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64/250)

64화.

정신을 조종하는 술법.

죽은 자를 되살리는 강시술.

대가를 희생하여 강한 힘을 얻는 것.

모두가 하나같이 마도(魔道)에 해당하는 것들 아닌가?

흑마법이 무엇인지를 떠나, 왕이 설명한 것만 놓고 들으면 필시 신교의 것이라 봐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놈들에겐 마기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든의 손이 멈춘 사이.

겔러하드가 잔에 남은 술을 마저 비웠다.

“뭐, 여러 번 조사를 해 봤지만, 시신을 조사해서 얻는 것엔 한계가 있고, 집중적으로 파헤치기엔 우리 쪽 피해를 감수할 이유는 없어서 말이야. 어차피 그것들로 골머리를 썩이는 건 우리가 아니라. 인간들 아닌가?”

철저하게 구분하는 공과 사.

그야말로 한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다운 판단이었다.

이든 역시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듯했고.

“그렇긴 하지요.”

겔러하드의 눈이 힐끔 손님들을 향했다. 그가 손뼉을 쳤다.

짝짝.

“자자. 이런 즐거운 자리에서 무거운 얘기를 꺼내면 쓰겠나. 자네들은 오늘 여기 초대된 손님일세. 먹고, 마시고 즐겨달라고. 그 이후의 문제는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 아닌가?”

맞는 말이었다.

이든이 산뜻하게 고갤 끄덕였다.

“좋습니다.”

무거웠던 분위기가 걷히고, 다들 식사를 끝낼 무렵.

이든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을 거닐었다.

초대된 손님인 만큼 별다른 제지는 없었다.

이든의 뒷모습을 실비아가 유심히 바라보다 따라나섰다.

그리고 그런 딸을 바라보는 겔러하드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젊은이란 참 좋은 것이지.”

“예?”

술잔을 비운 발리스타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을 했다.

겔러하드가 웃으며 그의 등을 두들겼다.

“하하. 그런 것이 있네. 자, 마저 받으시게!”

***

‘허… 아까부터 느꼈지만, 정말이지 대단하군.’

밖을 거닐던 이든은 연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가 이토록 감탄하는 이유.

그것은 이곳에 말도 안 되게 풍부한 진기의 양 때문이었다.

사실 전생의 중원과 비교하면 바깥세상도 진기의 양이 무척이나 풍부한 편이었다.

오죽 많으면 빠른 회복의 대명사인 천마심공과 죽이 맞아. 잠깐만 운공을 해도 바닥을 치던 마기가 꽉꽉 들어찼겠는가.

그런데….

‘여기는 바깥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더 많은데…?’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많았다.

딱히 운공도 하지 않았고.

단지 이곳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그의 내상은 상당히 회복되어 있었다.

감탄의 감탄을 금치 못하던 이든의 눈썹이 일순 꿈틀거렸다.

그가 고갤 돌려 어느 한 곳을 바라보다가 입을 뗐다.

“실비아 님?”

이든의 목소리가 향한 곳.

그곳엔 실비아가 얼굴을 붉히며 멋쩍은 듯 서 있었다.

“그… 산책 중이셨나요?”

산책…?

정확히는 산책이라기보단 염탐에 가까웠지만.

산책도 틀린 말은 아니지.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예. 이곳에 들어올 때 느낌이 묘하여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훗. 많죠?”

배시시 웃어 보이던 실비아가 다짜고짜 꺼낸 말. 하지만 이든 역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네. 굉장히 충만하군요.”

“저희는 오랜 예부터 숲을 보금자리로 삼아왔대요. 저희의 조상께선 자연에 깃든 기운을 활용해서 터전을 발전시키고 그 기운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에 심혈을 기울여 지금에 이르렀대요. 예민한 사람이라면 이곳이 바깥과 다르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리죠.”

“그렇군요. 느낄수록 대단합니다. 원래도 숲이 도시보단 기운이 충만한 법이긴 한데. 이건 정도를 넘어섰습니다. 그냥… 공기나 바람. 그 정도 수준으로 풍부하게 느껴집니다.”

본래 이 기(氣)라는 것이 자연이 주는 선물 같은 것이라 당연히 도시보다 숲에 그 기운이 몰려 있을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 때문에 강호에서도 수많은 문파가 좋은 터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았던가.

이는 신교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기가 진기가 다르다 한들 어찌 됐든 그 역시 기(氣)였다.

필요로 하는 것이 마기든, 혹은 진기든 간에 기운이 충만한 곳에 터를 잡으면 수련의 성과 역시 다를 터. 이든이 조심스럽게 실비아에게 물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떤 원리로 운영되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수련과 관련해서라면 부끄러움을 감수해서라도 얻고자 하던 것이 그였다. 이든의 물음에 실비아가 난처한 얼굴을 하였다.

“사실 그게…. 워낙 오래전 기술이고 아는 사람도 극히 일부라 저도 잘 몰라요….”

