‘…응?’

점검을 마친 뒤, 천마심공을 운기하던 이든의 눈썹이 움찔했다.

누군가 빠른 속도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곧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든!”

“로즈 씨?”

기척의 주인은 다름 아닌 로즈였다.

오랜만에 듣는 그녀의 목소리에 이든이 반가운 얼굴을 할 때쯤.

그녀가 다급한 목소리로 그를 재촉했다.

“이든, 어서 지부장님께 가봐!”

“무슨 일입니까?”

“그게…!”

로즈의 얘길 듣던 이든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어느새 그는 길드를 박차고 지부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이든 씨!”

“스승님!?”

이리아와 릴리의 아는 척은 듣지도 않고 바로 지부장실로 향한다.

지부장실에 들어가기 무섭게 이든이 다짜고짜 본론부터 꺼냈다.

“지부장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길드장님께서 피습을 당하셨다니요!”

“나도 이제 막 급보로 소식을 접했네. 어제 새벽에 괴한에게 당하셨다는군…!”

“그놈이 누굽니까.”

“그것에 관해선 따로 적혀있는 것이 없었네. 수도 본부에서도 아직 알아내지 못한 모양이야.”

얘길 듣던 이든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설마… 일전 수도에서 있었던 사건으로 누군가 계획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크지.”

게럴드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일전 테이머 길드 관련 사건으로 황궁엔 피바람이 불었다.

명단에 있던 수많은 귀족과 부호들이 갈려 나갔지만, 황궁 내부에 어떤 압력에 의해 숙청이 중단되었고, 이 일로 앙심을 품은 누군가 사람을 시켜 길드장을 피습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게럴드의 생각이었다.

“길드장님께선 괜찮으신 겁니까?”

“다행히 생명의 지장은 없지만, 혹여 길드장님께서 살아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재차 습격을 강행할 것이 분명한데… 이든, 미안하네만 우리 중에 가장 빠른 자네가 먼저 수도 쪽으로 가줄 수 있겠나? 한시가 급한 일일세.”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이든.”

일어나기 무섭게 지부장실 문을 박차고 나가는 이든의 등 뒤로 들려온 게럴드의 목소리가 그의 걸음을 붙잡았다.

“몸조심하게. 그리고 길드장님을 부탁하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싸놓은 똥. 제가 치우고 오겠습니다.”

지부장실 밖으로 나간 이든의 음성이 릴리를 향했다.

“릴리. 일이 생겨 지금 당장 수도로 가야겠다. 집으로 가면 부모님께 걱정 말라 전해드리거라.”

“아, 네에…!”

어느 때보다 심각한 이든의 모습에 릴리가 잔뜩 움츠러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파앗! 콰아아아아아앙!!!

길드 밖으로 나간 이든의 신형이 눈 깜작할 새 사라졌다.

사라진 이든의 신형이 어느새 영지 밖, 수도로 향했다.

신법을 쓰며 나아가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그가 지나간 자리엔 발자국이 아닌 바람에 갈려 나간 쓰러진 나무들만이 가득했다.

거칠 것 없고, 거슬리는 것은 모두 파괴하며 무서운 속도로 나아가는 그의 얼굴에 흉신악살의 분노가 드리웠다.

해는 진작에 저물고 어둠이 깊게 깔린 밤.

콰득.

이든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입가에서 가느다란 실피가 흐르고 있었다. 꼬박 7일을 걸어왔던 길을 단 하루 만에 돌파하여 수도 코앞까지 왔으니, 내상을 입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장 운공을 하지 않으면 내상이 더욱 심각해질 상황.

그럼에도 이든의 움직임은 멈출 생각을 보이지 않았다.

섬전 같은 속도로 향하던 이든의 신형이 일순 수도 성벽으로 향했다.

수도의 주민이 아니고선 모든 방문객은 성문 앞 병사들의 확인 절차를 받고 출입이 가능하다.

다만 그는 한시가 급한 상황.

파밧! 타다다다다!

이든의 발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며 가파른 성벽을 타고 올라갔다.

성벽 각 구역엔 불침번을 서는 병사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이든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타박.

어느새 성벽을 훌쩍 뛰어넘은 이든의 발이 성벽 아래 지면을 사뿐히 밟았다.

그러나 다시 무서운 힘으로 땅을 밟고, 번개와 같은 속도로 나아간다.

어느새 도착한 본부 앞.

그곳에 들어서기 무섭게 이든을 발견한 카르엘이 넋이 나간 얼굴로 입을 뗐다.

“이든 씨…? 아니, 어떻게…수도에 있는 거예요?”

각 지부에 가장 빠른 전서구로 도움을 요청하는 급보를 보내긴 했지만, 아무리 빨라도 최소 며칠은 걸렸어야 옳다.

시간상으론 이제 막 도착한 서신을 받고 출발했을 법한데, 뜬금없이 칼스테인 영지에서 온 이든이 문을 열고 들어오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들어선 이든이 곧장 본론부터 꺼냈다.

“그보다 길드장님은 어떠십니까?”

웅성웅성.

길드 내부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전투 요원들이 배치 중이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당연히 이든에게 쏠렸다.

황궁에 몰아닥친 태풍.

그 사건의 주인공인 이든의 존재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없었다.

