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화. (72/250)

72화.

“스승님?”

“…….”

“스승님!!!”

“으, 응?”

“대체 정신을 어디에 팔고 계신 거예요!”

“아, 미안.”

“나 참.”

그에게 보일 리 만무했지만, 릴리가 뾰로통한 표정을 했다.

한창 중요한 대화 중에 아무런 딴청을 피워 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뭐, 보이지 않는다고 상대 기분 어떤지 모를 만큼 스승이란 작자가 그리 멍청한 인간은 아니었다.

이든이 미안한 얼굴로 얼굴을 긁적이며 말을 마저 이었다.

“아무튼 네가 계속 우리 집에 있어 줬으면 한다. 내가 집을 자주 비우는 것도 그렇고. 네 말대로 나보단 네가 더 자식 노릇을 잘할 것 같으니.”

이든의 말을 듣던 릴리가 무안한 표정을 했다.

“그, 그건 그냥 장난으로 해 본 소리였고요!”

“아무튼 어쩔래. 내 생각은 이러한데, 그래도 당사자 생각이 가장 중요한 법이지.”

“그게….”

“싫으냐?”

“싫긴요!”

릴리가 냉큼 답했다.

“싫을 리가 없잖아요… 제겐 엄마, 아빠 같은 분들이었는데….”

말끝을 흐리며 얼굴을 붉힌 릴리의 머릴, 이든의 큼지막한 손이 쓰다듬는다. 릴리의 눈이 또르르 위로 향했다.

“스승님…?”

“훗. 앞으로도 우리 부모님 좀 잘 부탁한다.”

“…아, 네!”

릴리가 배시시 웃다가 정신을 퍼뜩 차리곤,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저 늦어서 이만 들어가 볼게요. 스승님도 몸조심해서 다녀오시고요!”

“그러마.”

릴리가 빠른 걸음으로 저만치 멀어지는 사이, 이든이 고갤 틀어 다시 수레 쪽으로 향했다.

웃음기 머금던 그의 낯빛이 다시 차츰 차가워졌다.

‘많이 맡아 본 냄샌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단 말이야.’

쉽게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억지로 뒤져 가며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이든이 이내 어깰 으쓱였다.

“알게 뭐람.”

차라리 이때, 끈덕지게 붙어서 알아차렸으면 좋았을 것을!

이때만 해도 몰랐다.

우연히 맡았던 그 냄새가 후에 골치 아픈 사건을 불러일으킬 줄은….

***

‘대체 뭐야. 이 새끼들은….’

펑크의 눈이 호송을 나서는 유니콘 길드원들을 연신 살폈다.

퉁퉁.

뒤룩뒤룩.

뭐랄까. 다부져 보인다면 다부져 보이는데….

하나같이들 살이 펑퍼짐하게들 쪘다.

이것이 흔히들 말하는 근육 돼지, 그런 건가…?

뭐, 멀쩡한 사람 한 명이 있기는 한데….

펑크의 시선이 이번엔 정면을 향한다. 그의 시야의 멀쩡해 보이는 몸매의 사내가 들어왔다.

근데….

어째선지 눈을 내내 감고 있다.

‘하… 그나마 멀쩡한 놈은 장님이라. 이건 뭐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군.’

그런데 더욱 기가 차는 건.

이 장님이 대장이란다.

성문 앞까지만.

‘이 뭔 개소리야!’

지금껏 짧게나마 상단을 꾸려 오며 여러 용병을 봐 왔지만,

엉망도 이런 엉망이었던 곳은 단연코 없었다.

펑크가 드러내진 않았지만 속으로 허탈하게 웃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호송 길드원이랍시고 나온 놈들만 봐도 길드 역시 어떤 꼬라지인지 알 수 있지. 대체 마스터께선 이것들이 무엇이 두렵다고 처리하라 하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아니, 그것보다도 이런 오합지졸일 줄도 모르고, 그간에 철저하게 준비한 것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펑크의 입가가 누구도 모르게 미세하게 떨려 왔다.

가까스로 웃음을 참고 있는 것.

‘아니. 오히려 하늘이 날 돕고 있는 것이다. 오합지졸일수록 일 처리는 수월하게 진행되겠지. 난 그저 윗선에서 내리는 막대한 상만 받아 챙기면 그만이야….’

무언가를 상상하는 중인 듯이.

펑크가 눈알을 위로 치켜들며 기이한 표정을 짓는다.

그는 지난날의 세월을 돌이켰다.

길거리 파락호에서 시작했던 인생이었는데, 현재는 어엿한 한 상단의 길드장이 되었다.

그가 이렇게 번듯하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무슨 짓을 해서든 윗선이 내렸던 명을 완수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은 달콤했다.

그 보상들이 지금의 펑크를 만든 것이었다.

펑크가 입맛을 다셨다.

‘지금까진 상단의 길드장이었으니, 다음 보상은….’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상상이 가질 않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속에서 웃음이 끊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푸, 푸풉…!”

“펑크 길드장님?”

“푸…. 네?”

갑자기 들려온 부름에 펑크의 얼굴이 일순 본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온다. 펑크의 눈에 난감한 기색이 어렸다.

