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42/250)

42화.

“그 무슨… 자네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제가 언제 헛소리하는 거 보셨습니까?”

레스타드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이든을 쳐다보는데, 농이라 하기엔 그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그, 그래. 뭐 생포한다고 치세. 근데 어떻게 생포할 생각인가.”

“지금 길드장님께서 이리 버젓이 살아계신 이유가 뭐라 생각하십니까.”

듣던 레스타드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자네 그 말 좀 이상하구만.”

이든이 가볍게 무시하곤 입을 뗐다.

“놈들은 아직 길드장님께서 살아 계시 단 걸 모르는 겁니다.”

“응?”

“암살을 생업으로 살아가는 놈들이 암살에 실패한다. 의뢰인과 마찰이 생기는 것은 둘째치고, 그들 명성에도 금이 갈 겁니다. 분명 길드장님이 살아계신단 소문이 퍼지면 놈들은 다시 사람을 보내올 겁니다.”

가만히 이든의 말을 듣던 레스타드가 설마 하는 얼굴로 입을 뗐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일부로 소문을 내라. 그건가?”

“예.”

진지한 얼굴로 단박에 말하는 이든의 모습에 레스타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원…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는군.”

“그 많은 청부업 길드를 다 뒤지는 것보단 이것이 확실하고 빠릅니다. 설령 다른 업자가 온다 한들 의뢰인은 같을 테니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딨겠습니까.”

단순하고 무식한 방법이지만 그편이 확실하긴 했다.

어째선지 가만히 듣던 레스타드도 그의 말에 점차 설득당하는 모습이었다.

“제가 무리하면서까지 한걸음에 달려온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어쨌든 길드장님의 소식이 수도에 퍼질 것은 자명합니다. 놈들이 언제 올지 모르고 무작정 기다리는 것보단 그편이 더 속 시원하고 확실합니다.”

“음. 어차피 올 거 미리 함정을 놓자라.”

자신을 미끼로 하는 것이 영 께름칙하긴 했으나, 레스타드의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좋아. 어차피 한번 죽었다 살아난 목숨이니 도박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길이 정해지면 뒤를 보지 않는 그의 성격이 이든과 잘 부합됐기에, 잡음 없이 이런 작전도 가능한 것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길드장님의 안위는 제가 반드시 지켜낼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자네 말 따르다가 죽어버리면 내 편히 눈을 감지 못할걸세.”

“훗.”

“근데 말이야. 잡았다 쳐도, 그들이 입을 열겠는가. 길드원을 시켜 수도 전체를 뒤져 물어봤지만, 하나같이 모르는 일이라며 문전박대하던 그들일세… 쉽게 입을 열지 않을 텐데.”

“그 부분에 대해선 또 제가 전문가 아니겠습니까. 입을 열지 않고는 못 베낄 겁니다.”

“하하…”

듣는 레스타드마저 마른 침을 삼켰다.

이든이 보내온 암살자를 어떻게 구워삶을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계획은 세워졌다.

남은 것은 그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다.

날이 밝고.

레스타드는 길드원을 동원해 자신이 청부업자에게 피습을 당했으나,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소문을 수도 전역에 퍼트렸다.

삽시간에 퍼진 소문은 황궁에 귀까지 들어갔다.

***

테이머 길드와 연루됐던 관료들의 명단 공개는 황궁을 발칵 뒤집었다.

당연히 한바탕 피바람이 불 것이라 예상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숙청이 도중에 중단되었다.

의뭉스러운 뒷수습엔 언제나 잡음이 들리기 마련이다.

당연히 의회장은 이를 두고 고성이 오갔다.

그렇게 한참을 고성이 오가고 안건의 최종 처리만 남겨둔 황제의 입실 전, 그곳에서도 역시 레스타드 길드장의 소식이 화두를 이루고 있었다.

“소문 들으셨습니까?”

“레스타드 경이 피습을 당했단 소문 말이지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어디 이 일이 보통 일입니까. 그에게 앙심을 품은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겁니다.”

