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1/250)

71화.

간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

‘거의 한 달 만인가?’

수고해 준 길드원들의 노고를 생각해서 본부에서 특별 지침이 내려왔었다.

레온하르트 영지에 다녀온 소속 길드원들의 충분한 휴식이 그것.

덕분에 길드원들은 그간 고된 일정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의뢰를 받고 간만에 호송에 나서기 전, 결속을 다지기 위해 길드 근처 주점에 빙 둘러앉은 길드원들.

케인의 시선이 하나같이 얼굴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동료들을 향했다.

동료들을 훑던 케인이 입을 열었다.

“다들 잘들 지냈나!”

“예.”

“음. 뭐 굳이 묻지 않아도 얼굴만 봐도 알 것 같지만.”

“흠흠.”

본디 무인이라 하면, 휴가 중에도 수련을 게을리해선 안 되는 법. 하지만 케인에 눈에 담긴 동료들의 모습은 필시 도살장에 끌려가기 전 살을 뒤룩뒤룩 찌운 돼지나 소의 형상이었다.

나태해진 그들의 모습에 한소리 하고 싶지만, 케인은 차마 이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퉁퉁.

자신 역시 그들의 모습과 같았기 때문에.

정말이지 얼마 만의 긴 휴가였는지….

거진 한 달이란 시간 동안 먹고, 마시고, 잔 것 외엔 대체 한 게 뭐가 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크흠.”

괜한 헛기침 한번.

꼴들을 보아하니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같은 꼬락서니끼리 놀리고 싶어도 놀릴 수가 없는 모양이다.

서로 딴청을 피우던 동료들의 눈이 스르륵 한 사람을 향했다.

이 많고 많은 인원 중에 유일하게 멀쩡한 사람.

안 본 사이 상체는 더욱 커지고 탄탄해진 것 같다.

아직 성장기의 나이라서 그런가.

키도 더욱 큰 것 같고.

다부지고 탄탄한 몸에 쭉쭉 뻗은 팔다리.

그야말로 무인으로서 가장 이상적인 표본이랄까.

착 감겨 있는 눈.

집중된 이목을 한 몸에 받는 이든이 거기에 있었다.

그런 와중에 케인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이든. 자네는 그간 어찌 지냈나?”

그 많고 많은 동료들 중에 제일 부지런히 지냈을 법한 이든을 콕 집어 그간의 정황을 묻는다.

이든이 어깨를 으쓱였다.

“간만에 시간이 생겨서 그간 소홀히 했던 수련에 매진했습니다.”

‘역시….’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딱 맞아떨어진다고 생각들 하는 순간이었다.

“…….”

그때 동료들의 시선이 저마다 자기들의 배를 향했다.

홀쭉했던 허리가, 어느새 뱃살로 퉁퉁 불어나 있다.

이건 뭐, 용병들의 모습이 아니라. 술과 음식에 빠져 사는 나태한 부호의 모습이다.

진짜 부호라면 말도 안 하지.

몸으로 먹고사는 용병이란 작자들이 이런 꼴이라니.

한심하단 눈으로 본인들의 몸을 바라보던 이들이 저마다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 모습에 케인이 난감한 얼굴을 했다.

결속을 다지자고 모인 것이 어째 참회의 시간이 되어 버렸다.

케인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침체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크흠. 자자, 다들 고개 들고. 내가 이리들 모이라 한 이유는 이번에 맡게 된 호송 의뢰 때문이네.”

케인의 말에 동료들이 저마다 눈을 빛냈다.

휴가도 좋지만, 천생 무인의 성격은 어디 가지 않는다.

슬슬 좀이 쑤시다 싶은 참에 들어온 호송 의뢰라 오히려 기쁘기까지 하다. 그들이 더욱 귀를 기울였다.

“긴 휴가 동안 여러 곳에서 의뢰를 부탁했는데, 현실적으로 제한된 인원상 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해서 게럴드 지부장님과 논의 끝에 캐슬롯 영지 호송으로 결정 났네.”

“캐슬롯 영지?”

익숙한 이름의 이든의 눈썹이 꿈틀거리고, 동료들이 저마다 수군댔다.

“캐슬롯 후작 영지라면 지금 분위기 엄청 안 좋은 거 아니에요? 거기도 영주가 돌연 사라져서 결국 사망 처리됐다는데.”

로즈의 물음에 케인이 고갤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레온하르트 영지와 같은 수준은 아닐 거야. 캐슬롯 후작 영지는 애초에 제국 외곽 국경에 있는 영토도 아닐뿐더러. 그의 아들이 후임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어 치안 자체에 큰 문제가 없다는군.”

“흠.”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레온하르트 영지와 같은 경험은 한 번으로 충분했다.

그때, 정적 속에 누군가 손을 들었다. 케인이 고갤 끄덕이며 응했다.

“말해 보게. 톰슨.”

“의뢰를 부탁한 상단은 어떤 곳입니까. 길드에서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면 꽤 큰 곳인 듯한데.”