이든이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며 고갤 끄덕였다.

“그렇군요.”

방법이라도 알면 어떻게 개인 연공실이라도 만들었을 기세였다.

“해서 설명해 드리긴 어렵고, 한번 가 보실래요?”

“음? 어딜 말입니까?”

“기운의 근원지요.”

“정말요?”

“물론이죠!”

이든의 표정이 환해지다가 곧 멋쩍은 듯 바뀌었다.

“근데… 외부인을 그런 중요한 곳에 데려가도 괜찮겠습니까?”

“철통 보안인 곳이긴 하지만, 설마 제가 공주인데 안 되겠어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

“안 된다구!?”

하지만 아쉽게도 안 됐다.

“고, 공주님. 떼쓰셔도 소용없어요. 오직 왕가만 들어가실 수 있는 곳이라구요. 외부인, 그것도 인간은 절대 불가합니다.”

“날 구해 준 은인인데!?”

“왕을 구해 주신 은인이라도 안 될걸요.”

“…이잇.”

실비아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곤 노려보자, 그곳 지키는 수문장이 눈을 옆으로 쓱 피했다.

“비켜.”

“안 돼요.”

묘한 정적이 이르고.

실비아의 전음이 그에게 전달됐다.

-창피하게 하지 말고, 얼른 비켜. 잠깐 보고 나오면 되잖아!

“나 참 안된다니깐요! 왕께서 부탁하셔도 아니, 선대왕께서 오셔서 부탁하셔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치….”

완고한 태도가 절대 비켜 줄 기세가 아니었다.

실비아가 고갤 푹 숙이며 이든의 눈치를 보던 그때.

이든이 도리어 무안한 얼굴을 했다.

“저, 저기… 마음은 감사한데.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니요!”

“…음?”

“반드시 들어갈 거예요. 우리 엘프족은 밖으로 내뱉은 말은 무조건 지킨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구경시켜 드릴게요. 이든 님!”

“…아아 예. 하하….”

***

“그 실비아 님….”

“네?”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한데…. 여기 길은 맞는 거죠?”

“하하… 그, 그럼요. 일종의 샛길이라고나 할까요…?”

결코, 아니었다.

길도 샛길도 아닌, 그들이 똥개처럼 네발로 기어서 다니는 그곳은 이곳의 환기 시설이었다.

정확히는 무엇을 환기하는 시설인가. 바로 근원지에서 나오는 증폭된 기운을 이곳 엘프 숲 영토 전반에 골고루 나누어 주는 일종의 환풍 시설 같은 것이었다.

당연히 사람이 걸어 다닐 만한 장소가 아닌지라 부득이하게 기어 다니게 된 것이다.

앞서가던 실바아의 눈이 슬쩍슬쩍 뒤에 이든의 눈치를 봤다.

어떻게든 구경시켜 준다고 선택한 샛길이 이런 개구멍 같은 곳일 줄은 그녀 역시 상상조차 못 한 것이다.

“조금만 참고 걸으시면(?) 곧, 도착할 거예요…!”

그래도 고생 끝에 낙이 온다 하지 않던가.

이든 역시 그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녀가 저리도 보여 주길 간절해하니, 무릅쓰고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 아니 기었을까.

낙은 오지 않았다.

실비아가 흔들리는 눈으로 막다른 곳을 봤다.

“여, 여기가 왜 막혀 있지….?”

이든이 경악한 얼굴을 했다.

“막혀 있…어요?”

“…네.”

“돌아가야겠군요.”

“…죄송해요.”

결국 낑낑대며 왔던 곳으로 한참을 돌아갔다.

이든 앞에 선 실비아는 차마 고갤 들 수 없던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억지 부리는 바람에….”

“하하… 아닙니다. 아주 진귀한 경험이었습니다.”

진귀한 경험이고 말고.

살면서 선대 천마 외에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깟 것이 뭐라고 무릎을 꿇고 개구멍을 전전했단 말인가.

이든이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던 그때, 실비아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제게 더 좋은 생각이 있어요…!”

“…예?”

어째 불안감부터 엄습해 오는 것은 왜일까. 은연중 그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드는 듯했다.

“곧 있으면 교대 시간이에요. 그 틈을 타 들어가는 거죠. 어때요?”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든에게는.

문제는 실비아, 그녀였다.

“그러면 무엇보다 움직임이 날래야 할 텐데. 실비아 님에겐 어려운 일 아니겠습니까?”

“그럼 이건 어때요?”

“또 어떤….”

“기절시키는 거예요.”

“…저 병사를 말입니까?”

“예!”

갈수록 가관이다.

이쯤 되니 그녀의 아비 되는 왕이란 양반이 그녀로 얼마나 고생했을지 눈이 보이지 않아도 훤했다.

‘기절이라니 얼어 죽을!’

이든이 그녀를 달래듯 말했다.

“그럴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네?”

이든의 계획은 간단했다.