“그래도 이 시국에 암살자를 보내다니, 그 사람도 어지간히 화났었나 보군요.”

저마다 떠들어대는 모습 속에 유독 한 사람의 심기가 편해 보이질 않았으니, 그 이는 다름 아닌 캐슬롯 후작이었다.

“캐슬롯 후작. 어디 불편하시오. 표정이 아까부터 좋지 않은 것 같소.”

듀란드 공작의 물음에 캐슬롯 후작이 당황해하며 바로 얼굴을 폈다.

“아하하! 아닙니다. 아침부터 몸이 영 좋질 않군요.”

“이 시국에 폐하의 눈 밖에 나면 큰일입니다. 어서 좋아져야 할 텐데 말이지요.”

“아… 예.”

캐슬롯 후작이 듀란드 공작의 눈치를 살피며 마른 침을 삼켰다.

명단에 포함된 사람 중 한 명이었던 그가 지금과 같은 피바람 속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듀란드 공작의 입김이 작용했던 것도 한몫했다.

같은 칠 인의 기사 중 한 명이었지만, 듀란드 공작은 궤를 달리했다.

황제 다음가는 권력.

황제의 가장 최측근인 그의 말 한마디면 피바람도 빗겨 나가기 마련.

두 개의 공작석 중 한자리는 오랫동안 공석이었고, 사실상 듀란드 공작을 제외하면 황궁에서 두 번째 서열이었던 캐슬롯 후작이 굳이 듀란드 공작의 줄을 탄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캐슬롯이 이를 악물었다.

‘이 새끼들. 분명 레스타드를 완벽히 처리했다고 큰 소릴 쳐대더니만, 일을 그르쳐…!?’

당장에라도 쫓아가 문책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안 되겠어. 의회가 끝나는 대로 바로 그들을 찾아가야겠어….’

바득 이를 갈던 캐슬롯은 듀란드가 자신에게 관심을 끄기 무섭게 곧바로 딴생각을 해댔다.

그의 관심은 궁 밖에 아직 명줄을 이어가고 있던 레스타드 길드장이었다.

레스타드의 피습을 사주한 흉수.

바로 캐슬롯 후작이었다.

***

내내 창백하던 이든의 안색이 편안해졌다. 레스타드의 곁을 지키며 대부분 시간을 운공을 하는데 보낸 덕에 내상의 상당 부분을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안심할 수는 없다.

내상의 근본적인 치유법은 휴식에 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아마도 긴 시간 동안 요양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든이 쓴웃음을 지었다.

‘과거의 경지가 코앞인데, 내가 저지른 일에 내 발목이 잡히었군.’

이든 옆에 레스타드는 이제 막 잠이 든 상태였다.

밤에 있을 습격에 대비해 낮과 밤이 바뀐 탓이었다.

‘내상은 치료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동료는 잃으면 그걸로 끝이다.’

힘을 중시하는 신교의 일인자로서 패도의 길만 고집했고, 일선에서 물러나기 전까지도 줄곧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역대 천마 중 동료 간에 화합을 제일로 중요시했다.

무진. 그 자신의 오지랖도 한몫했지만, 역사상 유례없던 맹주의 등장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야말로 자신과 동수를 이루었던 절대 고수의 맹주.

그가 있던 강호는 여태껏 무림맹과 궤를 달리했고, 그의 존재는 자신의 힘만으로 무림을 제패할 수 없는 상황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무진의 선택은 탁월했다. 그의 고집 덕에 무림맹과의 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때의 기억들이 무엇보다 동료를 먼저 생각하게 하는 가치관을 형성했다.

그래서인지 운공 중에도 이든의 관심사는 줄곧 레스타드를 노렸던 암살자뿐이었다.

벼르고 벼렸던 시간이 흐르고 다시 밤이 찾아왔다.

호전을 보이던 레스타드도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병실이 옮겨졌다.

삼엄한 경비를 보이던 중환자실과 다르게, 일반실은 그렇질 못했다.

“일반실이라. 계획대로 되어서 좋아해야 할지….”

레스타드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상 함정을 파놓았긴 했지만,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계획인 만큼 마음이 편치 못했다.

