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250)

61화.

파밧. 파앙. 파아앙.

신법을 밟고 나아간 이든의 신형이 성 주변을 맴돌았다.

부지불식간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도 그의 앞에선 한 수 접고 들어갈 것 같다.

그야말로 빛의 속도라며 혀를 내두를 만한 신기의 가까운 신법.

거진 반 시진 동안 계속된 수색에 이든의 입가에도 실 핏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그가 단전의 마기가 바닥을 보일 정도로 이토록 무리하면서까지 움직이는 이유. 바로 시야의 제한에서였다. 눈이 멀쩡히 보였다면 육안과 기감을 이용해 수월하게 찾았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보니 온전히 기감에만 의지해야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발리스타의 기척이 기감에 잡히질 않았다.

그리고 또 다른 학생의 기척도…이런 경우엔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죽었거나, 혹은 국경을 벗어났거나.

뚝.

이든의 신형이 우뚝 멈춰 섰다. 이윽고 흐르던 실 핏물도 멈춘다.

단지 숨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바닥을 보이던 마기가 금세 차오른 것이다.

“후우….”

숨을 깊게 내쉬었다가 내뱉은 이든의 고개가 돌려지며 사방을 살폈다.

‘없다…’

이든의 기감은 가히 천리안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인근을 샅샅이 뒤졌지만,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혹시 죽었다면….

이든이 고갤 저었다.

죽었다면 주검을 찾는 일은 앞이 보이질 않는 이든에겐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

지금의 그에게 있어 수색은 애초에 아이들이 살아 있다는 전제하에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한 가지.’

이든의 고개가 저 멀리 저편을 향했다. 사방에 태워진 숲을 넘어 국경 밖, 숲과 나무들이 울창한 곳이었다.

‘살아 있다면 확실히 저곳이다. 저곳에선 기척들이 느껴져. 무수히 많은….’

국경 밖에 있는 기척까지 잡아내는 그였다. 그런데 국경 안쪽에 기척을 못 잡아낼 리가 없다.

더 이상의 국경 안 수색은 무의미하다는 방증이었다.

‘가능할까.’

국경 밖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셀 수 없이도 많았다. 그 가운데서 원하는 한 명만 콕 집어내기란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그에게도 벅찬 것이었다.

‘그래도 가야겠지.’

홀로 수색하기엔 벅찬 작업이 될 것이 분명한데도 그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든의 발이 땅을 찍었다.

콱. 파아아아앗!

일순 흔들리는 듯한 대지, 그리고 그 탄력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이든의 신형. 빛과 같은 속도로 앞을 내지르는 신법의 여파에 앞에 우뚝 서 있던 나무들이 갈라지고, 쓰러지기 시작한다.

콰르르릉!

***

“후욱. 후욱….”

발리스타는 연신 숨을 들이셨다 내뱉었다. 그리고 그 옆에 아스테어 역시 마찬가지.

“아, 새끼들 더럽게 끈질기네….”

“선배….”

숨을 고르던 발리스타의 눈이 힐끗 아스테어를 향했다. 그녀의 눈이 사방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 도망칠 땐 제가 앞장서는 게 좋겠어요. 물론 여기서 살아남을 때 얘기지만.”

“으, 응.”

“어떻게 도망을 쳐도 이런 곳으로 골라 올 수가 있는 거죠?”

“하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추격해 오는 오크를 피해 앞만 보고 도망친 곳이 어째 위험이 더 득실한 곳이다.

눈치만 보던 발리스타의 눈이 다시 전방을 향했다.

크르르르….

풀숲 사방에서 들려오는 괴상한 울음소리. 오크들의 붉은 안광과 더불어 식별하기 어려운 다른 종류의 것들이 한대 뒤섞여 둘을 주시하고 있었다.

“몬스터라는 게 원래 이렇게 다른 종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던가…?”

아스테어가 고갤 저었다.

“…제가 아는 지식에 한해선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나 역시….”

크르르르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더 가까워진 사방의 괴음(怪音)들.

더는 도망칠 곳도 없었다. 발리스타와 아스테어의 검을 쥔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스르르.

조용히 풀숲을 오가는 발소리까지 겹치며 신경을 자극하던 그때.

파아아앗!

사냥을 시작하려는 듯, 몬스터들이 일시에 뛰어들었다.

후우우우욱!

동시에 발리스타와 아스테어의 검에서도 푸른 광채가 일렁이며 휘둘러진다.

파아아아앗, 콰직!

달려드는 몬스터들도 가지각색이었지만, 구태여 확인할 겨를 따윈 없었다. 그저 베고, 죽이고, 막는 데에 급급할 뿐이었다.

