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그 사이, 호송을 의뢰했던 스파이크 상단이 유니콘 길드 앞에 도착했다.
레스타드가 반가운 얼굴로 그를 맞았다.
“스파이크 길드장님, 오셨습니까.”
레스타드가 반갑게 맞자, 스파이크 길드장이 미안한 얼굴을 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예정에 없던 일로, 유니콘 길드원분들께 한 번 더 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건에 관해 물어보려던 참이었습니다. 계획이 갑자기 변경된 이유에 대해 자세히 물어도 될까요?”
“칼스테인 영지에서 수도로 오던 중간에 저희 상단원이 급히 서신을 전하더군요. 제 오랜 친구인 레온하르트 영지의 기사 단장에게서 온 것이었는데, 황궁에서 오기로 예정되어있던 구호 물품을 모두 약탈당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황궁에서 다시 물자를 보내주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저에게 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서신이었습니다.”
“레온하르트 영지의 상황이 그리도 안 좋습니까?”
“말도 아니랍니다. 국경 밖으로는 몬스터가 들끓고, 국경 안으로는 산적들이 기승을 부린다는군요. 황궁의 군수물자를 약탈당한 것 역시 이를 가벼이 여긴 황궁의 실수이고요. 해서 어떻게든 아는 상단 전체에 도움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다는데…. 다들 한사코 거절했다는군요. 해서 현재 레온하르트 영지는 고립 상태이고요.”
“아…. 그렇습니까?”
문제가 이 정도로 심각하다면 단순히 길드간 거래로 끝낼 얘기가 아니었다.
레온하르트 영지 사람들의 목숨이 걸린 일인 것이다.
하기사 황궁도 미쳤다고 아무 이유 없이 기사 학교의 학생들을 토벌로 실습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얘길 듣던 레스타드가 인면수심 가득한 얼굴을 했다.
그 위험천만한 곳에 길드원들을 보내도 되는 건지 고민이 된 탓이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호송 길드원 간 사이도 별로인지라 언제 가라앉을지 모르는 선박처럼 조합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곤란한 상황을 모른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도의적 책임을 다할 것인가….
수심 가득한 눈으로 길드원들을 바라보던 레스타드의 시선이 문득 한 사람을 향했다.
대장인 케인과 베리. 그리고 그 밑 팀원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신경전 속에서도 무관심인양 유독 고요한 한 사람.
이든…
하나. 레스타드는 알고 있었다.
이든 저 친구 역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대재앙 같은 친구임을.
아니 그간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이든에 비하면 남은 길드원들은 재앙 축에도 끼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이든의 저 지랄 맞은 성격이 나조차 감당 안 되는 저 둘을 제어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을 거듭하던 레스타드가 결국 결단을 내렸다.
‘에라이! 될 대로 되라지. 실패하면 배상하면 그만이고, 성공한다면 얼어붙은 저들 사이를 전환할 계기가 되는 것이겠지.’
의뢰해준 상단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레스타드는 답도 없는 지금의 호송 팀을 이든이란 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 하나만 믿고 베팅하기로 작정했다.
이든이란 변수가 악수가 아닌 묘수로 작용하며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불현듯 몰려오는 알 수 없는 부담감에 이든이 인상을 구겼다.
‘뭐지. 이 싸한 기분은.’
그때. 레스타드가 스파이크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 그의 얼굴엔 어째선지 자신감마저 엿보였다.
물론 근거 없는 자신감이긴 했지만….
“까짓거. 한번 가봅시다.”
“어려운 결정을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스파이크 역시 웃으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성사된 거래에 화기애애한 분위 속에서 여전히 신경전을 벌이든 베리 쪽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씩 이든을 향했다.
심안의 무사라는 수식어는 이제 전 영지에 널리 알려져 꽤 유명해진 상태였다.
당연히 베리의 팀원들 역시 이든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저놈이 그놈이란 거지. 단신으로 테이머 길드를 완전 박살 내버린 놈.”
“눈 감고 있는 거 보니 그놈이 맞는 거 같긴 한데… 구라 아니야? 어떻게 혼자서 길드 하나를 박살을 내?”
“길드만 박살 내면 다행이게? 국경수비대도 저놈 손에 피떡이 됐다고 하던데. 아무튼 저놈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겠어. 소문엔 완전 미친놈이라던데.”
“그래…? 아무리 봐도 그리 보이진 않는데, 다 거품 아니야?”
건들지 말라면 꼭 한 번씩 떠보는 사람이 있다.
베리의 일행 중 한 사내가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이든을 바라봤다. 사납게 빛나는 눈빛이 흔하디 흔한 호승심이었다.
