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바람 소리가 들렸다.
후웅.
마치 강풍을 연상케하는 소리가...
곧이어 찰진 타격음도 따라 들려왔다.
빠아아아아악!!!!
꿀꺽.
레스타드는 침을 꼴깍 삼켰다.
거침없이 검집을 휘두르며 매타작을 해대는 이든을 보며 사람을 저렇게 팰 수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퍽. 퍽퍽. 퍽퍽퍽!
죽일 듯이 휘두르는 모양새만 보면 매타작 당하는 놈은 진즉에 정신을 잃었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데, 정작 기절은 하지 않는다.
“끄, 끄허억…!”
이를 악물고 버티던 암살자의 입에서 기어코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도 이런 식으로 고문을 당할 줄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신음을 듣던 이든이 팔을 한 바퀴 삥 돌리며 어깰 풀더니 입을 뗐다.
“자 일단 몸풀기.”
“뭐…?”
지금까지 맞은 것도 아파 죽을 것 같았는데 몸풀기라고…?
암살자가 그대로 아연실색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검집을 쥔 이든의 손은 예정대로 재차 움직였다.
“자 다시 간다.”
퍽.퍽퍽.퍽퍽퍽. 퍽퍽.
“끄, 끄으으으윽!”
태어나서 이토록 매질을 당해본 적이 있던가.
그는 뼈가 부서지고, 살이 터질 듯한 고통과 혼란 속에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시 한참 동안 매타작을 해댄 이든의 얼굴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폈다.
“후우… 개운하군.”
이 정도면 사탄도 식겁하며 형님이라 모실 만큼 사악한 모습이었다.
이든이 재차 입을 떼 물었다.
“어때, 생각이 좀 바뀌었나?”
“니…니 이놈. 내, 내가… 그런다고…”
“아직 멀었군. 다시.”
“…!!!”
암살자는 계속 버티다 보면 제풀에 지쳐 자신을 죽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큰 착각이었다.
이든은 지치지도 않는지 시커먼 검집이 살점과 피로 검붉게 떡칠이 될 때까지 때리고, 또 때리기를 반복했다.
“끄, 끄허어억!”
결국, 맞다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눈을 까뒤집는 듯한 암살자의 소리에 이든의 손가락이 그의 혈 한곳을 짚었다.
푹.
“읍!”
까뒤집던 암살자의 눈에서 다시 검은 동공이 나타난다.
“왠지 기절하려는 것 같아서. 하지만 걱정 마. 그때마다 내가 다시 깨워줄 테니.”
비로소 암살자는 자신이 한참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자 다시 시작하자.”
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
고기를 다지는 소리가 이런 것일까. 후드려 패는 소리가 어찌나 살벌한지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되질 않는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레스타드마저도 그가 불쌍히 여겨질 정도였으니 말 다 한 것이다.
“…!!!!!”
주륵.
누가 암살자들을 가리켜 피도 눈물도 없다 했던가.
핏발 가득 서 충혈됐던 암살자의 부릅 뜬 눈에서 피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그럼에도 이든의 매질은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퍽퍽퍽퍽. 퍽퍽퍽.
혈까지 찔러 이젠 신음조차 새어 나오지 않는다. 이미 죽은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암살자의 너덜너덜한 모습. 그러나 정작 숨은 붙어있는 것이 참으로 신묘한 타법이었다.
내내 창백한 얼굴로 광경을 바라보던 레스타드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 이보게. 조, 조금 살살하는 것이 어떤가.”
방금까지만 해도 이들에게 노려졌던 사냥감이 맞는가 싶은 그의 말.
그러나 이든의 매질은 멈추질 않았다.
퍽.퍽퍽퍽. 퍽퍽퍽!
“죽어도 안 죽입니다.”
말에 어폐가 있었으나, 단숨에 알아듣는 레스타드였다.
“아하하… 그, 그래.”
괜히 말렸다간 자신까지 피 볼 것 같아 레스타드는 바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매질을 끝낸 이든이 다시 묻는다.
“자. 이제 말할래? 말래?”
“어, 어으어 어으아아아…”
“뭐라는 거야. 이 새끼가. 말 똑바로 안 해?”
이든이 검집을 크게 휘두르는 시늉을 하자. 암살자가 덜렁거리는 팔을 급하게 휘저었다.
“어, 어으으으으 어으으으어아!”
여전히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발음. 검집을 휘두르려던 이든의 손이 덜컥 멈추었다.
문득 자신이 내내 암살자의 아혈을 찔렀던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랬으니 불고 싶어도 불지 못할 수밖에, 흔치 않은 실수였다. 이든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 짜식. 진작 말하지 그랬어.”
사과 한번 섬뜩하기 그지없다.
말도 못 하게 만들곤 말할 기회 한 번도 주지 않았으면서 저게 할 말인가 싶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푹.
이든이 다시 아혈을 눌렀다.
그러자 암살자 입에서 느리지만 제대로 된 말이 들려왔다.
“으흐으윽…. 패, 패터 길드. 패, 패터 길, 길드에서 와, 스미다….!”
