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49/250)

49화.

“뭐...?”

“뭐, 뭐어!?”

케인과 베리가 동시에 경악한 얼굴을 했다.

이든이 고갤 갸웃거렸다.

“반응들이 왜 그러십니까. 다들 몰랐다는 듯이.”

“허, 허허허…”

케인은 한편으론 예상하였기에 해탈한 듯 웃었고, 베리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저, 정말 팰 생각이야…?”

“예.”

여전히 확고한 대답. 그의 말에 베리가 진땀을 뺐다.

“굳이 때릴 것까지 있을까…?”

“말을 듣지 않는데,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있을까요?”

“…”

베리가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얼굴을 한다. 이든이 말을 이었다.

“반발이란 것이 애초에 말을 들을 생각이 없단 반증입니다. 일단 패고, 그다음 말로 해서 듣게 만들면 됩니다. 저 그렇게 무식한 놈 아닙니다.”

“…”

무식한 놈은 아닐지 몰라도, 무식한 방법은 맞았다. 그럼에도 원체 당당한 모습에 둘은 할 말을 잃었다. 이쯤 되니 봐 온 것이 있던 케인도 살짝 불안해진다.

그가 실없이 웃으며 말을 꺼냈다.

“그, 그래도 잘 구슬려서 으쌰으쌰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안 됩니다. 팀원들과 의뢰인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 살살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다 큰 어른들을 패는 건 조금…”

“통제는 힘에서 나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임무에 지장 없을 만큼만 제압하겠습니다. 제가 이쪽으로 전문가입니다.”

‘어익후야…!’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케인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반면 베리는 저런 식으로 팀원들 통제가 될까 싶은지, 여전히 의아한 얼굴이다.

물론 조금 전 소동 때, 잭슨이란 좋은 예시가 있었지만…

“일단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고, 얘길 마치도록 하죠.”

“으,응. 그러지.”

케인과 베리가 마지못해 고갤 끄덕이고 침낭 쪽으로 발길을 돌리다 멈칫했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불침번을 정하지 못했군.”

“오늘은 제가 종일 불침번을 서도록 하겠습니다.”

“괜찮겠나?”

걱정되어 묻는 케인과 표현은 없지만, 베리의 얼굴도 괜찮나 싶은 얼굴이다.

이런 책임감 면에서 보면 임시 대장직이 썩 어울리기도 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지옥 시작인데, 오늘까지는 다들 편히 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렇지…’

타닥타닥.

이든이 모닥불 앞에 앉고는 익숙한 듯이 불쏘시개를 뒤적거렸다.

그러자 다시 주변에 따뜻한 온기가 화악 올라왔다.

“그럼 오늘 밤은 신세 좀 지겠네.”

“예.”

이든은 가볍게 고갤 숙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케인이 자신의 침낭 쪽으로 향하고, 베리도 뭐라 말하려다가, 이내 낯간지러운지 시선을 돌렸다.

“그… 수고해. 내일 보자고.”

“예. 베리 대장님도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모두가 잠든 시각에 찾아온 고요한 정적.

이럴 때야말로 이든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수련의 시간이었다.

이든의 기감이 문득 그의 단전을 향했다.

이미 태산과 같다 해도 부족함 없는 정점을 이룬 마기(魔氣).

허나 그의 얼굴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단 표정이었다.

다시 태어나 일생의 기회를 얻은 순간, 태산이 아닌 하늘을 목표로 두었기 때문이다.

바쁘게 살아왔음에도, 그는 쉬지 않고 달려야만 했다.

그래야만 진정 하늘에 닿을 수 있음을 알기에…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후…”

깊은숨을 내뱉고 운공을 마친 그가 고갤 들었다.

피부로 느껴지는 공기가 달라졌다.

어느새 어둑하던 하늘에 동이 트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일어나는 길드원들.

“…”

다들 잠이 덜 깬 것인지 여전히 비몽사몽한 얼굴들이다.

물론 두 대장이 건넨 소식에 잠이 화들짝 달아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지금 뭐라 하셨어요? 저놈이 임시 대장직을요…?”

“그래. 나도 아니고, 케인도 아닌 저 친구가 임시 대장직을 맡기로 했어.”

“말도 안 됩니다. 베리 대장을 두고 어떻게 저런 새파랗게 어린 놈을…!”

생각지도 못했는지, 임시대장이란 말을 듣고도 ‘놈’이란다.

베리의 팀원들이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이든을 노려봤다.

그들의 눈에서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이미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들, 베리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어찌 됐든 임시라 해도 의뢰가 끝나기 전까진 통솔자는 저 친구야. 따르도록 해.”

“말도 안 됩니다!”

불만은 생각보다 거셌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일개 길드원.