옆에서 듣던 이든이 말을 꺼냈다.

“무서우십니까?”

“무, 무섭긴! 크흠. 그냥 말이 그렇단 걸세. 말이!”

“걱정하지 마십시오.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리지 못하게 할 테니.”

“거 다행이군. 요즘 가뜩이나 머리가 많이 빠져서 걱정이었는데.”

위험천만한 계획을 앞둔 상황에서도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 모습에 카르엘이 아연실색했다.

“다들… 지금 정신 차리고 계신 거 맞죠?”

카르엘의 물음에 레스타드가 대신 답했다.

“나는 정신 나간 것 같고, 여기 이 친구는 말짱한 것 같군.”

그 와중에도 또 농을 한다. 정말 반쯤 정신이 나간 듯 보였다.

하긴 제아무리 레스타드의 담력이 세더라도 자신을 미끼로 둔 상황은 익숙지 않을 것이다.

그때, 이든의 눈썹이 살짝 움찔했다. 성당을 에운 그의 천라지망에 수상한 움직임 들어온 것이다.

“왔습니다.”

먹잇감이 미끼를 물러 오고 있었다. 이든이 황급히 입을 뗐다.

“카르엘 씨는 밖으로.”

“아 네…!”

레스타드 외에 다른 사람이 있다면 쉽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기에 이든은 즉시 카르엘을 밖으로 내보냈다. 그녀가 나가고, 곧바로 잠에 든 척했던 레스타드가 반쯤 뜬 실눈을 하며 께름칙한 얼굴로 쳐다봤다.

“자넨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전 계속 이곳에 있을 생각입니다.”

“그럼 카르엘이 나간 의미가 없지 않은가…?”

“제게 다 생각이 있습니다. 잠이나 주무시죠.”

목숨을 내놓은 상황에 잠이나 자라니, 참 어처구니없는 말이지만 레스타드는 군말 없이 눈을 감았다.

이든은 조금 멀찍이 떨어져 구석진 한 곳에 자릴 잡았다.

잠시 후, 그림자보다 칠흑 같은 어둠이 그의 주변에 드리우더니, 이내 기척이 완전히 차단된다.

심수심진법(沈水深陳法).

신교의 교두들 이상만이 익히는 것으로 기척을 완전히 차단하는 진법 중의 하나였다.

시전자의 경지에 따라 진법에 영향력이 다르니, 사실상 이든 본인 외에 기척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자. 무대는 준비했다. 어서 와라.’

먹잇감을 기다리는 이든의 얼굴에

일순 미소가 지어졌다.

허나 미소에 새겨진 감정은 더없이 서늘하고, 섬뜩하기 짝이 없었다.

그야말로 악귀처럼.

수도의 성당.

모든 속된 것을 거부하는 성스러운 이곳에 척 보기에도 수상한 인형 둘이 성당의 외벽을 넘고 있었다.

성당 기사단의 눈을 피해 어둠 속을 유유히 걸어 다니는 그들은.

레스타드의 숨통을 마저 끊기 위해 투입된 암살자들이었다.

본래 하나의 대상으로 하는 청부업이라 하면 한 명의 암살자만 투입되길 마련이건만, 일전 레스타드 길드장 사살에 실패한 나머지, 이번엔 확실히 일을 처리하겠답시고 청부업 길드에서 둘을 보낸 것이다.

턱.

은밀하면서도 신속한 그들의 걸음이 레스타드가 있는 일반 병동 앞에 일순 멈추어섰다.

곤히 잠든 척하는 레스타드의 등 뒤로 암살자들이 암구호로 대화를 나눴다.

‘이놈 맞지?’

‘그때 그놈이 맞아. 어서 처리하자고.’

끄덕.

경비가 삼엄하리라 생각했는데 웬걸.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는 모습에 그들은 일이 수월하게 풀린다고 생각했다.

괜히 두 명이 왔단 생각까지 하던 찰나.

스릉.