매타작을 당하는 과정에 이를 어찌나 세게 악물었으면 이빨 대부분이 빠지거나 금이 가 있을까.
발음은 부정확했지만, 다행히 레스타드는 모두 알아들은 것 같았다.
“팬텀 길드. 놈들은 팬텀 길드에서 보낸 암살자였네.”
이든의 얼굴이 획 돌아 다시 암살자를 향했다.
“누가 너희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어. 의뢰인이 누구냐고.”
“그, 그거는 저, 저히도 모라여….흐윽흐윽!”
“모른다라…”
검집을 잡은 이든의 아귀에 다시 힘이 들어간다.
그 모습에 암살자의 눈에 굵은 눈물이 쏟아져 피와 뒤섞여 흘렀다.
“모, 모라요. 저, 정말 모라요. 디따에요…!”
울며불며 다급히 말하는 것이 진짜 같았다. 옆에서 보기 안쓰러웠던 레스타드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 아마도 진짜일걸세. 의뢰인 보호를 위해 일반적으로 길드에선 청부업자에게 목표물만 알려주지. 의뢰인에 대해선 일절 알려주지 않는 편이네.”
“흠…그렇단 말이군요.”
비로소 이든이 검집을 쥐던 손에 힘을 풀었다.
“좋아. 사실대로 말했으니 그만토록 하지. 다만…”
그때, 이든의 얼굴이 내내 기절해 있던 다른 암살자를 향한다.
“아까부터 깨어있던 거 다 안다.”
흠칫!
이미 진즉에 깨어나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동료의 몸이 움찔하며 놀란다.
그리고 이내 그의 몸이 공포에 젖어 바르르 떨려오기 시작했다.
“공평하게 네놈도 이만큼은 맞아야겠지?”
“사, 사사, 살려주십시오. 아, 아니 죽 죽여주십시오!!!”
차라리 죽여달라 애원하는 암살자의 모습은 레스타드마저 연민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새벽이 깊어지도록 레스타드가 있던 병동에선 매타작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 소란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돌보던 수녀와 경비를 돌던 기사들마저 어느 하나 나서 말릴 생각 따윈 하지 못했다.
그렇게 남은 한 명마저 곤죽이 되어서야 이든은 비로소 검집에 다시 검을 집어넣었다.
“후우… 속이 후련하군요.”
“그, 그래? 거 다행이구만… 하하하…”
많이 닮은 것 같던 두 사람도 이 부분에서 만큼은 서로 다른 것 같았다.
레스타드가 어색하게 웃다 물었다.
“이제 어쩔 셈인가?”
“바로 팬텀 길드로 가봐야지요.”
“바로 말인가?”
“예. 날이 밝기 전에 모든 일을 해결할 생각입니다.”
정말 일 처리하는 속도만 보면 누구나 탐내 할 인재상이다. 물론 속도‘만’ 보면 말이다.
“카르엘 씨.”
“예!?”
이든이 카르엘을 부르는데, 그녀가 깜짝 놀라며 대답한다.
산적 소탕 때도, 테이머 길드를 쑥대밭으로 만들 때도 제일 가까이서 지켜봤던 그녀지만,
이든이 손속을 쓸 땐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질 않는 그녀였다.
“팬텀 길드 위치. 대강 아십니까?”
“아, 아아 예…!”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그곳까지 안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길드장님.”
“으, 응?”
이든이 두 암살자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성당 기사들의 경비 강화를 요청하십시오. 여기 암살자들이 들어온 흔적이 버젓이 있으니, 무시하지 못할 겁니다.”
“아, 알았네.”
진두지휘하며 상황을 빠르게 수습한 이든이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워낙 모든 일이 순식간에 지나간터라 듣던 사람도 어버버하다가 그의 말대로 따른다.
“가시죠.”
“아, 예…!”
카르엘이 곧바로 그의 옆에 서서 팬텀 길드까지 안내했다.
***
팬텀 길드는 수도 중앙에서 많이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사람 한 명 다니기는 할까.
아무리 새벽이라지만, 돌아다니기 거북할 만큼 거리가 을씨년스럽다.
그 으슥한 골목 한구석에 자리한 팬텀길드.
자칫 모르고 지나칠 만큼 허름한 간판과 문 앞에 어두스름한 조명만이 미비하게 그곳에 존재를 밝히고 있다.
그때, 기척이라곤 전혀 없던 이 골목에 손님이 찾아왔다.
똑똑.
문을 두드리니 잠시 후, 인상 좋아 보이는 사무관이 손님을 맡으러 밖으로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이쪽으로….”
사무관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선 손님은 얼굴이 보이지 않을만큼 로브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곧 길드장님이 오실 겁니다. 그 전에 차라도…?”
“예. 부탁합니다.”
길드장 내부는 외견만큼이나 허름했다. 좁고 허름한 이 공간에 사무관과 길드장 단둘만이 안을 채우고 있다.