지이이이잉.

검에 어린 푸른 광채가 희미해질 때쯤. 발리스타와 아스테어의 숨도 거칠어졌다.

쉴 틈 없던 오크와의 전투. 그리고 추격을 따돌리기 위한 도주 후에 재차 이어진 전투 탓에 체력은 금세 바닥을 치고 있었다.

“후욱… 후욱!”

“하아… 하아…!”

“도대체가 뭔 놈의 숲이… 이따구로 생겨 먹은 거야.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이를 악문 발리스타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산처럼 쌓인 몬스터의 시신들. 그리고 죽인 것보다 배로는 많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몬스터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정말….”

내내 굳게 닫혀 있던 아스테어의 입이 열렸다.

“죽을 수도 있겠네요.”

막상 죽음이 닥치면 초연해지다 했던가. 그가 실없이 웃었다.

“…하하. 그러게. 그래도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물론입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

호시탐탐 노리는 몬스터를 향해 발리스타와 아스테어의 안광이 번뜩였다. 예고된 죽음 앞에서도 투지(鬪志)는 전혀 죽지 않은 것이다.

크르르르….

그리고 그것에 반발하듯, 둘을 향한 몬스터의 살기 또한 거세졌다.

“온다!”

“……!”

전투의 소강은 오래가지 않았다. 재차 근접해 오는 몬스터를 향해 발리스타와 아스테어의 검이 휘둘러지려던 그때였다.

휘이이이이이이이! 콰아아아앙!

부지불식간 들려온 폭음과 함께 몰아친 폭발은 그들이 서 있던 대지를 잡아 뒤흔들어댔다.

쿠르르릉.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요동을 치고, 나무와 풀숲이 춤을 추듯 들썩이는 것이 흡사 자연재해를 보는 듯했다.

후우우웅.

흔들렸던 대지가 점차 잠잠해지고 일순 찾아온 정적 속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먼발치에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너무 조용해진 탓일까. 발소리가 그리 큰 것도 아님에도 유별나게 들려왔다.

발리스타와 아스테어가 그리고 몬스터들의 눈이 일제히 기척을 향했다.

“후… 찾느라 힘들었군.”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모래와 먼지가 한데 뒤엉킨 퀴퀴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 인형(人形).

이를 본 발리스타의 얼굴이 일순 환해졌다.

“이든 형!!!”

“늦어서 미안하군. 오래 기다렸소?”

파앗!!!

땅을 밟은 이든의 신형이 어느새 그들 앞에 섰다.

단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리도 든든할 수 있을까. 한고비 넘긴 발리스타가 생색내듯 입을 열었다.

“늦어도 한참이나 늦었소. 오려거든 빨리 좀 오시지. 하마터면 죽을 뻔했소!”

“그러게 왜 도망을 쳐도 이딴 곳을 고른 거요?”.

아스테어도 똑같은 소릴 하더니, 이든마저 타박하자 발리스타의 무안한 듯 웃었다.

“하하… 그게 정신없이 도망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소.”

“눈은 뒀다 뭐 하는지. 앞 못 보는 나도 여기로 도망을 오지는 않을 거요.”

“크하하! 내 주의하리다.”

옆에서 듣던 아스테어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했다. 도무지 몬스터를 앞에 두고 저런 농들이 나올까 싶었던 탓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느닷없이 나타난 눈앞에 사내에게 그녀마저 어느새 든든함을 느끼고 있던 것은 왜일까.

그때, 이든이 일순 입을 열었다.

“남아 있소?”

앞뒤 자른 주어 없는 말에 발리스타가 의아한 표정을 했다.

“뭐가 말이오?”

“도망칠 힘 아직 남아 있느냐는 소리요.”

“아니 뭐…. 도망칠 힘 정도야 남아 있기는 하는데, 이든 형까지 합세한 마당에 굳이 도망칠 이유가 있소?”

“그야….”

이든의 기감이 주변을 살폈다. 에워싼 몬스터들의 흉흉한 살기가 셀 수 없을 만큼 상당했다.

“저것들 다 치워 내려면 힘 조절을 못 할 것 같소. 눈까지 안 보이는 마당에 그대들까지 지킬 실력이 못 되오. 괜히 휩쓸리지 말고, 멀찍이 도망치시오.”

“에헤이! 우리가 아무리 형보다 약해도 셋이 모인 마당에 설마하니 저것들에 당하기라도 할까.”

이든의 고개가 발리스타를 향해 홱 돌아갔다.

“몬스터한테 도망치란 소리가 아니라 나한테서 도망치란 말이오.”