심수심진법(沈水深陳法)을 사용해. 모습과 기척을 없애고 병사가 교대하는 틈을 타 몰래 침투하는 것.

물론 그녀에게 이 모든 것을 일일이 설명하는 데 애를 먹긴 했지만, 그녀 역시 이든의 계획을 썩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준비되셨습니까.”

“네!”

실비아의 시선이, 그리고 이든의 기감이 먼발치에서 오는 기척을 향했다.

저벅저벅.

교대를 위해 한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의 눈이, 교대를 위해 걸어오는 이를 향해 힐끔 움직이는 그 순간.

-지금입니다.

이든의 전음에 실비아가 고갤 끄덕였다.

파밧.

찰나의 찰나를 쪼갠 그 짧은 순간.

심수심진법이 발동됨과 동시에 이든이 실비아를 끌어안고는 신법을 밟았다.

파밧.

그리고 자취를 감췄던 그들의 신형이 단숨에 문 안으로 향했다.

덜컹.

하지만 소리까진 어쩌지 못했던 모양이다.

병사의 눈이 다시 지키던 문으로 향했다.

“응?”

“무슨 일 있어?”

교대하러 왔던 이가 묻자, 눈을 돌렸던 병사가 고갤 갸웃했다.

“방금… 문 열리지 않았어?”

“문이?”

하지만 전혀 그런 것 없이 잠잠한 문. 그가 보초를 서던 병사의 어깰 툭 쳤다.

“아무래도 자네가 많이 피곤했나 보군.”

“그, 그런가…?”

“어서 들어가게. 이제부터 이곳은 내가 지키지.”

“으응… 알겠네. 아무래도 그간 내가 좀 무리를 했나 보군. 그럼 맡기고 이만 들어가 쉬겠네.”

“그래. 푹 쉬라고.”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한가로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이미 이든과 실비아가 안을 거닐며 구경을 하고 있다는 것을.

훗날 그들은 수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단 이유로 질책을 받고 둘을 원망했지만 말이다.

***

“어때요?”

실비아의 물음에 이든은 입을 쩍 벌린 체 아무런 대답을 못 했다.

요지부동인 그의 고개.

그의 기감이 향한 곳엔 높이를 헤아리기 힘든 거목이 자리하고 있었다. 끝까지 올라간다면 하늘에 닿을까 싶은 그런 거목.

물론 눈이 보이지 않던 이든에게 그것은 놀랄 만한 사항은 아니었다.

그가 입을 다물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곳에 들어온 직후. 익숙한 냄새와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의 기감은 줄곧 이 거목의 열매를 향해 있었다.

이든이 마른 침을 삼켰다.

‘왜. 대환단이 여기 있어…?’

대환단.

가히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소림 최고의 영약이자 보물.

전생의 무림을 종횡하던 시절.

그 역시 이를 취하고자 정마 전쟁 때, 무리를 강행하면서까지 구파의 북두였던 소림을 가장 먼저 공격하지 않았던가.

물론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당시 소림을 무너뜨리고 대환단을 취한 무진은 덕분에 비등했던 맹주와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때 대환단을 취했던 기억이 너무도 강렬하여 지금도 잊히지 않는데, 그런 그의 앞에 대환단이 있다면?

아니, 이든의 기감이 향한 그것이 대환단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앞에 거목엔 필시 대환단의 것으로 느껴지는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느껴지는 기운 그 자체로만 본다면 필시 한 개가 아닌, 무수히 많은 대환단이….

“저, 저기… 이 향기. 혹시 어디서 나는 건가요?”

향기다.

영약이라 하지만, 소림의 보물 대환단은 향기가 났다.

한약의 냄새인 듯하면서, 꽃냄새 같으면서도 달콤한 열매 냄새 같은 오묘한 향기.

실비아의 눈이 이든이 가리킨 곳으로 향했다.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이든의 기감이 향한 그것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 세계수 열매 말이군요.”

“세계수 열매?”

“네. 이든 님께서 맡으신 향기는 아마 여기 세계수에서 열리는 열매일 거예요. 오랜 옛날 이 땅에 보금자리 처음 세워졌을 당시에 우리들의 조상께서 싹을 틔우시고 키워 오신 결정체. 기운을 풍요롭게 하고, 엘프들을 병들지 않게 하고, 늙지 않게 해 주는… 현재는 왕가에서 엄준히 관리하는 저희 종족의 보물. 세계수랍니다.”

비로소 이든이 이해했단 얼굴을 했다.

영역 전체에 퍼져 있는 충만한 기(氣). 이 세계수라면, 그리고 이 세계수가 품고 있는 기운을 기관진식을 이용해 전역에 퍼트릴 수 있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것이었다.

그때, 이든의 얼굴에 흔치 않은 변화가 일었다.

‘이거야. 지금의 부족한 내공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도…!’

이든이 눈앞의 대환단, 아니 세계수 열매에 눈독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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