‘다들 유난 떠는 거야. 저딴 새끼가 어디가 무섭다고…’
그때, 이든의 고개가 홱 돌아가더니, 그 사내의 얼굴을 정면으로 맞받는다.
“응…?”
사내가 흠칫 놀라 시선을 피하려다 멈칫하곤 다시 이든 쪽으로 슬쩍 눈을 돌렸다.
여전히 사내를 향한 이든의 얼굴. 그가 깜짝 놀란 가슴을 붙잡았다.
‘뭐, 뭐야. 저 장님 새끼. 마치 내가 쳐다보는 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설마 하는 마음에 슬그머니 시선을 다시 그쪽으로 돌렸다.
다행이라 해야 할까. 이든의 얼굴이 자신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있자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뱉던 사내의 눈에 일순 핏발이 섰다.
‘뭐야. 방금 내가 겁먹은 거야? 저 장님 새끼가 뭐라고!’
콰득.
사내가 바드득 이를 갈았다. 이든을 향했던 호승심 가득했던 사내의 눈이 어느새 독기로 꽉 차 그득했다.
***
덜그덕. 덜그덕.
다행이라 해야 할까.
시작하기도 전부터 잡음이 생겼던 우려와 달리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개인적인 감정은 감정이었고, 일은 일대로 또 잘 처리하는 그들이었다.
다만 감정의 골이 워낙 깊은 나머지, 중간중간 티격태격 되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애초에 호송을 맡게 된 대장들부터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기에 각오해야만 했던 부분이었다.
덕분에 중간에 껴있던 스파이크 길드장만 난처한 상황이 더러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케인과 베리 둘 사이에 불화의 조짐이 보이던 그때.
“크, 크흠!”
스파이크가 급히 헛기침을 해댔다.
서로 불신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케인과 베리의 시선이 그를 향하고, 스파이크가 웃으며 화제를 돌리듯 말을 꺼냈다.
“사태가 악화하기 전에도 레온하르트까지 가는 길목은 상당히 위험했습니다. 저희 상단은 몇 번 가본 길이라 문제가 없지만, 케인 대장과 베리 대장께선 지금 가는 길에 대해서 훤하신지요.”
케인이 고갤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비록 기피하던 목적지긴 하지만 경험이 적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유니콘에 소속되기 전 용병 시절에 줄기차게 다니던 곳이기도 했죠.”
베리 또한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 않으셔도 돼요. 저야말로 이쪽 길은 눈 감고도 갈 수 있거든요. 케인 저 친구만 잘 해주면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호호!”
“뭐야!”
이런 식이었다. 냉전인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겠답시고 스파이크가 화제를 돌리면, 꼭 마무리는 서로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식이었다.
이제 첫발을 내디딘 셈인데, 이런 식으로 계속 호송을 맡길 생각을 하니, 스파이크 입장에서도 뒷목 잡을 노릇이었다.
‘하아. 이대로 괜찮은 것인지…’
하필이면 팀 구성이 왜 이리 된 건지 싶었지만, 사실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애초에 기존 계약을 깨고, 레온하르트 영지까지 호송해달라 억지를 부린 것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스파이크는 내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의 걱정은 현실이 됐다.
야영 준비를 모두 끝마친 배식시간.
푸짐하게 배식을 받은 이든이 야영지 한구석에 앉아 꾸역꾸역 음식을 채워 넣던 때였다.
“어이.”
“…”
“어이 너.”
“…”
“이 새끼가 귀도 먹었나.”
꾸역꾸역 입으로 향하던 숟가락이 덜컥 멈췄다.
이든이 밥그릇에 처박던 고갤 들고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했다. 그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래 너. 이 새끼야.”
“무슨 일이지?”
“무슨 일? 넌 임마 선배들이 숟가락 들기도 전에 네 배부터 채우냐. 예의는 밥에 말아 먹었냐. 엉?”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이든이 피식 웃다가 마저 숟가락을 들었다.
“밥 먹을 때 건들지 마라.”
“뭐?”
시비를 걸던 사내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 새끼 봐라?’
쾅.
그가 들고 있던 식판을 한쪽에다 던졌다. 때아닌 소음에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어이 장님, 들고 있는 것 내려놓고, 네가 내 밥 퍼와.”
“밥 먹을 때 건들지 마라. 원래 두 번 말 안 한다. 길드원이니 딱 두 번 말해 주는 거다.”
“이, 이이…!”
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요동을 쳤다.
선배된 입장에서 기강 좀 잡겠다고 쓴소리를 했더니, 새파랗게 어린 놈의 대꾸가 만만치 않다.
