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한차례 소동 이후, 더는 대놓고 이빨을 드러내는 사람은 없었다.
얼굴만 마주쳐도 티격태격하던 케인과 베인 마저 조용하다.
더더욱 어색해진 기류. 분위기를 급속도로 냉각시킨 장본인. 오직 이든만이 무미건조한 얼굴로 밥을 먹는 것에 열중할 뿐이었다.
“…”
“…”
이든 옆에 잭슨이 안절부절못한 얼굴로 힐끗거리며, 숟가락을 깨작거리던 그때.
이든이 결국 숟가락 내려놓았다.
탁.
각인된 공포는 오래가는 법이다. 잭슨이 밥을 씹다 말고, 식겁한 얼굴을 했다.
“야.”
“예…!?”
“밥 먹을 땐 밥 먹는 데만 집중해라. 그러다 체한다.”
“아, 예…!”
“…”
별생각 없이 내뱉은 한 마디였는데, 그게 또 감동이었는지 잭슨이 울먹거리며 밥을 꾸역꾸역 삼켰다. 덕분에 이든만 고역이었다.
‘하아… 이게 뭔 짓인지.’
보이지 않는다고, 눈치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결국, 밥을 먹는 내내 불편했던 모양인지. 이든이 식판을 들고 일어나 자릴 옮기자 사람들의 시선이 죄다 그를 따라 움직였다.
그 사이, 이든은 멀찍이 떨어져 사람들 없는 곳에 자릴 잡고는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한창 식판을 비울 무렵.
먼저 식사를 끝낸 케인이 이든 옆에 앉았다.
그가 멋쩍은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이거 면목이 없구만.”
“…”
“…팀을 이끄는 대장으로서 제대로 본보기를 보이지 못했어. 그래도 덕분에 뒷통수가 얼얼했네. 정신이 팍 들었달까.”
“…”
아무 말 없이 꾸역꾸역 밥을 삼키는 이든의 모습에 케인의 눈이 이든을 향해 힐끗 움직였다.
“..내 말 듣고 있는 건가?”
“…”
탁.
이든이 식판을 다 비우곤 숟가락을 놓았다.
우물우물…
꿀꺽.
마지막까지 꾸역꾸역 밥을 삼키던 이든이 뒤늦게 입을 열었다.
“듣고 있습니다.”
“나 원. 말이나 좀 해주지. 아직까지 화가 단단히 난 줄 알았네.”
“답답했습니다.”
“응?”
“팀 내 분위기 꼬라지를 도무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그랬지…크흠.”
케인이 머쓱한 얼굴을 했다.
이든은 여전히 무미건조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적보다 무서운 것이 사기를 저하시키는 아군입니다. 적은 잡아서 죽이면 그만이지만, 아군 간의 불화로 떨어진 사기는 마땅히 해결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그렇지. 암. 그렇고말고.”
“대장님.”
“응?”
“지금 가는 곳 길목이, 어떤 곳보다 상당히 위험한 곳이라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맞네.”
“아무리 저라도 모두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혹여 제가 돕지 못하는 상황엔 좋든 싫든 간에 달갑지 않은 팀원에게 내 등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릅니다.”
“…”
이든을 향한 케인의 눈에 묘한 빛이 돌았다.
도무지 저 나이대에 어린 친구가 한 말이라곤 믿기지 않는 내용.
케인은 옆에 이든이 스물도 채 되지 않은 청년인지, 아니면 백전노장의 노회한 고수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만큼 이든의 말은 하나같이 틀린 구석이 없었다. 현재 자신들의 허점을 제대로 파악한 말들이었다. 가만히 듣던 케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어찌하면 좋겠나.”
“뭐. 별수 있겠습니까. 한팀이 빠지는 것도 방법이고, 베리 대장과 담판을 짓는 것도 방법이겠죠. 어쨌든 아직 초입입니다. 되돌리기엔 늦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흠.”
이든의 제시안은 모두 맞는 말이었지만, 케인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말은 쉽지, 모두 쉽지 않은 선택지였다.
“어렵군.”
대장이란 것이 그런 자리다.
쉽지 않은 선택지를 두고, 선택을 해야 하는 자리.
그 자리의 무게감을, 이든은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어렵지요. 저도 잘 압니다. 케인 대장님께서 고민이 많다는 것. 아마 베리 대장님도 따로 고민이 많으실 겁니다.”
“그, 그럴까…?”
원체 베리와 악연이 길었던 탓에, 그녀가 방금 있었던 일로 고민한다는 게 쉽사리 상상되지 않던 그였다. 그때, 이든이 입을 열었다.
“정 불편하시다면 한가지 선택지가 더 있습니다.”
“뭔가. 그것이!?”
케인이 눈을 빛냈다. 밥을 모두 비운 이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저희 둘이서만 할 얘기가 아닙니다. 베리 대장님과도 같이 얘기를 해봐야겠습니다. 베리 대장님을 불러주십시오.”
