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숲을 가로지르는 뼈로 된 가면을 쓴 괴인들. 서른이 넘는 인원이 동시에 움직이는데, 잡음 하나 없이 고요하기 그지없다.
실로 따로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믿을 만큼 은밀하고 빠른 몸놀림이었다.
사라락.
벌레가 기어 다니는 소리라 해도 믿을, 숱한 실전으로 무장된 그들의 빠르고 은밀한 움직임은 그간의 도적질에 언제나 빛을 발해 준 강력한 무기였다.
사라락. 우득.
스르륵. 콰직.
듬성듬성도 아닌, 우거진 숲을 기이한 몸놀림으로 헤치며 어느새 수레 인근에 도달한 괴인들.
그때, 가장 앞서가던 그들의 우두머리가 손을 들어 뒤따라온 괴인들을 멈춰 세웠다.
“신호하면 동시에 덮치도록 한다. 가장 까다로운 마법사부터 제압하고 그다음엔….”
괴인이 뒤돌아 수하들에게 지시하다 급히 말끝을 흐렸다.
“뭐, 뭐야? 다른 애들은 어쩌고 너희만 있는 거야?”
당황한 우두머리의 말에 비로소 수하들이 황급히 고갤 좌우로 돌려 주변을 확인한다.
“어?”
“뭐지. 분명 옆에서 잘 따라오고 있었는데…?”
서른이 넘던 인원이 반이 넘게 줄어, 따라온 인원이라고 해 봐야 열댓밖에 되지 않았다.
‘뭐, 뭐야. 이 새끼들…. 다들 어디로 내뺀 거야?’
오는 내내 이상한 구석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야말로 소리 소문 없이 증발하다시피 한 수하들.
이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우두머리가 갈피를 잡지 못하며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던 그때였다.
“이 녀석들을 찾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괴인들의 눈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홱 하니 돌아갔다.
스르륵.
풀숲 우거진 어둠 속에서 귀신처럼 나타나는 사람의 형태.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혀를 삐죽 내민 인두(人頭)들.
툭툭.
지금 막 썰어 온 싱싱한 머리인지, 잘린 모가지에선 여전히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가면 속 괴인들이 경악스런 눈으로 그 사내를 바라봤다.
무저갱 같은 사내의 무미건조하던 얼굴에 차디찬 미소가 피어올랐다.
“오다 주웠다.”
사내가 한 손에 들고 있던 세 개의 인두를 괴인들을 향해 던졌다.
데구루루. 툭.
정확히 괴인들 발 앞에 굴러 멈추는 인두들.
가까이 굴러 다가온 수급에선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가면 속 괴인들의 눈이 지진이 난 것처럼 요동을 쳤다.
식별했던 괴인들의 눈이 연신 인두들과 사내를 번갈아 향했다.
“저쪽 안쪽에 몇 개 더 있는데, 손이 부족해서 말이야.”
살육을 하고도 태연해 보이는 눈앞의 사내의 모습.
일순 괴인들은 몸에 털이 쭈뼛쭈뼛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위험.
괴인의 우두머리가 가면 속에서 이를 악물었다.
본능은 재빨리 도망치라고 경고하고 있지만, 그런 소름 끼치는 모습만큼이나 그들을 두렵게 하는 또 한 가지.
바로 임무에 실패했을 경우 내려질 두목의 처벌이었다. 눈앞의 사내만큼이나 그들의 두목 또한 극악무도한 성격이란 것이다.
“크읏! 뭣들하고 있어. 당장 저놈을 죽이지 않고…!!!”
우두머리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하들이 일제히 암기를 뽑아 들고는,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파팟!
목전에 살인귀를 두고 비로소 노골적으로 기척을 발산해 대는 음산한 기운의 정체들.
그때, 사내의 입가에 다시금 미소가 드리워졌다.
쐐애애애액! 촤아아아악!
푹.푹.푹.
어디선가 들려온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따라온 파육음(破肉音).
달려들던 괴인들 셋을 꿰뚫고 날아온 흑색 검이 사내의 손에 들어와 잡혔다.
우거진 나무 사이를 뚫고 쏘아진 달빛이 흑색 검의 검신에 반사되어 사내의 얼굴을 비쳤다.
착 감겨 있는 눈.
“맹인…!?”
괴인의 우두머리가 가면 속에서 놀란 얼굴로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든 사내, 이든이 비릿하게 웃으며 흑색 검을 어깨에 걸쳤다.
그가 괴인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시간 없다. 덤비거든 한꺼번에 덤비도록.”