동료들이 저마다 의심의 눈길로 톰슨의 얼굴을 쳐다봤다.

톰슨이 화끈 달아오른 얼굴로 노발대발해댔다.

“뭐, 뭐야! 다들 왜 그렇게 보는 거야!?”

“이 새끼 톰슨 맞아?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살찐 톰슨 좀 닮은 놈 아냐?”

그동안 얼마나 생각 없이 살아 댔으면 당연한 소리 조금 했다고 이런 반응일까.

톰슨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주점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릴 질러 댔다.

“뭐, 뭔 개소리야. 다들!!!”

“아니, 평소엔 그런 것 관심도 없으면서 사람 달라 보이게 어울리지도 않는 질문이야!?”

톰슨이 억울한 듯 가슴을 팡팡 쳐 댔다.

“어휴! 앓느니 죽지, 죽어! 칭찬은 못 해 줄망정 이런 소리까지 들어야 하냐, 내가!”

“푸하하하!”

톰슨의 신세 한탄에 축 처져 있던 분위기가 금세 달아올랐다.

케인 역시 살짝 웃다가 다시 이내 진지한 얼굴로 의뢰인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의뢰한 상단은 펑크 길드로 톰슨의 예상과 달리 큰 상단은 아니야. 오히려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생 상단이지.”

“음? 간만에 첫 의뢰가 신생 상단이라니 제시한 의뢰 금액이 컸던 모양이죠?”

동료들의 물음에 케인은 산뜻하게 사실을 인정했다.

굳이 숨길 필요도 없지만.

“그래. 액수만으로 다른 상단 의뢰금의 세 배야.”

“세 배!?!?”

모두 하나같이들 놀란 표정을 한다. 상단의 호송 의뢰금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세 배나 되는 의뢰금을 제시했다면 그만큼 일이 급하단 얘긴데….

하지만 신생 상단이라면 그만한 의뢰금도 충분히 부담될 터.

차라리 조금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사설 용병 업체에 맡기는 것이 적자를 덜 보는 것일 텐데….

아니, 애초에 무리해서 의뢰할 만큼에 큰 거래가 오가긴 할 수 있는 건가.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길드에서도 고심 끝에 의뢰를 맡기로 결정했으리라.

자신들이 거기까지 간섭할 일은 아니었다.

호송을 맡은 길드는 호송만 신경 쓰면 그뿐.

케인이 재차 말을 이었다.

“해서 의뢰인에 관한 정확한 신상은 나도, 그리고 직접 면담을 진행한 게럴드 지부장님도 파악이 되지 못한 상태니 의뢰인의 신경을 거슬리는 일이 없도록 호송에 만전을 기하자고.”

“예.”

동료들이 저마다 고갤 끄덕였다.

보통 의뢰인의 신상이 주어지면 의뢰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미리 주의 사항을 숙지하곤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

하지만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고, 저마다 별다른 생각 없이 결연한 얼굴을 하며 앞으로 있을 호송으로 눈을 빛내던 그때.

로즈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그…. 이번에도 임시 대장직은 이든이 맡는 게 어때요?”

“응?”

갑자기 왜?

케인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일전처럼 합동 작전도 아니고, 팀 단독으로 움직일 텐데. 굳이 이든이 임시 대장직을 맡을 이유가….

충분히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말이지만 로즈가 무슨 생각이 있겠거니, 라고 생각한 케인이 그녀에게 연유를 물었다.

“아니면 성문 밖에 나갈 때까지 만이라도….”

“왜인지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팔려서요.”

“응?”

로즈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무언가 중얼거리는데, 옆에서 듣기 답답했던 톰슨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년이 뭐라는 거야. 크게 좀 말해 봐!”

집중된 이목과 톰슨의 독촉에 로즈가 잔뜩 빨개진 얼굴로 꽥 소릴 질렀다.

“쪽팔려서!!!”

“…쪽팔려?”

동료들이 저마다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는 사이, 로즈가 울상인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호송 길드원이 살이 뒤룩뒤룩 쪄서 돼지인 상황에 대장마저 돼지면 쪽팔려서 어떻게 고갤 들고 다녀요오오오오!!!”

“아….”

그 이유였구나….

하지만 왜일까.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케인이 다시금 자신의 배를 쳐다봤다.

퉁퉁.

잊고 있었는데, 다시금 불룩 튀어나온 뱃살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또르르.

왠지 눈가에 눈물 한 방울이 맺혀와 흘렀다.

그동안 정말 게을렀구나. 우리.

케인이 가라앉은 얼굴로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로즈. 자네 말이 맞는 것 같네. 적어도… 선두에 서는 대장만큼은 멀쩡해 보이는 것이 좋겠지. 그래서 말인데 이든… 자네가 성문 밖까지만 임시 대장직을 맡아 주겠나?”

“…….”

그런 일도 임시 대장직이라고 할 수 있나?

이든이 무미건조한 얼굴로 가볍게 고갤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로즈의 한마디가 불러온 파급력은 참으로 대단했다.