그것도 가장 막내라 할 수 있던 녀석이 통솔권자가 됐으니 베리의 일행들 입장에선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유일하게 이든의 손맛을 봤던 잭슨만이 아무런 의사를 표현하지 않고 있었다.

거센 반발의 베리 일행과 달리 케인 일행은 별말 없이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하기사 그들이야 이든이 어떤지 기가 찰 만큼 경험하지 않았는가.

저벅.

그때, 출발 준비를 모두 마치고 온 이든이 그들 앞으로 걸어왔다.

“스파이크 상단이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모두 지정 위치로 복귀하십시오…”

“그러지.”

“응.”

“…”

저마다 대답하는 케인 일행과 달리, 베리 일행은 불신 어린 눈으로 이든을 흘기곤, 묵묵부답 이동했다.

“하아.”

베리가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동료들의 설득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탓이다.

그녀가 멋쩍은 얼굴로 말을 건넸다.

“미안하게 됐군.”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이든은 별생각 없어 보이는 얼굴이다. 수려한 외모지만, 표정만 보면 세상에서 가장 생각을 읽기 어려운 사람일 것이다. 이든이 고갤 저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먼저 사과를 드려야죠.”

“응…?”

이든의 입꼬리 한쪽이 삐죽 솟았다. 그 모습에 베리의 멋쩍었던 표정도 찬찬히 굳기 시작한다.

어젯밤 이든이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진즉에 봄은 왔건만, 어째선지 오한이 드는 그녀였다.

“교육. 시작해야겠군요.”

“아…하하하…그래. 시작해야지… 시작해야 하고말고.”

문득 팀원들 걱정이 앞서기 시작한 그녀였다.

그 사이, 모든 길드원이 지정된 위치로 가서 호송 준비를 마치고 확인을 끝낸 이든이 외쳤다.

“출발!”

번쩍.

일순간 하나같이 사람들 눈이 크게 뜨였다. 달리 크게 소리친 것 같지도 않은데, 그의 음성이 귓가에 박히듯 들려온다.

덕분에 아직 잠이 덜깨던 이들은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었다.

덜그덕.

이동하는 발걸음들.

초입이긴 했지만, 걱정과 달리 레온하르트까지 가는 길목은 아직 평화로웠다. 한참 걷던 중 내내 땅바닥을 응시하던 케인이 문득 입을 열었다.

“기사 학교 학생들도 우리가 향하는 곳으로 토벌을 나갔다 했지?”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예.”

“상당히 많은 수가 나선 모양이야. 길에 먼저 간 발자국들이 가득해.”

그럼에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다른 영지로 가는 길목과 다르게 사람의 출입은 확실히 적은 듯, 나무와 풀숲이 유달리 무성한 것이 한낮임에도 음산한 기운을 풍겨댔다.

기감으로 사방을 감시하던 이든이 문득 손을 들어, 대열을 멈춰 세웠다.

그의 갑작스런 모습에 케인이 절로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대며, 놀라 물었다.

“이든, 무슨 일인가?”

“별 것 아닙니다. 잠시만…”

가장 선두에 섰던 이든이 발을 옮겨 뒤로 향했다. 한참 걷던 그의 걸음이 멈추고, 누군가의 앞에 섰다.

“뭡니까.”

“뭐가.”

“왜 계속 대열을 이탈합니까.”

이든의 말에 사내가 인상을 썼다.

“잠깐 그런 거 가지고 왜 그래.”

이든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평소 무미건조한 얼굴에 흔치 않은 표정 변화였다.

“잠깐? 출발부터 계속이었습니다.”

이든의 말에 사내가 놀란 얼굴을 했다.

‘뭐야. 안 보이는 눈으로 어떻게 잘도 그걸…’

사내가 괜한 헛기침을 했다.

“크흠. 어차피 별일도 없는데, 쉽게 쉽게 가자고.”

“별일이 있든 없든, 남들과 떠드는 건 상관없지만 대열은 이탈하지 마십시오.”

“알았습니다. 대장 나으리.”

자신이 임시대장직을 맡은 이상, 호송 과정 중에 이런 일쯤은 충분히 예상했었다. 은근히 신경을 긁는 말투임에도 이든은 그것을 가지고, 책잡을 생각까진 없었다. 이든이 다시 선두로 가 외쳤다.

“출발.”

이든의 말에 복명복창과 함께 다시 대열이 움직인다

잠시 후.

척.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이든이 다시 손을 들었다. 이든이 다시 걸음을 옮겨 조금 전 그 사내 앞으로 갔다.

“일부러 그러는 겁니까?”

“뭐가?”

“크크큭.”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내 주변에 있던 일행이 새어 나오는 웃음을 틀어막으며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누가 봐도 고의성이 짙은 행동이었다.

베리가 이마를 짚고는 말에서 내려 그들 근처로 다가왔다.

“너희들, 집중 안 해!”

“이크.”

“쉿쉿.”