카르엘이 그의 팔짱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끌려나가다시피 한 이든이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많군요.”

“네. 길드장님을 대놓고 노린 이상 혹시 몰라서…”

“하아…”

이든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이 벌인 일 때문에 본부에 사람 모두가 고생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면목이 없었다.

“길드장님께선 현재 수도 성당에 계시는 중이세요.”

“수도 성당이요?”

“네. 그곳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입원 중이세요. 지금 바로 가보시겠어요?”

“네, 혹 안내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제가 처음 가본 길은 혼자서 갈 수가 없어서요.”

“물론이죠. 따라오세요.”

카르엘의 안내를 따라 성당으로 가는 길.

카르엘의 시선이 문득 옆에 따라 걷던 이든의 얼굴을 향했다.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괜찮으신 거예요?”

심각한 내상은 아니었지만, 가벼이 볼 것도 아니었다.

창백한 이든의 안색에 카르엘이 걱정 어린 말투로 물었으나, 이든이 고갤 저었다.

“괜찮습니다. 제 몸 문제는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전생에서도 이와 같은 비슷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있었다.

그때도 천릿길을 하루 사이에 돌파하지 않았던가.

다만 지금 이든의 심경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길드장의 안위였다.

성당은 본부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성당 기사단들이 지키고 있는 정문을 지나 성당 내부 중환자실에 들어서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벌써 왔는가?”

레스타드 길드장이었다.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들었습니다. 다행히 살만하신가 보군요.”

절대 병문 온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이든의 말을 듣던 레스타드가 껄껄 웃었다.

“크하하. 설마 내가 다 죽어가리라 생각했나.”

농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하던 이든이 다짜고짜 그의 맥을 짚었다.

‘다행이야. 혈맥이 비정상이긴 하지만, 큰 부상은 아닌 것 같군…’

말은 쌀쌀맞게 했지만, 내심 걱정했었다.

레스타드의 몸을 살피던 이든이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 안색을 보니 한걸음에 달려왔나 보군. 이거 감동이라고 해야 하나.”

레스타드의 실없는 말에 이든이 본론부터 꺼냈다.

“누굽니까. 길드장님 이렇게 만든 새끼들.”

상관 앞에서 거침없이 말을 내뱉는다.

그만큼 이든의 분노가 짐 잡을 수 없이 크단 얘기였다.

“잘 모르겠네. 그때 일 이후로 나를 노리는 것들이 워낙 많아서 말이야.”

그때 일,

더 말해봤자 입만 아팠다.

이든이 수도를 떠난 사이, 황궁에 몰아닥친 태풍의 중심엔 레스타드 길드장이 있었다.

레스타드 길드장이 이리저리 붙들려 사건을 처리하는 사이,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의심 가는 놈들도 없습니까.”

“의심 가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야. 나름 본부의 길드원들을 굴려 알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어. 청부업 길드에서 의뢰인의 신상을 알려줄 리 만무하지.”

그때, 그들의 대화 사이로 한 여자가 다가왔다.

“길드장님, 소독 시간이에요.”

성당의 수녀였다.

레스타드가 옷을 걷어 올려 상처 부위를 보였다.

“크읏.”

성직자들의 신성력은 말 그대로 임시방편이었다.

대체로 상처를 아물게 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아물려면 일반적인 치료가 반드시 필요했다.

상처의 소독약이 닿자, 레스타드가 신음을 냈지만, 이내 곧 쉬지 않고 입을 열었다.

“역시. 상처 소독은 여자들이 해주는 게 조금 덜 아픈 것 같다니까.”

이든이 웃었다.

“아무렴요.”

그들의 대화를 듣던 수녀가 웃으며 말을 꺼냈다.

“말을 좀 더 줄이시면 소독할 필요도 없이 금방 나으실걸요?”

“이번엔 세리나 수녀님께서 오셨군요. 돌아가면서 오는 것을 보니 내가 아주 인기가 많나 봐?”

“자꾸 길드장님이 말 건다고 안 오겠다 하니, 돌아가면서 하는 거죠. 뭐.”

“뭐, 뭐야 그랬나? 하하하!”

백의의 천사라 불리는 그녀들이지만, 말은 촌철살인이다.

레스타드가 무안한 얼굴을 하자, 옆에서 듣던 이든이 정중히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워낙 주책맞은 아저씨라.”

“크흠.”

이든의 사과에 웃으면서 답한 수녀가 레스타드의 옷을 덮었다.

“소독 끝났습니다. 이따 새벽에 다시 올게요.”

“자네가 와달라고, 자네 말고 다른 사람이 오면 나 진짜 상처받을지도 몰라.”

“노력해볼게요.”

세리나 수녀가 종종걸음으로 사라지고, 이든이 다시 본론을 꺼냈다.

“수도에 청부업 길드가 많은 편입니까?”

“많지. 청부업 특성상 대놓고 드러내진 않지만, 굵직한 길드가 세 개. 그밖에 잡다한 길드가 대여섯 개는 된다고 할 수 있지.”

“생각보다 많군요.”

“그렇지. 그래서 애초에 누가 날 노렸는지 알아내는 게 불가능하단 말일세. 암살자를 생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레스타드의 말을 듣던 이든의 눈썹이 움찔한다.

“그겁니다.”

“응?”

“놈들을 생포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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