다시금 떠오른 현실에 침울해진 분위기 속에서 이든만이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

“지시했던 일은 어찌 처리됐나?”

한 사내의 얼굴이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만이 드리워진 곳에 빛을 발하듯 안광을 번뜩이는 누군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사내가 놀라 급히 일어나 몸을 숙였다.

“오, 오셨습니까…!”

방문이 열렸던 적은 한번 없고.

기척 역시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느새 방 안에 들어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한 괴인.

그 기괴함에 고갤 숙인 사내의 얼굴이 대번에 하얗게 질렸다.

“인사는 됐고, 묻는 용건에만 답하도록.”

“아아… 예! 지시하신 대로 유니콘 길드의 의뢰를 넣었고, 합의가 된 상황입니다. 삼 일 뒤에 호송을 나서기로 했으니 예정대로 일을 진행할까 합니다.”

“음.”

눈을 감은 걸까.

번뜩이는 안광이 사라지고, 낮은 침음성이 들려왔다.

그 모습에 사내가 안절부절못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물건은?”

“문제없습니다. 절대 찾지 못하도록 꼭꼭 숨겨 뒀습니다.”

“상단원에게 언질은 해 놨나?”

“혹여 문제가 생길까 언질은 해 두지 않았습니다.”

“잘했다.”

“근데….”

“음?”

“마, 마부들에겐 미리 말해 뒀습니다. 아무래도 물건을 미리 숨겨 둬야 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

그리고 재차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번쩍이는 두 눈.

무심했던 그 눈에 일순 살기가 아른거렸다.

“일은 확실히 하는 것이 좋지. 도착하는 대로 마부는 죽이도록.”

“예.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사내가 다시금 고갤 숙였다.

힐끔.

그의 시선이 힐끗 앞을 향했다.

어둠 속, 무심히 발하던 안광이 서서히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이번 일만 잘 처리한다면 주인님께서 큰 상을 내리실 것이다. 물론 실패할 땐 그에 반하는 혹독한 벌이 내려지겠지.”

꿀꺽.

그 혹독한 벌이 무언지 언급은 없었지만, 필시 죽음보다 더욱 고통스러울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니 실수 없이 처리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스르르….

희미했던 안광이 마치 어둠 속에 스며들 듯 허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처럼 완벽히 사라진 기척.

“후우….”

내내 조아리며 바닥만 내려다보기 바빴던 사내가 얼굴을 들고 숨을 크게 한번 내뱉었다.

그때. 쓸쓸히 발하던 달빛이 창을 비집고 들어와 사내의 얼굴을 비춘다. 은은한 달빛이지만, 그의 윤곽을 드러내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달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 사내.

한 상단의 길드장, 펑크의 얼굴에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는 욕망이 그득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

집 밖을나서는 이든의 모습에 메리가 눈물을 훔쳤다.

“어쩜 네가 있을 땐 이리도 시간이 빠른지….”

“이번 일정은 별일 없이 금방 돌아올 겁니다. 캐슬롯 영지도 이곳에서 그리 먼 곳도 아니고요.”

메리의 어깨를 감싸 안은 브라운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바쁜 애 오래 붙잡아 두지 말자고.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이든이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의 옆에 나란히 걷던 릴리가 그의 스승을 빤히 바라봤다.

“뭐야?”

어쩜 보이지 않는 눈으로 저리 귀신같이도 알아차릴까.

하지만 릴리도 그런 이든의 모습에 꽤 익숙해져 있었다.

릴리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냥 스승님도 우시나 해서요.”

“퍽이나. 내가 울 것 같으냐.”

하긴 저 피 한 방울도 안 나올 것 같은 무미건조한 얼굴에서 눈물이라니 말도 안 되지.

하지만 아무리 철혈의 사내라도 가족 걱정이 이따금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나 없을 때 부모님하곤 사이 좀 어떠냐?”

“훗. 걱정하지 마셔요. 아마 스승님보다 자식 노릇은 더 잘하고 있을걸요?”

“그래?”

하긴 릴리 성격이라면 딱히 걱정할 부분은 아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이든이 무심코 말을 꺼냈다.

“독립 말이다.”

“예…!? 아, 네….”

뜬금없는 독립 얘기에 올 것이 왔구나 하는 그녀의 얼굴.

하지만 이내 곧 믿을 수 없는 얘기에 표정이 급변했다.

“아무래도 너 계속 살아야겠다.”

“하긴 이제 독립할 때도 됐…네?”

“네가 있는 게 부모님도 덜 적적하실 테고, 그리고… 응?”

코앞까지 온 길드.

이든이 호송을 떠날 수레 옆을 막 지나칠 무렵. 그가 말끝을 흐리며 일순 걸음을 멈췄다.

“스승님?”

휙휙.

무엇 때문일까.

릴리의 부름에도 답이 없던 그가 연신 수레 주변을 두리번대며 킁킁거렸다.

‘뭐야. 이 익숙한 냄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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