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56/250)

56화.

“용병이군요.”

한기 가득한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정면, 어느 한곳을 응시하던 두 사내의 눈이 힐끗 옆의 여성을 향했다. 원래도 차가웠던 여인의 눈빛엔 서늘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한파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주변 분위기를 살얼음판으로 만든 당사자. 아스테어가 재차 말을 이었다.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양아치 짓마저 서슴지 않고 하는 쓰레기들.”

눈빛에선 차가운 냉기가, 내뱉는 말투에선 속 안에 들끓는 용암을 보는 듯했다.

칼라슈와 발리스타가 의외란 얼굴을 했다.

하기야 원체 감정 표현을 안 하던 사람이 저러니, 익숙지 않을 만했다. 발리스타가 우물쭈물하다가 궁금한 듯 물었다.

“그…. 혹시 용병을 안 좋아하시오?”

홱.

“흐잇!”

자신을 향해 홱 고갤 돌린 아스테어의 눈을 마주하던 발리스타가 식겁 놀란 얼굴을 했다. 한파가 일렁이는 그녀의 눈빛은 감히 그조차도 마주하기 힘든 것이었다.

“혐오합니다.”

“엥…?”

“…세상의 그 어떤 종자들보다, 가장 혐오합니다.”

“…크, 크흠.”

시선을 회피한 발리스타가 괜히 헛기침을 해 댔다.

‘대체 무슨 사연이길래….’

그녀의 눈에 시퍼렇게 날이 선 이유. 아스테어는 찰나 유년 시절을 떠올렸다.

그녀는 제법 그럴듯한 상단의 자녀였다. 큰 거래를 앞두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거액을 들여 당시 유명했던 용병단을 고용했다.

당연히 명성에 걸맞게 안전한 호송을 기대했다.

하지만 웬걸. 호송이 시작되기 무섭게 놈들은 돌변했다.

호송 중간중간 추가금을 요구했고,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시 돌아가겠다는 협박을 일삼았다.

결국, 아스테어의 아버진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몬스터의 습격이 있었고, 당시 용병단은 몬스터의 급습을 막는 데 실패했다.

큰 거래의 호송이 실패하고 만대한 손해를 입은 그녀의 아버진 손해배상을 요구했지만….

그들이 들을 리 만무했다.

결국, 그녀의 아버진 파산하고 몸져 누웠다.

그 후론 불행의 연속이었던 유년 시절의 기억….

아스테어의 눈빛이 다시 정면을 향했다.

노골적인 눈빛으로 용병들을 훑던 아스테어의 눈이 일순 멈췄다.

“응…?”

마차에서 짐을 내리는 사람들 사이,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

착 감겨 있는 눈.

계속 바라보았지만, 내내 단 한 번도 눈을 뜬 적이 없었다.

“맹인…?”

신기한 것도 잠시, 다시 휙 변하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차가운 한기가 일었다.

‘그래 봤자. 용병. 괜한 동정심 따위 갖지 말…?’

생각이 뚝 멈추었다.

그녀의 눈이 향했던 맹인이 이쪽, 정확히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날 보고 있는 건가.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애초에 보일 리가 없는데….’

착 감겨 있는 눈에서 마치 안광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었다.

그때, 맹인의 사내가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고는 아스테어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확실하긴 한 걸까. 걸음엔 일절 망설임이 없었다. 감긴 눈에 수려한 외모지만, 다가올 때마다 웅장하게 느껴지는 이 태산(太山) 같은 위압감은 무엇인가.

아스테어의 등에 절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뭐, 뭐지. 이 위압감은 대체…!’

아스테어의 기(氣)가 첨예하게 선 칼날과 같고 거기에 한기(寒機)가 덤이라면, 다가오는 맹인의 사내는 마치 찍어 누르는 듯한 웅장하고 거대한 태산에 시커먼 무저갱과 같은 공허가 동시에 느껴졌다.

