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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50/250)

50화.

“말을 듣지 않는 길드원에 대한 처벌 권한은 저에게 있습니다.”

“그, 그렇긴 하지만…”

현 상황을, 그리고 일어난 하극상에 관한 자신의 권한을 모두에게 상기시킨다.

베리가 머뭇거리다 결국, 잡았던 이든의 옷깃을 놓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안 죽입니다.”

이든의 고개가 다시 나무에 처박혔던 사내를 향했다.

그 사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사내가 다시 덤비려는 듯 자세를 잡았다.

“후욱. 후욱. 아깐 내가 방심했어. 다시 덤벼 이 새끼야.”

“…”

불언지교라 했던가. 아둔한 자를 가르치는 데 있어 말보다 행동만 한 것은 없었다.

후웅.

이든의 주먹이 사내가 처박혔던 나무로 향했다. 사내가 아닌 나무로, 명백히 의도한 것이다.

쾅. 우지끈. 구구궁.

주먹이 닿기 무섭게 반으로 쪼개져 힘없이 쓰러지는 거목.

도끼로 저 나무를 찍어도, 저리 단박에 베어 넘기기는 힘들 것이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못할 광경에 사내의 얼굴이 점차 흑빛으로 물들었다.

저 주먹이 나무가 아닌, 자신을 향했다면… 그가 삐질삐질 진땀을 흘렸다.

일순 찾아온 정적.

이든의 무거웠던 입이 열렸다.

“덤비고 싶다면 얼마든지 상대해준다. 단 다음에는 네 허리가 저렇게 될 각오를 해야 될 거야.”

꿀꺽.

사내가 마른침을 삼켰다.

이든을 향했던 시선이, 다시 그 옆에 반으로 쪼개진 나무로 향한다.

스륵.

이든에게 자세를 잡던 사내의 주먹이 절로 풀렸다.

자연스럽게 앞으로 공손히 모아진 두 손.

확 죽어버린 투기가 이든의 기감에 잡혔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잘 생각했어.”

“으, 으으…”

그 사이,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사내가 정신을 차린 듯 일어났다. 따귀를 맞았던 한쪽 얼굴 면이 곱절은 커졌지만, 그것도 이든이 신경 써 힘 조절했던 것이다.

부어오른 눈두덩이 속에 눈알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이든과, 두 손 공손히 모은 동료를 번갈아 바라본다. 상황 파악을 하던 사내의 입이 차츰 열렸다.

“저, 저기…”

이든의 얼굴이 그 사내를 향했다.

“뭐해?”

“…예?”

이든이 턱으로 까딱이며 한쪽을 가리켰다.

“상황 파악 끝났으면 어서 대열로 복귀하도록.”

“아, 아아…!”

사내가 움직이지 않고 머뭇거리는 듯하자 이든이 인상을 팍 썼다.

“동작 봐라. 빨리 안 움직이나.”

“아, 아아… 예!!!”

이든의 입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내들이 후다닥 대열로 복귀한다. 상황종료.

군기가 바짝 든 채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비로소 이든이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이든의 걸음이 다시 선두로 향했다.

저벅저벅.

이든을 따라 사람들의 시선도 또르르 같이 움직였다.

선두에 선 이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출발.”

출발!!!!

조금 전 이든이 보여줬던 파격적인 모습 때문일까.

복명복창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

그리고 이어지는 정적. 한차례 소동이 있던 후 한참이 지났지만, 자연이 주는 소릴 제외하곤 호송 내내 잡음 한번 없이 조용했다.

무지막지한 힘으로 소란을 단박에 잠식시키며 서열정리를 마친 이든의 모습은 모두의 뇌리에 깊게 박힌 듯했다.

힐끔.

호송이 다시 시작된 뒤로 베리는 줄곧 신기한 눈으로 이든을 힐끔거렸다.

“…”

휙.

이든의 고개가 휙 돌아 베리를 향했다. 베리가 놀란 표정을 했지만, 시치미 뚝 떼고 다시 정면을 향한다.

‘…’

‘흠.’

이내 갸웃거리고는, 이든이 다시 고갤 정면으로 원위치한다.

베리가 들릴 듯 말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거참. 귀신도 아니고, 어떻게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저리도 잘 알아채는 거야?’

힐긋거리는 베리의 따가운 시선을 뒤통수로 온전히 받는 와중에도 이든은 대장으로서의 업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척.

다시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이든이 팔을 들어 대열을 세웠다.

“정지.”

정지!