‘이, 이런! 진정한다는 게 나도 모르게….’

설마.

들켰을까…?

불순한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자신이라면 분명 알아차렸을 것이다.

자신이라면….

게럴드 지부장에게 시선을 돌렸던 펑크가 일순 기겁한 얼굴을 했다.

조금 전 자신이 지었던 기이한 표정만큼이나 음흉한 눈빛을 하는 게럴드 지부장의 얼굴이 보였다.

게럴드가 의미심장하게 웃어 댔다.

“후후후….”

“……?”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겠습니다.”

“뭐, 뭐라고요…!?”

펑크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이대로 계획 실패인가…!?

이, 이자가 어찌 자신의 계획을 알아차렸단 말인가…!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임무 실패로 윗선에서 내려질 처벌로 두려움이 엄습해 올 무렵.

게럴드 지부장이 여전히 눈을 빛내며 입을 뗐다.

“숨기려 해도 소용없습니다…. 후후.”

“…꿀꺽.”

마른침이 절로 넘어가고, 등줄기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펑크가 요동치는 눈으로 게럴드를 마주하던 그 순간.

게럴드가 씨익 웃었다.

“캐슬롯 영지에….”

덜덜덜….

떨려 오는 다리.

“숨겨 둔 여자 친구가 있으신 거로군요?”

응?

우뚝.

떨리던 다리가 멈추고,

샘솟던 식은땀이 멎고,

흔들리던 동공이 차츰 정적을 유지한다. 펑크의 눈이 앞에 게럴드를 향했다.

허리와 엉덩이를 씰룩대며 짐승 같은 눈빛을 한 중년인.

이 모습은 뭐랄까.

그래. 그냥 변태….

‘그럼 그렇지…. 이딴 길드에 내 계획을 알아차릴 만한 똘똘한 것들이 있을 리가.’

펑크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했지만, 바로 기색을 지웠다.

펑크가 일순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뗐다.

“아하하하! 예. 사실 그렇습니다. 그곳에 몰래 숨겨 둔 여자 친구가 있긴 하지요. 이거 제가 표정을 숨긴다고 숨겼는데, 그러질 못했나 봅니다. 하하….”

개뿔.

이런 변태 중년 아저씨의 장단을 맞춰 줘야 한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지만, 성공적인 계획을 위해서라면 감수 못 할 것도 없었다.

어찌 됐든 간에 일이 뜻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좋은 징조 아니겠는가.

펑크의 말을 듣던 게럴드가 음흉한 눈빛을 넘어 이제는 아예 헤벌쭉 웃었다.

“이거, 이거. 힘이 넘쳐 보이시는 것이 평소에 좋은 걸 몰래 챙겨 드시는 것 같은데, 같이 좀 나눠 드시죠. 펑크 길드장님. 후후후…. 꿱!”

그때, 펑크의 시야에 게럴드의 모습이 일순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앞에 나타난 한 명의 여인. 이리아가 멋쩍게 웃으며 게럴드를 밀치고 나타났다.

“죄송합니다. 저희 지부장님께서 가끔 저러시는데, 그럴 땐 저와 얘길 진행하시면 됩니다.”

“아아… 예.”

이리아에게 밀쳐진 게럴드가 서러운 표정을 했다.

“흑. 이젠 지부장 체면이고 뭐고 없는 거지.”

하지만 이리아는 이 역시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녀가 펑크에게 정리한 서류와 수화물을 비교해 주는 사이.

펑크의 시선이 힐끔 이리아의 얼굴을 향했다.

‘…나쁘지 않은데?’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누가 봐도 미인상의 굴곡진 몸매. 이제 스물이나 됐을까.

저 어린 나이에 길드의 중진을 꿰차고 있다는 것.

왠지 볼수록 탐이 나는 여자였다.

펑크가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유니콘 길드를 전복시키면…. 이년을 취해야겠군. 후후….’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펑크의 아랫도리가 달아오르려던 무렵.

이리아가 펑크를 연신 불러 댔다.

“펑크 길드장님?”

“아, 예?”

“수하물 확인하러 가셔야죠?”

“아아. 하하. 괜찮습니다. 이리아 비서장님께서 어련히 잘 확인해 주셨겠죠.”

“그럼 따로 확인은 필요 없으시단 말씀이시군요.”

“예. 물론입니다. 이리아 비서장님을 믿습니다.”

이리아가 웃어 보였다.

귀찮은 일도 던 셈이고, 자신을 믿어 준다니 당연히 기분이 좋긴 했지만, 뭐랄까….

중간중간 이따금 펑크의 눈빛이 기분 나쁠 때가 있지만, 그녀는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이리아가 웃으며 남은 얘기를 꺼냈다.

“혹시 따로 알려 주지 않으신 물품은 없으신 거죠? 혹시 추가로 저희가 알아야 할 물건이 있다면….”

“아니요. 없습니다.”

없긴.

있지.

다만 말해 줄 순 없다.

말하는 순간, 계획이 물거품이 될 터이니.

그런 속마음과는 달리,

펑크가 사람 좋아 보이는 가면을 쓰곤 허허실실 웃었다.