아스테어는 찰나 칼라슈를 떠올렸다. 칼라슈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거대한 벽에 느낌이, 눈앞에 맹인의 사내에게도 느껴졌다.

‘하지만 이 사내에게 느껴지는 벽은 도무지….’

넘을 수 없다?

불현듯 든 생각. 단지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뿐인데, 아스테어의 동물적 감각은 그 안에 끝 모를 힘에 그대로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척.

드러내지 않아도, 내디딜 때마다 그 안에 휘몰아치는 파도와 같이 느껴지던 기세의 당사자는 어느새 태산과도 같이 아스테어 앞에 우뚝 섰다. 아스테어의 요동치듯 불안한 눈이 그 맹인의 사내를 향했다. 사내의 입이 열렸다.

“오랜만이오. 칼라슈, 발리스타.”

요동치던 아스테어의 눈이 일순 정적이 일었다.

‘서로 아는 사이?’

뜻밖에 상황에 멈춘 그녀의 눈동자가 사내들 사이에서 다른 형태로 번갈아 가며 어지러워졌다. 발리스타가 가장 먼저 능청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때 수도에서 인사한 뒤로 또 한참 못 볼 줄 알았는데 여기서 또 보는구려.”

“그러게 말이오. 너무 자주 보는 것 같아 정들까 걱정이오.”

“에헤이! 서운한 소리 하지 마시오. 이든 형!”

“훗.”

역시나 그답다고 할까. 그에 반해 칼라슈는 여전히 찬바람이 쌩쌩 부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유니콘 길드가 호송했다길래 혹시나 했는데 역시였군.”

“반갑다는 말로 듣지.”

“그나저나 우연히 들었다. 오면서 산적들을 만났다고.”

“그래. 얼마 전 약탈당했던 황궁의 군수  지원물자가 즐비해 있더군. 그것을 모두 가져오는 길이지.”

“간도 크군. 놈들이 자네가 지키는 곳을 약탈할 생각을 다 할 줄.”

경황이 없던 와중 대화를 듣고서 아스테어는 비로소 알아차렸다.

칼라슈가 느꼈다던 그 벽.

그것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앞에 맹인의 사내를 두고 흔들렸던 그녀의 동공이 차차 참잠히 가라앉았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렇게 어딘가를 향해 발길을 휙 돌려 버렸다.

이든의 고개가 그녀가 사라진 곳을 향해 돌려졌다.

“기사 아카데미는 인복도 많군. 자네들 말고, 저리 대단한 친구가 또 있을 줄은.”

이든의 말을 듣던 칼라슈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일세. 표정을 보니 상당히 충격을 받은 모양이군.”

“음?”

칼라슈의 알 수 없는 말에 이든이 고갤 갸웃거렸다. 이든은 이때만 해도 몰랐다. 이곳에서 앞으로 그녀와 어떤 식으로 엮이게 될지….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 그녀에게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를.

***

또르르. 탁.

손수 끓인 차로 직접 손님들 앞에 내놓는 제라드의 모습에 베리와 케인은 놀란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임시라곤 해도 현재 그는 이곳에 영주와 다를 바 없는 위치였다.

그런 그가 사람을 시키지 않고 손수 차를 내준 것이다.

마주 앉은 손님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찻잔을 받아 들 따름이었다.

탁.

제라드가 마저 남은 찻잔을 자신 앞에 놓고는 맞은 편이 앉았다.

영지의 사태가 좋아지지 않은 뒤로 그의 얼굴이 간만에 싱글벙글했다.

“오면서도 내내 말했지만, 정말… 너무 고맙소.”

차를 한 모금 들이키던 스파이크 길드장이 미소 지으며 고갤 저었다. 그의 눈이 케인과 베리를 향했다.

“아닙니다. 굳이 감사를 드리자면 저보단… 이곳까지 위험을 무릅써준 유니콘 길드원과 큰 결단을 내려준 유니콘 길드장님에게 해 주십시오.”