그들의 대장인 베리가 버럭 소릴 지르자, 웃던 사내들이 재빠르게 이탈했던 대열에 섰다.

베리가 미안한 얼굴을 했다.

“미안하네. 원래 이런 놈들은 아닌데.”

“압니다.”

이든이 고갤 돌려 다시 사내들을 향했다.

“마지막이야.”

“응?”

“같은 동료니까. 두 번까지 봐주는 거야. 그 다음은 없다. 유의하도록.”

여전히 무미건조한 표정이었지만, 처음 경고를 했을 때 존대였던 것과는 달리 이번엔 날이 서 있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다.

“주의하지.”

“큭.”

입으론 주의한다고 말하지만, 정신은 여전히 못 차리고 있었다.

오직 잭슨만이 불안한 듯 눈을 요리조리 굴리고 있었다.

다시 선두로 돌아온 이든이 입을 뗐다.

“출발하겠습니다.”

“출발!”

복명복창을 듣고 이든이 몇 걸음 떼던 그때, 그가 손을 들어 대열을 다시 멈춰 세웠다.

잇따른 정지에 사람들의 얼굴에도 짜증 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의 눈이 저절로 조금 전 문제를 일으켰던 사내들을 향했다.

저벅저벅.

이든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잘도 사내 앞에 멈춰선 이든.

사내의 눈이 이든을 향했다.

“뭐야?”

대뜸 사내의 입에서 나온다는 소리가 저것이다.

너를 대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감정이 담긴 불신 어린 눈.

심지어 눈빛엔 미비하게나마 살기까지 띤다.

마주한 이든의 입꼬리 한쪽이 삐죽 올라갔다.

“내가 잘 알지. 너 같은 놈들을.”

“뭐?”

“한두 번 경험해 본 게 아니거든.”

훅.

그때, 이든의 손이 어느새 사내의 멱살을 잡았다.

“뭐야. 이 새끼가!”

멱살을 잡힌 사내가 이든의 손을 뿌리치려 하지만, 쥔 손에 힘이 어찌나 대단한지 꼼짝을 안 했다.

사내의 얼굴이 절로 새하얗게 질렸다.

‘뭐, 뭐야. 무슨 힘이…!’

사내가 어쩌지를 못하고 발버둥 치던 그때.

쫙.

볼때기를 때리는 소리가 숲에 메아리치며 울렸다.

이든의 남은 반대편 손바닥이 사내의 아구를 그대로 후려친 것이다.

헤롱헤롱 거리던 그의 눈에 별이 핑핑 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세기를 증명하듯 피부에 퉁퉁 손바닥 자국이 퉁퉁 부어올랐다.

멍했던 사내의 눈에 차츰 핏발이 섰다. 그의 입에 기어코 욕설이 터져 나왔다.

“…이, 이 개새끼가…!”

쫙.

다시금 숲속을 울리는 볼때기 소리.

두 번째부턴 충격이 덜 했는지, 맞기 무섭게 반사적으로 욕설이 튀어나온다.

“이, 이이 개새…!”

쫙.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재차 울리는 소리.

그러나 세 번째부턴 다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든의 손이 다시 뒤로 휙 들어 올려졌다.

“내가.”

쫙.

“너 같은 새끼들.”

쫙.

“교육시키는 법을.”

쫙.

“아주 잘 알거든.”

쫙.

“너 같은 놈들은.”

쫙.

“역사적으로.”

쫙.

“이것이”

쫙.

“답이었다.”

쫙.

맞는 내내 발버둥 치던 사내의 초점은 어느새 뒤로 홱 돌아가 있었다.

그럼에도 이든의 손은 여전히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베리가 말리려 황급히 달려오고 있었고, 옆에서 낄낄 웃어대던 사내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내내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이든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거 안 놔. 이 새끼야!”

사내가 이든을 향해 주먹을 채 휘두르기도 전, 따귀를 때리던 이든의 주먹은 어느새 달려들던 사내를 향해 날아든 뒤였다.

퍽. 쿠웅!

이든에게 주먹을 맞은 사내가 저만치 날아가 나무에 처박혔다.

왠지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장면에 잭슨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이든의 옆에 다가온 베리가 그를 막아섰다.

“이, 이든! 그만! 이제 됐네.”

이든의 고개가 그녀를 향했다.

“아직 안 됐습니다.”

“호송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

“호송에 차질이 안 생길 만큼, 곧 일어날 정도로 패고 있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든!”

베리의 손이 이든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사내를 향하던 이든의 걸음이 멈춰지고, 이든의 고개가 그녀에게 똑바로 향한다.

평소와 다름없는 무미건조한 얼굴이지만, 평상시의 고요함은 온대 간데 찾아볼 수 없다.

이든의 무거웠던 입이 차츰 열렸다.

“대장은 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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