“하하. 있다면 비서장님께 진즉에 말씀드렸겠지요.”

“아아… 네. 알겠습니다.”

이리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펑크 저 인간. 쳐다보는 눈빛도 그렇고 중간중간 표정도… 도무지 정감이 가질 않았다.

게럴드 지부장도 변태스러운 건 마찬가지지만.

뭐랄까… 게럴드는 그래도 농 반 진담 반이지만, 눈앞에 펑크란 사내는 정말이지 사람을 소름 끼치게 한달까?

하지만 이 업계에 몸담아 오며 별별 사람 만나 온 그녀에게 펑크도 그 숱한 별놈 중 하나였다.

“그럼. 문제없으신 것으로 알고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예. 아, 이리아 비서장님?”

“예?”

“또 뵀으면 좋겠습니다. 후후.”

“아, 아아… 예.”

재차 온몸에 소름이 끼쳐 왔다.

이리아가 가볍게 고갤 숙이곤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펑크가 의미 모를 미소를 지을 때쯤.

호송 대장 케인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펑크 길드장님.”

“아, 예. 케인 대장…님.”

케인에게 시선을 돌렸던 펑크가 일순 말끝을 흐렸다.

퉁퉁.

정말이지….

볼수록 적응이 되질 않는다.

호송 길드원 대장이란 작자가….

돼지의 형상을 하고 있다니.

말끝을 흐리는 펑크를 보며 케인이 어색한 표정을 했다.

“그… 들으셨다시피 본래 대장은 저이지만, 성문 밖으로 나가기 전까진 저기 이든이란 저 친구가 임시 대장직을 수행할 예정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대장님.”

“예. 말씀하시죠.”

“왜 굳이 임시 대장을 세우신 이유가 뭡니까? 그것도 성문까지만….”

“그것이….”

케인이 힐끗 눈을 피했다.

“그, 그것이 보기 좋을 것 같아서….”

“네?”

“저희 꼴이… 그것이 좀….”

“…아.”

“하하….”

그렇구나.

재차 펑크의 시야에 길드원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퉁퉁….

‘그래서 그런 뻘짓을….’

펑크가 이해했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하기사….

선발에 대장부터 해서… 호송원이 전부 다 돼지로 보일 바엔….

한 명이라도 멀쩡한 것이 그나마 구색으로선 괜찮겠지.

펑크의 시선이 임시 대장(?) 이든을 향했다.

‘장님인 게 흠이긴 해도, 저 정도 외모면 뭐….’

그때, 펑크의 시선이 저 먼발치 이리아를 향한다.

환하게 웃으며 그 장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자신에게 보였던 사무적인 미소가 아닌, 진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미소.

뿌득.

순간 펑크가 이를 갈았다.

질투라도 느낀 걸까.

이든을 향한 펑크의 눈에 핏발이 선 듯 보였다.

‘저딴 장님이 뭐가 좋다고….’

“펑크 길드장님?”

‘내가 훨씬 더….’

“펑크 님?”

“…낫구만!!!”

“예?”

케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펑크를 바라봤다.

무심코 내뱉은 속마음.

일순 케인과 눈이 마주친 펑크가 무안한 얼굴을 했다.

“…네? 부, 부르셨습니까?”

“예. 준비를 마쳤으니 채비하시죠.”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습니까?”

펑크가 머릴 긁적였다.

‘질투에 눈이 먼 나머지 흥분을 주체 못 하다니…. 나도 아직 멀었군.’

케인의 안내를 받으며 걸음을 옮긴 펑크가 선두에 미리 준비해 둔 말 위에 올라탔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구색용(?) 임시 대장 이든 옆에 마주 서게 됐다.

옆에서 이든을 넌지시 바라보던 펑크가 괜한 헛기침 몇 번 후 입을 열었다.

“크, 크흠!”

“……?”

“반갑소. 펑크요.”

처음 만나는 사이에 건네는 인사치곤 무례하다.

저렇게 나와 주니, 이든 역시 예의 차릴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그가 가볍게 고갤 숙였다.

“이든입니다.”

‘이것 보게?’

펑크의 눈이 부릅 뜨였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했던가.

그래도 명색이 의뢰인인데, 달랑 본인 이름만 내던지는 이든의 모습이 퍽이나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눈알을 부라린 펑크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쪽도 호송원이요? 보아하니 눈이 안 보이는 것 같은데, 괜찮겠소?”

점잖은 척 묻지만, 상대의 치부를 들쑤시는 펑크의 화법.

하지만 이든은 달리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괜찮습니다.”

“…….”

욕보일 생각이었는데, 가볍게만 대꾸해 대니 뭘 시도해 볼 새도 없다. 펑크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가까스로 삭였다.

‘시건방진 새끼…!!!’

끓어오르는 화.

하지만 일을 그르치면 안 되었기에 트집 잡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겨우겨우 자신을 진정시킨 펑크가 속으로 빈정댔다.

‘어차피 여기 있는 모두 죽을 운명. 어디 그때 가서도 네놈이 고갤 빳빳이 유지할 수 있을지 지켜봐 주마.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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