복명복창과 함께, 내내 고요하기만 했던 숲속에 다시금 사람들의 목청이 쩌렁쩌렁 울렸다.

일순 대열을 멈춰 세운 이든의 모습에 바로 옆 스파이크 길드장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

해는 서쪽으로 점차 기울고 있었지만, 밤이 깊어지려면 한참 남은 상황. 내내 진중한 얼굴로 앞을 살피던 이든의 입이 차츰 열렸다.

“이상하군요.”

“무엇이 말이오?”

보일 리 만무하건만, 이든은 착 감겨 있는 눈으로 연신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초입이라 할 수 있는 구간을 벗어난 이후, 그의 기감엔 줄곧 신경 쓰이던 것이 있었다.

살피던 이든의 입이 차츰 열렸다.

“…음산합니다.”

“음산하다구요?”

문득 이든의 고개가 멈춘 곳으로 스파이크의 눈도 따라 움직였다.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둘러도 딱히 이상하다 싶은 점은 보이지 않았다.

“착각하신 거 아닙니까. 제 눈엔 별로 이상한 것은 없는데요?”

당연했다. 이든이 느낀 것은 애초에 시야에 잡힐 영역의 것이 아니었다. 보다 먼 곳.

그와 같이 오직 아득한 경지에 고수들만이 느낄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음산한 기운이었다.

‘…적어도 백 명.’

기운을 발산해대는 정체불명의 기척의 숫자까지 정확히 파악한 그였다.

‘계속 이곳을 주시 중이다. 어차피 맞닥뜨릴 거라면 미리 준비해두는 것이 좋겠어.’

이든이 고갤 돌려 스파이크 길드장을 향했다.

“아무래도 여기서 야영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니 벌써 말이오?”

초입에서 벗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른 시간에 호송을 마치려 하니 별다른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한 스파이크 입장에선 답답할 수밖에 노릇이었다.

지체되는 상황에, 케인과 베리가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것이…”

스파이크의 시선이 이든을 향했다. 자연스레 케인과 베리의 눈도 그를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더 이상의 이동은 무리일 듯합니다.”

“아직 날이 저물려면 멀었네만.”

“날이 저물기 전에 손님 맞을 준비부터 해야겠습니다.”

“손님?”

“예. 초입을 벗어난 이후부터 자꾸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 긴가민가했는데, 이제 확실히 알겠습니다. 누군가 계속 이곳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우릴 말인가?”

이든이 그렇게 느꼈다면 필시 가벼이 볼 것이 아니었다.

케인이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연신 주위를 살폈지만, 딱히 이상한 낌새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자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닌가. 내 눈엔 별달리 이상한 점은 없네만…”

“그래도 미리 준비해선 나쁠 것 없다 생각합니다.”

“끙…”

케인이 신음했다. 영문은 모르겠으나 통솔자가 저리 확고히 주장하니, 호송을 계속 강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케인이 몸을 돌려 스파이크를 향했다.

“길드장님. 저 친구가 저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뭔가 있긴 있는 모양입니다. 그의 말대로 오늘은 여기서 호송을 마치시죠.”

“하아… 대장님들께서 그리 말하시니, 그렇게 하도록 하죠.”

레온하르트 영지의 사정을 생각하면 한시라도 바삐 움직여야 마땅하건만, 통솔자들이 저렇게까지 말하니 스파이크 입장에서도 더는 억지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그가 고갤 돌려 입을 열었다.

“다들 짐을 풀게. 오늘 이동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지!”

“벌써?”

이른 시각에 마친 호송에 의아한 얼굴들을 하지만, 아무도 토를 달진 않았다.

모두가 바삐 움직이며 서둘러 야영을 준비하는 사이.

한쪽에 얼굴 한 면이 퉁퉁 부은 사내가 느릿느릿 손을 움직였다. 그 모습에 그의 동료가 주변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좀 빨리 좀 해. 그러다 또 사달 날래?”

“우씨! 아파서 그런 걸 어쩌라고…! 아구구…”

“에휴. 그러게 적당히 까불지 그랬냐.”

“닥쳐 좀! 말할 때마다 쓰려 죽겠구먼, 자꾸 말 시키고 지랄이야.”

“그런데 야영 준비 끝마치면 바로 밥부터 먹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계속 대기하란 거야?”

“저 양반 속을 내가 어찌 알아.”

“하긴… 그러니 우리가 이 모양 이꼴이 됐지.”