비릿한 웃음 속에서 드러나는 진한 살기. 이든의 도발에 주춤했던 남은 괴인들이 다시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파밧! 휘리리리릭!
괴인들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절묘했다. 독이 묻은 암기를 투척하여 경로를 봉쇄하고, 연이어 등에 차고 있던 검을 빼내 들어 공격한다.
대상의 반격과 본인들의 방어는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는 무지막지한 공격들.
이런 일대다 싸움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로가 없다고 투로(鬪路)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든에게 있어 이런 싸움은 이전 생. 정과 마의 전쟁 때도 숱하게 겪어 봤다. 찰나, 당가와의 전투를 떠올렸던 이든이 흑색 검을 휘둘렀다.
타당탕탕.
한번 휘두른 것 같았는데, 괴인들이 던졌던 암기들이 속절없이 바닥을 구른다. 달려들던 가면 속 괴인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당가와 비교하면 이쯤은 애들 장난이지.”
파밧.
투로가 열리고, 지면을 박찬 이든의 신형이 귀신같이 사라졌다.
검을 휘둘렀던 순간부터 이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새 일어난 찰나에 불과했다.
“엇…!”
이든을 향해 달려들던 괴인들의 움직임이 우뚝 멈춰 섰다.
“이 바보 같은 녀석들, 거기가 아니라 뒤다! 뒤!!!”
우두머리의 외침에 괴인들이 황급히 그가 가리킨 곳으로 고갤 돌렸지만, 이미 한참이나 늦은 뒤였다. 그들의 목 뒤에 느껴지는 서슬 퍼런 살기. 고갤 돌리던 괴인들의 머리 넷이 피를 흩뿌리며 바닥을 나뒹군다.
남은 괴인들의 시선이 향한 곳. 거기엔 이든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마귀와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대, 대체 이 무슨…!’
지금에 와 상황이 잘못됐다고 느꼈을 땐 이미 한참이나 뒤늦은 후였다. 공중에 뛰어올랐던 이든의 몸이 한 바퀴 돌며 그가 쥔 흑색 검이 다시 우아한 선을 그린다.
음산한 숲속이 선사하는 어둠보다 더 짙은, 검신에 흐르던 마기가 그들을 한차례 휩쓸었다.
푸슈스스스스, 파아아앗!
반절의 반절 남았던, 괴인들의 몸이 일제히 사방으로 흩어졌다.
비명조차 지를 새 없던 짧은 순간. 나뒹구는 살덩어리와 피의 향연 속에 이든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려졌다.
‘이 새끼가 어딜 내빼려고.’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괴인의 우두머리는 이미 진즉에 내뺀 뒤였다. 이미 기감으로 우두머리의 위치를 파악한 이든의 발이 움직이다 덜컥 멈추어 선다. 괴인들의 피를 뒤집어쓴 그의 고개가 한곳으로 돌아갔다. 근방에서 들리는 전투 소리. 상단과 일행이 있는 곳이었다.
괴인의 우두머리가 사라진 방향과는 정반대 방향. 이든이 아쉬운 표정을 했다.
우두머리를 놓친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무엇보다 동료들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참혹한 현장에서 어느새 벗어난 이든의 신형이 그의 일행이 있는 곳으로 뛰쳐 날아갔다.
***
기괴스러운 동물의 뼈로 된 가면을 쓴 괴인들의 첫인상은 숱한 싸움을 겪어 온 길드원에게 마저 공포를 심어 주기 충분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소리 없이 다가오다가 일제히 달려드는 괴인들의 모습에 모두가 얼이 빠져 있다.
“정신들 못 차려! 무기 뒀다 뭐해!!!”
정신을 얼얼하게 만드는 베리의 외침에 상단의 무사들과 길드원들이 뒤늦게 괴인들의 공격을 맞받아치지만, 조금 늦었다.
파바바밧!
푹. 푸욱.
“끄아아악!”
“꺽!”
곳곳에서 들리는 외마디 비명.
기습에 익숙한 용병 출신의 길드원들이 본능적으로 방패부터 꺼내 들어 대응한 것과 달리 스파이크 상단의 무사들 상당수는 괴인들이 던진 암기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져 나갔다.
“일개 용병단은 아닌 것 같지만 상단 무사들은 하나같이들 엉망이군.”
괴인의 우두머리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쩌렁쩌렁 외쳤다.
“얘들아. 사냥 시작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괴인들이 등에 찬 검을 발검하며, 야영장을 휩쓸기 시작한다.
휘이이이이익! 슈슈슉!