“잉… 그게 무슨 말….”

영문을 모를 말이었지만, 의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스으으으….

굳이 더 설명해서 무얼 할까. 이든의 손에서 피어오른 검은 안개가 정면을 향해 휘둘러졌다.

콰르르르릉!

앞으로 쏘아진 검은 섬광은 몬스터며 나무할 것 없이 정면에 모든 것을 산화시켜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파괴력에 발리스타와 아스테어의 눈이 일순 휘둥그레졌다.

휩쓸리지 말라는 말.

이는 이든 자신을 두고 한 것임을 단박에 증명한 셈이다.

“내가 시간을 버는 동안 최대한 멀찍이 떨어지시오.”

발리스타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아, 아무래도 이든 형 말대로 하는 것이 좋겠소. 아스테어…!”

“아, 예…!”

발리스타의 목소리에 아스테어도 정신을 퍼뜩 차리곤, 정면을 향해 황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앞에 먹잇감이 도망가는데도 안중에도 없는지 몬스터들의 눈은 오직 이든 한 사람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크르르르….

괴성과 살기가 더욱 거칠어졌다. 그 광경을 보고도 조금의 겁도 먹지 않은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더욱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앞에 두고 욕심을 내는 듯한 눈빛이었다.

괴물들의 시선을 느낀 걸까. 이든의 입가에 씩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눈앞에 대어가 있는데, 다른 것에 눈길이 갈 리가 없지. 아니 그런가?”

마치 소문난 잔치를 보는 양, 그사이에도 기하급수적으로 사방팔방 모여드는 몬스터들.

스스스스….

이든의 검집에서 뽑아 든 흑색 검에서 검은 마기가 피어오르고, 이내 번개와 같은 속도로 사방에 검격이 휘둘러진다.

콰과과과광!!!!!!!!!

그것을 신호로 기회를 엿보던 몬스터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근접해 온다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쏟아져 나온다는 말만큼 어울리는 것이 없었다.

어디서 소식이라도 듣고 몰려든 것일까. 이든을 노리기 위해 숲에 있던 모든 몬스터가 죄다 쏟아져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몬스터를 향해 일말의 자비 없이 휘둘러지는 이든의 손속은 거침이 없었다.

오른손에 쥔 검이 사방에 검격을 날리고, 왼손에 일렁이는 마기는 정면을 향해 찢어발기며 양다리는 진각을 밟고 땅에 금(坅)을 만들고 뒤흔들었다.

무엇이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드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느껴지는 살기들을 향해 천마(天魔)의 초식을 온통 쏟아 낼 뿐이었다.

베고, 찢고, 밟고, 부수고, 깨트리며 사방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이든의 움직임.

애초에 발리스타와 아스테어가 옆에 있었다면 쓰지 못할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좌우 정면과 후방 할 것 없이 이십 장 밖, 풀과 나무는 모조리 사라지고 몬스터의 살점들만이 대지를 가득 메우며 혈향에서 피어오르는 악취가 진동할 때쯤, 이든의 움직임도 덜컥 멈추었다.

“쿨럭…!”

이든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종일 쉴 틈이라곤 없이 몇 번이나 한계를 쥐어짜 냈던가.

그의 천마심공의 마기가 아무리 깊고 중후하다 한들 내상을 입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의아한 행보였다.

‘후우… 이쯤 했으니 더는 덤벼들지 못하겠지.’

덤벼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닥치는 대로 죽여 댔으니, 근방에 몬스터란 씨는 전부 말랐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잠잠해진 주변만큼이나 주변을 메우던 살기 역시 사라진 것을 확인한 이든이 먼저 자리를 피한 일행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

움찔.

이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살기가 미세하게나마 그의 기감에 잡힌 것이다. 곧 이를 증명하듯 멀리 저편에서 쇳소리가 날아왔다.

쐐애애애액! 파박!

이든 주변으로 날아와 박히는 몇몇 개의 화살들. 애초에 그를 노리고 쏘아진 것이 아닌, 위협용이라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내내 움직임이 없던 이든이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그의 검을 겨누려 할 때쯤. 낯선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렸다.

-움직이지 마.

피이잉.

숲을 가득 메우는 의문의 목소리. 그리고 이든을 향해 언제든 쏘아질 준비를 하는 수많은 화살.

이든이 주위를 살폈다.

어느새 다가온 것일까. 그의 주변에 수많은 의문의 기척들이 느껴졌다.

이든의 입꼬리 한쪽이 씩 올라갔다. 그가 입을 열었다.

“재밌는 놈들일세. 너희들 뭐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