그렇게 맞고도 정신을 덜 차린 걸까. 다 큰 사내 둘이 티격태격해대며 준비가 늦춰졌지만, 이든 역시 그런 것까지 트집을 잡진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산만한 행동이 불러올 결과를.

***

사박사박.

조심스럽게 느껴지는 은밀한 발걸음.

숲속을 거니는 거진 백여 명에 육박하는 인형들이 은신한 채 멈춰섰다. 어둠 속 맹수마냥 쏟아지는 안광. 그들의 시선이 한곳을 응시했다.

“저기 수레들이 레온하르트 영지로 가는 것들이랍니다.”

한 사내의 설명에 중앙에 거구에 사내가 찬찬히 고갤 끄덕였다.

“레온하르트 영지로 향하는 물건들이란 건 군수물자란 거겠군.”

“예. 얼마 전 저희가 습격했던 황궁의 물건까진 아니더라도, 그에 필적하는 물건들이 가득할 것입니다.”

얼마 전, 레온하르트 영지로 향하던 황궁의 군수물자 습격 사건의 주범이 바로 그들이었다.

대외적으론 몬스터의 약탈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달랐다.

“황궁의 병사들도 별 볼 일 없었는데, 일개 상단과 용병들이라면 볼 것도 없지.”

거구의 사내가 양쪽에 뿔이 달린 동물 뼈로 된 가면을 깊게 눌러썼다. 그가 재차 입을 열었다.

“시작하자.”

거구의 사내 입이 떨어지기 무섭게 백여 명에 가까운 인원이 미리 짠 것처럼 정해진 위치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흩어지는 부하들을 바라보던 사내의 시선이 다시 수레 쪽으로 향했다.

가면 속 사내의 눈에 흉흉한 살기가 비치고 있었다.

***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

야영 준비는 진작에 끝마친 후였다.

허나 두 다리 뻗고 쉬지는 못했다.

상시 대기.

임시 대장 이든이 내린 명령은 그것이었다.

호송이 생각 외로 빨리 끝나 좋아하던 길드원들 입에선 기어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시간 더럽게 안 가네…”

“쉿. 그러다 너까지 처맞을라…”

하나같이 길드원들의 시선은 내내 하늘을 향해있었다.

대기 중에 하늘은 점차 노을빛으로 물들며 어둑해지고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대기 속에서 배는 고파오고, 길드원과 짐꾼 모두 상당히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든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언가를 열심히 살피는 듯한 모습이었다.

“...!”

그때, 요지부동이던 이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훅.

이든이 한쪽으로 손을 뻗었다.

우우우우우웅. 척.

한구석에 놨던 그의 흑색 검이 날아와 그의 손에 잡힌다.

신검합일이 극에 달한 허공섭물의 경지.

전생의 경지에 비하면 반쪽짜리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전엔 감히 쳐다볼 수 없던 절대 고수의 반열에 오른 것은 분명하다.

신묘한 그 광경에 넋 놓던 길드원들이 하나같이 헛바람을 삼켰다.

“지, 지금… 내가 뭘 본겨?”

“뭔가 날아다닌 것 같은데… 마법…?”

지루하기 짝이 없던 정적을 깨고 모두의 이목이 단숨에 이든으로 향했다. 그때, 이든의 무거웠던 입이 열렸다.

“움직이기 시작했군요.”

“뭣…?”

그의 말에 케인과 베리가 연신 주위를 살폈지만, 숲은 여전히 고요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든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괜한 소리가 아님을 대신 말해 주고 있었다.

꿀꺽.

케인과 베리의 손이 절로 검의 손잡이로 향했다.

그들의 모습에 대기하던 길드원들 역시 하나둘씩 무기를 꺼내 들었다. 지루하던 대기 속에 일순간 찾아온 긴장감.

기감으로 정체불명의 기운을 살피던 이든이 순간 헛웃음을 삼켰다.

‘하! 이것들 보게?’

이든이 자릴 털고 일어났다. 그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자연스레 그를 향했다.

베리가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소리로 물었다.

“어딜 가려고?”

“저는 따로 움직이겠습니다.”

“무슨 말이야. 따로 움직인다니.”

“옹기종기 모여있던 놈들이 흩어졌습니다. 아무래도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뭐라고?”

“놈들이 계획대로 움직이기 전, 제가 먼저 선수를 치겠습니다. 케인 대장님과 베리 대장님께선 이곳을 지켜주십시오.”

“알았어. 몸조심하라고.”

케인과 베리가 각자 고갤 끄덕이고, 신법을 쓴 이든의 신형이 귀신같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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