“음.”

제라드가 고갤 끄덕였다.

확실히 그의 말이 맞았다. 스파이크야 오래전부터 안면이 있던 사이라 이곳에 위험을 알고 와 준 것이지만, 유니콘은 달랐다.

스파이크가 사정사정했겠지만, 외면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제라드가 깊게 고갤 숙였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정말 고맙소.”

“아, 아아… 예. 하하하….”

“별말씀을요. 호호호….”

제라드를 향한 케인과 베리의 눈에 묘한 빛이 일었다.

저만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고갤 숙이길 주저하지 않는 자가 얼마나 될까.

흔치 않은 모습의 사내였다. 한참동안 숙이던 고갤 들은 제라드가 다시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오는 길에 산적을 만나 고생하셨다고요?”

케인이 고갤 끄덕였다. 지금 생각해 봐도 당시는 정말이지 아찔했다. 지금껏 호송 경력 중 손에 꼽을 만한 위험이었다.

“예. 괴상한 동물 가면을 쓴 괴인들이었습니다. 도적질 방식도 군대와 같이 굉장히 체계화되어 있어서 소탕하는 데 꽤 고생했습니다.”

“괴상한 가면…!?”

“아시는 자입니까?”

“알다마다요. 근방에서 이름 좀 날리던 도적놈이었습니다. 과거 주 활동 지역은 근처였는데, 몬스터들의 국경 침범이 잦아지면서 거처를 옮겼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죠. 놈들의 세력도 꽤 컸을 텐데. 놈은 그럼…?”

“전부 소탕했습니다.”

“그렇군요. 유니콘 길드.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이 정도 저력일 줄은… 감히 예상 못 했습니다. 놈들이 상대를 잘못 골랐군요.”

듣던 케인이 멋쩍은 듯 웃었다.

“정확히는 저희 길드원 중 한 명을 잘못 건드린 것이지만요.”

“음?”

제라드가 의아한 얼굴을 하고, 옆에서 듣던 스파이크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유니콘 길드장님이 참으로 인복은 많은 분이신가 봅니다. 다른 분들도 참으로 용맹하고 대단했지만, 한 친구가 정말이지… 뭐랄까. 참 어마무시하달까요?”

말하면서도 당시에 상황이 떠오른 것일까. 스파이크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 왔다.

앞에서 내내 듣던 제라드도 그가 대체 누군지 궁금할 정도였다.

“어떤 분입니까. 그 사람은?”

“한마디로 뭐랄까. 태풍 같다고 할까. 저도 오는 길에 들었는데, 단장님께서도 익히 들으셔서 아실 겁니다. 심안의 무사 이….”

스파이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그의 집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단장님!”

“음? 무슨 일… 혹시 또인가!?”

“예…!”

굳이 듣지 않아도 들어온 병사의 표정만 봐도 무슨 일인지 대번에 예상이 가는 그였다. 제라드가 일어나 갑주를 챙기곤 미안한 얼굴을 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또 일이 터진 모양이군요.”

돌아가는 분위기만 봐도 사태의 심각성이 느껴지는 그들이었다. 케인과 베리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이라면 혹시… 몬스터?”

“예. 최근 몬스터 출몰이 잦아지는 바람에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럽니다.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먼저 일어나 봐야겠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저희도 돕겠습니다.”

베리의 말에 제라드는 단호히 고갤 저었다.

“그럴 수야 없지요. 고되고 먼 길까지 오신 손님을 홀대해 드리는 것도 죄송한데, 절대 그럴 순 없습니다. 이곳은 저희와 토벌 나온 기사 학교 학생들 정도면 무리 없이 소탕 가능하니. 손님들께선 부디 편히 쉬고 계시길. 이따 돌아와서 남은 이야기 마저 나눕시다.”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제라드가 떠난 빈자리를 바라보던 남은 이들이 멋쩍은 얼굴을 했다. 과거 찬란한 영광을 누렸을 이 성은, 그들만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텅 빈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그에 반해…. 바깥은 한차례 일은 소동으로 난리를 겪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에 시선을 두었던 케인이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큰일인가 봅니다. 무슨 상황인지 살펴봐야 할 듯 싶습니다.”