“끄아아아아악!”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기습을 위해 은밀하게 움직였던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
기습이면 기습. 섬멸이면 섬멸. 다수 움직임이 저리도 일체화된 것을 보면 그간 그들이 극악무도하였던 짓을 얼마나 오랫동안 해 왔는지 감히 예상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촤아아악! 퍼억!
“끄악!”
“으어어억!”
암기에 치명상을 입었던 무사들이 재차 이어진 괴인들의 도륙에 한 명씩 목숨을 달리하기 시작한다. 상단의 무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그때, 어느새 괴인들의 틈을 뚫고 케인과 베리가 스파이크 길드장 가까이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전 괜찮지만, 애들이…!”
케인이 눈을 빛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유니콘 길드원은 강합니다. 곧 상황이 바뀔 겁니다.”
아수라장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믿음.
그리고 그의 확고함을 증명하듯, 현 상황을 타파하고자 길드원들이 한두 명씩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상황은 차츰 변해 가기 시작했다.
“비켜, 비켜, 비켜어어어어어!!!!!!!!”
어디서 난 것일까.
사람 키만 한 방패를 정면으로 쥔 톰슨이 괴인들을 향해 돌진했다.
쿠웅. 쿠웅. 쿠구구구궁.
“꾸억!!!”
제아무리 난전에 능통한 괴인들이라 한들, 빈틈없이 돌진해 오는 방패 앞엔 그들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리고 이어 톰슨의 뒤로 로즈와 앙휄, 그리고 베리의 동료들이 따라와 도륙하던 괴인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거센 반격에 괴인들도 가면을 뚫고 당황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괴인들의 우두머리가 곁에 있던 또 다른 가면의 사내에게 외쳤다.
“2조는 왜 안 오는 거야!”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렇게 늦을 리가 없는데…!”
원래 예정대로라면 1조와 2조가 양방에서 동시에 습격했어야 옳다. 하지만 전투가 한창인 지금까지도 감감무소식인 2조.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생긴 것임을 직감했다.
불안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고 했던가. 그들의 예상을 증명하듯, 잠시 후 숲속 멀리 저편에서 뿔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퇴각 신호…!? 아무래도 2조에게 문제가 생긴 게 확실하군. 안 되겠다. 두 번째 작전으로 변경한다!”
우두머리의 입이 떨어지기 무섭게, 살육을 일삼던 괴인들의 손이 일순간 뚝 멈췄다.
고요한 정적 속, 가면 속에 눈이 좌우로 돌아가며 시선을 주고받는다.
끄덕.
짧게 이루어진 눈빛 교환, 동시에 저마다 고갤 끄덕이곤 괴인들이 몸을 날려 몇 걸음씩 멀찍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파밧!
피가 흥건히 묻어 있던 검은 어느새 착검되어 있다. 그럼에도 무엇 때문인지 양손은 바삐 움직였다.
슈슈슉.
다시 암기인가 싶었던 길드원들이 일제히 방패로 전방을 견고히 에워싸던 그때, 괴인들의 손이 일제히 야영장에 미리 피워 뒀던 모닥불로 향했다.
펑. 펑. 퍼엉!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잠시 뒤, 괴인들의 손이 거쳐 간 모닥불이 치솟은 불길과 함께, 터지며 회색의 연기를 뿌옇게 피워 냈다.
케인이 급히 소리쳤다.
“입 막아!!!!”
케인이 외친 소리에 상단의 무사들과 길드원들이 저마다 입을 막았다.
괴인들이 던진 것. 그것은 후퇴를 위한 단순한 연막이 아니라, 독성까지 첨가된 연막이었던 것. 퇴각과 동시에 방심을 꾀한 일종의 기습인 것이다.
“콜록! 콜록!!!”
사방팔방 곳곳에서 숨찬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뿌옇게 피워진 연막의 독성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입과 코를 완전히 틀어막았음에도 눈물과 콧물이 쏙 빠질 정도였다.
후우우웅!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강렬한 바람이 현장을 휩쓸던 연기를 일식에 날려 버렸다.
점차 옅어져 가는 연기, 눈물을 쏟던 사람들의 붉게 충혈된 눈이 일순 바람이 날아온 곳으로 향했다.
파라라랏.
펄럭이는 검은 무복의 옷깃과 바람을 날리는 곳을 따라 휘날리는 머리카락. 일행의 시선이 닿은 곳. 바람이 이는 중심엔 이든이 공중을 밟고 서 있었다.
후웅. 타박.
모든 연기가 걷히고, 바람과 달빛을 등진 채 이든이 내려와 지면을 밟았다.
“모두 괜찮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