사무관이 막 끓인 차를 내오고, 잠시 후, 길드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팬텀의 길드장입니다. 손님께선 어떤 의뢰로 오셨는지…후후.”
“따로 어떤 의뢰를 맡기고자 온 것은 아니고… 기존에 의뢰한 것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자 함입니다.”
“음? 손님께선 일전에 이곳을 방문하셨는지요?”
로브를 깊게 눌러써 얼굴을 가린 것도 있지만, 낯선 목소리였다.
팬텀 길드장의 기억엔 이런 손님은 없었다.
그때, 로브를 눌러쓴 이가 입을 뗐다.
“그땐 제가 아닌, 저희 주인님께서 오셨습니다. 레스타드 길드장에 관한 의뢰로 말입니다.”
“레스타드 길드장…?”
“예. 저희 주인님께서 확인차 조금 전 수도 성당에 들르셨는데, 길드장님께서 보낸 암살들이 체포되어 이송 중이더군요. 해서 주인님께서 이르시길 지급했던 금액을 모두 환불해 달라고…”
불신의 눈으로 손님을 바라보던 길드장의 안색이 하얗게 질린다.
첫 번째 임무마저도 생사를 제대로 확인 못 해 실패했는데, 두 번째 임무마저 실패로 끝난다면 손님을 볼 낯이 없는 것을 떠나서 자칫 소문이라도 났다간 길드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가능성도 있었다.
자칫 오만해 보일 수 있던 길드장의 태도가 삽시간에 바뀌었다.
그가 연신 손을 비비며 고갤 낮췄다.
“이, 이거 송구하게 됐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해가 뜨기 전까지 제대로 된 전문가를 다시 보내 일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오늘 보냈으니, 바로 다시 보낼 것이라곤 놈들도 예상치 못할 겁니다.”
“여기가 맞군.”
“예?”
그때, 손님이 깊게 눌러쓰던 로브를 벗었다.
걷힌 로브에서 흑 남색의 기다란 머리를 한, 눈을 감고 있는 미청년이 얼굴을 드러냈다.
아직 앳돼 보이는 청년, 하지만 그의 입가에 서서히 피어오르는 미소는 섬뜩하기 짝이 없다.
“예는 무슨 예야. 일단 맞자.”
빠악!!!!!!!!!!!!!!!!!!!
어느새 날아든 주먹이 길드장의 턱주가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사무관은 벙찐 얼굴을 했다.
처음엔 너무도 뜬금없는 상황에 이건 뭔가 싶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길드장이 얻어터지고 있었다.
옆에서 모든 것을 넋 놓고 지켜보던 사무관의 표정이 점차 경악으로 물들었다.
곤죽이 되어가는 길드장을 놔두고, 사무관이 도망을 치려던 그때, 청년이 그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어디 가시나. 섭섭하게…”
“흐, 흐이익!”
이든이 사무관을 확 끌어당기더니 길드장이 있는 곳으로 내동댕이쳤다.
퍽퍽퍽퍽퍽.
그리고 혹여 한 명이라도 섭섭해할까 봐 사이좋게 발로 밟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참을 밟아대던 이든의 발이 뚝 멈췄다.
“자, 개인적인 용무는 여기까지 하고, 지금부터 질문할 테니 제대로 답하도록. 레스타드 길드장 청부를 의뢰한 새끼가 누구냐.”
“쿨럭…. 내가 그걸 말할 것 같으냐.”
이든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둣, 그가 허리춤에 있던 검에서 검집만 꺼내 들었다.
“오냐. 내 네놈이 그리 말하기를 기다렸다.”
“무, 무슨 짓을 하려고…”
그가 자신이 내뱉은 말을 후회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단 한 대.
검집으로 한 대 맞는 순간, 그는 자신의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퍽. 퍽퍽퍽. 퍽퍽퍽퍽.
발로 밟힐 때도 아팠는데, 검집으로 맞는 순간 죽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이 정작 죽지는 않는다.
마구잡이로 검집을 휘두르는 것 같지만, 급소만 요리저리 피해서 뼈를 부러뜨리는 것이
한두 번 패본 솜씨가 아니었다.
“끄, 끄어어억…!”
길드장이 눈깔을 뒤집어 기절하기 직전,
푸슉. 푸슉!
이든이 길드장에 혈에 곳곳에 지풍을 날려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었다.
“으허…어어어…”
지풍에 아혈까지 찔린 길드장이 어버버거리며 말조차 못 하고 있었다.
“어딜 맘 편히 기절하려고 해.”
그리고 다시 시작된 매타작.
퍽. 퍽퍽퍽. 퍽퍽퍽퍽!
기절하고 싶어도 기절하지 못한다.
아혈을 찔려 말조차 못 하니, 의뢰인에 대해 발설할 수가 없다.
그저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 때까지 길드장은 맞고, 또 맞았다.
“너.”
“예?”
그때, 한참을 때리던 이든이 검집으로 사무관을 가리켰다.
저도 모르게 존대가 나오는 사무관이었다.
“레스타드 길드장 청부 사주한 새끼 누구야. 넌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