“그러는 게 좋겠소. 여기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야. 지금 레온하르트 영지가 처한 상황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게 더 좋겠구려.”

“슬슬 움직여 볼까.”

홀로 외로이 지키는 성을 뒤로하고 남은 이들마저 자릴 옮겼다.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무거운 걸음을 나서는 병사들을 따라 성 외벽 쪽으로 향하는 대표들의 얼굴이 점차 흑빛으로 물들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목도한 것이다.

***

제국의 가장 북쪽 외곽에 있는 레온하르트 영지는 제국이 세워진 이래 가장 최전선에서 숱한 침략을 막아 온 굴지의 땅이었다.

그래서일까. 심신은 지쳐 사기는 떨어졌을지언정, 토벌을 나서는 병사들의 눈빛만큼은 다른 영지의 병사들과 궤를 달리했다. 그야말로 실전으로 무장된, 진정한 무인의 눈을 가진 이들.

그 때문일까. 처음 이곳에 당도했던 당시 기사 학교의 학생들은 병사들에게서 풍기는 날이 선 기세에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예비 기사를 앞둔 학생인 만큼 기량 자체는 병사들과 비교할 순 없지만, 수련과 대련만 반복해 온 이들에게 이곳 병사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쿠구구궁.

거대한 성문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무겁게 열렸다. 열린 문틈 사이로 제라드 기사 단장과 기사 아카데미 교수를 필두로 영지의 병사들과 기사 학교 학생들이 뒤를 따랐다. 제라드의 옆, 나란히 말을 타고 자태를 뽐내던 교수가 입을 열었다.

“오크들이군요.”

“그렇군요.”

제라드의 낯빛이 확 가라앉았다. 교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단장님.”

“지금껏 국경을 넘어온 놈들이라고 해 봐야 야수형(野獸形)이 전부였습니다. 지능의 한계가 있는 녀석들이니 지금껏 숱한 토벌에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는데, 인간형은 처음입니다. 아무래도 앞으로 피해가 더 커지겠군요.”

“그래 봐야. 오크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저 먼 곳 국경 쪽을 바라보던 제라드의 눈에 불안한 빛이 일렁였다.

“지금껏 출몰한 국경 밖 몬스터 대부분이 안쪽에 서식하는 몬스터와는 다른 변이된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저 오크들도 그렇지 않을지 걱정이 앞서는군요.”

제라드와는 상반된,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던 교수의 입가가 씰룩댔다. 그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훗. 겨우 오크 나부랭이 가지고 잔뜩 겁먹은 꼬락서니하고는. 그래봤자 오크인 것을. 이자가 정녕 그 제라드가 맞는가. 과거 레온하르트 공작과 함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던 전설의 기사 단장의 말로는 참으로 우습군.’

노회하여 희끗한 머리. 주름진 얼굴에 근심 가득한 표정.

교수가 바라보는 제라드란 사람은 이미 전성기를 한참 지난, 노년의 기사 딱 그 정도였다.

어렵게 표정을 숨긴 교수가 입을 열었다.

“그리 걱정되시면 저와 학생들이 최전선에 서도록 하겠습니다. 제라드 단장님께선 병사들과 함께 후방을 맡아 주십시오.”

“아직 실전에는 익숙치 않은 어린 학생들입니다. 저들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험하지 않겠소.”

제라드의 말을 듣던 교수가 일순 눈살을 찌푸렸지만, 금세 표정을 바꾼다. 그가 미소를 지었다.

“두고 보십시오. 저와 학생들이 최전선에서 어찌 활약하는지. 아마 병사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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