잠시 후.
한곳에 서로 불편한 이들이 모두 모였다.
“….”
공기가 삭막하기 그지없다. 한구석에 사람 셋이 있는데, 어째 말 한마디가 나오질 않는다.
충분히 예상했던 이든이 한숨을 쉬었다.
“애들도 아니고, 뭣들 하시는 겁니까. 다들.”
“크흠…”
“흥.”
정곡을 찌르는 이든의 말에 케인과 베리가 괜한 딴청을 피웠다.
“뭐야. 이리 모이라고 한 이유가. 듣자 하니 뭐 그럴듯한 해결책이 있다고 하던데.”
그때, 팔짱을 낀 채 딴 곳을 응시하던 베리가 결국 먼저 한마디 꺼냈다.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예. 그런데 말씀드리기에 앞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케인과 베리의 눈이 동시에 이든을 향했다. 이든이 재차 말을 이었다.
“현재 구성된 팀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뭔지 아십니까.”
“그야… 뭐. 길드원 간의 불화 아닌…가?”
케인이 조심히 말을 꺼냈다. 이든이 아니라는 듯 고갤 저었다.
“불화도 불화이지만, 현재 호송팀 구성은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치명적인 문제?”
“대장이 두 명이라는 겁니다.”
“음?”
“팀을 꾸릴 땐, 대장이 많은 것보단 한 명이 낫습니다. 더군다나 대장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엔 더더욱 그렇습니다. 대장간의 불화가 팀 내에 불화를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크흠…”
“…칫.”
옳은 말만 구구절절 하는 이든의 모습에 케인과 베리가 재차 고갤 돌리곤 딴청을 피웠다.
이든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해서 대장을 한 명으로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음?”
“잉…?”
“본인이 꼭 대장을 해야 하겠다. 거수해 주십시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자리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질문이 훅 들어온다.
케인과 베리가 본능적으로 손을 들었다.
“뭐야.”
“넌 또 뭔데?”
서로 손을 든 상대를 바라보며 케인과 베리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한다.
서로 협의를 해도 모자랄 판에, 또다시 불이 붙으려 한다.
그 전에 이든이 입을 열어 둘의 대화를 일시에 차단한다.
“앞으로 남은 호송을 주제로 회의하는 자리입니다. 정숙해 주십시오.”
“크흠.”
“…”
다시 서로 시선을 피하는 두 사람.
마치 이 또한 예상했던 바라는 듯 이든이 입을 뗐다.
“두 분 모두 드셨나 보군요.”
“…”
“…”
듣던 케인과 베리는 ‘차마 저놈이 대장 하는 꼴은 못 보겠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오려다 참는다
이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든의 물음에 베리가 제안했다.
“이럴 게 아니라. 그냥 다수결로 하지, 어차피 결판이 안 날 것 같은데.”
“그래. 그러는 게 났겠어.”
“안 됩니다.”
웬일로 동의하는 케인과 달리 이든이 단호히 거부한다.
“어째서?”
“똑같기 때문입니다. 겨우 팀원 간의 불화를 잠식시켰는데, 또 불을 지필 셈이십니까. 다들.”
“…”
그러고 보니 그것도 그렇다. 베리가 입을 꽉 다물었다.
“스파이크 상단까지 다수결에 포함해도…?”
“그쪽은 무슨 죄입니까. 의뢰인을 더는 불편하게 하지 마십시오.”
이번엔 케인이 조심히 얘길 꺼내는데 역시나 단호하게 막는 이든이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 시간 끌 것 없이 본론부터 말하지?”
보다 못한 베리가 결국, 성을 냈다. 이렇다 할 제시도 안 하고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하니 그녀도 짜증 난 것이다. 케인의 눈도 이든을 향했다.
“한팀이 빠지는 건 아무도 동의 안 하실 것 같고, 서로 간 협의도 불발.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저의 제시안이겠군요. 제 제시안은 이겁니다.”
“…”
“….”
꿀꺽.
대체 얼마나 기가 막힌 제시안이길래 저토록 뜸을 들이는 것일까. 베리와 케인의 시선이 이든에 고정된다.
“대장직. 제게 주십시오. 물론 임시로 말입니다.”
“뭐?”
“참나.”
어리둥절한 케인의 얼굴과 어처구니없어하는 베리.
그들의 반응에도 이든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자네. 진심인가?”
혹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재차 묻는 케인.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예. 진심입니다.”
“허…”
무미건조한 얼굴로 단호히 말하는 것이 진심이다.
케인이 헛바람을 삼켰다. 그때, 베리가 쌀쌀맞은 목소리로 연유를 물었다.
“꼭 네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따지고 보면 너도 케인 쪽이잖아. 차라리 스파이크 길드장에게 맡기지 그래.”