암사자들의 손이 검 손잡이를 향하고, 검집에 숨겨두었던 시퍼런 날이 달빛에 반사되어 모습을 드러냈다.

‘잘도 자는군.’

그 어떤 소리도 새어나가지 않도록 한 명은 목을, 다른 한 명은 심장을 노리며 즉사시킬 요량으로 자릴 잡는다.

‘동시에 놈의 목숨을 노린다. 알았지?’

‘…’

아무리 암구호로 대화를 나눈다지만, 상대방의 신호가 없으면 호흡이 어긋날 수도 있기 마련이다.

동료의 대답이 없자 남은 한 명이 다시 암구호를 보냈다.

‘이봐. 대답이라도 하라고.’

‘…’

그러나 여전히 묵묵부답.

답답한 나머지 그의 시선이 재차 동료를 향하던 그때였다.

털썩.

밑도 끝도 없이 쓰러지는 동료의 모습에 남은 한 명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리며 연신 주변을 훑던 그때.

한구석에 드리웠던 어둠이 걷히고 그곳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착 감긴 눈에 사내.

이든이었다.

‘아뿔싸… 함정이구나! 일단 후퇴를!!!’

뒤에서 뜬금없이 나타난 이든의 모습에 뒤늦게 함정일 것을 알아차린 암살자가 쓰러진 동료도 내팽개치고, 몸을 빼려던 그때.

푸슛.

무언가 날아와 그의 종아리에 꽂혔다.

“윽!”

암기가 날아온 것이라 생각했다.

사내의 시선이 찰나 종아리로 향했지만,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

무엇에 당했는지도 모른 채 재차 빠르게 걸음을 옮겼지만, 절뚝거리는 걸음으론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때, 또다시 들려오는 의문의 소리.

푸슛! 푹!

“억!”

멀쩡했던 남은 다리에 마저 다시 뭔가 날아와 박혔다.

“칫…!”

두 다릴 봉쇄당한 암살자가 급히 품에서 뭔가를 꺼내 입안에 털어 넣었다.

임무를 실패한 암살자가 적에게 잡힐 경우 남은 것은 오직 자결뿐이었다.

콰득.

알약을 깨물면 안에 있던 독이 나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해주는 그들의 최후의 보루.

그때,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이든이 그의 명치 위치를 확인하곤, 곧바로 지풍을 날렸다.

푹!!!!

“어딜 마음대로 죽으려고!”

지풍에 실린 마기가 암살자의 가슴으로 침투되어 흡수되던 독을 역류시켰다.

“쿠웩…!”

토악질해대는 암살자의 입에서 시커먼 독이 쏟아져 나왔다. 죽음도 불사하려 했으나, 그마저도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그때, 이든의 손이 그의 모가지를 콱 붙잡았다.

“지금, 이 순간부턴 죽는 것도 내 권한이다. 알겠나?”

섬뜩한 말에 암살자가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지만, 이내 씩 웃었다. 청부업 일을 해오며 각오했던 일이었다.

죽음과 고문이 두렵진 않다. 임무를 실패했다는 오명이 두려울 뿐.

“의뢰인 누군지 말해. 그럼 곱게 죽여주지.”

퉷.

이든의 말을 듣던 암살자가 침을 내뱉었다. 그의 걸쭉한 침이 이든의 무복을 타고 흘러내렸다.

“훗. 아무리 고문을 해봐라. 그런다고 내가 순순히 부를 것 같으냐.”

“역시 말로 해선 안 듣겠군.”

이든이 검집에서 칼을 빼내어 들었다.

그 모습에 암살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진즉에 예상했던 바, 칼로 어떤 고문을 한다 한들 두렵지 않았다.

그때.

챙그랑.

이든이 들고 있던 날이 선 검을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검집을 드는 것이 아닌가.

“응?”

“그래. 이게 좋겠군.”

이든이 검집을 어루만지더니 만족스런 얼굴을 했다.

암살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네놈 설마…”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

이든의 손에 쥐어졌던 검집이 어느새 암살자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곧 레스타드가 있던 병동에 더없이 찰진 타격음이 울렸다.

빠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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