“이봐. 잭슨!!!!”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분위기.
베리가 채 말리기도 전, 시비를 걸던 잭슨의 발이 이든이 들고 있던 배식판으로 향했다.
텅.
잭슨의 발을 맞고 날아간 배식판이 바닥을 굴렀다.
일순간 찾아온 정적.
잭슨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던 그때, 이든이 들고 있던 숟가락을 한쪽에 놓고는 입을 뗐다.
“같은 길드원이니, 기회를 주지. 내 배식 다시 받아와. 이번엔 두 번 말 안 한다.”
“뭐라는 거야. 이 새끼가…!”
말과 동시에 잭슨의 발이 이든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음 장면이 빤히 보였던 탓일까. 일행들이 저마다 눈을 질끈 감았다.
휘익! 퍽!
찰진 타격음이 들렸다.
길드원들이 질끔 감았던 눈을 떴을 땐,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먼저 손을 쓴 것은 잭슨이었는데, 어째선지 잭슨의 몸이 저만치 날아가 풀숲에 들이박혀있던 것.
이든이 주먹을 털었다.
“이든!”
기어코 터질 것이 터졌다. 케인이 미처 말리기도 전, 이든이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잭슨에게 바닥을 뒹굴던 식판을 앞에 던졌다.
“지금부터 내가 받아온 배식 그대로 담아온다. 실시.”
“으으으… 이 개새끼가!”
퍼억.
잭슨이 입에서 욕이 뱉어 나오기 무섭게, 이든의 주먹이 쏜살같이 날아가 잭슨의 아구에 엄벌을 가한다. 잭슨이 얻어맞은 턱을 부여잡고는 신음했다.
“으으으…”
“이봐 뭣들 하는 거야!”
베리와 케인이 황급히 다가와 제지하려던 그때. 이든이 다시 입을 뗐다.
“저와 이 새끼 간의 문제입니다. 나머지 분들은 간섭하지 마십시오.”
“뭐? 이 새끼가 상관이 말하는 데 어디서 말대꾸를…!”
베리가 이든을 잡아끌려던 그 순간.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살기가 주위를 뒤덮었다.
일순간 몰아닥친 때아닌 북풍의 한설.
그 살얼음판 속에서 베리의 손도 덜컥 멈추고 말았다.
“간섭들 하지 말라 말했습니다. 두 번 말 안 합니다.”
“이, 이 무슨…!”
제지하려던 주변인들의 몸이 모두 얼어붙은 그 순간에도, 이든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신을 못 차리는 잭슨을 발로 툭 건드렸다.
“퍼올래. 맞을래.”
“으으. 미쳤어? 이 새끼…”
퍽!
“퍼올래. 맞을래.”
“정신 나간…!”
퍽!
“퍼올래. 맞을래.”
“으으…”
퍽.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아도 때렸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대답을 못 하는 순간에도 이든의 무자비한 손속은 멈출 줄을 몰랐다.
당장 달려가 말려야 함에도 이든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퍼올래. 맞을래.”
“사, 살려주세요…!”
급기야 잭슨의 퉁퉁 부어오른 눈두덩이에서 굵은 눈물이 흘렀다.
“너 죽인다 안 했다. 퍼올래. 맞을래.”
“퍼, 퍼오겠습니다!”
이든이 재차 손을 뒤로 홱 돌려 휘두르려던 그때. 잭슨이 황급히 자신 앞에 놓인 식판을 들고는 부리나케 배식 줄 뒤에 섰다.
상황종료.
잭슨의 항복 선언과 함께 주변을 뒤덮던 살기도 씻은 듯 없어졌다.
내내 상황을 지켜보던 케인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자네. 어쩌자고 그런 짓을…”
케인이 한소릴 하려던 때, 도리어 이든이 큰소릴 냈다.
“제가 뭐 잘못했습니까.”
“자네 그 무슨…”
“다른 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싸우려면 싸우고, 말려면 제대로 협업 좀 하십시오. 대장님들부터 티격태격해대니, 저런 놈들이 생기는 것 아닙니까. 호송이 애들 장난입니까?”
“….”
정곡을 찌르는 이든의 말에 모두가 합죽이가 되었다.
내내 이빨을 드러내고 싸워댄 자신들이 이든에게 한소리 할 자격이 되지 못했던 탓이다.
“레스타드 길드장님은 무슨 생각으로 여러분을 같이 붙이신 건지 모르겠지만, 이럴 거면 차라리 한팀은 빠지는 것이 났습니다. 믿지도 못할 동료에게 어찌 내 등을 맡긴단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