이든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까 제가 한 말은 뭘로 들은 겁니까. 우리 문제는 우리 선에서 끝내십시오. 의뢰인 괴롭히지 말고.”
뭐라 따지려 들고 싶지만, 맞는 말이라 그럴 수도 없다. 베리가 꾹 참다가 진정하고는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네가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봐.”
“그러지요.”
이든이 말을 이었다.
“첫째, 통제는 힘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누구보다 제가 제일 강하고요.”
“…”
케인은 본 것이 있으니, 인정하는 부분이었지만 베리는 그러지 못했다.
“뭐?”
“말 안 끝났습니다. 둘째, 여기 계신 분 중에 제가 가장 냉정한 판단이 가능합니다. 서로 아시겠지만 두 분께선 절대 그러지 못합니다.”
“잠깐.”
베리가 끼어들었지만, 이든이 가볍게 무시하곤 말을 이었다.
“셋째, 지금 여러분들을 보니 반드시 제가 해야겠단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하…!”
자존심이 상했던 걸까. 베리가 표독스런 눈으로 이든을 노려봤다.
이든의 얼굴이 휙 돌아 그녀를 향했다. 베리가 놀랐는지 움찔한 표정을 했다.
“아무래도 베리 대장님께선 불만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베리가 이를 악물었다.
‘뭐야. 보이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이든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베리 대장님.”
“…?”
“절대 대장님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자 이곳에 모이라 한 것이 아닙니다. 다들 냉정하게 판단하십시오. 아까도 말했지만, 한팀이 빠지던, 아니면 임시로 제가 대장직을 맡던 둘 중 하나는 무조건 정해야 합니다. 이대로 가면 모두 전멸입니다.”
베리와 케인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상하는 자존심에 한팀이 빠지자니, 자신들을 믿고 일을 맡긴 레스타드 길드장을 볼 낯이 없다. 정적 속에서 케인이 고갤 끄덕였다.
“…동의하겠네.”
“뭐어?”
케인의 선택에 베리가 놀란 눈으로 그를 향해 고갤 돌렸다.
“무슨 말이야. 진짜 이 꼬마한테 대장직을 맡기겠다는 거야?”
“그래.”
“어처구니가 없군. 그래. 이 꼬마한테 일을 맡긴다 쳐. 그러다 문제라도 생기면 그땐 어쩌려고?”
이든을 향한 케인의 시선은 확고했다. 그의 맑은 눈이 더욱 빛났다.
“아니. 내 경험으론, 그는 대장직을 맡을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전투력, 통솔, 추진력 객관적으로 봐도 우리보다 나아. 가끔 무모한 선택을 할 때가 있지만, 항상 좋은 결과를 불러왔다.”
비록 살가운 사이는 아닐지언정 케인이 입에 발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베리 또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고갤 저었다.
“난 반대야. 아무리 그래도 그동안 이 바닥에서 구른 자존심이 있는데, 저런 꼬마를 대장으로 모시라고?”
예상대로 베리의 반발이 거셌다. 이든은 말없이 케인의 반응을 기다렸다.
한참 동안 다물던 그의 무거운 입이 열렸다.
“그럼 우리가 빠지도록 하지.”
“뭐?”
이든에게 임시 대장직을 맡기겠단 말을 들었을 때보다 훨씬 더 놀란 표정.
베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진심이네.”
“미쳤어? 레온하르트 영지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한지 몰라서 그래?”
“아니. 나 역시 이든의 말에 동의한다. 비록 수는 적어질지언정 믿을 수 있는 동료에게 내 등을 맡기는 게 백번 나아. 희생은 따라도, 임무를 완수할 가능성은 커진다.”
“…”
베리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이내 한숨을 크게 내뱉었다.
“후. 알았어! 알았다고!”
베리의 눈이 홱 돌아 이든을 향했다. 여전히 불신 가득한 눈이었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한번 믿고 맡겨보기로 한 것이다.
“좋아. 어디 네 말대로 해 보자고. 잘 부탁한다. 임시대장.”
이든이 그녀를 향해 정중히 고갤 숙였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든 선택이었단 것, 충분히 이해합니다.”
자신의 주장을 일절 굽히지 않다가도, 이럴 땐 또 제대로 예의를 갖출 줄 안다.
괜히 딴청을 피우듯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던 베리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앞으로 저들을 어떻게 통솔할 생각이야? 난 동의했지만 아마도 우리 쪽 애들 반발이 거셀 것 같은데.”
“제게 다 생각이 있습니다.”
믿고 맡기긴 했는데, 순간 엄습하는 불안감. 케인이 넌지시 물었다.
“어떤 생각인지…. 한번 물어봐도 되겠나?”
베리도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뭐 별 것 있겠습니까.”
우득. 우드득.
이든이 목을 풀자, 뼈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그가 말을 이었다.
“말 안 들으면 패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